- ▲ 최영록 한국시인문화연구소장
바람직한 사회 발전은 정치·경제나 고도산업 등의 외향적인 것보다 그 나라 국민의 정신적 근간을 지탱해주는 예술문화의 뒷받침을 통해 건전하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2월 26일자 B4면 '미당(未堂) 고택 복원됐는데 제자는 "원통·분통·절통"' 제하의 조선일보 기사는 그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미당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고택뿐 아니라 현재 방치되고 있는 문화예술인의 고택은 서울에만도 10여 곳이 넘는다.
빙허 현진건(1900~1943)의 종로구 부암동의 한옥 생가는 2003년에 철거되어 잡초 무성한 빈터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면, 역시 종로구 통인동의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이 20년 넘게 살았던 집은 상가로 변했으며 등록문화재(제88호) 지정마저 해지될 형편에 놓여 있다. 한국 시문학사의 큰 별 김수영(1921~ 1968)의 생가인 종로6가 단층 한옥은 지난 2004년 폭설로 무너져 흔적도 없이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으며, 동화작가 마해송(1905~1966)의 종로구 명륜동 3가 고택은 문화재 등록도 안 된 채 언제 헐릴지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가 하면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는 대전 중구 오류동 박용래(1925~1980)의 집도 헐려 주차장이 됐다. 박용래는 대표적 향토시인으로 호서문학을 넘어 한국 문학을 이끌었던 시인으로 박목월, 박두진, 고은, 이문구 등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시문학의 사랑방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미당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30년 동안 살았던 관악구 남현동의 봉산산방(蓬蒜山房)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방치되다가 2003년 11월 건축업자에게 팔려 영원히 자취를 감출 뻔했다. 다행히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교부금 7억5000만원을 지원해 봉산산방은 기사회생했다. 사후 11년이 돼서야 우여곡절 끝에 복원, 개장하지만 앞으로의 유지 관리가 더 걱정이다.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여러 문학관, 기념관, 박물관 등이 개관과 동시에 폐관되는 사례를 거울삼아 관계자는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복원 과정에서 미당의 시 세계를 잘 몰라 원형이 훼손되는 실수 또한 반복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당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제자, 학자들에게 자문하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효율적인 관리 보존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