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2)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교회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요나단 에드워즈와 요한 웨슬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윌리암 캐리, 헨리 마틴, 짐 엘리오트 같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가슴을 움직이기도 했다. 무엇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였는가? 기도에 파묻혔던 그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말들과 그의 삶이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었다.
브레이너드는 24세 되던 해인 1742년 여름부터 카우나우믹의 인디언들에게 선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교만을 회개하며 기도했고 자기의 무능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다. “너무도 나의 추악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두시는지, 사람들이 왜 나를 돌로 치지 않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만 했다. 도무지 설교를 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나는 설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몇 사람의 인디언들이 설교를 통해 큰 비통함으로 울부짖었다.”(1742.8.12). “나는 말을 타고 황무지에 있는 카우나우믹에 갔다. 내가 인디언 틈에서 어떤 봉사를 한다거나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 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내 영혼은 진력이 나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다”(1743.4.7). 브레이너드는 25번째 생일을 맞는 날 다음과 같은 기도의 일기를 썼다. “오늘은 금식하며 기도하려고 하루를 작정했다. 나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켜 신령한 은혜 가운데 살고 싶어서였다. 25세의 연륜까지 이른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홀로 숲 속을 거닐며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었다.”(1743.4.20). 그리고 인디언들과 함께 살던 그의 삶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인간적인 처지로 볼 때 외롭게 살고 있다. 내 식사의 대부분은 삶은 옥수수나 옥수수 죽이다. 거처래야 짚 더미 속이다. 내 사역은 어렵고 매우 힘들다. 나를 온전히 위로하여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디언들은 살 땅이 없다. 지금 사는 곳도 독일인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이 강압적으로 빼앗아 버렸다. 그들은 불쌍한 인디언의 삶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날 미워하고 있다. 내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견딜 수 없는 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서 그 얼굴을 감추고 계시다는 일이다.”(1743.5.18).
브레이너드는 26세 되던 1744년 6월에는 뉴욕 장로회로부터 안수를 받고 델라웨어 폭스(Forks of Delaware)의 인디언들에게 파송되어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나는 약한 몸을 이끌고 인디언들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1744.6.24). “불쌍한 인디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의 개종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만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1744.6.26). “불쌍한 인디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함임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고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1744.6.28). 브레이너드는 날마다의 생활을 거의 기도에 파묻혀 보냈다. 새벽에, 저녁에, 밤에 그는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때로는 그를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는 자신의 영적 교만을 자각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 어떤 때는 말을 타고 숲 속을 지나다가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자신을 하나님께 다시 헌신하기도 했다. “오! 주님 당신께 나를 드립니다. 나를 받으시고 영원토록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옵소서!”(1744.7.1). 그의 기도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작년에는 영광의 세계를 사모하며 이 세상을 속히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든 관심은 이방인들의 개종뿐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나는 살기를 원한다.”(1744.7.6).
브레이너드는 그가 27세 되던 1745년 봄에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했다.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 졌고 그의 설교는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폐결핵은 악화되었고, 그의 온 몸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였다. 머리, 얼굴, 치아, 가슴, 등, 그리고 위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도할 기력조차 없었다. “하루 중일 침대에서 지내야만 했다. 기도도 묵상도 독서도 할 수 없었다. 이 적막한 황무지에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 어떤 선한 목적도 갖지 못한 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는 이렇게도 시간이 부담스러운 것일까?”(1745.4.30). 때로 하나님과 끊어진 듯한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선교사로서의 자신의 삶이 완전히 실패하였다고 까지 느끼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새로운 부흥을 체험하게 되었다. 브레이너드가 크로스윜숭의 인디언을 방문했을 때 그의 가슴은 절망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은 그의 영광스런 사역을 시작하셨다. 약함 중에서도 강하게 역사하셨다. 그가 인디언들에게 설교했을 때, 그들의 수는 65명 정도였는데 그들의 얼굴에 뚜렷한 반응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능력이 강한 바람같이 임재하셨다.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 능력에 그는 놀라서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세력은 강한 소나기나 홍수의 물결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다. 모두가 커다란 슬픔에 사로 잡혔다.
“오후에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남녀 노소를 합하여 65명의 가량이 참석했다. 말씀을 전하는 동안 저들 가운데 말씀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임 위에 내리는 듯 하더니 모든 사람을 압도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놀라운 힘에 사로잡힌 듯 했다. 불어난 홍수나 휘몰아치는 격류가 무게와 압력으로 그 앞에 거치는 것들을 휩쓸어 버리는 현상에나 비유할 수 있을까?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 전에 엎드려 졌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린아이들도 술주정뱅이도 모두 눈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하며 울부짖어 기도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자신 이외에는 도무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큰 통곡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인디언 여성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녀는 인디언들 가운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무엇인가 알고 싶어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설교를 얼마간 계속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뼈저린 충격을 받은 것 같더니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일어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부축하여주지 않았다면 앉지도 못할 정도였다. 공적 예배를 마친 다음에도 그녀는 맨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그 기도의 요지가 뼈저리게 사무쳐옴을 느꼈다. ‘구툼마우칼룸메 웨카우메 크렐레 놀라’(‘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당신을 저의 마음 속에 영접하도록 나를 도우소서’) 그녀는 몇 시간이고 끊임없이 줄기차게 기도하고 있었다. 오늘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날이었다.”(1745.8.8). 이와 같은 일을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이튿날 인디언들에게 설교를 했을 때 그들의 가슴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그들의 영혼을 향한 몇 마디 말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흐느끼며 신음하기도 하였다. 브레이너드는 이와 같은 “은혜의 소나기”가 1년 동안 계속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였고 형제의 사랑이 넘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가슴은 기도로 녹아졌다고 기록하였다.
