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문①(출 27:13∼16)
뜰문은 성막의 동편에 있고 오직 하나의 큰 문으로 돼 있다. 규모는 폭 20규빗, 높이 5규빗(10×2.5m)으로 문턱이 없는 게 특징이다. 뜰문의 재료는 가늘게 꼰 흰색 청색 자색 홍색의 4가지 베실로 짜여 있는데 청색은 하나님의 자비, 자색은 왕권 위엄 영광, 홍색은 속죄를 의미, 흰색은 부활과 순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막 사방면에는 3지파씩 12지파가 진을 치고 있다. 한쪽에 문을 하나씩 내면 훨씬 편리할 것 같지만 성막의 문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계신 곳, 즉 성소에 들어갈 때는 오직 한 곳으로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이 문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으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다. 남녀노소,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문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천국의 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표현하는 문이고,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사랑의 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문은 누구든지 믿음만 가지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문이 언젠가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닫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문이 닫히기 전에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는 확신을 갖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영혼들이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뜰문의 특징을 하나 더 살펴보면, 성막을 칠 때 항상 동쪽을 향하도록 했다.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으로, 이는 장차 나타나실 그리스도가 의의 태양이시며 온 우주와 인류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 울타리의 유일한 문인 뜰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 문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통과해야 할 유일한 문이며, 큰 문이고 태양을 향한 문이었다. 하나님은 유일한 문이지만 누구에게나 열린 큰 문을 주셔서 소망을 주셨다. 온 인류가 이 소망의 문을 통과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세계성막복음센터원장·광은교회 담임목사·031-668-0550>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11> 뜰문②] 누구에게나 열린 문 |
뜰문② (출 27:13∼16)
성막 뜰문의 문양은 청색 자색 홍색 백색 베실로 짜여 있는데, 4가지 색은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1. 첫째, 청색은 생명의 색으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청색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하늘을 연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낸다.
2. 둘째, 자색은 왕권을 의미하는 색으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자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통적으로 왕을 상징하는 색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 만물의 통치자인 왕이심을 의미한다.
3. 셋째, 홍색은 피를 의미하며,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홍색을 통해 대속의 피, 보혈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4. 넷째, 백색은 성결, 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상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문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은 남이 열어주지 않는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각자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이라는 도구를 통해 스스로 하나님게 나아가야 한다.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 자녀들까지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성막 뜰문에 담긴 또 하나의 특징은 문턱이 없다는 것. 누구든지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이 문은, 턱이 없으므로 더욱 들어가기 쉽게 돼 있다.
성막 뜰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긴 하지만, 언제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들어갈 수 있다. 구원의 때, 은혜의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자가 돼야 한다. 인간에게는 그때 잘했어야 하는 후회감이 늘 마음 속에 존재한다. 한 걸음이라도 잘못 옮기면 영혼 구원의 기회를 놓치게 될지 모른다. 다음 기회로 미룰 것이 아니라 현재가 내게 구원의 때, 은혜의 때가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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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12> 번제단①] 희생 제물 올리는 곳 |
번제단① (출 27:1∼8)
번제단은 성막 뜰 한 가운데 설치돼 있다. 크기는 길이 2.5m, 폭 2.5m, 높이 1.5m다.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모퉁이마다 뿔이 달려 있고, 가운데에는 그물망이 놓여 있다. 상단 양쪽에 설치된 4개의 놋고리는 멜채가 꿰어 있다. 성막 기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번제단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복음의 의미가 들어 있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간다’, 단은 ‘죽인다 학살한다’라는 뜻으로, 번제단은 ‘희생 제물을 올리는 단’이다.
구약 시절 하나님은 양이나 염소 등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물로 드리도록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방편으로 제물들을 허용하신 것이다. 번제단에 드려진 제물은 불로 깨끗이 태워졌다. 번제단에는 하나님께 죄인 대신 소와 양, 염소, 비둘기가 드려졌고, 이를 통해 인간들이 죄 사함을 받았던 곳이다.
번제단은 조각목(싯딤나무)에 놋으로 둘러싸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조각목을 둘러싸고 있는 놋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한다(민 21:9, 요 3:14). 공의의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의 죄의 대가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다.
희생 제물의 피를 단 밑에 쏟은 뒤,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네 모퉁이의 뿔에 바른 것(출 29:12)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며, 보혈이 구속 능력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번제단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조각목은 버림받은 인간, 놋은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보혈의 공로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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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13> 번제단②] “정사각형 모양으로 조각목…” |
출애굽기 27장 1∼7절
번제단 위에는 제물을 태우기 위해 밤낮으로 꺼지지 않고 밝게 타오르는 불이 있다. 죄인들의 대속 제물은 이렇게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불에 태워져 하나님께 바쳐진다.
