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城· 성벽· 城門· 망대

이스라엘,오펠 가든에서 주시는 메시지

영국신사77 2009. 2. 27. 01:18

 

                    이스라엘,오펠 가든에서 주시는 메시지

 

                                                                                        김용규 목사      2008.11.11 21:01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사도 행전 3:1~10,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나 일로 인하여 심히 놀라게 여기며 놀라니라.” 아멘


 본문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것을 명하고, 이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고 뛰면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찬송을 함으로써 사도들의 능력이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성전의 미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물론 당시에 있던 헤롯의 성전은 AD 68년에 디투스에 의하여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 벽 중 일부는 남아 있는데, 그 일부가 성전의 서쪽에 있었다고 하여 서쪽 벽이라고 하고 또는 통곡의 벽이라도 합니다.

 

 우리가 성지 순례를 가서 통곡의 벽을 들어갈때 오른쪽에 보이는 부서진 유적이 있습니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인 곳에는 모슬램 엘악사 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초에는 이곳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습니다. 이 문이 미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을 지금은 오펠 가든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께 주시는 메시지를 깨닫은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나사렛 사람”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존의 공동체중 한 부류로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유대인들로부터 큰 박해가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유대인의 종교 관습에 따랐습니다. 본문 1절의 말씀처럼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간 것도 유대인들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이때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거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2절 말씀입니다.”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이라고 합니다.의사인 누가가 정확하게 표현하였듯이 앉은뱅이는 선천적 장애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는 질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특히 나면서 신체적 불구인 자는 자신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에 저주 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장애인들은 주로 성전이나 시장등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는 곳에서 구걸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런 앉은뱅이에게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명함으로서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기뻐 뛰며 성전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걸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능력으로 그 불구의 몸이 온전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불구의 마음까지도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죄와 사망에서 벗어버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은 단지 구원을 얻을 때든지 축복을 받을 때든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받아 들이고 구원을 얻은 이후에 우리의 모든 삶에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삶의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처할 때 우리는 무릎을 끊고 주님께 도움을 청함니다. 그리하면 구원의 주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외로움에 동참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사람을 통하여 사용하시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 능력들을 사용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실 때 사용할 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다가 자신들을 향하여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봅니다. 이 때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두 마디 말을 합니다.
하나는 “우리를 보라”라는 말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시적 도움이 되는 물질을 구한 앉은뱅이에게 영구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오른손으로 앉은뱅이를 잡고 일으킵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단지 선포만을 하고 앉은뱅이가 서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넘쳐나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도 서로 신뢰를 하여야 서로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랑이 넘쳐나며 서로 신뢰하여야 주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일꾼이 된 우리들은 사역을 행함에 있어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자는 성령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는 성령님이 그 안에 가득 채운 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나 악한 부분과 자아의 고집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숨에 남겨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성령님이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앉은뱅이는 고침을 받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정말 자신이 걸어 다닐 수 있음에 대한 확인과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우리는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는 자신을 고쳐준 베드로와 요한 보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운좋게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되었고,그들을 통하여 평생 소원이었던 앉은뱅이에서 해방된 것입니다.그러면 베드로와 요한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여야 되겠지요.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는 유대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앉은뱅이 상태에서 감사의 고백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오히려 왜 하필 하나님은 나를 불구의 앉은뱅이로 만들었을까 하는 푸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매일 매일 성전앞 미문에서 구걸하면서도 자기는 가지 못하는 성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사도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이처럼 예수님 이름의 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교제를 가능케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천국 열쇠를 예수님께 두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시지만 동등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겸손의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삶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 힘을 공급 받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까지 그 놀라운 이름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www.chtour.kr/ver2/CHNotice.php?tbn=CHNotice&skin=&number=232&page=1&mode=viewbody&keyfield=&key=&period=&se_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