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스크랩] 알려 지지 않은 성지 이야기 골고다 언덕 예수님의 무덤

영국신사77 2010. 5. 15. 19:05

오늘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시면 꼭 답사하는 곳이 골고다 언덕의 예수님의 무덤입니다.그러나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 성 내부의 복잡한 골목과 붐비는 인파와 특히 예수님의 무덤 거대한 교회 내부의 원형광장 한가운데에 상자처럼 놓여 있어서 예수님의 무덤을 순례한다는 감정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 무덤이 그토록 십자군들이 목숨을 걸고 탈환하고자 하였고 전세계 수십억 기독교인들 갈망하는 순례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무덤일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원래 골고다 언덕은 구약 시대부터 예루살렘의 채석장으로 활용되었던 곳입니다.그러나 예수 당시에는 더 이상 채석장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었고 여러개의 바위굴 무덤들이 뚫려 있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이때는 골고다 언덕이 예루살렘 성문밖에 있었지만 주후 41년 헤롯 아그립파가 예루살렘 성벽을 확장하면서 골고다 언덕이 성안에 포함되었습니다.아마 이당시 골고다 언덕 바위굴에 있었던 모든 유골들은 성밖으로 이장되었을 것입니다.

그후 주후135년 바르코크바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메의 명칭을 엘리야 카파톨리나로 개명하고 로마식의 도시로 다시금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골고다 채석장은 부서지고 매워져 거대한 언덕이 되었으며 이 자리에 로마의 비너스 신전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주후 326년 예루살렘을 성지 순례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비너스 신전을 헐어버리고 흙속에 파묻힌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10여년의 공사 끝에 완성된 성묘교회에는 부활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 돔이 건설되었고 무덤 주위의 거대한 바위를 쪼아내는 작업을 주후380년에 가서야 완성된 것입니다.

그 결과 바윗굴의 무덤은 원형 광장 한가운데 자리잡는 형태가 되었고 그 주변에서는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는 골고다 언덕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주후 예루살렘을 정복한 아랍 통치자 오마르는 방문하여 기도해도 좋다는 성묘교회측의 초징을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이곳에서 기도한다면 이 교회의 기독교적 거룩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겸손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절된 일로 인하여 주후 1009년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하킴은 이교회를 완전히 파괴하게 됩니다.만약 오마르가 다른 교회처럼 이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었다면 비잔틴 시대의 골고다 건축물이 오늘날 까지 남았을 것입니다. 파티마 왕조의 하킴은 그리스도의 무덤을 감싸고 있는 바위 언덕을 정으로 쪼아내 버렸습니다.그 결과 이곳은 더 이상 무덤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곳으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주후1042년 비잔틴 모누마크스 황제는 파괴된 성묘교회를 재건하였습니다.

 

그후 다시 아랍세계로 예루살렘이 넘어가자 십자군들은 주님의 무덤을 회복하고자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곳을 회복하고자 왔습니다.주후 1099년 6월 7일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을 포위하였습니다.부족한 물과 식량 때문에 십자군들은 빠른 시간내에 성을 공격하고자 하였지만  성을 공략 할 수 없자 십자군의 한 사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3일 동안 금식을 하고 9일 동안 맨발로 예루살렘 성을 돌것을 제안하였습니다.마치 여호수아에 의하여 인도되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을 법궤를 메고 돌았던 것처럼 말입니다.7월10일 잘 만들어진 공격용 탑이 북쪽 성벽과 시온산 근처에 설치 되었습니다.

12,000명의 보병과 1300명의 기병들로 구성된 십자군은 7월 13일 본격적인 성 공격을 시도하였습니다. 마침내 1099년 7월15일 예루살렘은 십자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십자군들은 눈물을 흘리며 골고다 성묘교회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무덤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손에 들어간지 430년 만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무덤이 기독교도들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함락한 십자군들은 그리스도의 무덤과 골고다 언덕 사이에 교회당을 새로 건설하면서 성묘교회를 재건하였습니다.그후 1808년 대지진과 1927년 대화재로 인하여 여러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 교회의 모습으로 보존한 것입니다.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묘사된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상하고 이곳에 오신분은 실망하실 것입니다.온갖 제의 기구와 향불과 등잔이 어지럽게 장식된 성묘교회의 현실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실망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특히 성묘교회는 로마 카톨릭,그리스 정교회,아르메니아 정교회,시리아 정교회,콥트정교회,에디오피아 정교회등 모두 여섯 교파가 각각 자리를 잡고 있고 성묘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우리 개신교의 자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예수님의 무덤을 추정하고 그려 볼 수 있는 당시의 무덤이 예수님의 무덤 근처에 있습니다.예수님의 무덤에서 서쪽으로 약 10m정도 떨어진 곳에 주후1세기에 만들어진 신약 시대의 무덤 있는데 시리아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무덤을 통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그려본다면 위안을 삼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묘교회

출처 : 성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 데비드 김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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