이것은 정말로 큰 은혜다. 하나님은 구원의 불을 밝히셔서 반항하고 저항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구원하려고 기다리신다.
번제단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이뤄져 있다. 정사각형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똑같은 상태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위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며 어떤 모습, 어떤 상황이든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면 동등하게 맞아주신다는 것이다.
또한 번제단은 누구든 발을 내딛기만 하면 다가설 수 있는 땅위에 세워져 있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이 번제단에 접근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죄인이라도 믿음만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번제단은 조각목과 구리로 만들어졌다. 조각목만으로는 불에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겉을 장식하고 있는 구리가 조각목의 내화력을 높여준다. 조각목은 주님의 인성을 상징하며, 구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원히 변치 않는 힘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 세계로 내려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로 넘어지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롭게 할 능력을 가지셨다.
오늘도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도들에게 다가오신다. 가까이 오셔서 전능하신 그분의 손으로 우리의 삶을 기꺼이 만지고 치유하신다. 주저없이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할 때, 예수님은 조각목 같은 우리 인생의 연약함을 능력으로 감싸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키고 힘을 주신다.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14> 번제단③] 재 담는 통·부삽 등 5가지 보조기구 |
출 27:1∼8
번제단에는 보조 기구가 5가지가 있으며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1. 첫번째는 재를 담는 통. 번제단의 재처럼 교회 안에는 좋은 것만 모이지 않는다. 좋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는데, 그것을 모두 들춰내면 교회답지 못하게 된다. 교회에는 이런 허물과 결점들을 끌어안고 있다가, 살그머니 밖에 내다버리는 아름다운 교인이 있어야 한다.
2. 두번째는 부삽이다. 번제단에서 태운 모든 제물의 찌꺼기를 긁어내는 도구이다. 부삽은 개인적인 문제와 공동체 생활 속의 시험이나 고통 등 찌꺼기들을 긁어내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성도의 모습을 비유하고 있다.
3. 세번째는 대야로,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빼낸 제물을 번제단에 나르는 그릇이다. 대야가 의미하는 것은 전도하는 성도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성도는 제물을 제단까지 나르는 대야와 같다.
4. 네번째는 갈고리이다. 이것은 대야에 담아온 고기를 찍어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우는 동안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시키는 기구이다. 갈고리가 의미하는 것은 교회 내의 사랑의 고리를 의미한다. 교회에는 공동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끈을 붙들어주는 갈고리 같은 일꾼이 꼭 필요하다.
5. 다섯번째는 불이다. 이는 성령의 불을 의미한다. 살아있는 교회에는 항상 불씨가 있어야 한다. 즉 불처럼 뜨거운 성도, 성령의 불을 붙이는 성도가 필요하다. 성령의 불은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다.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15> 물두멍①] 주님 보혈로 죄 씻는 곳… 성결 상징 |
출 30:18∼21
물두멍의 다른 명칭은 물그릇이다. 물두멍은 출애굽기 38장 8절 기록처럼, 이스라엘 여인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놋거울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인간을 위해 쓰이던 물건이 하나님을 위해 쓰인 것이다. 육을 아름답게 하던 도구가 영을 아름답게 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여기서 놋은 십자가를 상징하며, 물두멍은 손과 발을 닦는 곳으로 성결을 뜻한다. 십자가(놋)의 피 외에는 어느 것도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없음을 상징한다.
물두멍 안의 물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물두멍에 손과 발을 씻는 행위는 주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한 후에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물두멍은 성결케 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며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라는 고백이 우리의 의식적인 체험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죄악이나 오점을 보여주시면 즉시 그것을 고백하고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한다.
물두멍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 누구도 거룩하게 씻기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만약 성결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시도한다면 그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셈이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는 성결함이 없이는 결단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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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16> 물두멍②] 헌신과 자기 발견 의미 | |
출 30:18∼21
물두멍은 두멍과 받침,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받침이 여인들이 사용하는 거울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거울을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 중의 하나가 거울이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물두멍을 만들기 위해 그처럼 소중한 거울을 바친 것이다. 우리는 물두멍 제작 과정에도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스라엘 민족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물두멍은 단순히 헌신의 교훈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사장들은 물두멍 앞에 설 때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물두멍의 놋은 거울로 쓰이기 때문에 보통 놋과는 달리 아주 투명하다. 물두멍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더러운 손과 발을 물두멍의 물로 씻어낸다.
