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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1장 강해 [머리말, 서론] <박상훈 목사> |
관리자 | 2006.05.21 | 36 | ||||||
9 | 제8강 하나님이 더하신 지혜(1:17-20) | 관리자 | 2006.05.21 | 37 | ||||||
8 | 제7강 시험의 결과(1:14-16) | 관리자 | 2006.05.21 | 35 | ||||||
7 | 제6강 열흘간의 시험(1:11-13) | 관리자 | 2006.05.21 | 39 |
6 | 제5강 도움을 구함(1:8-10) | 관리자 | 2006.05.21 | 47 | ||||||
5 | 제4강 다니엘이 뜻을 정함(1:8-9) | 관리자 | 2006.05.21 | 49 | ||||||
4 | 제3강 다니엘과 세 친구(1:6-7) | 관리자 | 2006.05.21 | 45 | ||||||
3 | 제2강 왕에게 선택된 소년들(1:3-5) | 관리자 | 2006.05.21 | 65 | ||||||
2 | 제1강 다니엘서의 서론(1:1-2) | 관리자 | 2006.05.21 | 102 | ||||||
1 | 머 리 말 | 관리자 | 2006.05.21 |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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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다니엘서의 서론(1:1-2)
1:1-2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이번 한 달도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을 앞세우시면서 귀하신 인도하심을 받아서 승리하시는 한 달이 되시기를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다니엘서에 있는 말씀을 한 절 한 절 읽어가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다니엘서가 기록된 시대적인 배경을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구약 성경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복과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28:1∼14에는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 가나안 땅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고 그 땅에서 평안하게 잘살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후반부 신 28:15부터 마지막 68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방 신을 섬길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해서 그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날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훑어보면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다윗 임금 시대에만 반짝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대체로 긴 역사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나라가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북방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또 남방 유다 왕국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남방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 남방 유다 왕국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이때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로 끌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땅에서 신앙을 잘 지켰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복을 받고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오히려 귀하게 높이 들려 쓰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들에게 신앙적으로 많은 가르침과 도전을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한 절 한 절 읽어가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니엘서의 개요를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다니엘서는 모두 1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엄격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장에서 6장까지이고, 후반부는 나머지 7장에서 12장까지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내용도 다르고, 문체와 스타일도 완전히 다릅니다.
1∼6장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또 은혜스럽습니다.
그런데 7∼12장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다니엘이 받은 이상, 묵시가 나옵니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1장에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가 포로로 끌려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그는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채소와 물을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에 비해서 건강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복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2장에서는 다니엘이 바벨론의 왕 누구의 꿈을 해석해주었습니까?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의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되었던 사람들이 다니엘 덕분에 다 살게 되었습니다.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가 어디에 던져집니까? 풀무불 속에 던져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그 뜨거운 불 속에서 저들을 건져내신 구원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장에 가서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임금의 꿈을 두번째 해석해주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명, 거룩한 기구들을 다 빼앗아왔는데, 겁도 없이 거기에 술을 담아서 마신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벨사살 임금입니다. 겁도 없이 하나님을 모독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바벨론이 몰락하게 되는, 멸망하는 이야기가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장에서 다니엘은 다리오 왕 때 모함을 받아서 어디에 던져집니까? 사자굴 속에 던져집니다. 그렇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1장에서 6장까지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서, 아주 재미있고 또 사건마다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7장부터는 앞으로 되어질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장, 8장, 9장 각 장에 한 번씩 다니엘이 받은 이상, 묵시가 기록되어 있고, 10장, 11장, 12장에는 네번째의 묵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7장∼12장에는 네 가지의 받은 이상, 묵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1:1∼2을 생각하면서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지금 다니엘은 유다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바벨론에 있습니까? 바벨론에 있습니다. 바벨론에 있으면서 바벨론의 높은 위치에서 총리로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의 왕을 앞세우고 있습니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앞세우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유다 왕을 앞세우고 있습니까? "유다 왕 여호야김이"라고 하면서 유다 왕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보세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이르렀다는 말은 갔다는 말입니까? 왔다는 말입니까? 왔다는 말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예루살렘에 와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지금 마치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은 비록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 마음속에는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선민 유다 왕국의 사람이다"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귀중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인정을 하든, 인정하지 않든 사탄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이끄는 대로 죄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값으로 우리를 사주셨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사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노예가 아닙니다.
