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사 · 신앙偉人/♣ 호남 지역의 선교사

★ 78교회를 개척한 테이트 선교사

영국신사77 2009. 6. 8. 14:18

                          33년간 78교회를 개척한 테이트(1862-1929, 67세)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 한국명: 崔義德)는 1862년 9월 28일 미주리 주에서 출생하여 폴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다가, 선교 사역을 위하여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를 29세에 졸업하고, 1892년 11월 3일[30세] 미국 남장로회 7인 개척 선교사 중 1인으로 내한했다.

 1893년 1월 28일 선교사 공의회가 처음 조직되고, 남장로회는 호남지역을 담당하면서 그해 9월과 11월에 두 차례 전주를 답사했다. 테이트의 첫 여행이 선교 가능성 타진을 위한  답사라면, 두 번째 방문은 호남지방 선교의 정착을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그해 12월 전주선교부가 설치되었다.

 

 그 후 1894년 3월 19일 테이트는 서울에서 여동생 매티(Mattie Samuel, 한국명: 崔馬太)와 함께, 말과 가마를 타고 3월 24일 전주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선교 개시 3개월 만에 동학혁명으로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선교활동은 일시 중단되었다.

 1895년 크리스마스 주간에 테이트 남매는 다시 서울을 떠나, 전주의 초가집 두 채에서 선교활동을 재개(再開)했다. 테이트의 집은 2개의 온돌방으로, 하나는 서재로 다른 하나는 침실로 사용되었다.

 

 1897년 테이트와 레이놀즈는 1,500$씩 드려 이국풍 가옥 두 채를 새로 지었지만, 왕실(이태조 조부)의 사적지여서 새로운 선교지(화산동)로 이전해야했다. 

 
  1905년 9월[43세] 전주 예수병원 설립자인 잉골드(1867-1962, 95세) 의료선교사
8년의 열애 끝에 결혼하였는데, 결혼 후의 잉골드 의료선교사는 남편과 더불어 농촌선교에 진력하는 한편,  진료소 책임을 사임하고 부녀자 성경교육에 치중하였다.


  1908년 테이트는 선교 보고서에서 “나는 전도하거나 책을 팔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어학선생과 성서공회 매서인을 동반하고, 두 명의 짐꾼이 따른다. 낮에는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모아 설교하고 성서와 소책자를 판다. 저녁에는 예배하고 대화한다. 현재 세 곳에 정기 모임 장소가 있으며, 평균 150명이 모이고 30명의 세례 교인이 있다.”고했다.

 

 1909년에는 “한 해 동안 1,190명에게 문답하고 316명에게 세례 하였으며, 400명의 학습교인이 등록하고, 1,203명이 성찬에 참여했다”고 선교본부에 보고했다.

 그는 교회법의 권위자로서 회무처리에 아주 능숙했고, 한국 선교 33년간 78개 교회를 설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교사 공의회장(1897)과 전라 노회장(1913) 등을 역임하였다. 

 1925년 심장병이 악화되어 한국 선교 3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부인 잉골드와 함께 귀국하여서도, 미국 각처를 순회하며 한국 선교를 위한 강연을 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한국 선교사로 동원하였고, 수많은 미국 교회가 한국선교를 도울 수 있도록 , 최선을 다해 동원가의 삶을 사시다가 귀국 4년 후인 1929년 67세를 일기로 심장 마비로 소천하셔서, 프로스트프루프(Frostproof) 실버 힐 묘지에 안장되었다. 

 

 

 

                                                                                                              by:송광우 http://cafe.daum.net/sumgi2/ELE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