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1)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교회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84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영락교회와 뚝섬에서 “세계교회 기도성회”가 열렸다.
제임스 오르 박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운동 및 기도운동가들을 비롯한 1,200여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85개국으로부터 참여했고 국내적으로는 한경직 박윤선 김준곤 목사님의 지도하에 연인원 30여 만 명이 영락교회와 뚝섬에 참여하여 강의도 듣고 함께 기도했다.
그때 나는 실무를 맡으며 “기도의 사람 브레이너드”란 주제로 발표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발표한 유스티니안 벨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선교에 헌신했고 어떤 사람은 내가 발표한 데이빗 브레이너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선교에 헌신했다고 고백했다.
교회역사는 열린 사람들의 가슴과 삶에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준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 야콥 슈페너와 개신교 선교의 선구자 유스티니안 벨츠의 가슴과 삶에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준 것이 바로 교회 역사요 교회 역사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이었다.
교회 역사는 우리들에게 균형 잡힌 그리고 보편적인 사고를 제공하며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굉장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래 살지도 못하였다. 그는 단지 수백 명의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29세라는 꽃다운 청춘에 폐결핵과 지나친 과로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그는 기도로 숨쉬고 기도로 움직이다가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브레이너드는 1718년 미국 커네티컷주 해담이란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의 젊음을 미국 인디언들을 위해 몽땅 불태우다가 1747년 매사츄셋츠주 노스햄턴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의 대 각성 운동을 일으킨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또한 영국에 복음적 각성운동을 일으킨 요한 웨슬리(John Wesley)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또한 윌리암 캐리, 헨리 마틴, 짐 엘리오트 같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가슴을 움직이기도 했다.
미국의 위대한 교회사가인 라토렛(K. S. Latourette)박사는 “브레이너드는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움직여 전도자와 선교사가 되도록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무엇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였는가? 브레이너드의 유창한 설교였는가? 그의 굉장한 업적이었는가? 아니다. 기도에 파묻힌 그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말들과 그의 삶이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유창한 설교에 의해서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목회자나 선교사의 굉장한 업적에 의해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
오늘날도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백을 들을 때 우리의 가슴이 움직인다.
참된 부흥은 기도하는 사람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부흥운동이 흔히
“상업주의”와 “감정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현상들을 목격한다. 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부흥운동이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고, 유창하게 설교하는 사람, 굉장한 업적을 이룬 ‘사업적’ 전도자들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브레이너드는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의 중요한 원인은 지나친 과로였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완전히 희생하였다. 그 자신은 죽음에 이르러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지나친 수고는 주님 앞에 섰을 때 그가 받은 최고의 훈장이었을 것이다.
브레이너드의 기도를 소개하기 전에 그의 생애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로, 브레이너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았다.
많은 헌신자들이 세상과 타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브레이너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았다.
둘째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지나치게 감정주의로 그리고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우치고 있다.
브레이너드는 주관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 대신 하나님의 영광에만 사로잡힌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로 일관된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셋째로, 브레이너드는 경건한 삶을 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선교와 봉사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의 생애를 마쳤다. 브레이너드는 소외되고 가난한 인디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과 함께 기거하며 생활한 사랑의 삶을 살았다.
이제 브레이너드의 일기에 기록된 그의 기도하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자. 브레이너드는 자기의 영적 생활을 일기로 기록하여 남겼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일기를 썼다.
브레이너드는 21세가 되던 1739년에 개종의 체험을 하였다. 그는 한동안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금요일 아침부터 주일 저녁까지 기도하려고 애를 썼다고 하였다.
그는 기도를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 그런데 깊은 신음 가운데서 숲 속을 거닐고 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런 경험을 하였다.
그의 영혼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의 영혼은 기쁨에 넘쳤고 그는 하나님 안에 삼켜버린 듯한 기쁨을 체험했다.
이와 같은 개종의 체험 이후부터 브레이너드는 전적으로 기도에 파묻힌 삶을 살았다.
그는 자기의 기도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온종일 영혼의 평안을 누리며 지냈다.
특별히 저녁 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놀랍도록 새로운 힘을 부어주셨다.
오! 하나님과의 한 시간의 기도가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기쁨을 능가하고도 남는구나!”
브레이너드는 24번째 생일을 맞는 1742년 4월 20일에 그의 기도생활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바로 이때는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때였고 인디언 선교를 시작하려고 하던 때였다.
“나는 이 하루를 금식과 기도로 바치기로 했다. 복음 사역을 위해서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했다. 정오에는 영혼들을 위한 중보 기도로 나의 영혼은 쏟아져 버렸다. 밤이 맞도록 원수와 싸우는 뜨거운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만을 위해 살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소원을 이전에도 이렇게 간절히 가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를 소원하였고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몸을 온전히 불사르기를 소원하였다.”
다른 한 편의 일기는 브레이너드의 생활이 얼마나 뜨거운 기도에 파묻혀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일찍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을 쏟아 부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다만 ‘오! 나의 보배로우신 주님,
오! 나의 보배로우신 주님’ 이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리기만 하였다. … 두 시간 동안 깊은 기도에 빠졌다.
나는 하나님의 가슴에 안기는 것뿐이었다.
하나님께로 향한 갈망이 나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너무나 보배로웠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쾌락이 추하게만 보여졌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조약돌처럼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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