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타임스(Bible Times) - 타임캡슐에서 경험한 최후의 만찬
예루살렘에 있는 엔-케렘 마을에 바이블 타임스(Bible Times)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타작마당, 우물, 채석장, 올리브 기름틀, 무덤, 양 우리 등...
성경시대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조그마한 정원(garden)이다.
내가 처음 여기를 찾은 이유는 ‘최후의 만찬’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찬을 재현하는 곳이 있다기에 호기심으로 찾았었는데
성경의 사실(Fact)에 내가 너무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다는 자성을 하고 돌아온 곳이다.
최후의 만찬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마 가장먼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된다. 이 그림은 당시 밀라노 대공 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의뢰를 받은 레오나르도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면에 3년 동안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미국 작가 댄 브라운(Dan Brown)의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그림의 유명세와 사람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가 수도사들의 식당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식사 장면을 그렸으니
참 어울리는 발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예수님의 만찬 가운데 ‘축사하시는 모습’, ‘떡(히브리어로 마짜)을 떼는 순간’,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 하나를 그렸다면 수도원의 식당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이 천재 화가는 수도원 식당 벽면에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는지 하고 싶은 말이 있음직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데로 이 그림에서 예수님은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중앙에 앉아계신다.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 옆에 12명의 제자들이 배치되어있다. 예수님의 그 한마디에 서로 다른 반응과 표정을 하고 있는 제자들이 묘사되어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요한에게 달려간 베드로의 손에는 벌써 칼이 들려있고, 베드로가 밀치는 그 순간에도 가롯 유다의 손은 돈 주머니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최후의 만찬 장면을 묘사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2000천 년 전, 예루살렘에 있었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만찬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예루살렘 엔케렘에 있는 바이블 타임스에서 나는 그 진실을 처음 접했을 때 자못 놀랐다.
그러면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테이블은 과연 어떠한 모양이었을까?
우리가 그림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이었을까?
고대 문서(알렉산드리아 필로, 요세푸스, 디오 카시우스, 플리니)들과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ㄷ자 모양에 비스듬히 누워 앉아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모양은 고대 로마시대의 연회용 테이블로 트라이클리니엄(triclinium)이라고 불렸다. 그러니 레오나르도의 그림에 나타난 직사각형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레오나르도의 그림처럼 예수님은 테이블의 중앙에 앉으셨을까?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좌편에 요한과 유다를 배치한 그림이 사실을 어느 정도 재구성했던 것일까? 우리는 예수님 그리고 12명의 제자들이 앉았던 모든 자리의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과 더불어 요한, 유다, 베드로의 자리는 명확히 재구성할 수 있다. 로마시대 ㄷ자 모양의 연회석 테이블은 중요한 기능이 있었다.
그것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과 서열에 따라 구분하여 앉히는 것이다.
공회원, 귀족,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매우 중요시 여겨졌던 시대에 연회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예상되는 자리가 있었다.
ㄷ자 모양의 연회석에서 왼쪽 테이블이 가장 상석으로 취급되었다. 그
리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점점 낮아지는데, 오른쪽 가장 끝자리가 말석이 된다. 그중 연회장에서 가장 중요한 손님(the most important guest)은 왼쪽 테이블 두 번째(1) 자리에 앉게 되고,
그 사람 오른편(2)에 연회장의 주인(host)이, 그리고 좌편(3)에는 두 번째 귀빈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관습이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 마지막 만찬 자리를 두고 적잖은 신경전이 오갔던 것으로 보인다(눅22:24, 막10:37).
그렇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떠한 모양으로 앉아서 최후의 만찬을 행하셨을까?
레오나르도의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의자에 반드시 앉아서 만찬을 하셨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로마시대 ㄷ자모양의 연회석 테이블은, 메트(mattress)위에 앉아, 왼쪽 팔꿈치를 쿠션(cushion)에 대고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하는 형태였다.
특별히 사복음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식사(Passover)였다고 증거하고 있다(눅22:14-17).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식사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종교적 의식을 담고 있었다. 성경은 유월절 식사를 서서 급하게 먹도록 규정하고 있으나(출12:11), 당대의 랍비들은 세데르(Seder)라고 불리는 유월절 식사 규정 통해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유월절 식사의식을 행하도록 했다.
왜냐면 출애굽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다는 유월절 절기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1세기 팔레스타인에 사는 독자였다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1번) 자리에 예수님을,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던 요한(요13:23)은 (2번)에, 그리고 예수님과 동일한 음식 용기를 사용했던 가롯 유다(마26:23)는 (3번) 자리에, 그리고 예수님 맞은편 가장 말석(4번)자리에서 요한에게 눈짓을 보내는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이블 타임스의 어둠 컴컴한 타임캡슐에서 경험한 예수님의 만찬 현장의 모습은 머릿속에 남아있던 레오나르도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천재 화가의 도발적인 순간 포착은 어쩌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경계의 말씀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너희들도 언제든지 가롯 유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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