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숨결’을 찾아서 <中> 십자가의 길 [중앙일보]
“나 아닌 너 위해 울어라” 예수의 메아리
예수 쓰러지고 숨진 곳에 교회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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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숨을 거두고, 다시 살아난 장소에 세워진 성묘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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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였다. 그리 멀지 않았다. 예수의 어깨에 처음 십자가가 얹힌 곳, 거기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진 800m에 불과했다. 건장한 젊은이라면 한 달음에라도 달려갈 거리였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득했다.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 이 세 단어가 그 길에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과 슬픔으로 범벅된 인간의 삶. 그 삶에 위안의 선율, 치유의 노래를 실으며 지금도 울어대고 있었다. 바로 예수가 비틀대며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지난달 20일 그 길에 섰다. 이스라엘 현지인들은 그곳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불렀다. ‘슬픔의 길(혹은 ‘십자가의 길’이라 부름)’이란 뜻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그 골목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양옆으로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장을 보러 나온 무슬림 인파로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다.
그 골목을 헤치고 ‘예수의 걸음’을 찾았다. 어디쯤일까. 어디서 예수는 사형 선고를 받고, 저 너머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멘채 걸었을까. 시장을 통과해 좁은 골목을 돌자 그 첫 장소가 나타났다. 바로 예수가 재판을 받았던 ‘빌라도 법정’이었다.
이곳에서 예수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유대인들은 몇 번이나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며 빌라도 총독에게 외쳤다. 예수에게 그곳은 ‘외로운 자리’였다. 주위에는 그를 따르던 제자도 거의 없었다. 멀리 서서 따라왔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때 새벽을 알리며 닭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슬피 울었다’(마태복음 26장75절)고 한다. 그는 통곡하며, 피 같은 울음을 토했을 것이다.
빌라도 법정의 정문 앞 계단에 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의 하루, 우리의 하루가 보였다. 비단 베드로뿐이었을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 앞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예수를 부인한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의 부인과 닭울음 소리, 그리고 통곡은 ‘또 하나의 길’이었다. 우리를 예수의 가르침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하는 ‘통곡의 통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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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메고 가던 예수가 처음으로
쓰러진 장소에는 작은 폴란드 교회가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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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맞은편 빌라도 총독의 관저에서 십자가를 멨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십자가의 무게가 70㎏ 정도였다고 한다. 성인 남자의 몸무게와 맞먹는다.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제자들은 “깨어있어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도 감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했다. 그때 체포된 후 예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게다가 모진 매질과 고문까지 당했다. 그리고 죽음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 십자가를 멘 예수의 ‘한 발짝’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웠을까.
결국 예수는 100m도 못 가서 쓰러지고 말았다. 총독 관저에서 내려오다 왼쪽으로 꺾이는 모퉁이. 거기서 예수는 십자가를 멘 채 처음으로 쓰러졌다. 바닥에는 지금도 큼직한 돌들이 깔려 있었다. 로마 시대에 만든 도로였다. 그 위로 예수의 십자가가 ‘쿵!’하고 떨어졌을 거다. 당시 얼마나 많은 구경꾼이 몰렸을까. 어떤 이는 예수를 조롱하고, 또 어떤 이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지금 그곳에는 작은 폴란드 교회가 서 있었다. 건물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멘 채 쓰러진 모습이 조각돼 있었다. 외국인 순례객들은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그 앞에 섰다. 예수와 십자가, 십자가와 예수. 그 둘이 번갈아가며 가슴을 때렸다.
십자가를 멘 채 예수는 두 번이나 더 쓰러졌다. 그런 장소마다 작은 예배당이 세워져 있었다. 당시 비틀거리는 예수 뒤에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따라왔다. 그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예수는 제 몸조차 가누지 못했을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말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마라.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를 위해 울어라.(Women of Jerusalem! Don’t cry for me, but for yourselves and your children. 누가복음 23장28절)”
힘겨운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저 어디쯤이었을까. 여자들의 울음 위로 예수의 가르침이 흘렀던 곳이 말이다. 예수는 멈추지 않았다. 무릎이 꺾이고, 고개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메시지’를 멈추지 않았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을 위해 울어라.” 무슨 뜻일까.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감겨오는 ‘메시지’는 달랐다. 그건 단순한 ‘예언’이나 ‘경고’가 아니었다. 그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을 위해 울어라.” 그건 예수가 건네는 ‘열쇠’였다.
