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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평지 - 모압평지에서 요단강까지<WAY-GLOBAL>

영국신사77 2009. 7. 9. 23:11

                                       모압평지 - 모압평지에서 요단강까지
                                                                                                                                                       2006-02-22 11:41:33

   느보산을 내려오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가이드가 준비해 온 한식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차를 느보산 아래 광야 한 복판에 세웠다.

모압 평지였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요단강이고, 또 그 요단을 건너면 여호수아가 무너뜨렸던 견고한 성 여리고를 눈앞에 보게 된다(민 22:1).

 

 성경에서만 읽던 모압 땅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그 너른 평지 한 복판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그 옛날 가나안을 무너뜨리던 이스라엘 백성의 당당한 항오가 보이는 것 같았다.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씩 하나씩 점령하면서 드디어 도착한 요단 동편 모압 땅.

 

 아마도 이런 이스라엘의 모든 소식을 전해들은 모압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압의 귀족들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보려했지만, 발람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기를 끝까지 거부했었다(민 22~24장).


 

   이 사건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이방인인 발람도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기를 두려워하는데, 나는 얼마나 수없이 나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을 내 맘대로 판단하고 난도질 해 왔는지……. 그저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약3:10)가 나오는 내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스스로에게 한심할 따름이었다.


   점심은 꿀맛이었다. 나무는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고 풀도 듬성듬성 나 있는 곳에서의 점심이었지만, 긴 비행과 짧은 잠으로 인해 시장하셨는지 모두들 맛있게 드셨다. 오후의 나른함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차창 밖의 모압 평지를 한참 바라보고 있을 즈음 차는 벌써 요단강에 도착했다. 처음 차에서 내렸을 때 강이라곤 보이지 않고 온통 황량한 벌판으로 둘러싸인 모습뿐이었다. 요르단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가다보니 왠 풀장 같은 곳이 나왔다.

 

 

 

  세(침)례탕이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세(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이었다. 다시 조금 더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로 둘러싸인 길이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조금을 가다보니 세(침)례 요한의 샘이 나왔다. 샘을 지나 한참을 가니 드디어 세(침)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고 외쳤던 요단강이 나왔다.


 

 

   강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지역 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국기와 요르단 국기가 서로 휘날리고 있었다.

 

 요단강도 역시 얍복강 만큼이나 작았다. 뛰어들어 건너면 바로 옆 이스라엘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은 강이 모맥 거두는 시기엔 강둑을 넘을 만큼 넘친다(수 3:15)고 생각하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강둑은 꽤 높았기 때문이다. 분명 그 정도로 넘쳤다면 사람이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강을 건넜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모세가 죽은 후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빛에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그가 젊은 시절에 정탐했던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 하나님이 보여주신 아름다운 약속의 땅! 바로 그 땅을 눈앞에 둔 지금,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때를 놓치지 않고 등장하신 하나님의 결정적 한마디가 여호수아의 이런 모든 마음의 짐을 풀어버렸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 1:3,5-6)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던져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말이다! 아무튼 여호수아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후 힘을 얻어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유사들을 모으며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첫 관문이 바로 요단강 도하였다.


   그리고 그 강이 지금 내 눈 앞에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을 마주한 채 흐르고 있다. '뭘 믿고 그처럼 불은 강물을 건널 생각을 했을까? 여호수아의 눈앞에 있던 요단강과 지금 내 눈앞의 요단강이 다르지 않을 텐데……. '

 

   그렇다 분명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달랐다. 여호수아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명과 믿음을 가지고 그 넘치는 물을 바라보았던 것이고, 난 지금 그저 한 낱 관광객으로 내 앞에 흐르는 물결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 놀랐다. 아침에 본 얍복강이 나에게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변화돼야지만 건널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믿고 건너야했던 요단강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얍복강을 건널 수 있었고, 이스라엘은 믿음이 있어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것이 마치 하나의 큰 명제처럼 내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변화와 믿음'이란 두 단어가 이 두 강을 통해 그렇게 큰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이 놀라왔다. 마치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 두 강이 굽이치며 외쳐대는 것 같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온전히 그분만을 믿고 의지 하십시오!'

 


   요단강가에서 외치던 세(침)례 요한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7-10)

 


 

  세(침)례 요한의 이 메시지는 참 대단한 역사적 아이러니인 것 같았다. 수천 년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고 가나안 정복을 위해 건넜던 이곳이, 다시 시간이 흘러 하나님 앞에 회개를 촉구하는 자리로 뒤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요한의 그 말은 다시금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뒤 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요단강, 그 살아있는 역사의 한 복판에 서있는 내 마음엔 많은 소리들이 들렸다. 얍복강의 야곱과 느보산의 모세, 모압 땅의 발람과 요단강의 여호수아, 그리고 세(침)례 요한…… 이들이 모두 일제히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 나만의 믿음의 역사를 쓰라고 말이다.

 

   이들 앞에서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의 신앙 여정을 써내려 가야할지 곰곰이 생각하며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출처:Way-Glo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