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外 聖地순례/Mesopota.西南Asia 聖地순례

[스크랩] 수사(Shush)에 있는 아하수에로 왕 수산궁

영국신사77 2009. 1. 4. 21:02
수사(Shush)에 있는 아하수에로 왕 수산궁

  초가잔빌(Choqa Zabil) 탐방을 다 끝내고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40여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다니엘 묘와 수산궁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심술을 부리던 안개도 이젠 사라졌다. 위도상으로 남쪽 지방이라 한겨울인데도 별로 춥지 않다. 우리나라 봄날씨 같다.

  수산(수사)은 이란 남서쪽에 있는 아와즈에서 북서쪽으로 117㎞쯤 떨어져 있다. 오늘날 수사(Shush)라고 불리는 수산은 선사시대에서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란 문명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이었던 도시이다.

   특히 이곳은 사르디스(성경의 사데)와 엑바타나(성경의 악메다),페르세폴리스로 가는 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고학적 연구 결과 수산은 5000여년 이상이나 되는 역사적 도시임이 밝혀졌다.

  이 지역에는 기원 전 4000년경부터 엘람 민족이 거주하여 신석기 문화를 이룩하였고 아케메니아인들의 지배 기간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특히 구약성경 에스더서의 주요 무대였음 여러 고고학적 유물로 증명된 곳이다. 그리고 기원전 32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신하와 병사들 1만명이 이 지역의 처녀들과 집단 결혼을 한 역사도 지니고 있다.

  이후 사산조 왕조의 사푸르 2세(309∼379년)는 기독교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수산을 파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후에 에란샤르 사푸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으며 아랍에 다시 점령된 이후부터는 점차 쇠퇴하여 오늘날에는 중소도시(인구 6만 정도) 규모를 갖고 있다.

  수산에 도착하여 먼저 수산궁터가 있는 곳을 찾았다. 수산궁터는 시내 나즈막한 산 언덕 위에 있었다. 궁터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 19세기 말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수산궁터에서 발굴된 벽돌로 세운 아파다나성 위로 올라갔다.

   이 성은 당시 다리오왕이 페르시아제국에 적군이 쳐들어오는가를 살피는 전망대 역할을 했으며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접견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진흙 벽돌로 쌓아 올려 만든 성이 무척이나 견고해 보였다. 이 성을 지금은 이란 문화재청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마어마하게 넓은 수산궁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에서 내려와 궁터에 가보니 화려했던 수산궁터의 모습은 건축물의 기초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넓은 궁터의 자취를 살펴보니 식당, 회의실,도서관,귀빈 접대실, 창고 등 있을 것은 다 있었던 모양이다. 한창 유적 발굴을 하고 있었다. 그 넓이도 대단했지만 당시의 유적 일부를 발굴해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북쪽 끝에 대리석 기둥의 추줏돌이 몇 개 발굴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돌로 된 쌍사자 석상이 원형에 가깝게 발굴되어 홀로 옛궁터를 지키듯 서 있었다.

  성경에서 수산은 느헤미야 1장 1절과 다니엘 8장 2절에 한번씩 소개되었고 에스더서에는 여러 번 기록되어있다(1:2,5:2,9:6).

  아하수에로왕 시대에 수산궁은 화려와 사치가 극에 달하였다. 다리오(다리우스) 대왕 때의 비문에서 수산궁의 건축에 언급된 부분을 보면 레바논과 간다라에서 많은 재물을 가져왔으며 사르디스와 박트리아에서는금,코라스미아에서 터키옥을 가져왔다. 또 은은 이집트, 벽 장식품들은 이오니아, 상아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왔고 돌기둥은 엘람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각국에서 기능공(목수 석수 벽돌공 세공인 등)이 징발되어 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사치와 화려함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알 수 있다.

  에스더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인 이곳 수산궁에서 아하수에로는 즉위식을 갖고 3년째에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에1:1∼3). 다니엘은 벨사살왕 3년에 엘람의 수도인 수산성에 있었으나 숫양과 숫염소의 이상을 본 것은 을래강변이었다(단8:1∼2).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즉위 20년 기슬르월에 수산궁에서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울며 금식하며 기도한 후(느 1:1∼40) 왕의 허락를 받아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선택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구약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이곳을 탐방하면서 성경의 모든 역사가 한 치도 오류가 없음 실감하게 되었으며 늘 전쟁과 파괴와 그리고 복구가 반복되는역사가 잇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