예수는 이미 말했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거함’이란 뭘까. 교회 예배당에 앉아있는 순간이 ‘거함’일까. 아니면 성경을 손에 잡는 순간이 ‘거함’일까. 거함의 순간은 하나다. 회개를 통해 ‘에고’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나’는 무너지고, ‘예수’만 남는 순간이다.
그럼 예수는 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고 했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이렇게 기도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것이 ‘울음’이다. 하나님(하느님)을 위해 운 것이 아니라, 예수가 자신을 위해 운 것이다. 그런 울음의 순간에 ‘내 뜻’이 무너지고, ‘에고’가 무너진다. 그렇게 에고가 무너져내릴 때 온전한 ‘거함’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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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시신을 염했다고 전해지는 성묘교회 안 바윗돌에 순례객들이
두 손을 올린 채 기도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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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놀라웠다. 십자가를 메고 한 발짝도 떼기 힘든 처참한 상황에서도 예수는 사람들에게 ‘열쇠’를 던졌던 것이다. 그게 바로 ‘예수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숨결이 십자가의 길, 그 골목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순례객의 눈에선 눈물이 ‘핑’ 돌았다. 골목을 돌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애잔한 흔적은 이뿐만 아니었다. 십자가의 길, 곳곳에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서서 아들을 기다렸다는 장소에도 섰다. 머리에는 가시관, 채찍질로 피범벅이 된 몸,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 아래서 죽음을 향해 발을 떼는 자식을 지켜보던 마리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계속 올랐다. 마침내 골고다 언덕이 나타났다. ‘골고다(Golgotha)’는 ‘해골 터’라는 뜻이다. 예수 당시에는 공동묘지였다. 그래서 십자가 처형이 거기서 집행됐다. 그곳에 ‘성묘교회(거룩한 무덤 교회)’가 서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고, 다시 살아난 장소 위에 지어진 교회다. 그래서 ‘기독교 최대의 성지’라고 불린다.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편에 예수를 눕혀서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장소가 있었다. 4∼5m쯤 옆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둔 곳이었다. 성경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게 ‘아침 9시’(마가복음 15장25절)라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오후 3시’(마태복음 27장45절)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예수는 무려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햇볕은 무척 따갑다. 그냥 서 있기도 힘겹다. 예수는 그 볕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는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로 시작하는 시편 22편의 구절을 읊기도 했고, 십자가 아래에 있던 어머니 마리아와 말을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러다 예수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누가복음 23장46절)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예수가 숨을 거둔 자리에 섰다.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외침’을 되뇌었다. ‘나의 영과 나의 혼, 그걸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순례객들은 눈을 감았다. 그건 ‘외침’ 이전에 ‘기도’였다.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영혼까지 던지는 ‘예수의 기도’였다. 눈곱만큼의 ‘에고’도 끼어들 틈이 없는 ‘온전한 기도’였다.
계단을 내려왔다. 교회 아래층에는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는 평평한 바윗돌과 시신을 두었다는 동굴 무덤이 있었다. 동굴 무덤을 보기 위한 순례객들의 줄은 아주 길었다.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예수가 묻힌 곳은 과연 어디일까. 예수가 묻힌 곳은 진정 어디일까.
그건 동굴 무덤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심장, 우리의 가슴이었다. 그곳에 예수가 묻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뭘까. 어떤 노래와 어떤 울음, 또 어떤 기도가 ‘예수’를 살아나게 할까. 그 ‘열쇠’가 십자가의 길, 처음부터 끝까지 깔려 있었다.
예루살렘 글·사진=백성호 기자
예수의 숨결’을 찾아서 <下> 광야와 갈릴리 호수 [중앙일보]
악마 물리친 광야는 ‘부활의 통로’
“그분만 섬겨라” 외친 시험산에 수도원
‘산상설교’ 현장 아래엔 호수가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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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광야의 시험산. 산 중턱에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왼쪽 흰 건물)이 있고, 예수가 악마의 유혹을 받은 곳은 오른편의 산 꼭대기라고 한다. 그곳에 높은 담이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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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 말의 무게는 묵직하다. 성경에서 ‘광야’는 ‘신을 만나는 장소’로 통한다. 모세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고, 초기 기독교의 사막 교부(수도사)들도 그랬다. 사도 바울도 ‘예수’를 체험한 뒤 역사적 기록에서 3년간 사라졌다. 기독교에선 “바울이 3년간 광야로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 광야는 대체 어떤 곳일까.
