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城· 성벽· 城門· 망대

다윗망루[망대]에서 주시는 메세지

영국신사77 2009. 2. 27. 00:56

 

                                    다윗망루에서 주시는 메세지

 

                                                                   김용규 강도사      2005.11.11 21:56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다윗성의 망루


   이사야 62:6~12,

”예수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하지 않게 하였는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 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리라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로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아멘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영리한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신도들은

  딤후 4:3~4절의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의 사욕을 따라 귀를 즐겁게 하는 스승들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라는 말씀처럼 되어 가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보다 세상에 더 민감한 데 그 문제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교인들이 복음에는 어둡고 세상 술수에는 밝으니, 교회에 온갖 술수들이 판을 치고 인간적 영리함이 하나님의 뜻 보다 우선하게 되는 상황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니 세속적 삶의 원리가 교회를 움직이고, 세상의 가치관이 교인들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이기적 욕구가 삶의 원리가 되고, 동기가 되며,  능력이 되어 교회 공동체를 좌지우지 하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보는 경우도 생겨 버렸습니다.


 

 신앙은 영원한 삶의 문제이기 보다는 현실적 안정이나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고, 하나님의 종들은 이러한 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일부 현실로 되었습니다.따라서 교회는 복음의 공동체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고하는 파수꾼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고 역사의 저편에서 밝아 오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 희망을 회복시킬 교회가 개혁되어야 함을 절감하게 됩니다.루터의 종교 개혁이 변질된 복음을 원래대로 되돌린 진리의 회복운동이라고 한다면 우리 또한 잃어버린 진리, 상실된 복음, 변질된 교회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믿는 성도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찾아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첫째.우리는 파수꾼의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파수꾼은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주된 임무입니다.그러나 본문에서의 파수꾼은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하여 기쁨으로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파수꾼입니다.적을 살펴서 적을 아는 파수꾼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다가 오시는 하나님의 오심을 전하는 파수꾼입니다.


우리는 삶에 지친 인간들을 향해 약속을 성취시키고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알려 줄 파수꾼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세상에 대하여는 민감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둔감해 버린 많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회자들은 이제 다시 하나님을 향해 눈을 열고 하나님을 알리는 파수꾼으로 거둡나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을 타개 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그래서 세속적으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희망,하나님을 향한 기대를 가지고 그 뜻을 좇아야 하며 세상에 대하여 영리한 파수꾼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전하는 선택되어진 파수꾼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우리는 약속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의 문제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의 목사님의 정년에 대하여 기독교 신문에서 많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분이 하신 공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건강하시기 때문에 할 일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정년이 되어 은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 분이 물러나시면 교회가 분열 된다고 합니다. 정말 그 분이 없으면 교회가 분열되고 없어진다면 하나님은 아무런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본문 말씀에도 이스라엘이 성을 건축하고 성전을 완공했는데도 현실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했을 때 실망하였듯이 오늘 우리 목회자들은 찬란한 내일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그러나 오늘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눈 앞에 있는 현실에 승부를 걸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가숨이 아품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뿐입니다. 본문 말씀은 현실적 어려움에 절망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예언자가 선포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 질 때 이는 더 이상 저주가 없어지고 문제가 해결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범죄함으로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아 이방의 침략을 받고 그로 인하여 심각한 삶의 위협을 겪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으로 그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말씀 8절9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 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약속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것을 두고 “패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인간의 지혜를 따르고 그 지혜를 의지 할 때 우리의 교회는 세속화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구원은 우리들 자신의 공로가 아닙니다.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셋째.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는 약속에 따라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그래서 본문에서는 성 바깥으로 나가서 여러 지역에 흩어진 남은 백성들이 돌아오도록 큰 길을 예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리고 그 민족이 볼 수 있도록 깃발을 올려야 한다고 하십니다.과거에는 그 큰 길이 침략군이 들어오는 길목이었으나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힘입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목으로 사용되고 또한 이 길은 하나님을 맞이하는 길이 되고 구원 얻은 이방인들이 이 길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 경배하러 오늘 길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챤의 문제는 신앙의 행위에 적극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선은 알지만 행하지는 않습니다.슈바이처를 존경하지만 자신이 슈바이처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지 않고 주님의 위대성을 잘 알면서도 자신을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렇습니다.

 신앙을 포기하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살 마음이 없습니다.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약속을 기다리는 것은 대로를 예비하고 깃발을 높이 드는 적극적인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사도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은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파수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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