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론 계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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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론 계곡 ●압살롬의 무덤(The Tomb of AbsaIom) 올리브산 기슭에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윗왕의 아들인 ‘압살롬의 묘’ 또는 ‘압살롬의 기념비’''이다. "압살롬이‥‥자기를 위하여 비석을 세웠으니"(삼하 18:18). 그러나 이 비석은 압살롬 시대보다 약 1천년 뒤인 주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려 했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열성적인 유대인이나 회교도인 그리고 크리스찬들은 압살롬의 무덤에 돌을 던졌고 그 결과 이 무덤은 거의 돌무더기 속에 묻혔다. 종종 부모말을 잘 안 듣는 아들이 있으면 이 무덤을 보이며 불효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기도 했다. 1950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압살롬의 묘는 맨 밑 부분은 석회암의 사각형돌덩이가 테를 이루고 있고 그 위에 원통형의 돌기둥들이 있다. 기둥 위에는 원추형 지붕이 있다. 이 무덤의 높이는 20m가넘는다. ●헤실가족의 묘(The Tomb of Hesir''s FamiIy) 압살롬의 무덤과 스가랴의 묘 사이에 있는 것이 헤실가족의 묘이다. 1985년 이곳에 묻혀있는 여섯 형제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히브리어로 된 문구가 발견되어 헤실가의 아들들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헤실가의 이름은 느헤미야(10:21)와 역대상(24:15)에 언급되어있다. 이 무덤은 또한 문둥이의 방으로도 알려졌는데 이는 웃시야 왕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이곳에서 지냈다(왕하 15).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성 요셉이 예수님의형제인 야고보, 시몬과 함께 이 곳에 묻혔다. 왜냐하면 야고보의 순교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 무덤과 아주 가까운 성전의 꼭대기에서 떨어져 순교했기 때문이다. 이 헤실가족의 묘실은 옆에 있는 스가랴의 묘실과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스가랴의 묘(The Tomb of the Zechariah) 헤실가족의 묘 바로 옆, 즉 맨 남쪽에 있는 묘가 스가랴의 묘이다. 묘실이 없는 일조의 기념비로서 유대인들은 유다 왕인 요아스가 죽인 예언자 스가랴의 무덤으로 믿고 있다(역대하 24-. 20-22).그러나 크리스찬들은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스가랴의 무덤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기념비는 거대한 바위를 파서 만든 것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 스가랴의 무덤 가까이에 묻히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고 있고 이로 인해 여기부터 시작해서 올리브산 일대가 묘지로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윗성(City of David) 기원전 1000년경 헤브론에 있던 다윗왕은당시 여부스족이 살고 있던 시온산을 정복하고 이것을 ''다윗성"이라 하고 예루살렘으로서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다. 따라서 다윗은 현재 예루살렘 성 밖 남쪽에 있는 다윗 성에서초기 예루살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기 다윗성의 크기는 약 14,000평 규모로 동쪽 기드론 계곡과 중앙 계곡인 티오포에온 계곡사이의 작은 산등성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다윗왕 이후 아들 솔로몬 왕이 현재의 성전 지역까지 확장하면서 약 3배로 넓혀진 것이다. ●기흔샘(The Gihon Spring) 기드론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넓은 아치형의 둥근 입구를 발견하게 된다.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들어서면 물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되고 곧 어두운 굴속에서 맑은 물을 볼 수 있다. 이 기혼샘은 초기 정착민 때부터 예루살렘의 유일한 물 공급원이 되어왔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곳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다(왕상 1:45). 기혼샘의 본래 입구는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포위했을 때 유다 왕 히스기야가 적에게 감추기 위해서 기혼샘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후 15세기경 지진에 의해서 다시 발견되었고 지금과 같은 계단과 입구가 만들어졌다. 기혼샘물은 4-5시간을 간격으로 하루 5번씩 약 30-40분씩 물을 세차게 뿜어내는데 수량은 하루 평균 200-1100톤에 이른다.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 주전 701년경 히스기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히스기야 터널 또는 실로암 터널이라고도 한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성밖에 있던 기혼샘의 물을 적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성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터널을 만들었다(대하 32:2-3,왕하 20:20). 히스기야 터널은 굽은 S자 형으로 샘에서부터 저장지인 실로암 못까지 약 533m에 이르고 직선거리로는 320m정도이다. 터널을 S자 형으로 만든데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다윗성을 지나는 이 터널이 디윗 왕가의 무덤 밑으로 지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S자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다른 학자들에 의하면 기혼샘과 실로암 못 사이에 바위의 균열된 틈을 따라 이미 흐르고 있던 물줄기를 따라 양쪽에서 파들어가 만들어졌다는 이론도 제기하고 있다. 히스기야 터널의 폭은 평균60cm정도이고 높이는 1.45m에서 5m에 이른다. 터널을 지나다보면 허리를 굽혀야 되는 곳도 있다. 흐르는 물의 깊이는 계절에 따라서 다르지만 평균 20-80cm이다. 터널을 지날 때는 반드시 전등을 준비해야 되고 바닥이 돌바닥이므로 운동화를 신고 긴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히스기야 터널은 두개의 작업반이 기혼샘과 실로암못의 양방향에서 암반을 파서 만들어진 것이다. 양 방향에서 작업하던 사람들이 맞닿아 서로 만났을 때의 상황이 실로암의 돌 기록판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1880년 실로암 못에서 헤엄을 치던 소년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된 실로암 돌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터널)이 관통될 때‥‥ 여전히 3규빗 정도 남았을 때 반대쪽에서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리고 터널이 맞뚫렸고, 돌깨는 사람들이 돌을 팠고 도끼와 도끼가 서로 부딪혔다. 그리고 물은 샘으로부터 저수지까지 1200규빗을 흘러 들어갔다.” ●실로암 못(The Pool of Siloam) 실로암 못은 기혼샘의 물이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 흘러 들어온 물 저장지를 말한다. 구약성서에서는 느헤미야(3:15)와 이사야(3:6)에서 ‘실로암’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말씀하셨다(요 9:7). 초막절이나 명절에 유대인과 화려하게 차려입은 제사장들이 금 항아리를 가지고 와 실로암의 물을 길어 성전으로 가져갔다. 제 2성전 시대에는 헤롯이 실로암에 목욕하는 집을 만들었고 후에 로마인들도 목욕탕을 만들었다. 오늘날 유대절기로 섣달그믐날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실로암에 와서 미가 7장 19절에 의거하여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는 ‘타실리크’의식을 행한다. 실로암 연못은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서 가든지 기드론 계곡으로 나와서 계곡을 따라 거의 다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오물성문(Dung Gate)에서 나와서 계속해서 언덕을 따라 내려가도 실로암에 닿을 수 있다. ●워렌 쉬프트(Warren''s Shaft) 워렌 쉬프트는 성 안에서부터 굴을 파 나와 성밖에 있는 기혼샘물위에 수직의 통로를 통해서 성안으로 물을 길어 올려가던 수직통로를 말한다. 1867년 이곳을 처음 발견한 영국군 장교 찰스워렌(Charles Warren)의 이름을 따서 워렌 쉬프트(Warren‘s Shaft)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다윗이 시온성은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그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삼하 5:8). 그리고 다윗의 부하 요압은 수구를 타고 올라가서 시온산을 정복한다. 딴은 학자들은 여기서 언급된 ''수구''가 워렌 쉬프트라고 주장한다. [자료제공 : 이강근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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