주인이 바뀌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면서 옛 주인 사탄의 지배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분이 어떠한지 착각하면 안됩니다.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다니엘이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처지였지만, "나는 하나님의 선민이다, 택하신 백성이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서 순종하면 사는 모습이 되어야겠다"는 긍지와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주인은 사탄이 아닙니다. 왜 사탄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명하는 대로 사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2절을 보세요. 중요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이 단어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하나님 전의 기구를 탈취해 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인정을 하든, 인정하지 않든 "주께서"라고 했는데, 다니엘의 주가 누구입니까?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니엘의 주입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가 누구입니까? 나의 주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주가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주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그렇게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주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라고 했습니다. 여호야김은 사악한 임금이었습니다. 렘 36:23에 보면 여호야김이 예레미야가 쓴 두루마리를 칼로 다 잘랐습니다. 이것을 화로 불에 다 태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느부갓네살 임금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5장에 보면 벨사살 왕이 겁도 없이 느부갓네살 임금이 빼앗아온 하나님 전의 기구에 술을 담아 마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2절은 5장에 나올 이야기를 암시적으로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시날 땅이라고 하는 곳은 시날 평지를 말합니다. 바벨론은 시날 평지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 홍수 뒤에 퍼졌던 인류가 시날 평지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흩어지지 말자고 하면서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바벨탑이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은 시날 평지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시날 땅의 자기 신의 보고에 두었다는 것은 하나님 전 기구 얼마를 빼앗아 그것을 자기 나라 바벨론 땅에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주권은 누구에게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힘, 내 능력을 의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섭리는 하나님이 하시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늘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2강 왕에게 선택된 소년들(1:3-5)
1:3-5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다 히스기야 왕 때 바벨론 왕이 보낸 사자들이 유다 왕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보물고 속에 있는 모든 보물을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것을 알고 히스기야 왕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전했습니까? 왕이 의지하고 왕이 자랑하는 모든 보물들을 바벨론이 다 탈취해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왕하 20:18에 보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왕의 자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환관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물질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물질을 쌓아놓고, 물질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경기가 나쁘다고들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러한 일들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염려가 생길 때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물질에 대해 염려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생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이래서는 안되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지. 하나님 의지해야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지." 물질에 대한 생각이 날 때마다 생각을 바꾸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보물 가운데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기구, 금, 은 기명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3절에 보니까 또 어떻게 했습니까? 물질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인질도 끌고 갔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왕의 자손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환관이 될 것입니다"고 말한 그대로, 느부갓네살 임금이 유다의 왕족 가운데 젊은이 몇 사람을 인질로 끌고 갔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시면서 제가 묻는 말에 빨리빨리 대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몇 사람을 끌고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들의 혈통은 어떠합니까?
"왕족과 귀족."
외모는?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지력은?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나이는?
"소년." 노인이 아니고 소년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을 데리고 와서 무엇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습니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
그들이 먹게 되는 메뉴는?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
훈련기간은?
"삼 년."
훈련 목적은?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고."
한 마디로 환관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참모로 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다시 3절을 보십시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라고 했습니다. 환관장은 늘 왕을 따라 다니는 관리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비서실장쯤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이 외국을 정벌할 때도 같이 따라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하여 환관장의 임무 중에는 포로로 끌고 온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뭐라고 명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인질이 되는 것입니다. 피정복국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할 때 그것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왕족과 귀족의 씨를 말리겠다고 겁을 주는 것입니다. 피정복국을 약화시키고, 피정복국이 반란을 미연에 막고, 자기 나라를 더욱 부강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인질들을 많이 끌고 갔습니다.
왕족과 귀족으로 외모가 흠이 없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택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족과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저들이 외모만 흠이 없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신앙도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고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다니엘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지력은 어떻습니까?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라고 했습니다.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라는 것은 지를 갖춘 것입니다. 지혜 있다는 말입니다. 또 "지식이 구비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이 풍성합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은 후천적으로 배우면서 터득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차이점을 예를 들어서 설명해봅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와야 한다는 것은 지식입니까? 지혜입니까? 아는 것은 지식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와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도 지금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지식은 있지만,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신 여러분은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지식도 있고, 지혜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입니다. 아는 것은 지식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 다음에 지력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학문에 익숙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르쳐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이라고 했습니다. 나이 들어 다 늙어빠진 할아버지를 데리고 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 외적인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 중·근동에서는 대략 나이 14, 15세 정도가 되었을 때 왕궁에서 교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도 14, 15세 정도가 되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했다고 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것은 나라 이름이고 갈대아라고 하는 것은 인종명입니다. 예를 들면 중화민국이라고 하면 국명이고, 그 나라 안에는 여러 족속이 있습니다. 한족도 있고, 조선족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은 국명이고 갈대아는 인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바벨론의 학문은 유명했습니다. 앗수르.......라고 하는 바벨론 임금의 도서관이 발굴이 되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거기에서 나왔습니다. 종교, 문학, 점성술, 농사 짓는 법, 상거래 등 수많은 자료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런 학문들을 배우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갈대아 방언을 가르치게 했다고 했습니다. 갈대아 방언은 학술적으로 악카드라고 합니다. 저도 옛날에 UCLA에서 이 악카드를 몇 학기 배웠는데 굉장히 복잡합니다. 쐐기문자라는 것을 아시지요? 돌판에다가 쐐기 모양으로 된 글을 씁니다.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것이 쐐기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이 갈대아 방언입니다.