#예수의 광야, 우리의 광야
지난달 21일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동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자 광야가 나타났다. 첫 인상은 ‘삭막함’이었다. 산성화한 언덕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생명’은 느껴지지 않았다. 푸석푸석한 메마름과 절대적인 황량함만 건조한 능선을 달렸다. “아하, 여기가 광야구나” “예수가 걸었던 광야가 이런 풍경이구나” 싶었다.
그때 가이드가 흥미로운 설명을 던졌다. “요즘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선 ‘광야 트래킹’이 유행이죠. 거친 자연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는 거죠.” 2000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나’의 한계를 아는 곳, ‘나’라는 존재의 무기력함을 절절히 깨닫는 곳. 그게 ‘광야’라는 공간이었을 거다.
예수는 거기서 40일간 밤낮으로 단식을 했다. 그 끝에 ‘악마’를 만났다고 한다. 악마는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나라를 주겠다”(마태복음 4장1∼11절)며 배고픈 예수를 꼬셨다. 그건 배를 채우고, 이적을 행하고, 명예를 좇고,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한 강렬한 유혹이었을 터다.
그 광야에 서서 눈을 감았다. ‘광야’는 이스라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단한 우리의 하루, 지지고 볶는 우리의 일상. 그게 바로 ‘광야’였다. 선악과의 후예인 ‘내 안’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악마’가 올라온다. 빵을 쌓고, 명예를 쌓고, 권력을 쌓으라는 유혹이 때로는 살가운 가을 바람처럼, 또 때로는 집채만한 파도처럼 넘실댄다. 예수는 그 유혹 앞에서 ‘나’를 빼버렸다. 유혹의 씨앗이 자랄 수 없도록 ‘자아’라는 밭을 아예 빼버린 것이다. 그리고 외쳤다. “하나님(하느님),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물러갔다고 한다.(마태복음 4장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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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바라본 주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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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만을 섬겨라.” 무슨 뜻일까. 흔히 생각하듯이 이슬람교를 믿지 말고, 유대교를 믿지 말고, 불교를 믿지 말고, 기독교만 믿으라는 뜻일까.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그렇게 얕지 않다. 그의 소리는 깊고, 그 울림도 크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럼 뭘까. 주를 섬기지 않을 때 우리는 대체 누구를 섬기나.
그랬다. 그건 바로 ‘나’였다. ‘나’라는 자아, ‘나’라는 에고였다. 우리는 매순간 나를 섬기고, 나를 키우고, 또 나를 섬기고, 또 나를 키운다. 그래서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가 다시 가슴을 타고 흘렀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광야를 가로질러 ‘여리고’란 옛 도시에 도착했다. 거기서 ‘시험산’이 보였다. 꼭대기에서 예수가 40일간 단식하고, 악마의 시험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광야의 산이다. 산 중턱에는 수도원도 있었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사들이 지금도 그곳에서 ‘예수’를 찾고 있었다.
광야를 처음 봤을 땐 ‘생명이 없구나’ 싶었다. ‘죽음’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곳에 진정한 죽음이 있었고, 그래서 진정한 생명이 있었다. 그러니 광야는 ‘부활의 통로’였다.
#갈릴리 호수와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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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숫가 산언덕, 예수가 산상수훈을 했다는 장소에 팔복교회가 서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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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이스라엘 북부로 향했다. 바깥 풍경은 여전히 팍팍했다. 그런데 북쪽으로 갈수록 차창 밖에 ‘푸른 풍경’이 늘었다. 갈릴리 호수가 가까워진다는 얘기였다. 서너 시간을 달리자 호수에 도착했다. 갈릴리 호수는 굉장히 컸다. 지름이 동서로 14㎞, 남북으로 21㎞였다.
