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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메단 투이쎄르칸에 있는 하바국 선지자 묘

영국신사77 2009. 1. 4. 21:05
투이쎄르칸(Tyuserkan)에 있는 하바국 선지자 묘

  이란 내에 있는 성경 유적지를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느낀점은 거리가 너무 멀고 그리고 띄엄띄엄 산재해 있어서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탐방하기가 어려운 곳들이다. 이번엔 구약성경 하바국서 저자인 하바국이 잠들어 있는 이란 중서부 하메단(Hamedan)에서 남쪽으로 90여km 떨어진 투이쎄르칸을 찾았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하메단을 꼭 거쳐야한다. 필자가 두 번째 탐방하는 터이라 처음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간자너메 다리오왕의 비문 그리고 고대 메대 및 아케메네스 왕국 유적에서 벌굴 된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버스 여행의 매력이 날이갈수록 더해가는 순간이다. 간식 일부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또 하루밤을 보낸다. 버스가 슬슬 출발해 달리면 흔들흔들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은 기분이라 금방 잠이 온다. 한참 자다 보니 하메단이란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경이다. 먼동이 트려면 아직은 한참 있어야 한다. 버스 정류장 휴게실에서 가져온 농사꾼이 된 철학교수 윤구병씨가 쓴 “잡초는 없다” 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여행은 시간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복합적인 삶의 통합이다. 이책의 내용은 저자인 교수가 대학 강단을 떠나 변산반도 한 시골에서 농촌을 살리면서 공동체 학교를 만들어가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이다.

  아침 7시에 주차장 근처에서 투이쎄르칸로 가는 합승택시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갔다. 싸게, 빠르게, 안전하게 이동하는 합승 택시의 잇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활용했다. 약 한시간 정도 걸렸다. 인구 3만여명 쯤 되는 소도시이다. 도착 전 5km 정도는 꼬불꼬불 산길이었다. 여기도 하메단처럼 해발 1,800m는 넘겠다. 무척 쌀쌀한 기후였다.

  하바국 선지자가 하바국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다. 당시 불의가 선보다 득세하는 그런 시대상이었다.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될 정도로 불의가 득세했다. 결국은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하게 된다. 그는 신약의 예수님 말씀처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내용을 강조한다. 이런 어이없고 기막힌 현실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선지자 하박국이다. 하박국이 살았던 시대는 국내외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무척 어렸던 시대이다.

  당시 국제적인 상황은 중대한 사건들이 연이은 격동기였다. 당시를 지배하던 앗수르 제국이 서서히 쇠퇴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애굽 나라도 BC 609년 유다 왕 요시아를 참살한 후 그 세력이 점차 쇠퇴해 간다. BC 605년에 완전히 망하게 된다. 그 이후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을 세워 그 중심 세력이 갈대아 지방까지 뻗치게 된다. 그로부터 20여년간 갈대아인이 유다를 성공적으로 침공하여 결국 유다 나라는 사라지고 그 거민들을 (BC 597-587) 10년 동안 포로로 잡아간다. 그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략으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 와 바벨론의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아(이란)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점령하고 포로들을 해방시키자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이란으로 와서 예크버턴(하메단)에 살다가 죽어 인근 산세가 좋은 투이싸르컨에 매장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다가 여생을 마친 것에 대해 그의 조상 유대인들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이곳 이란에 사는 일부 유대인들이 지금도 그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것을 보면 장소와 연대가 고증을 통해 신빙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이곳에 산 때가 주전 610년에서 590년 사이라고 한다. 이 선지자는 하박국 2:1 과 이사야 21:6절을 연관시켜 "바벨론의 멸망을 지켜보는 파수꾼" 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데 그 성경적 역사와 일치하는 시대이다. 그는 당시 시대 상황을 겪으면서 "여호와여, 제가 살려달라고 울부짖어도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폭력이 난무하여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를 해도 도와주시지 않고 가만 계시니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 되어야 합니까?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이토록 악하고 참혹한 일들을 보게 하십니까? 내 앞에는 겁탈과 폭행이 난무하고 있으며, 시비와 분쟁이 그칠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죽어가고 정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의인을 붙잡아가서 폭행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라고 하박국서 1장 처음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선지자의 항의에 대해 하나님은 "갈대아 사람,즉 바벨론 사람들을 통해 유대 사회의 악한 사람들을 쳐서 형벌을 내릴 것이다" 라고 하바국서 1장5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그의 묘를 찾은 것 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주차장에서 한 5km 정도 떨어진 남쪽에 있었다. 허허 벌판에 그의 묘가 있었다. 바로 옆에 이곳 어저디 대학이 있어서 그렇게 쓸쓸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팔각형 적색 벽돌로 쌓아올려 그 형체를 만들고 지붕은 피라밋 돔 형태로 16개의 서까레 같은 것으로 장식해 놓았다. 특별히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무덤 안에는 그의 관이 노란 천으로 덮여 있었고 선지자를 기리는 많은 문구들이 벽에 게시되어 있었다.

  묘소 옆에 있는 그를 알리는 안내판에 7세기 사람으로 이슬람의 위대한 선지자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1975년 이란 무슬림의 역사 유적지로 969번째로 등록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약 한시간에 걸친 이곳 탐방을 끝내고 다시 삶터로 돌아오면서 역사의 왜곡은 없어야할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멀리서 바라본 8각형 지붕을 한 묘소 건물  




입구에 하바국 역사를 안내한 내용 




 

여기 선지자 하바국 묘지라는 선명한 입구 간판이 보인다.

묘지 안에 있는 하바국 선지자 관 


묘지를 배격으로 




 묘지의 가까운 모습

출처 : 페르시아 사랑
글쓴이 : 주페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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