그 다음에 5절에 보니까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라고 했습니다. 왕이 주는 좋은 음식을 먹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무엘상 20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었던 사울이 상을 베풀고 신하들에게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다윗이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또 빠졌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반역이라고 했습니다. "내게 반역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울이 화를 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주는 음식을 받아서 먹는다고 하는 것은 왕의 신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이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낯설고 물설은 이방 나라에 가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학문을 배우는 데 적어도 삼 년이라는 세월이 요구되겠지요?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립니까? 삼 년입니다. 적어도 삼 년을 배워야 새로운 분야를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목적은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왕을 받들어 섬기는 신하가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지금 다니엘과 세 친구는 젊은 나이에 이방 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낯설고 물설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곳에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참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는 동화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신앙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찬란하게 어려움 가운데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했습니다. 저들과 함께 하시면서 저들의 빛이 어둠 속에서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게 했습니다. 그리해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 극심한 곤경 속에서도 오히려 귀하게 쓰임 받는 재목이 된 것을 우리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에 나가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 신앙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어둠 속에 파묻히지 않고, 오히려 어둠을 밝히는 우리들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절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의 발길을 환하게 비춰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에 동화되지 말고 빛을 발하며,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아니라 맛을 발하는 복된 오늘 하루의 삶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3강 다니엘과 세 친구(1:6-7)
1:6-7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6절을 보면 "그들 중에"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 사람으로 쓰기 위해서 "유다 나라에서 포로로 끌고 와서 훈련시키고 있는 사람 중에"라는 말입니다. 아무나 끌고 온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가문이 좋아야 했습니다. 어떤 가문이었습니까? 왕족이거나 귀족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물이 좋아야 했습니다. 흠이 없고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세번째로 학벌에 관한 것이 있었습니다.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자여야 했습니다. 넷째로는 나이가 적당해야 했습니다. 14세, 15세 정도 되는 소년이어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여러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베니게에서 끌려온 소년들도 있었을 것이고, 수리아에서 포로로 끌려온 소년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유다 자손도 있었을 것이고, 또 멀리 애굽에서 끌려온 소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유다 자손 네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네 사람 이름의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 가나다순이 아니라 히브리어의 알파벳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ㄷ이 제일 먼저 나오고, ㅎ이 나오고, ㅁ이 나오고, ㅇ이 나왔습니다. 물론 다니엘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다니엘이 먼저 나왔겠지만,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순서도 알파벳 순서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너무나도 귀합니다. "다니엘"의 "엘"은 무슨 뜻입니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할 때 "엘"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법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법관이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친히 나의 법관이 되셔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냐"라고 할 때 제일 끝의 "야"라고 하는 것은 "야훼"를 뜻합니다. "야훼"는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은혜로우신 여호와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리라." 할렐루야!
그 다음에 "미사엘"의 뜻을 보면 "엘"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같으신 이가 누구리요?" 이런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리라. 하나님만 바라보리라." 얼마나 신앙적인 이름입니까?
그 다음에 "아사랴"의 이름도 끝에 "야"가 나옵니다. "야"는 곧 야훼, 곧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입니까?
"다니엘"-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법관이 되셔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는 이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냐"-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더욱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미사엘"-하나님과 같으신 이 누구시리요? 하나님만 바라보시면서 하나님만 의지하시고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시는 복된 발걸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사랴"-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일에 도움을 주셔서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포로들을 끌고 와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훈련시키는데 세 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소년들을 격리시킵니다. 각 소년들의 나라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동무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서 완전히 격리시켜서 한 곳에 모아 놓고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킵니다.
