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언급되는 풍습이나, 자연, 지형, 그리고 식물들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의 자연환경과 매우 다른 지역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식물 가운데 예를 하나 들어보면 ‘로뎀나무’라 할 수 있는데,
성지답사를 하면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다.
대부분 성도들은 로뎀나무를 느티나무나 소나무 같이 아주 커다란 나무로,
많은 그늘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 우리는 주일하교에서부터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출판사의 마크에서 로뎀나무를 느티나무처럼 그려놓은 것을 보고
‘책을 만들어 내는 곳에서,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로뎀나무가 우리에게 느티나무나 소나무처럼 생각된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이 쓰인 자연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우리의 추측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로뎀나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자장 잘 알려진 사건이 열왕기상 19장에 나타난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 19:4-5)
엘리야 선지자가 로뎀나무 아래 앉고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늘이 울창한 큰 나무로
상상하는 것이다.
성경이 쓰인 현장을 답사하다보면 로뎀나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사실에서 멀리 있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도로변에 있는 로뎀나무를 말해줘도 어디에 있냐고 반문할 정도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모양의 나무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로뎀나무를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로뎀나무는 히브리어로 ‘rotem’(영어로 white broom)이라고 불리는데, '묵다, 속박하다'를 의미하는 ‘rotena’가 어근이라고 말한다(하지만 rotena의 의미는 불분명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나무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빗자루를 만들던 싸리나무 모양과 흡사한 모습으로, 1.5-3m까지 자라며, 우기가 끝나갈 무렵인 2-3월에 마치 안개꽃과 같은 흰 꽃을 피우게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해안지역의 모래 구릉지, 산지, 브엘세바 지역(남방), 그리고 건조한 광야(와디-건천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로뎀나무는 두 가지 특징적인 의미로 알려져 있다.
첫째는 ‘아주 비천한 사람의 모습’을 상징하는 나무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광야의 뜨거운 태양빛을 피하기 위해 변변치 않은 그늘을 제공하는 로뎀나무 밑에 앉아있는 사람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나무 밑에 앉거나 머리를 디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비천하고 가련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피해 광야로 도망친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청하는 모습과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만 하지 않은가?
다음으로 로뎀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꺼지지 않는 불씨’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로뎀나무는 고대로부터 유목민이나, 광야를 여행하는 나그네, 그리고 광야에 거주하는 베두인들에게 아주 유용한 땔감으로 사용되었는데, 로뎀나무의 재는 불씨가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광야의 겨울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서, 체감온도는 우리가 미처 생각할 수 없이 추운 곳이 광야다. 이런 자연환경에서 베두인(광야의 유목민)들은 로뎀나무 재를 넓게 펼친 다음, 모래와 자갈로 덮어 온돌을 만들어 추운 겨울밤을 거뜬히 이겨낸다. 모래와 자갈로 로뎀나무 재의 불씨를 덮어도 쉽게 꺼지지 않는 특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로뎀나무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막절에 피워놓고 떠난 로뎀나무 불이 유월절에 돌아와 보니 아직도 타고 있더라!(Jerusalem Talmud, Pe'ah1,1)’ 장막절에서 유월절까지는 5개월인데 이때가 비 내리는 시기다. 바벨론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광야를 여행하면서 로뎀나무로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먹었는데, 1년 뒤에 그 자리에 다시 가보니 아직도 불씨가 꺼지지 않았더라(Baba Batra 74b).’ 미드라쉬에서는 ’겨울에 피운 로뎀나무 불이 여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8개월 동안 그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Breshit Raba 95,19).’ 비록 과장된 표현이긴 해도 로뎀나무 불씨가 오래 지속되는 것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시편 120편을 우리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시편 120:1-5)
시편 기자는 거짓되고, 속이는 말을 장사의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로 비유하고 있다.
거짓된 말의 파괴력과 속성을 표현한 말이다. 말은 장사의 화살만큼이나 멀리 날아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미드라쉬에는 ‘로마에서 말하면 시리아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격언이 있다. 한국에서 내뱉은 악한 말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
악한 말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을 통해서 받은 아픔은 마치 로뎀나무 숯불처럼 가슴에 상처로 남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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