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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복강 / 제라쉬[데가볼리]/느보산 <WAY-GLOBAL>

영국신사77 2009. 7. 9. 22:58

                                      얍복강 - 얍복강에서 느보산까지

                                                                                                             2006-02-22 11:40:20

   인천공항을 떠나면서 내 마음을 가장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처음으로 밟아보는 이국땅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수천 년 전 성경 속으로 떠나게 되는 시간여행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12시간이 넘는 긴 비행을 마치고 요르단 암만에 도착한 우리일행은 잠깐 눈을 붙인 후 일정의 첫 순서지로 부푼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먼저 도착한 곳은 얍복강, 바로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그토록 밤을 지새우며 기도한 곳이었다.

 

 

   그러나 가이드의 안내와 함께 차에서 내려 얍복강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기대는 어느덧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작은 개천이 얍복강이라니!', '채 10여 미터도 안 되어 보이는 이 강이 나루터가 있을 정도로 그렇게 컸단 말인가?' 정말 그랬다. 당장이라도 뛰어들면 몇 걸음 안 되어 이내 저편에 이를 것 같은 강폭이었다. 그렇게 얍복강을 바라보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그런데, 왜 이 작은 강을 야곱은 건너지 못한 걸까? 맘만 먹었으면 당장이라도 건너가 자기 친 형 에서와 화해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건너지 못했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단지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였을까? 또 하나님은 이 작은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고 나루터에 앉아있는 야곱을 어떻게 보셨을까? 혹시 나도 지금 인생의 조그만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야곱처럼 엎드려 있는 것은 아닐까?


  서둘러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내내 이 질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성경을 뒤적이니 야곱이 천사와 겨뤄 이기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결정적 한마디가 내 뇌리에 박혀왔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앞으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나님이 정말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그 이름을 물었을까? 아마도 야곱은 이름을 말하면서 자기 이름의 의미(발꿈치를 걸어서 넘어뜨리다, 기만하다는 동사에서 유래)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온 자기의 삶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야...곱...야곱입니다."  이 한마디에 야곱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으며, 어떠한 존재였는지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 앞에 고꾸러졌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마도 축복하시기 전에 야곱의 이름을 물으신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야곱처럼 이름을 물으신다면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렇게 야곱이 그 오래전 쉽게 건너지 못했던 얍복강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그리곤 내 자신이 야곱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서있는 것처럼 살아온 삶에 대한 되새김을 해보았다.

 

 

                                                     

   이러는 와중에 차는 벌써 다음 목적지인 '제라쉬(Jerash)'에 도착했다. 제라쉬는 로마시대 10대 도시(Decapolis)중의 하나로 성경엔 '데가볼리'(마 4:25, 막5:20)로 불리는 곳이었다. 혹자는 성경에서 군대 귀신이 나왔던 '거라사' 지역으로 설명하곤 하지만, 이는 당시 유대 지역에 어두운 로마인과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데카폴리스(Decapolis)의 지명을 통해 '거라사'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거라사'는 갈릴리 바다에 연한 지역으로, 군대귀신 들린 자의 몸속에서 귀신들이 나왔을 때 그곳에 있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 이천여 마리 되는 떼가 바다로 뛰어들어 몰살한 곳으로 기록되어있다(막 5:1-20).

 

 그러나 그리스, 로마, 비잔틴 시대에 걸쳐 요단 동편의 주요한 도시였던 제라쉬(Jerash)는 요단 동편 암만에서 북쪽으로 40분 거리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내륙에 위치해있어 돼지들이 빠져 죽을만한 바다가 전혀 없는 곳이다.


   차에서 내려 얕은 경사로를 올라가니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보수 중인 거대한 성문이었다. 보수 중이라곤 하지만 너무도 위풍당당하고 웅장했다. 그 앞으로 나 있는 긴 시장터를 지나 남문을 통과하자마자, 기둥으로 담을 두른 큰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광장 처음 좌측 편은 제우스 신전과 원형극장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저 멀리 광장을 가로 지른 반대편에는 아테미 신전으로 가는 열주로(Cardo)가 곧게 뻗어있었다.

 

  

                                                                         느보산과 모세 기념교회

   웅장한 로마 건축물의 잔해를 뒤로하고, 메데바(madaba)를 거쳐 버스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는 느보산으로 향했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느보산 정상위에 서있는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모세 기념교회였다.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생긴 역사의 관록 때문인지 내부는 이미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내부를 잠시 둘러본 후 밖을 나오니, 교회 맞은편에 하늘 높이 솟아있는 구리뱀 십자가가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함으로 죄를 범하여 불뱀에 물려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만들어 높이 들어 올렸던 불뱀이었다(민 21:4-9).

 

  

 

 

 

 

 

 

 

 

 

 

 

 

 불뱀 십자가 아래 서니 느보산 아래 펼쳐진 광야가 한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

 

 우기라 곳곳에 풀이 돋아 그나마 푸릇해 보였지만, 벗겨진 민둥산처럼 불긋불긋한 땅 전체가 사뭇 황량해 보였다. 이곳을 모세는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느보산 정상에서 볼 수 없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거친 광야에서 그의 인생을 다 보낸 후, 인생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약속의 땅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아님 회한이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세가 바로 이곳 느보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신 34:4). 누구나 삶의 정상에 서있길 원하는 인생의 막바지에서 이제 겨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약속의 땅을 바라

 

 

 

보는 자리에 있었던 모세….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삶의 촛불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의 눈을 흐릴 수 없는 비전이 있었기에 모세는 이곳 느보에 올라 그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벌써 떠나갈 시간이 가까웠다. 반 나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얍복강과 느보산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장소였다.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만이 얍복강을 건널 수 있음을 바라보면서 내 삶에 거듭난 자의 모습이 더욱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고, 모세가 인생의 마지막에 올랐던 느보산에선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약속이 인생을 맞바꿀 만큼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스라엘같이 거듭난 삶의 모습으로 모세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끝까지 달려갈 수만 있다면, 얍복강에서 느보산까지의 오늘 여정은 내 인생의 귀한 이정표가 될 것만 같다.

 

 

                                                                                                                    출처:Way-Glo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