두번째는, 완전히 세뇌 교육을 시킵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고, 또 이름조차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고,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뇌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소년들이 각각 자기 나라 임금에게 충성을 했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충성하도록 세뇌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군대에 가면 경례할 때 무엇이라고 합니까? "충성!"이라고 합니다. 아마 그때도 경례할 때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의미의 훈련을 시켰을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삼 년 동안 훈련을 다 시키고 난 다음에 되었다 싶으면 시험을 해서 자기 앞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일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 7절에 나옵니다. "환관장이." 환관장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3절에 보니까 아스부나스라고 했습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가 그들의 이름을 고쳤습니다. 히브리 식 이름을 바벨론 식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가서 살면, 예를 들어서 제가 미국에 갔다고 칩시다. 제 이름이 박상훈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제 이름을 외우기 참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미국 가면 미국식 이름을 많이 사용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성경 지식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볼 테니까 여러분이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남자입니다. 그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창 41:45에 보면 요셉에게 애굽 식 이름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여자입니다. 그의 히브리 식 이름은 "하닷사"입니다. 아리따운 여성입니다. 나라를 구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갔습니다. 누구입니까? 에스더입니다. 에 2:7을 보세요. 히브리 식 이름은 하닷사였습니다. 이 이름을 바벨론 식 이름으로 바꾸어서 에스더라고 붙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사람들이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좋게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이름의 의미도 바꾸었습니다. 완전히 자기 나라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뭐라고 고쳤습니까?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벨"이라고 하는 것은 바벨론 신의 이름입니다. "바벨론의 신인 벨이 나의 생명을 보호하리라." 뜻은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법관이시다"라는 이름이 바벨론 식으로 "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하리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고 붙였습니다. 사드락이라는 이름의 제일 끝에 "악쿠"라고 하는 것이 역시 바벨론 신의 이름입니다. "악쿠의 명령이다"라는 뜻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미사엘은 "하나님과 같으신 이 누구시리요"라는 히브리 식 이름을 메삭이라고 했습니다. 메삭의 끝에 나오는 "악쿠"라는 것이 바벨론 신의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악쿠와 같은 신이 누구리요?"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는 나를 도우시리라"는 뜻의 아사랴를 아벳느고라고 바꾸었습니다. "느고"라고 하는 것도 바벨론 신의 이름입니다. 아벳느고는 "느고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너희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봐라.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내 신앙을 저버릴 것 같으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충성을 변하게 할 것 같으냐?"고 하면서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6절을 다시 한번 보세요. "그들 중에 유다 자손"이라고 하면서 네 사람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실제로는 유다 자손 가운데 끌려온 사람이 이 네 사람 말고도 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고 이 네 사람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기록되었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다른 사람들은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를 마셨을 것입니다. 또 왕이 만든 금 신상에 꿇어 엎드려 절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달랐습니다. 어두움에 파묻히지 않았습니다. 그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분명히 지켰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다니엘의 하나님이 과연 그들의 법관이 되셔서 저들을 지켜주셨고, 하나냐의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미사엘의 하나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저들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해주셨습니다. 아사랴의 하나님이 저들을 도와주셔서 저들로 하여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법관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면서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저와 여러분의 발걸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둠에 파묻히지 마세요. 빛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주신 것은 세상의 빛이 되라고,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택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하나냐의 하나님, 미사엘의 하나님, 아사랴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 하루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니다.
제4강 다니엘이 뜻을 정함(1:8-9)
1:8-9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8절 말씀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하루 뜻을 정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물질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기로 분명한 뜻을 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뜻을 정했습니까?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뜻을 했습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다니엘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히브리적인 요소를 다 제거해 버리고 이제는 전적으로 바벨론 사람이 되어서 바벨론에 충성하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충성하는 사람들로 만들고자 하는 속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니엘은 침묵했습니다. 말이 없었습니다. 끌려 다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드디어 다니엘이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뜻을 정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왜 자기를 더럽히는 결과가 됩니까? 왕이 주는 진미 속에 먹어서는 안될 돼지고기가 있어서 그렇습니까? 율법에는 돼지고기를 못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서 그것을 먹으면 콜레스테롤 치가 높아져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방인들은 피 째 고기를 먹어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그렇게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왜 왕이 주는 진미를 먹고, 왕이 주는 포도주를 마시면 자기를 더럽힌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유대의 율법에는 못 먹게 되어 있는데 이방인들은 피째 먹는다든지, 돼지고기를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마시는 포도주"라는 말이 문제가 됩니다. 율법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조항이 없습니다.
단 10:3을 찾아봅니다.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세 이레가 차기까지 다니엘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면 평상시에는 어떻게 했다는 말입니까?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음식 자체에 강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음식의 출처가 누구입니까? 누가 음식을 주는 것입니까?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를 가지고 나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다니엘이 기쁨으로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왕이 누구입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누구입니까? 조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를 빼앗아간 장본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왕이 주는 진미와 그 왕이 주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왕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왕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내가 왕의 은혜로 사는 몸이 되었으므로 이제 왕께 충성하겠습니다"는 뜻으로 받아먹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음식 자체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출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로 나를 더럽히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충성하는 짓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뜻을 정하고 어떻게 했습니까? 단식투쟁을 했습니까? 신나를 몸에 끼얹고 분신 자살을 했습니까? 화염병을 집어던지면서 시위했습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8절 끝을 보면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흔히 보면 소신이 분명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다가, 다른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의견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인정해줄 줄 알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를 딱 막아 버리고 자기 소신대로 한다고 하면서 무례하게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 할지라도 말을 하기에 앞서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서 언제나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한다는 말이 영어로 무엇입니까? "think"입니다. 말하기에 앞서서, 행동하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t는 truth, 과연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 진실된 것인가? 