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jerusalem) -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 (1) | |||||||||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 예루살렘의 구시가(Old City)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성벽과 성문은 오스만 터어키 제국의 슐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을 견고한 요새로 만들기 위해 1537년에서 1542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북쪽은 성벽이 먼저 완성되었고 뒤이어 동쪽과 서쪽벽이 쌓아졌다. 그리고 남쪽 성벽은 시온산을 포함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완성이 늦춰졌다. 성벽 둘레의 길이는 약 4,018km이다. 성벽을 따라 8개의 성문과 성위에 34개의 탑과 24개의 망루가 있다. 성문중 욥바문, 다메섹문, 시온문은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성문들은 적의 침입시 방어하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 ‘나’자 형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색이다. ●욥바문(Jaffa Gate) 욥바문은 성 서쪽에 있는 유일한 문이다. 이 성문은 십자군 문이 있던 자리에 슐레이만 대제에 의해서 세워졌다. 욥바문이라는 이름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욥바항구에 이르는 길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비잔틴과 십자군 시대에는 옆에 다윗 망대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문이라고도 불리웠다. 아랍어로는 ‘바브 엘 카릴’(헤브론 문)이라고 하는데 ‘엘 카릴’은 ‘하나님의 친구’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친구인 아브라함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문’이라고도 한다. 문 정면에는 ‘슐레이만 대제가 1538년 이 문을 세웠다’라고 아랍어로 쓰여 있고 그 밑에 최근의 문구로서 1970년에 보수를 마치고 나서 “예루살렘성이 보수됨”(느4:7)이라고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쓰여 있다. 1898년까지는 욥바문과 다윗망대 사이에는 성벽이 있었으나 독일 카이자르 빌헬름 2세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차가 들어오기 위해 이를 헐어내어 길을 만들어 현재의 도로가 생겼다. 1917년 영국 알렌비 장군이 영국군의 선두에 서서 이 욥바문을 통해 걸어서 들어왔다. 이 욥바문은 1948년에 봉쇄되고 이 옆에 방어벽이 세워졌었다. 1967년 6일 전쟁 때 회복되어 다시 사용되고 있다. ●시온문(Zion Gate) 시온문은 성의 남쪽 성벽 서쪽에 있다. 시온산으로 통하기 때문에 ‘시온문’이라 부르고 시온산에 있는 다윗왕의 무덤을 갈 때 이 문을 통해서 가기 때문에 아랍어로 ‘예언자 다윗의 문’이라고도 한다. 문의 바깥쪽에서 보면 많은 총알 자국이 있다. 이는 1948년 독립전쟁 동안 아랍인과 싸울 때 아랍군인이 쏜 총탄 흔적이다. 시온문은 1968년 6일 전쟁 후 회복되어 보수되었다. 입구 위쪽에 이 문을 세운 슐레이만 대제를 기념하는 터어키 문구가 있다. ●오물성문(Dung Gate) 오물성문은 남쪽 성벽 동쪽에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에 있는 문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예루살렘 성내에 있는 오물들을 이 문을 통해 키드론 계곡이나 티로포에온 계곡에 버렸다하여 ‘오물문’이라 한다. 오물성문 맞은편에는 다윗이 초기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다윗성이 있다. 오물성문을 나와 계속해서 곧장 내려가면 실로암 연못에 다다른다. 1948년 욥바문이 봉쇄되었을 때 이 문이 확장되어 사용되었다. 이 문을 통해 서쪽벽과 유대인 지역을 갈 수 있어 유대인들과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성문이다. ●황금문(Golden Gate) 황금문은 성벽과 성전의 동쪽에 있는 유일한 문으로 지금은 굳게 막혀 있다. 황금문이란 이름은 이 문이 호화롭게 꾸며져서 붙여졌다. 황금문은 두개의 문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자비의 문’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회개의 문’이라 한다. 이 황금문은 많은 전설이 있다. 유대인들은 에스겔 44장 1-3절의 언급과 같이 메시야가 올 때에 이 문이 열린다고 믿고 있다. 또한 회교인들도 마지막 심판의 날이 이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는 이 황금문 가까이에 있는 무덤부터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 부활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가 황금문 근처에 묻히기를 원한다. 현재 황금문 근처는 물론 건너편 감람산 기슭까지 묘지로 가득 차 있다.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이 황금문은 지금은 무덤과 잡초로 가장 지저분한 문으로 변해있다. ●스테반문(Stephen‘s Gate) 이 성문은 감람산을 마주보며 동쪽 성벽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슐레이만 대제에 의해서 성문 양쪽에 한쌍씩의 사자가 조각 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슐레이만 대제의 꿈에 4마리의사자가 나타나서 대제를 삼켜버리려 했다. 꿈을 해몽한 사람에 의하면 슐레이만 대제가 거룩한 성을 허술하고 퇴락한 채로 남겨두면 이 사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했다. 그래서 곧 성벽을 건축하고 이를 기념하여 꿈에 나타났던 사자들을 문 양쪽에 한쌍씩을 조각해 놓았다. 히브리어로는 ‘사자성문’이라고도 부른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초대 교회의 스테반 집사가 이 근처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하여 ‘스테반 문’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이 문을 지나갔다. 이 문을 나와 남쪽 기드론 골짜기에 희랍 정교회 소속의 스테반교회가 있다. 이 문의 또 다른 명칭은 여호사밧 계곡으로 통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여호사밧 문’ 이라 부르고, 마리아의 무덤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고 해서 아랍인들은 ‘마리아 성문’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 이 문 근처에서 양(羊) 시장이 열려 오래 전부터 ‘양문’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통해 감람산, 베다니, 여리고 그리고 요단강으로 간다. 1920년 영국군이 차량이 통행할 수 있게 입구를 확장했고,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은 이 문을 통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다메섹문(Damascus Gate) 이 문은 동쪽으로 헤롯문과 서쪽으로 새문 중앙에 있다. 성벽에 있는 문들 중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문이다. 다메섹문이란 이름은 세겜을 거쳐 다메섹도시로 가는 길이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히브리어로는 세겜문. 아랍어로는 ‘바브 엘 아무드(원주기둥성문)’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에 이 다메섹문을 중심으로 두개의 길이 뻗어 나갔는데 그 하나가 성전 서쪽벽 앞으로 지나갔고 다른 하나는 시온문이 서쪽으로 좀 옮겨졌지만 시온문으로 통했다. 이 문은 적의 갑작스런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중각을 이루고 있고 원래는 쇠가 덮여있는 나무로 된 삼중의 문이었으나 현재는 한 쌍의 문만 남아있다. 문을 지키던 군인들의 방 두개는 가게로 사용된다. 문 위에는 1536년에서 1538년 사이에 이 문을 세운 슐레이만 대제를 기념하는 문구가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다메섹문 밑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서쪽으로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를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성안으로 통하던 옛 문이 있고, 들어가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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