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성지순례/이스라엘[종합]

시오니즘

영국신사77 2010. 11. 16. 00:59

시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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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벤구리온테오도르 헤르츨의 사진 앞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시오니즘(영어: Zionism, 히브리어: ציונות) 또는 시온주의(-主義)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민족주의 운동이다.[1] 19세기말 시작되어 1948년 세계에서 유일한 현대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데 성공했다. 유대인 국가라는 개념은 기원전 1200년에서 제2성전시대 사이 시작되었다.[2]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종교적 전통에 토대를 두지만 현대 시온주의는 현세적이며 그 당시 유럽에 존재하던 반유대주의에 향한 반응으로 시작되었다.

지지자들은 시온주의를 ‘디아스포라 민족주의’라고 묘사하며 유대인들의 자결을 이루길 원하는 민족 해방운동으로 여긴다.[3][4]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이유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비윤리적이나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서 온다.[5] 이스라엘이 건국되기전 인간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재탄생하는 것은 신을 향한 죄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도 있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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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편집]

시온주의는 "시온" (히브리어: ציון 지욘)이라는 단어에서 따온다. "시온"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작가 나단 버바움이 "Self-Emancipation" (자기해방) 이라는 저널에서 최초로 이 단어를 쓴 걸로 알려진다. 버바움은 카디마라고 불렸던 최초 학생 유대민족주의 운동의 창시자였다. 시온주의는 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종교적 시온주의, 노동 시온주의, 수정주의적 시온주의등등의 상반되는 관념들이 시온주의 내에 포함될 때도 있다. 몇몇 역사인들은 반유대자들이 시온주의와 시온주의자라는 단어를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하거나 유대인들을 비하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7]

역사적 배경 [편집]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실패로 끝나고 70년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부터 유대인들의 소망이었다. [8] 135년 유대인들은 바르 코크바의 반란으로 이스라엘을 되찾으려고 시도했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헬레니스틱 시대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지중해 근처에 있던 다른 나라들로 떠났다.[9]

알리야 [편집]

알리야 (עלייה)는 이스라엘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어로 상승을 뜻한다. 디아스포라후 유대인들은 주로 과월절욤 키푸르때 "다음 해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말로 기도를 마쳤다.[10] 할라카와 613가지 율법은 알리야를 명예로운 행위으로 여겼다. 중세시대당시 랍비이자 철학자였던 마이모니데스의 글들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초 [편집]

테오도르 헤르츨

시온주의가 지지를 얻기 전 나폴레옹1799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건국하자는 제안을 했다.[11] 빅토리아 여왕과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존 아담스 역시 시오니즘을 지지한 적있다. [12] 1894년 프랑스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사람들중 하나는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전 그는 시오니즘을 반대했으나 이 사건후 시오니즘을 옹호하게 되었다.

19세기 당시 오스만 제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해고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50만 명 중 유대인들은 2만 명에 불과했다. 러시아 제국에서 포그롬이 일어나자 작은 숫자의 유대계 러시아인들이 이스라엘로 귀화하면서 첫 알리야가 시작되었다.[13]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