잘못되고 거짓된 것은 아닌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h는 help 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내가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내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i는 important입니다. 중요한 일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n은 necessary로 이 말을 지금 꼭 해야 하는가? 이 행동을 지금 꼭 해야 하는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필요없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k는 kind입니다. 친절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지, 친절한 행위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지혜로웠습니다. 뜻을 분명히 세우고 환관장에게 찾아가서 이러저러하게 설명을 하면서 그에게 구했습니다.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럴 때 9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다니엘이 뜻을 정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거절하는 것은 왕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왕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뜻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겠습니까? 홀로 두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9절에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다니엘을 보호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뜻을 정하고 물질적인 것, 세상적인 것으로 나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세우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인도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만사가 형통케 해주시며, 승리케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베풀어주셨던 그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풀어주셔서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5강 도움을 구함(1:8-10)
1:8-10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로 인해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배반하고, 느부갓네살 임금, 세상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먹고 마시는 일 때문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물질 때문에 우리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를 보면 물질 때문에 자신을 더럽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전직 두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물질 때문에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고, 현직 대통령도 물질 때문에 아들이 더렵혀지고 만 것을 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물질에 대한 염려 때문에 우리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다니엘처럼 뜻을 분명히 세우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의 결심을 자기들을 훈련시키는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가서 설명했습니다. 왕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왕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왕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문자 그대로 다니엘의 법관이 되셔서 다니엘의 걸음걸음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여주셔서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입게 해주셨습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다니엘에게 상당히 동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결국은 다니엘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어떻게 거부했는지 보십시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세요.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이 환관장에게 있어서 "내 주"는 누구입니까? 환관장은 "내가 내 주 왕을"이라고 했습니다. 환관장은 세상의 임금을 자기의 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임금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다니엘의 주는 누구입니까? 1:1∼2을 같이 보십시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는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다니엘의 주가 누구입니까?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니엘의 주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주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다니엘의 주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다니엘의 주였습니다. 다니엘은 세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왕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의 명령이 얼마나 준엄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세상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시는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계속 보십시다.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환관장이 맡은 일이 무엇입니까? 왕이 훈련하도록 자기에게 맡긴 소년들을 잘 가르치고 잘 훈련시켜서 흠 없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환관장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검사를 해보고 불만족하게 되면 주어진 사명을 다하지 아니했다고 자기 지위 뿐 아니라, 자기의 생명까지 잃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느부갓네살 임금은 매우 잔혹한 임금이었습니다. 2:5을 찾아보겠습니다.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왕이란 무엇입니까? 사람 몸을 쪼개기도 하고 집을 거름터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2:12을 보세요.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다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말 한 마디로 바벨론의 모든 박사를 다 죽일 수 있는 무서운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니 환관장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환관장이 걱정한 것처럼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채소와 물만 먹었을 때 얼굴이 초췌해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15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굴이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보인지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와 같이 다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할 것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나아가면 안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했을 때입니다. 미국은 월남을 아주 시시하게 생각했습니다. 코딱지 만한 나라를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력을 월남에 보냈습니다. 최신 장비를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국이 이겼습니까? 졌습니다. 최신 장비를 자랑하던 미국이 삽과 호미와 괭이 자루를 들고 덤벼드는 베트콩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미국이 얼마나 곤란에 빠졌습니까? 이와 같이 내 힘, 내 능력, 내 생각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될 것 같지만 안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미국이 걸프에서 이라크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라크는 월남과 다릅니다. 석유를 팔아서 수많은 최신 장비를 구입한 나라입니다. 백만 대군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월남과는 다릅니다. 미국이 이라크와 싸울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했습니까? 미국의 영적 지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를 백악관으로 초청했습니다. 골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밤이 새도록 두 손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됩니다.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승리의 길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이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비행기 몇 대가 가서 폭탄을 몇 개 떨어뜨렸습니다. 이라크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작전 훈련을 하는 것처럼 했는데 미국이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 내 재주, 내 노력이면 잘 될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느린 것 같지만, 더딘 것 같지만 그 길이 빠른 길이요, 그 길이 승리의 길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세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나의 주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승리의 길로 나아가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강 열흘간의 시험(1:11-13)
1:11-13
환관장이 세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자기의 결심을 이야기했습니다. 환관장은 다니엘에게 상당히 동정적이었습니다만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상하여 초췌하고 볼품이 없게 되면 왕 앞에서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다니엘의 청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하고 자기의 뜻을 꺾어 버렸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일단 뜻을 정하면 초지일관 일편단심으로 그 뜻을 꼭 붙들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가 어려움이 있다고, 결코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다가 동쪽이 막히면 서쪽을 바라볼 수 있고, 또 서쪽이 막히면 남쪽을 바라볼 수 있지 않습니까? 남쪽이 막히면 북쪽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혀 버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눈을 들어서 위로 하늘을 쳐다볼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법관이 되셔서,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선한 목자 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앞에 있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환관장이 자기의 청을 들어주지 못할 때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환관장이 세워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감독자에게 갔습니다. 이 감독자는 환관장과 소년들 사이의 중간에 있는 자입니다. 소년들이 공부를 제대로 잘하나? 소년들의 건강이 좋은가? 또 바벨론 생활에 잘 적응하는가? 엉뚱한 생각은 품지 않는가? 이런 것을 감독하는 자입니다.
