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序言
비아 돌로로사는 ‘십자가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란 뜻이다. 길을 의미하는 ‘Via’와 슬픔, 고통, 고난을 의미하는 ‘Dolorosa’가 합쳐진 라틴어이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바리아
언덕)까지 걸어가신 길이다.
비아 돌로로사 가는 길-1.
비아 돌로로사 가는 길-2.
십자가의 길-3
라이온문을 들어서면 성안네 교회가 있고, 바로 앞에 비아 돌로로사의 출발점인 '채찍질 교회'가 있다.
매를 맞으며 걸어가던 예수님이 수난을 당한 곳에는 모두 14곳에, 십자가의 길이라는 예배소(station:처소)가 설치되어 있고, 그 중 10~14번째는 성묘 교회 안에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십자가를 짊어진 수도사들이 행진을 하고 그 뒤를 많은 사람들이 뒤따른다.
제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님이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님이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님이 마리아를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님이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님이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님이 묻힌 곳
14 지점을 기록한 지도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장로들과 의논하여, 결국 죽이기로 결정하고 사형 선고의 권한이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갔고(마 27:1-2), 빌라도는 망설이다가 군중들의 함성에 못이겨 사형 선고를 내리게 되었다.
빌라도의 법정은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의 안토니오 요새
빌라도의 법정이 어느 곳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있다. 그 중 당시 헤롯의 궁에 빌라도가 머물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여 법정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당시 총독관저로 사용하던 하스모니아 궁전에 법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학자들에겐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의외로 공식적인 순례지로 정해진 곳은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모퉁이 외곽에 위치해 있던 로마군 주둔지인 안토니오 요새이다.
이것은 1540년경 오스만투르크의 슐레이만 1세(재위 1520-1566) 때,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안토니오 요새로부터 골고다까지 약 340m의 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 '슬픔의 길'이란 뜻)로 정하여 성지로 삼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 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가셨던 그 길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빌라도 법정 자리였던 엘 오마리오 학교 마당에서부터 십자가 행진이 시작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제들이 주관하여 진행되는 이 행진 가운데는 종종 큰 십자가를 손수 메고 따라가는 순례자들도 눈에 띄인다.
십자가의 길에는 모두 14곳의 장소가 정해져 있는데, 각 장소에 이를 때마다 잠시 머물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
현재 예루살렘 순례의 가장 귀한 '비아 돌로로사'는 온통 옷가게· 정육점· 식품점· 선물용품점 등등의 우리 나라 남대문을 연상케 하는 시장골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겨우 지점마다 잠깐씩 들를 수 밖에 없었다.
제 1, 2 지점은 츨발점인 빌라도 법정에 있고, 제 10 ~ 14 지점은 골고다에 있는데, 이곳엔 현재 성묘 교회가 위치해 있다 .
제 1지점-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신 곳
빌라도 법정이 있던 안토니오 요새를 1/50로 축소해서 만든 모형- 예루살렘 홀리랜드 호텔
헤롯 시대에 예루살렘의 북쪽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의 동북쪽에 요새를 건축하였는데, 로마에 의하여 성전 북편을 감시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총독들이 명절 때가 되면 가이사랴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곳에 있었는데, 예수님을 심문할 때 빌라도도 이곳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당하셨던 장소이다. 지금은 아랍국민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빌라도 법정 1
빌라도 법정 2
빌라도 법정 3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란 '돌 판'이란 뜻으로,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 판을 말한다. 요한복음 19장 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 박석이 곧 리토스 트로토스이다.
오늘날 빌라도 법정 자리에 위치해 있는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발굴된 돌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과, 로마군인들이 장난으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2지점-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이 곳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곳이다. 빌라도의 병정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며, 온갖 조롱을 당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신 곳이다.(마 27:27~31)
이곳에는 채찍질 교회와 선고교회가 한 울 안에 있다.
○ 채찍질교회
제2 지점 채찍질교회-1
제2 지점 채찍질교회-2
채찍교회 내부
교회 제단 위 천정에는 가시면류관이 아름답게 모자이크 되어 있다. 스테인드글리스 남쪽부터 바라바가 풀려나서 기뻐하는 모습, 앞쪽에는 에수께서 채찍당하는 모습, 북쪽은 빌라도가 손 씻는 모습이 채광으로 찬란하게 보인다.