2000년 전, 예수도 갈릴리 호수를 거닐었다. 거기서 병들고, 고통받고, 소외당한 이들을 만났다. 예수는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갔다. 그리고 ‘산상설교’를 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10절)
예수는 줄기차게 ‘마음’과 ‘가난’을 말했다. 가난한 마음, 그건 ‘열쇠’였다. 진리(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그럼 뭘까. ‘가난한 마음’이란 대체 어떤 풍경일까. 그곳에는 무엇이 있고, 또 무엇이 없는 걸까. 순례객들은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랬다. 우리의 마음은 ‘움켜쥠의 덩어리’였다. 그 수많은 ‘움켜쥠’이 똘똘 뭉친 게 바로 ‘나’였다. 그러니 우리는 늘 ‘부자’였다. 그런데 예수는 말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게 더 쉽다.”(마가복음 10장25절) 그럼 뭘까. 바늘귀를 통과하는 ‘비밀번호’는 대체 뭘까. 예수는 그게 ‘가난한 마음, 깨끗한 마음’이라고 했다. 내안의 움켜쥠을 하나씩 풀 때마다 마음은 가난해진다. 그런 움켜쥠을 내려놓을 때, 마음은 깨끗해진다. 그렇게 가난하고, 가난하고, 가난해질수록 바늘귀는 커지고, 커지고, 커진다.
그 산에 올랐다. 예수가 ‘산상설교’를 했다는 자리에 교회가 서 있었다. ‘팔복교회(The Church of the Beatitudes)’였다. 비스듬한 언덕에 노란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저 아래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하, 산상설교의 현장이 이랬구나’ 싶었다. 가이드가 말했다. “낮에는 대지가 쉽게 뜨거워지죠. 그럼 호수에서 산 쪽으로 바람이 붑니다. 예수님은 언덕 아래쪽에 있었고, 사람들은 계단처럼 위쪽으로 앉았던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말을 하면 바람을 타고 저 위에 앉은 사람에게도 들렸던 겁니다. 마이크가 없어도 말입니다. 지금도 실험이 가능합니다.”
그 언덕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씻었을 터다. 가난함과 온유함, 자비로움과 깨끗함의 소낙비에 흠뻑 젖어서 말이다. 그리고 위로를 받고, 자비를 입고, 하늘나라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갈릴리 호수의 파릇파릇한 풍경과 예수의 산상수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중주’였다.
예수는 그 근처에서 ‘빵과 물고기’를 나누었다.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 성경에는 그걸 5000명이 넘는 군중이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래서 ‘오병이어(五餠二魚)’는 대표적인 ‘예수의 기적’으로 꼽힌다. 그런데 궁금했다. 예수는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달라 하는가(마가복음 8장12절)”라고 꾸짖은 적도 있다. 그럼 뭘까. 그가 진정으로 보이고자 했던 건 뭘까. 그게 과연 ‘다섯 개의 빵이 수천 개의 빵으로 불어나는 마술 같은 장면’이었을까.
아니지 싶었다. 예수가 보이려 한 건 그런 ‘평면적인 장면’이 아니지 싶었다. 5000명의 군중을 앞에 두고 예수는 제자에게 물었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제자들은 답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는 그 빵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그 장면이 선했다. 5000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다섯 개의 빵을 떼는 예수의 모습. 사람들은 거기서 뭘 보았을까. 그건 예수의 마음, 예수의 사랑이었다. 어떤 이들은 “‘오병이어’일화는 온전한 예수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빵과 물고기를 나누는 예수의 마음이 군중에게 ‘전염’됐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가져온 보따리에서 먹을 것을 꺼냈던 거다. 그리고 그걸 주위 사람과 나누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빵과 물고기는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마태복음 14장20절)고 기록돼 있다.
갈릴리 호숫가를 거닐며 생각했다. 가능할까. ‘우리의 일상’에서도 가능할까. 내 손에 있는 건 불과 다섯 개의 빵. 그걸 5000명의 이웃을 향해 건넬 수 있을까. 그런 ‘예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자 ‘오병이어’는 ‘기적 일화’에 머물지 않았다.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메시지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가 순례객의 가슴에서 ‘삐걱’대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호숫가에 바람이 불었다. 물결이 일고, 새가 날았다. ‘2000년 전에도 그랬겠지.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고, 새가 날았겠지.’ 예수가 걸었던 발자국, 그 곁에서 말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2008.10.09 08:47 갈릴리(이스라엘) 글·사진=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