다니엘이 감독하는 자에게 말했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이번에는 환관장에게 말한 것처럼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로 나를 더럽히지 말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전략을 다르게 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삶의 지혜가 필요한 줄 압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제게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지혜를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다니엘이 이번에는 작전을 바꿨습니다. "나를 더럽히지 말게 하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 했습니까?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열흘 같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만큼, 또 건강에 손상이 있을 만큼 긴 기간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을 만큼 짧은 기간도 아닙니다. 적당한 기간입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자기들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시험하라고 했습니까? "채식을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채식이라고 하는 것은 시금치라든지, 배추라든지, 무와 같은 채소도 들어가겠지만, 과일도 들어가고, 곡식도 들어가고, 곡식으로 만든 빵도 들어갑니다. 이 모든 것을 총망라한 것이 채식입니다. 채식을 먹게 하고, 그리고 포도주 대신에 우리 승동의 가평수양관에서 떠 온 좋은 물도 마시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오히려 최고의 건강식품입니다.
그 다음에 13절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다니엘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의 법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채식을 먹고 물을 마시지만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를 마시는 다른 소년들보다도 우리의 건강을 더 좋게 해주시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범사에 여호와를 뭐하라고 했습니까?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라."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과연 세 친구와 다니엘의 법관이 되셔서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다니엘과 세 친구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일 보겠습니다만 얼굴이 더 윤택하고 좋게 되었습니다.
13절 끝 부분에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얼굴이 다른 소년들에 비해서 더 기름기가 있고 더 좋으면 계속해서 채소와 물을 마시게 하고, 만일 우리의 얼굴이 당신이 걱정한 대로 초췌하게 되면 당신 마음대로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를 강요하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감독자의 처분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시리라는 굳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그 감독자가 승락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자기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열흘은 긴 기간이 아닙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채소와 물을 주고 대신에 본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가도록 되어 있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자기가 취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먹고 마실 수 있겠지요? 자기에게도 이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긴 기간도 아니고 해서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기름기 있는 것 많이 먹고 고기 많이 먹는다고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실 때 우리가 늘 건강하게 살 수가 있는 줄 압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앞을 향해서 나아가고 위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무슨 일을 하든지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앞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물질이 다가 아닙니다. 먹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오늘 이 하루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시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7강 시험의 결과(1:14-16)
1:14-16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가 정복한 각 나라에서 젊은 소년들을 포로로 끌고 오게 했습니다. 그 소년들은 왕족과 귀족 출신이었고, 저들은 흠이 없고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들이어야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그 소년들에게 3년 동안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그들에게 좋은 기름진 음식과 값비싼 포도주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들을 잘 훈련시켜서 3년 뒤에 자기의 측근 신하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한편 그 일을 맡았던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자기에게 맡겨진 소년들의 이름을 다 바벨론 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에 유다 소년들 가운데 끌려온 네 명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였습니다. 이 네 명은 뜻을 정했습니다. 그들은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의 포도주를 받아서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왕이 주는 음식을 받는다는 것은 왕을 자기의 주인으로 삼고 왕께만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왕을 주로 삼아서 섬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자기들의 결심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환관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에 대해서 상당히 동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함으로써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상하게 되면 자기의 목숨이 왕 앞에서 위태로워질까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청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뜻을 정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환관장 밑에 있는 감독자에게 가서 자기들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동안만 시험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왕의 진미 대신에 우리에게 채식을 제공하고 왕이 주는 포도주 대신에 물을 마시게 해 보아라. 그리고 나서 그 결과에 따라서 당신 마음대로 처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할 때 그 감독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동안 시험했습니다. 열흘이라는 기간은 생명에 손상을 준다든지, 또 건강을 해칠 만큼 긴 기간이 아닙니다. 또 얼마든지 시험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말을 좇아서 열흘을 시험했습니다. 열흘을 시험하는 동안 감독자에게 생기는 이득이 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중간에서 자기가 취하고 값싼 것을 주게 되니까 분량으로 따지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네 사람이 열흘 동안 먹는 식량입니다. 열흘을 시험하는 것은 중간에 있는 감독자한테도 이득이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동료들은 소갈비 뜯고, 닭다리 뜯고, 삼겹살에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면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5절에 보면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소년들에게 진미를 주고 포도주를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결과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주권이 세상 임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제가 한번 물어봅니다. 