예수께서 채찍질과 조롱당하심
그리고 가시면류관을 묘사한 조각
시관이 아름답게 모자이크 되어있는 채찍질교회 제단 위 천장
먼저 제 2처소에는 카톨릭 소속의 채찍질교회가 1839년에 세워졌는데, 약 1세기 후인 1929년에 십자군시대의 건축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이 채찍질교회의 제단 위 천장에는 가시관이 아름답게 모자이크 되어있다. 앞쪽에는 예수님이 채찍질을 받으시는 모습을, 남쪽 유리창에는 바라바가 놓임을 받고 기뻐하는 장면, 북쪽 유리창에는 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다.
○ 선고교회
선고교회 성화
이 곳에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사형을 선고 받는다(눅 23:24-25). 이 선고교회는 1904년에 재건된
비잔틴식 교회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예수님 뒤로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손을 씻고 있는 빌라도가 보인다
제2처소는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
2지점 선고교회 내부
2지점 선교교회 입구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 모형]
선고교회는 채찍질교회와 같은 한 울 안에 위치해 있다. 이 교회는 1903년에서 1904년에 비잔틴식으로 재건되었는데, 크기는 10 m의 정방형으로 지어졌다.
이 교회의 바닥 부분에서 넓은 돌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로마군인들이 놀던 놀이에 필요한 놀이기구의 모형이 돌에 파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뿐 아니라, 안토니 요새의 다른 장소에서도 돌 바닥에 놀이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소위 '왕의 놀이(The King's play)'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곳 돌바닥의 밑은 그 시대의 물 저장소였고, 그 돌 바닥 위에서 로마 군인들이 모여 쉬고 놀던 장소이다.
예수님을 끌고 자기들이 쉬며 놀던 장소에 와서 채찍질을 하고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쒸우고 자색 옷을 입힌 후, 앞에 와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며 침을 뱉고 희롱하며 놀리던 곳이라고 하여 "왕의 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마 21:21~31, 막15:16~20, 요 19:1~3)
○ 에케호모교회(The Church of Ecce homo)
에케호모 교회 (The Church fo Ecce Homo)
이 곳은 빌라도가 가시 면류관과 자색옷을 입고 나오신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보이며, "보라 이사람이로다"(요 19:5)고 외친 곳이다.
현재의 교회는 1868년에 건축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아치는 AD 2세기경의 로마 개선문이다. 교회 안쪽에 나머지 아치가 남아 있다.
에케호모(Ecce homo)는 "보라 이 사람이로다" 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군중들에게 가리켜 "보라 이 사람이로다" 라고 한 말이다.(요 19:5)
십자가의 길에는 여러 개의 아치가 있다. 채찍질 교회에서 나오자 마자, 길 위에 있는 아치형 건물이 보인다.
에케호모 아치는 서기135년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가 세운 개선문의 한 부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곳이 빌라도가 군중에게 에케 호모라고 말했던 자리라고 하여 에케호모 아치라고 부른다.
최초의 개선문은 가운데에 큰 아치형 문이 있고, 양편 좌우로 작은 아치형 문이 있었다. 중앙의 큰 아치형문이 현재의 에케호모 아치로서, 방 두 개가 있어 창문 두 개가 보인다.
오른편의 작은 아치는 에케호모교회의 제단 부분이며, 왼편의 작은 아치는 아랍 건물의 집이 지어져 있어 볼 수 없다.
에케호모교회는 1868년에 봉헌된 시온 수녀원 소속의 건물이다.
제3지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처음 쓰러지신 곳
예수께서 첫번째로 쓰러지신 곳
교회 입구 윗쪽에 있는 십자가를 지시고 쓰러지신 에수님 조각.
이 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첫번째로 쓰러지신 곳이다. 이 곳을 기념하여 1948년에
엘 와드 길모퉁이에 작은 예배처소인 폴란드 예배당을 지었다.
정문위에 '타데우스 질린스키'가 만든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 넘어지신 모습"의 조각이 보인다.
제 3 지점 기념 교회의 내부이다.
밤새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실 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의 성화가 교회 정면에 그려져 있다.
제4지점 - 예수님이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나신 곳
4 지점
이 곳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81년에 교회를 만들었고,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조각해 놓았다.
이곳 조그만 알메니안 카톨릭 예배당이 마리아의 슬픔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제5지점 -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5 지점
이 곳은 가파른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시작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다(마 27:32, 눅 23:26).
이 곳에 1895년에 세워진 프란시스칸 교회가 있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운 곳
교회내부에 있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있는 모습의 조각.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다.
6 지점
제 6지점
이 곳은 예수님께서 피와 땀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 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님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 준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 1895년 비잔틴 시대의 수녀원이 세워졌다
수녀원 안의 모습.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이 여인에 대해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입은 여인(막5:25-34)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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