그래서 물두멍은 성결을 확인하는 곳이었다. 물두멍은 항상 물로 채워져야 하고, 그 물은 하나님 말씀을 상징한다. 신자들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일상의 모든 삶이 말씀에 비춰져야 한다. 죄로 오염된 마음은 말씀으로 씻어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우리의 더러운 마음이 새롭게 되고 깨끗이 씻길 수 있다.
우리 얼굴을 매일 거울에 비추어 살피듯, 말씀의 거울 앞에 항상 우리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중생이 일회적이라면 성결은 계속적이며 반복적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 받았지만, 날마다 말씀으로 죄를 씻음 받으면서 성화의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두멍의 물은 성령을 의미하며,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 크리스천의 최고 축복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물두멍과 물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깨닫고 자기 성찰과 말씀 중심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나아가게 된다. 말씀과 함께 할 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를 돌보시며 삶의 문제에 응답해주신다.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17> 물두멍③] 손발 씻으면 네가지 축복 뒤따라 |
누구나 성소로 나아가기 전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어야 한다. 손발을 물두멍에서 씻으면 네 가지 축복이 따른다.
1. 첫째는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시 24:3∼4)
이는 물두멍에서 손을 씻는 것을 연상시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은 물두멍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 행위는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의 심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고 회개해야 하나님 곁에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둘째는 능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욥 17:9)
이것 역시 물두멍과 연관시킬 수 있는 말씀이다. 손이 깨끗한 자는 능력 있는 자가 된다. 살면서 큰 능력을 가지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가야 한다.
3. 셋째는 마귀를 도망가게 한다. 성경은 성결한 마음에는 성령이 임하게 돼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마 12:43∼45). 그러므로 물두멍에서 손발을 깨끗이 씻어내 마음이 성결해지면, 사탄의 악한 궤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4. 넷째는 하나님의 보상이 따른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삼하 22:21)
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복받기를 바란다. 선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덧입을 때(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의롭게 될 때), 순종하며 거룩함 가운데로 나아갈 때 주어진다.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18> 성소] 하나님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 |
오늘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성소에 대한 이야기다. 거룩한 분이 계시니 거룩함이 있고 그래서 이름도 성소다.
결론적으로, 성소는 성막이 있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
지니라”(출 25:8∼9)
거룩한 성소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양대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어졌다.
성소는 좌우에 진설상(떡상)과 금촛대, 가운데는 분향단이 놓여 있다.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구분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날개를 편 그룹 둘이 있다.
떡상은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뒤 둘레를 순금으로 장식했다. 떡상 위에는 항상 떡 열두 덩어리가 놓여 있다. 떡은 좋은 밀가루로 만든 것으로, 안식일에 새 것으로 갈아놓았다(출 25:24∼28).
떡상 맞은편의 촛대는 정금으로 만들었는데, 밑판에 줄기가 있다. 줄기에는 여섯 가지가 뻗쳐 있으며, 각 가지 끝은 꽃 형상을 이루고 있다. 등불은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보살펴야 했다(출 27:21).
분향단도 조각목으로 만든다. 상하 전후 좌우와 네 뿔은 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으며, 고리 4개는 채에 꿰이도록 했다. 채는 금으로 둘러싸고, 분향단에는 향품을 올렸다.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은 청색·자색·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수놓았다. 휘장은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네 기둥에 금 갈고리로 꿰어 드리웠다. 네 기둥은 은받침대 위에 두게 했다.
이처럼 성소에는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로, 그분을 섬기기 위한 기구들이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기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가리켜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라고 말씀한다.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으면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다. 연약한 육신과 죄의 심성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고쳐 나가야 한다.
우리가 그분의 방법에 순종할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풍성하게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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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19> 떡상과 진설병①] 하나님 앞에 바치는 떡 |
출애굽기 25장 23∼30절
떡상 위에는 언제나 떡 12개가 올려져 있다. 이 떡들을 ‘진설병’이라고 하는데, 진설은 ‘한 줄로 세우다, 정렬하다’란 말로서 기준에 맞게 배열한다는 뜻이다.
진설병의 히브리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얼굴의 떡’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바치는 거룩한 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설병은 한 주가 끝날 때마다 제사장이 새로운 것으로 교환하고 묵은 것은 제사장들이 먹었다. 제사장들은 이 떡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새로운 힘과 신선한 능력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겼다.