왜 채식과 물을 먹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임금이 준 포도주와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윤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채식과 물이 건강 식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이어트 식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음식 자체에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그들의 법관이 되셔서 그들을 보호해주셨고, 하나냐의 하나님이 이름 그대로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미사엘이 하나님이 선한 목자 되셔서 인도해주셨고, 또 아사랴의 하나님이 저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저들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저들이 건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뜻을 정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 왜 하나님께서 저들을 돌보아주시지 아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1980년에 제가 해병대에서 제대할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마지막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도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여의도에서 세계 복음화 대성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거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이 다 헛된 것이었구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다시 군에 복귀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회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40일 동안 아침을 금식 해야겠다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낮 12시까지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 저는 보병 소대장이었습니다. 병졸과 같이 뛰고 같이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12시까지 일체 먹지 않고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40일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배고플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말씀을 먹어야지 생각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책을 펴놓고 읽고, 암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얼굴이 수척해져야 할텐데 동료들이 보니까 얼굴에 기름이 돌고 윤이 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금식이 좋아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라는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프란시스의 기도문을 잘 아시지요?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시스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내게 구해라." 그때 프란시스가 무엇을 구했겠습니까? "주여, 저는 당신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니 당신을 제게 주시옵소서. 제 마음이 당신으로 충만케 해주시옵소서."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도 예수님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 마음속에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이 넘칠 수 있습니다. 주님 주시는 참된 평강이 우리 마음속에 넘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우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붙고 윤택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음식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으로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셔서 우리의 삶이 윤택하고 아름답고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8강 하나님이 더하신 지혜(1:17-20)
1:17-21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 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를 거절하고 그 대신에 채식과 물을 먹었습니다. 드디어 삼 년이 지났습니다. 훈련 기간이 다 끝났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명을 어긴 것이 탄로가 나서 처벌을 당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또 아무래도 영양 보충이 미비해서 다른 소년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학문에 있어서 더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왕의 사랑을 받고 높이 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마 환관장과 감독자는 자기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열심히 잘 가르쳤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를 안 먹는 대신에, 조건을 내걸어서 "우리에게 좋은 과외 선생을 붙여주시오"라고 요구하고 집중적으로 과외 공부를 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무슨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명철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식을 주신 분도 역시 하나님십니다.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죽어라고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주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대구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 호텔 고고장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가운데 장로님의 아들이 있어서 화재가 되었습니다. 장로님의 아들이 고 3이 되었습니다. 입시 공부하느라 교회에 나오지 않을 때, 그 아버지 된 장로님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어야 하는데, "대학 들어가고 난 다음에 교회에 열심히 나와도 괜찮으니까 열심히 공부나 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일 년 더 재수를 했습니다. 또 떨어졌습니다. 완전히 집안이 초상집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고고장에 가서 밤새도록 춤을 추다가, 그 화재로 시꺼먼 숯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믿음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건강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하는 것이고, 가정의 평안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하는 것이고, 내 생업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권자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니까 갈대아 사람의 방언과 학문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통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신 외에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어떤 선물을 주셨습니까?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에게 그 방면에 선천적인 재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고 앞장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더 큰 선물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해주셨습니다.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어떻게 계시하셨습니까? 무슨 방법을 통해서 하셨습니까? 천체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계시하기도 하고, 또 꿈과 이상을 통해서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뜻을 다니엘이 잘 깨달아 알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어떤 임금이 예루살렘에서 빼앗아 온 거룩한 기명에 술을 마시는데,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쓰는 이상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이 그 이상을 해석해주었습니다. 그 왕이 누구였습니까? 벨사살입니다. 그리고 7장 이하에 보면 다니엘이 본 이상이 네 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상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또 몽조,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것도 깨달아 알 수 있었습니다. 2장과 4장에 보면 누구의 꿈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의 꿈을 다니엘이 해석해주었습니다. "모든 이상과 몽조를 다니엘이 깨달아 알았더라"는 말씀은 앞으로 2장, 4장, 5장, 7장 이하에 나오는 내용을 미리 복선을 깔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함께 성경을 한번 찾아보십시다. 삼상 2:30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오늘도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를 존귀히 여겨주셨습니다.
