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자료실]/♣北部(갈릴리) 이스라엘

갈릴리북부지역(Northern Calilee)

영국신사77 2009. 6. 22. 00:06
갈릴리 북부지역(Northern Calilee)

-갈릴리 북부 가이사랴 빌립보-
-단 제단-

갈릴리북부지역(Northern Calilee)

갈릴리 북쪽이나 갈릴리 바다 동쪽의 골란고원 지역은 대중교통수단이 불편해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에 비해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역사적인 장소는 찾는 이들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가져다 줄 것이다. 골란 공원 깊숙이는 아직도 시리아군과의 격전을 벌인 잔재를 볼 수 있다. 특히 한적한 곳을 방문할 때에는 시리아군이 묻어 놓은 지회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사람의 발길이 없는 지역은 가지 않는 주의하여야 한다.

●고라신(Korazim)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
가버나움에서 북서쪽으로 약 4km 정도 가면 가버나움보다 약 270m 더 높은 지역에 옛 고라신의 유적이 있다. 고라신에는 600에서 4000년경인 신석기 때부터 사람이 살았었다고 한다. 현재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주후 1세기부터 가버나움을 거쳐 벳새다까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고라신에서는 주후 2-3세기의 회당과 도시 성벽 그리고 가옥의 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회당의 구조와 양식은 가버나움의 것과 유사하다. 특히 회당에서 발견된 것 중에는 “모세의 의자”라고 하는 현무암의 묵직한 의자가 있다. 이것은 2-3세기경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다.

●하솔(Hazzor)
하솔은 주전 19세기의 앗시리아와 애굽의 기록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가나안의 유일한 소시국가로 준재하고 있었다. 주전 13세기 여호수아가 하솔을 불살라 정복함으로서 가나안의 점령이 일단락되었다. 여호수아는 하솔을 “모든 나라의 머리”라고 불렀으며 북부 갈릴리 지방의 중요한 도시로 삼았다. 주전 10세기 솔로몬 왕은 하솔을 병거성과 마병성들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나 주전 732년 앗시리아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서 점령되어 파괴되었다. 현재 하솔성에는 솔로몬때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하솔 남쪽에는 예루살렘의 워렌 쉬프트나 므깃도의 지하터널과 같은 방식으로 땅을 파 내려가고 지하 통로를 만들어 물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약 30m 밑에 내려가면 지하 토로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지하 터널을 통해 25m를 가면 깊이 10m의 웅덩이가 나온다. 이곳에 모인 물을 지상으로 날랐던 것이다. 하솔의 언덕 건너편에 있는 키브츠에는 박물관이 있다. 하솔 박물관에는 두개의 이스라엘 이전 성전과 고대하솔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기타 발굴된 유물들은 하솔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단(Dan)
성경에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라 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일컫는 것처럼 단은 이스라엘의 북경 지역에 위치했었다(수20:1, 삼상3:20). 원래 단 지파는 여호수아에게서 지중해 해안의 욥바 근처를 분배받았으나 블레셋을 이기지 못하였다. 단 지파는 대신 이곳 라이스(Laish)를 점령하고 지파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라이스라는 이름은 19세기 이집트의 고대문서에 그리고 15세기 중반 투트모스 3세에 의해서 정복된 도시의 목록에 적혀있다. 솔로몬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은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종교의 도시로 만들었다. 아랍인들은 이곳을 텔 엘콰디(Tel el-Kadi)라고 부르는데 “심판의 언덕”이란 뜻이다. 심판의 언덕이란 이름은 요단강이 창조된 다음의 전설에 근거하고 있다. 요단강이 흐르기 전에 이곳에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흐르던 세 줄기의 시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시내들은 자기가 가장 크고 중요하다며 싸움이 일어났다 한다. 마침내 이들은 누가 더 큰지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기로 하였다. 하나님은 이들 사이의 작은 언덕에 앉아 이들에게 셋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하셨다. 그리고 셋이 하나가 되어 가장 큰 강이 만들어 졌다 한다. 단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요단강으로 흐르는 바니야스와 더불어 주요 물 수원 중의 하나이다. 요단강의 의미는 분명치 않으나 “단에서부터 흐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요레드 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바니야스(Banyas)
텔 단에서 약 4km를 골란 고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헬몬산 남쪽 경사면 암벽 틈에서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물이 솟구치는 곳이 있다. 이 물줄기는 단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함께 요단강의 중요한 수원이 되고 있다. 바니야스에는 가나안 시대부터 바알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왔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판신(Pan God)을 섬겼기에 파니야스라고 불렀다. 오늘날 바니야스는 파니야스에서 유래된 것으로 파의 “P”발음을 못하는 아랍인들이 “B”로 잘못 발음하여 바니야스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도 바니야스 연못 뒤쪽의 절벽에는 많은 동굴이 있고 동굴 안에 신전터를 볼 수 있다.
주전 200년에 시리아의 셀류시드 왕조는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를 패배시킴으로서 이 지역을 포함한 팔레스틴 전역을 장악하였다. 주전 20년에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이 지역을 헤롯 대왕에게 주어다. 그리고 헤롯 대왕은 가이사 아구스도를 기념해 흰 대리석 신전을 세웠다. 주전 4년에 헤롯 대왕이 죽자 이곳은 아들인 분봉왕 헤롯 빌립에게 주어졌다. 분봉왕 빌립은 이곳을 아름답게 wojs하여 북부 지역의 수도로 삼고 이르을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하였다. 로마 황제인 디벨 가이사(Tiberius Caesar)와 자신의 이름 빌립(Philip)을 따서 당시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와 구별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소경을 치유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를 방문하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베드로가 대답한다. 이에 예수님을 베드로의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마16:13-19). 바로 이곳이 가이사랴 빌립보이다.

●니므롯 요새(Nimrod Castle)
바니야스에서 헬몬산 기슭을 따라 북동쪽으로 약 2km를 달리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되어 있는 십자군 시대의 요새가 나온다. 1126년 이곳을 점령한 집자군은 두로와 다메섹을 잇는 중요한 교통요지인 이곳에 요새를 건축하였다. 니므롯이란 이름은 이 요새를 건축하는데 기여했다는 전설 속의 인물로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다(창10:8). 이 요새는 다메섹의 공격으로부터 바니야스를 방어하기 위해서 건축된 것이다.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이곳은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었고 이후 폐허로 방취되어 이 지역의 농부들이 소나 양의 우리로 사용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때 니므롯 요새는 시리아군의 기지로 사용되었고 이스라엘이 점령했을 때는 이스라엘군의 기지로도 사용되었다. 다행이도 양쪽 군인들은 이곳을 큰 파괴 없이 사용해 지금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이다. 니므롯 요새는 군의 중요 관측소로 사용된 것처럼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훌라 계곡과 북쪽 헬몬산의 전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자료제공 : 이강근목사]

 

출처;http://www.kdmin.com/new_area/view.html?mode=view&codel=111&Igubun=5&id=1101&page=1&num=40&nowpos=882&type=&sermun=&qu=&tb_name=sgdata&skin=skin1&toplin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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