떡상은 성소 북쪽의 황금 촛대 맞은편에 놓였다. 떡상은 항상 하나님 앞에 두어야 했다. 하나님 앞에 둔 것은 떡상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화해와 친교의 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서 제사장은 죄인들의 중보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만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떡상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성물이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 떡이 하나님 앞에 항상 있었다는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이 열납되고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로 인해 즐거움을 누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요 6:48). 예수님은 친히 생명의 떡이 되셔서 한 알의 밀처럼 온전히 희생하시면서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셨다.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류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멸망의 자리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는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 가운데로 나아가 영의 양식,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잘 소화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길에 동참해야 한다.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20> 떡상과 진설병 ② ] “12개 떡은 하나님…” |
(출25:23-30)
오늘은 떡상의 두 번째 이야기로, 상 위에 놓여진 진설병에 담긴 의미들을 알아보자.
떡상 위에는 두 줄로 6개씩 12개의 떡이 놓여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한다. 즉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숫자다.
또 떡상 위의 열두 떡은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양식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 자는 이 정결한 양식을 영의 양식으로 취할 수 있다.
1. 진설병에 담긴 첫 의미는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 생명의 떡이심을 상징한다(요6:53-55). 떡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육신의 양식이 떡이라면 우리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이 육의 양식을 잘 먹어야 건강할 수 있듯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받으시기에 기쁜 모습을 갖추려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한다.
2. 둘째 진설병에는 교제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떡상은 여러 명이 같이 둘러서서 먹는 자리이다. 초대교인들의 신앙생활의 핵심은 떡을 떼며 교제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1)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아주 인상적으로 알려 준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3. 셋째 진설병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늘 떡상 위에 차려져 있어야 했다. 잠시라도 떡상이 비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잠시라도 우리에게서 떠나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말씀에서 벗어난 자리는 죄악의 유혹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성실한 말씀 묵상으로 우리를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진설병은 기름을 부어서 반죽하였다(레 2:5). 그래서 진설병을 먹을 때는 그 기름과 함께 먹는 것이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는데, 성도들이 말씀을 잘 먹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며, 성경의 저자는 성령이다. 마음속에 성령이 거하고 있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 성경을 더 잘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성경은 성령으로 먹어야 바르게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성경을 바로 깨닫도록 인도해 주신다.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
<21> 떡상과 진설병 ③] 자세 낮춤은 겸손·순종 의미 |
먹는 자세와 떡상 운반(출25:23-30)
떡상과 진설병의 마지막 시간으로, 떡을 먹는 자세와 떡상 운반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보자.
먼저, 떡을 먹을 때는 허리를 굽혀야 한다. 왜냐하면 장막 안의 모든 기구 중에서 제일 낮은 것 중의 하나가 이 떡상이기 때문이다. 떡쌍의 높이는 1규빗 반(75㎝)으로 매우 낮다. 그러므로 떡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세를 낮춰야 한다. 마찬가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는 것은 그 말씀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순종하기 위해서이다.
떡상 운반은 민수기 4장 7∼8절에 그 내용이 나온다. 떡상을 운반할 때는 먼저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과 숟가락과 주발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둔다. 그 다음 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맨 위에 해달의 가죽 덮개를 덮는다. 그리고는 채를 꿰고 메고 가야 했다.
1. 첫째 떡을 청색 보자기 위에 올려놓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둘째 그 위를 홍색 보자기로 덮었는데, 홍색은 피의 색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미한다. 진설병이 청색보자기와 홍색보자기 사이에 놓여 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증거하는 말씀이 참 생명의 말씀임을 의미한다.
3. 셋째 맨 위에 덮는 해달의 가죽덮개는 승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승리를 약속하시고 보장하신다. 성도는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4. 넷째 떡상은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했다. 이와 같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은 떡상을 어깨에 메고 운반할 때에 수고가 따르듯, 희생의 발걸음, 헌신의 발걸음, 자기부인의 발걸음이 돼야 함을 의미한다.
떡상과 진설병에 담긴 의미들을 정리하면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처럼, 말씀에 가르쳐 주신 대로 순종하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희생과 수고와 헌신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따라 영적 전쟁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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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22> 금등대①] 성소 내부 밝히는 빛 | |
(출 25:31∼40)
떡상에 담긴 영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성막의 내부를 밝혔던 금등대(촛대)에 대해 알아본다.