브레이너드가 28세가 되던 1746년 가을부터 그가 죽게 되는 1747년에 이르는 동안 그의 육신은 완전히 쇠약해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피를 토하며 온 몸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 몇 달 동안 선교지를 떠나 노스햄톤에 있는 요나단 에드워즈의 집으로 돌아와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 중에 있었던 마지막 몇 달 동안도 그냥 누워서 지내지 않았다. 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하였고 성경을 읽었으며 일기를 썼다. 그의 기도의 일기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지금 영원의 문턱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대 자신을 기도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읽고 명상하라. 나는 지금 영광을 얻기 위해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천국을 사모하는 것은 모든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이다. 이것만이 나의 부르짖음이요, 탄식이요, 소원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는 것! 그리고 그를 영원토록 기쁘시게 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이다.”(1747.9.27).
브레이너드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약혼녀인 요나단 에드워즈의 딸 제루샤(Jerusha)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나는 그대와 차마 이별할 수 없소.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 영원을 함께 누릴 것이요. 나의 영혼은 오늘 하나님의 품에 고이 안깁니다. 나는 그와 함께 있기를 그렇게도 갈망해 왔었소. 나는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싶소. 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1747.10.2).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기였다. 그는 1747년 10월 9일 2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와 제루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넉 달 가량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딸 제루샤를 저 세상으로 데려가셨다. 닷새 정도의 짧은 병을 앓다가 제루샤는 18살의 나이로 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브리에너드와 매우 흡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죽기까지 19주 동안 계속 그를 돌보면서 함께 지냈다. 그녀는 그를 매우 기쁜 심정으로 보살폈다.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그는 우리에게 그녀의 너무나도 진심 어린 사랑을 흡족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 나라에서 그녀와 만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브레이너드는 헌신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브레이너드에게 주셨던 기도의 삶을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이와 같은 기도로 참된 부흥 운동과 선교의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존 웨슬레는 모든 설교자들이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교회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요나단 에드워즈와 요한 웨슬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윌리암 캐리, 헨리 마틴, 짐 엘리오트 같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가슴을 움직이기도 했다. 무엇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였는가? 기도에 파묻혔던 그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말들과 그의 삶이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었다.
브레이너드는 24세 되던 해인 1742년 여름부터 카우나우믹의 인디언들에게 선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교만을 회개하며 기도했고 자기의 무능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다. “너무도 나의 추악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두시는지, 사람들이 왜 나를 돌로 치지 않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만 했다. 도무지 설교를 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나는 설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몇 사람의 인디언들이 설교를 통해 큰 비통함으로 울부짖었다.”(1742.8.12). “나는 말을 타고 황무지에 있는 카우나우믹에 갔다. 내가 인디언 틈에서 어떤 봉사를 한다거나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 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내 영혼은 진력이 나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다”(1743.4.7). 브레이너드는 25번째 생일을 맞는 날 다음과 같은 기도의 일기를 썼다. “오늘은 금식하며 기도하려고 하루를 작정했다. 나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켜 신령한 은혜 가운데 살고 싶어서였다. 25세의 연륜까지 이른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홀로 숲 속을 거닐며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었다.”(1743.4.20). 그리고 인디언들과 함께 살던 그의 삶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인간적인 처지로 볼 때 외롭게 살고 있다. 내 식사의 대부분은 삶은 옥수수나 옥수수 죽이다. 거처래야 짚 더미 속이다. 내 사역은 어렵고 매우 힘들다. 나를 온전히 위로하여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디언들은 살 땅이 없다. 지금 사는 곳도 독일인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이 강압적으로 빼앗아 버렸다. 그들은 불쌍한 인디언의 삶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날 미워하고 있다. 내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견딜 수 없는 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서 그 얼굴을 감추고 계시다는 일이다.”(1743.5.18).
브레이너드는 26세 되던 1744년 6월에는 뉴욕 장로회로부터 안수를 받고 델라웨어 폭스(Forks of Delaware)의 인디언들에게 파송되어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나는 약한 몸을 이끌고 인디언들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1744.6.24). “불쌍한 인디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의 개종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만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1744.6.26). “불쌍한 인디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함임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고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1744.6.28). 브레이너드는 날마다의 생활을 거의 기도에 파묻혀 보냈다. 새벽에, 저녁에, 밤에 그는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때로는 그를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는 자신의 영적 교만을 자각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 어떤 때는 말을 타고 숲 속을 지나다가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자신을 하나님께 다시 헌신하기도 했다. “오! 주님 당신께 나를 드립니다. 나를 받으시고 영원토록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옵소서!”(1744.7.1). 그의 기도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작년에는 영광의 세계를 사모하며 이 세상을 속히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든 관심은 이방인들의 개종뿐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나는 살기를 원한다.”(1744.7.6).