내 힘, 내 생각, 내 재주를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범사에 여호와를 의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사용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9강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복(1:17-21)
1:17-21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 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충성하기 위해서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까지 거부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하나님이 무한히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들로 하여금 지혜를 얻게 하시고, 또 지식을 얻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주인공이 다니엘에게는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해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존중히 여김을 받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면서 하나님을 존중하면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 축복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8절 말씀을 보세요.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온 뒤로 몇 년이 지났을 것 같습니까? 3년이지요. 1: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3년 동안 훈련을 받게 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입니다. 그 훈련 기간이 다 지났습니다. 그래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환관장의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예, 아스부나스였습니다. 몇 절에 나옵니까? 3절에 나옵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제 느부갓네살 앞으로 왔습니다. 왕의 면담을 받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의 순례 길을 다 지나고 나면, 언젠가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면담해야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빛난 면류관을 다 쓰시고 기쁨으로 주와 더불어서 영원토록 다스리며 왕 노릇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9절 말씀을 보십시다.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왕이 소년들을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삼 년 동안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갈대아 사람의 방언과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잘 배웠느냐, 바벨론 말은 얼마나 잘 하느냐? 또 자기가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제공했으니까 그들의 용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결론은 어떻습니까?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충성하겠다는 결심으로 왕이 주는 진미까지 거부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가 오히려 더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왕 앞에 발탁되었습니다. 누가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살아가면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주시는 것입니다. 물질 구하지 말고, 건강 구하지 말고, 지식 구하지 말고, 명예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만 모시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앞세우고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그 외의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셔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시는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절에 네 사람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라고 했습니다. 이 이름은 바벨론 식 이름입니까? 히브리 식 이름입니까? 히브리 식 이름입니다. 바벨론 식 이름은 무엇입니까?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너희들이 우리의 이름을 아무리 바벨론 식으로 이방신의 이름을 집어넣어서 바꾼다 할지라도 "나는 다니엘이다," "나는 하나냐다," "나는 미사엘이다," "나는 아사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이 변함이 없습니다.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법관이시고, 하나냐-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미사엘-하나님과 같으신 이 누구시리요, 아사랴-여호와께서 도우시리라. 얼마나 신앙적인 이름입니까? 이 이름이 그대로 오늘 여러분에게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20절을 보십시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모든 일을 다 물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을 물었을 것 같습니까? 예를 들면, 오늘의 일진이 어떠할까? 오늘 전쟁에 나갈까, 말까? 이런 것을 비롯해서 대소사 모든 것을 다 물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무엇을 물었을 것 같습니까? 2장과 4장에 무슨 내용이 나옵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무엇을 꾸었습니까?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이것이 좋은 꿈이냐, 나쁜 꿈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몇 배나 나았다고 했습니까? 십 배입니다. 엄청난 차이입니다. 여기에 십 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IQ가 10이라면 다니엘과 세 친구는 100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창 31:41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이 나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거한 이십 년 동안에 외삼촌 라반이 품삯을 몇 번이나 속였다고 했습니까? 열 번이라고 했습니다. 꼭 열 번만 속였다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많다는 뜻입니다. 많이 속였다는 것입니다.
또 민수기에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했습니까? 열 번이나 거역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열 번이라는 것이 아홉 번도 아니고 열한 번도 아니고 딱 열 번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말입니까? 수도 없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는 말은 엄청나게 차이가 날 정도로 지혜로웠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보다 열 배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21절을 한목소리로 다 같이 읽겠습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다니엘이 어떤 임금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까? 느부갓네살 임금 때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고레스 왕이 누구입니까? 고레스 왕은 왕이 된 원년에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포로는 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이었습니다. 이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올 때부터 시작해서 긴 세월동안 다 자기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몇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습니까? 70년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포로로 끌려올 때 나이가 몇 살쯤 되었다고 했습니까? 열네 살 내지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 있었습니다. 그러면 몇 살입니까? 84세 내지 85세입니다.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 10:1을 한번 보세요.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그후에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21절에서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고 한 말은 해방의 기쁨도 다니엘이 직접 겪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느부갓네살 임금부터 고레스 왕 때까지의 일을 다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중간에 여러 왕이 통치하였었습니다. 5장에는 벨사살 왕이 나옵니다. 6장에 보면 다니엘이 어느 왕 때 사자굴 속에 들어갔습니까? 다리오 왕 때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 왕의 통치를 거쳤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짤막짤막하게 통치했던 왕이 있지만 생략이 되었습니다.
그 긴 생애 동안 다니엘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건강하고 장수하고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연로하신 권사님들, 장로님들, 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다니엘처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가운데 늘 건강하시고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모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포로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2장에 보면 바벨론의 박사들이 느부갓네살 임금의 꿈을 해석하지 못해서 다니엘과 세 친구도 모두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위기에서 살려주셨습니다. 또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금 신상 앞에 꿇어엎드려 절하지 않았다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살게 되었습니다.
또 6장에 보면 다니엘이 어디에 던져졌습니까?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구해주셨지 않습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함께 하시면서 저들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요셉을 생각해보세요.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하게 종살이를 했습니다. 모함을 받아서 억울하게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뜻을 정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신앙생활을 잘할 때,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결국 요셉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어떠한 어려움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승리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연로하신 권사님들, 장로님들, 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니엘처럼 기도하고 소원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눈으로 체험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장수하면서 조국 이스라엘의 해방의 기쁨을 누렸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권사님들, 장로님들도 연로하시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가평수양관이 세워지고 교육관도 이루어지고 본당도 장엄하게 잘 건축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비젼이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보시고, 또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제목인 남과 북이 하나되는 통일의 역사를 다 보시기까지 장수하시는 귀한 축복이 여기 있는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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