금등대 재료는 정금 1달란트를 사용했고 그 금을 쳐서 만들었다. 금등대의 큰 구조를 보면 하나의 밑판에 일직선으로 서 있는 중간 가지, 그리고 이 가지를 중심으로 좌우 각각 세 개씩 여섯 가지로 되어 있다. 총 일곱 가지의 각 끝에 있는 황금 등잔에는 순결한 감람유가 들어 있으며, 이 기름은 성소 안을 비추기 위해 항상 불타고 있었다. 성소 안에서 빛의 근원은 오직 금등대뿐이었으며, 제사장들은 이 빛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섬기고 예배했다. 금등대는 성소의 남쪽에 진설병을 마주하여 서 있다. 등잔은 살구꽃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고, 불집게 불똥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성소 안 금등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등대는 금으로 만들었으며, 성경에서 금은 믿음을 의미한다. 성도가 빛된 생활을 하려면 믿음의 생활을 하여야 한다. 바른 믿음은 밤하늘의 샛별처럼 반드시 빛나게 되어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막 안에는 등대에서 발하는 빛 이외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연의 빛은 전혀 없었다.
등대에서 발하고 있는 거룩한 그 빛은 상징적인 영역에서,
1. 첫째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 예수님을 의미하며(요 8:12),
2. 둘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증거하신 주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들을 묘사하며(마 5:14),
3. 셋째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다윗이 영광스럽게 고백했듯이, 주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시 119:105).
성막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등대의 빛은 일차적으로 2000년 전 세상에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데, 참 빛 되시는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남긴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의 빛과 자신을 믿고 구원받은 빛의 자녀들이다. 이 빛의 영향력은 영원히 살아서 오늘날도 말씀의 빛과 지구 곳곳에 있는 작은 등불들을 통해 죄로 물들어 어두워진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죄악이 관영한 세대 속에서 노아의 믿음만은 빛나고 있었으며,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만은 빛나고 있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믿음이 우리 신앙의 삶을 빛된 삶으로 인도한다.
금등대를 만들 때 금을 녹여 부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모형이 나올 때까지 쳐서 만들었다. 여기서 쳐서 만든다는 것은 고난당함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아 고난당하셨다. 빛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고난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이나 등잔불은 자기를 태울 때 비로소 빛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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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8.14 15:51:08 국민일보
[김한배 목사의 성막이야기―<23·끝> 금등대 ②] 성령 의미하는 기름 | |
빛 발하게 하는 재료 감람유(출 25:31∼40)
오늘은 금등대 두번째 이야기로, 등잔대와 성막 내부를 밝히는 빛, 빛을 발하게 하는 재료인 감람유에 담긴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먼저 금등대는 금을 두드려 쳐서 만들었다. 등잔대를 만드는 순금 덩어리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등잔대의 형태를 갖추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름은 사실은 고난에로의 초대였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의 천한 마구간으로 오신 것 자체가 고난에로의 강림이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모든 아픔을 친히 경험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때로는 고난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게 된다.
성막 안에는 창이 하나도 없다. 천장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게 4개의 덮개로 가려져 있어 내부는 매우 캄캄하다. 빛을 발하는 것은 등대뿐이다. 그렇기에 등대의 역할은 너무도 컸다. 성막 안에 등대의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작은 불꽃이 금벽에 부딪혀 빛을 발하였고, 그것이 반사되어 또 다른 반사를 이룬다. 그래서 성막 내부는 놀라운 빛을 발할 수 있다.
금등대의 사명과 목적은 빛을 비추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밝혀준 빛의 등대이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빛 되신 주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는 복음의 빛을 받아 그 빛을 이웃에 전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또한 등대에는 아침저녁으로 감람유를 공급해주어야 계속해서 빛을 낼 수 있었다. 감람유 없이는 절대로 빛을 낼 수가 없는데, 여기서 감람유는 성령을 의미한다. 성경은 순전한 기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감람나무 열매를 찧어 진액을 짜낸 기름을 다시 잘 정제한 맑은 기름을 말한다. 감람나무는 이스라엘과 예수님을 상징하며, 감람유는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시종일관 성령의 사역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내 안에 거하신다. 그 성령께서는 나를 주관하시며 나의 길을 인도하시고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 기름 부으셔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신다.
성도인 우리도 스스로는 빛을 낼 수가 없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그래야만 빛 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
등대의 불은 밤낮 계속 켜져 있어야 한다. 불이 꺼지면 캄캄하여 아무 일도 못하고 방황하여 분별치 못하듯이,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려면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고 늘 빛을 발했듯이, 우리의 심령 안에는 그리스도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늘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성막복음센터원장·광은교회 담임목사·031-668-0550>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