브레이너드는 그가 27세 되던 1745년 봄에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했다.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 졌고 그의 설교는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폐결핵은 악화되었고, 그의 온 몸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였다. 머리, 얼굴, 치아, 가슴, 등, 그리고 위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도할 기력조차 없었다. “하루 중일 침대에서 지내야만 했다. 기도도 묵상도 독서도 할 수 없었다. 이 적막한 황무지에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 어떤 선한 목적도 갖지 못한 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는 이렇게도 시간이 부담스러운 것일까?”(1745.4.30). 때로 하나님과 끊어진 듯한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선교사로서의 자신의 삶이 완전히 실패하였다고 까지 느끼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새로운 부흥을 체험하게 되었다. 브레이너드가 크로스윜숭의 인디언을 방문했을 때 그의 가슴은 절망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은 그의 영광스런 사역을 시작하셨다. 약함 중에서도 강하게 역사하셨다. 그가 인디언들에게 설교했을 때, 그들의 수는 65명 정도였는데 그들의 얼굴에 뚜렷한 반응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능력이 강한 바람같이 임재하셨다.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 능력에 그는 놀라서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세력은 강한 소나기나 홍수의 물결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다. 모두가 커다란 슬픔에 사로 잡혔다.
“오후에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남녀 노소를 합하여 65명의 가량이 참석했다. 말씀을 전하는 동안 저들 가운데 말씀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임 위에 내리는 듯 하더니 모든 사람을 압도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놀라운 힘에 사로잡힌 듯 했다. 불어난 홍수나 휘몰아치는 격류가 무게와 압력으로 그 앞에 거치는 것들을 휩쓸어 버리는 현상에나 비유할 수 있을까?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 전에 엎드려 졌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린아이들도 술주정뱅이도 모두 눈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하며 울부짖어 기도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자신 이외에는 도무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큰 통곡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인디언 여성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녀는 인디언들 가운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무엇인가 알고 싶어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설교를 얼마간 계속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뼈저린 충격을 받은 것 같더니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일어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부축하여주지 않았다면 앉지도 못할 정도였다. 공적 예배를 마친 다음에도 그녀는 맨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그 기도의 요지가 뼈저리게 사무쳐옴을 느꼈다. ‘구툼마우칼룸메 웨카우메 크렐레 놀라’(‘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당신을 저의 마음 속에 영접하도록 나를 도우소서’) 그녀는 몇 시간이고 끊임없이 줄기차게 기도하고 있었다. 오늘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날이었다.”(1745.8.8). 이와 같은 일을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이튿날 인디언들에게 설교를 했을 때 그들의 가슴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그들의 영혼을 향한 몇 마디 말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흐느끼며 신음하기도 하였다. 브레이너드는 이와 같은 “은혜의 소나기”가 1년 동안 계속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였고 형제의 사랑이 넘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가슴은 기도로 녹아졌다고 기록하였다.
브레이너드가 28세가 되던 1746년 가을부터 그가 죽게 되는 1747년에 이르는 동안 그의 육신은 완전히 쇠약해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피를 토하며 온 몸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 몇 달 동안 선교지를 떠나 노스햄톤에 있는 요나단 에드워즈의 집으로 돌아와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 중에 있었던 마지막 몇 달 동안도 그냥 누워서 지내지 않았다. 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하였고 성경을 읽었으며 일기를 썼다. 그의 기도의 일기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지금 영원의 문턱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대 자신을 기도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읽고 명상하라. 나는 지금 영광을 얻기 위해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천국을 사모하는 것은 모든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이다. 이것만이 나의 부르짖음이요, 탄식이요, 소원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는 것! 그리고 그를 영원토록 기쁘시게 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이다.”(1747.9.27).
브레이너드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약혼녀인 요나단 에드워즈의 딸 제루샤(Jerusha)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나는 그대와 차마 이별할 수 없소.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 영원을 함께 누릴 것이요. 나의 영혼은 오늘 하나님의 품에 고이 안깁니다. 나는 그와 함께 있기를 그렇게도 갈망해 왔었소. 나는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싶소. 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1747.10.2).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기였다. 그는 1747년 10월 9일 2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와 제루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넉 달 가량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딸 제루샤를 저 세상으로 데려가셨다. 닷새 정도의 짧은 병을 앓다가 제루샤는 18살의 나이로 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브리에너드와 매우 흡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죽기까지 19주 동안 계속 그를 돌보면서 함께 지냈다. 그녀는 그를 매우 기쁜 심정으로 보살폈다.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그는 우리에게 그녀의 너무나도 진심 어린 사랑을 흡족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 나라에서 그녀와 만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브레이너드는 헌신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브레이너드에게 주셨던 기도의 삶을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이와 같은 기도로 참된 부흥 운동과 선교의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존 웨슬레는 모든 설교자들이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대한민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글쓴이 : 오늘도기쁘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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