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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팻, 리빙스턴 & 아프리카 선교기지 쿠루만 (2)

영국신사77 2008. 10. 4. 10:02

Moffat,

 

Livingstone,

Kuruman

 
 

모팻, 리빙스턴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기지 쿠루만

                           [Moffat, Livingstone, & Kuruman]

                                                                                                              정양운 전문인선교사

 

 방학을 맞아 가능하면 지역과 종족 리서치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하다가, 이번에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모팻(Robert Moffat 1795-1883)이

선교기지로 개척했고,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그의 사위 데이비드 리빙스턴(Dr. David LIVINGSTONE

1813-1873)등이 2년 이상 머물며, 내륙 깊숙이 탐험을 시도하게 된 쿠루만을 리서치하기로 했다. 로버트 모펫은 53년 동안 South Africa 선교사로 사역한 Missionary Hero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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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관계 자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정구역은 9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2) 남아공 노던 케이프 Northern Cape의 주요 관광지

                    ■ 리흐터스펠트 국립공원(Richtersveld National Park)

 1991년 조성된 리흐터스펠트 국립공원은 나마콰랜드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풍경은 거칠고 완고한 느낌을 줍니다.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지역들은 해골 골짜기(Skeleton Gorge), 악마의 이빨(Devil’s Tooth), 지옥의 골짜기(Helskloof) 등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은 매력적인 나마(Nama)인들의 고향으로 이들은 주로 양이나 염소를 사육하면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리흐터스펠트는 오프로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나 자연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지역이다.

■ 칼라가디 초국경 공원(Kgalagadi Transfrontier Park)
칼라하리 겜복 국립공원은 보츠와나에 있는 겜복 국립공원과 통합하여 관리되는 아프리카 최초의 초국경 공원이다. 이 공원은 남아공 최대의 자연 보호지역으로 세계 최대의 자연 생태계 보존 지역에 해당한다. 공원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지 않아 여러 동물들이 남아공과 보츠와나 사이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고 2백만 헥타르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 아흐그라비스 폭포 국립공원(Augrabies Falls National Park)
남아공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야생동물 보호공원으로 오렌지강 유역에 있는데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아흐그라비스 폭포가 굉음을 내며 화강암 계곡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이곳에서는 래프팅, 하이킹, 사이클링, 카누 등의 야외 활동도 즐길 수 있다.

■ 다이아몬드 광산
킴벌리의 킴벌리광산박물관은 빅홀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유서깊은 건축물 등으로 유명하다. 옛 시절의 상점과 술집, 식당, 교회, 은행 등 초기 다이아몬드 광업이 성행하던 시절과 똑같이 재현되어 있다.'살아있는 박물관’ 으로 유명한 이곳은 바니 바르나토와 세실 존 로즈가 다스리던 시절 거리에 다이아몬드가 발에 채였다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 킴벌리의 빅홀(Big Hole)
빅홀은 광부들이 곡괭이와 삽을 이용해 지하 240미터 정도까지 파내려간 직경 5백 미터의 거대한 구덩이이다. 인간의 힘으로만 만든 세계 최대의 구덩이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 호화 열차와 트램
주도 킴벌리의 기차역은 도심에서 가까운 플로렌스 스트리트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화 열차 ‘블루트레인’은 케이프타운과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루트 중에 킴벌리에 정차하는데 고풍스러운 킴벌리 기차역을 이용한다. 킴벌리의 명물로 자리잡은 전차 ‘트램’은 20세기 초의 구식 전차로 시청에서 광산 박물관까지 관광객을 나른다.

                       ■ 모팻 선교 기지(Moffat Mission Station)
로버트 모팻과 그의 아내 매리는 선교사로 1820년 쿠루만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 지역 사람들을 기독교도로 개종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왔으며, 모팻은 처음으로 토착민의 언어인 츠와나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모팻 부부는 이곳에 선교 지부를 설립했는데, 현재는 교육 기관과 휴양소로 사용되고 있다.

■ 본더벌크 동굴(Wonderwerk Cave)
쿠루만(Kuruman) 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본더벌크 동굴은 고고학자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약 1백만 년전 인류 생활의 본거지였다. 이 지역에서는 중요한 유물과 화석, 샌(San)족의 벽화 등이 발견되었다.

■ 칼라하리(The Kalahari)
칼라하리에는 광활한 아프리카 하늘과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건조한 황무지의 `칼라하리’라는 이름은 샌(San)족의 언어로 ‘목마른 땅’이란 뜻이다.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칼라하리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식물군과 동물군을 찾아볼 수 있다.

■ 작은 마을의 즐거움
노던케이프 주 곳곳의 작은 마을들은 예술적인 분위기로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니우부트빌Nieuwoudtville), 칼비니아(Calvinia), 포파더(Poffadder), 스프링복(Springbok) 같은 곳은 꼭 가볼 만한 곳으로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곳을 더욱 끌리게 한다.

■ 오렌지강(Orange River) 모험 여행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은 오렌지강을 카누로 내려가는 것도 신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맑은 물에서 하는 레프팅은 아니지만 오렌지강은 빠르고 거친 물살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데에 2일에서 6일까지 소요되는데 경험 많은 지도자들이 안내해준다.

■ 펠라 선교소(Pella Mission)
펠라 선교소는 허허벌판에 홀로 우뚝 서 있다. 스프링복에서 150km 떨어진 펠라에는 눈에 띠는 밝은 노란색 건물의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은 1880년대말 프랑스 선교사들이 지었다.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사용하고 있고 이 성당은 이 지역 종교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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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중반 남부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케이프지역(CAPE COLONY)은 매우 큰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SOUTH AFRICA는 9개의 주(州, PROVINCE) 나뉘어 있는데, 절반 정도의 땅이 케이프타운을 주 중심으로 한 웨스턴 케이프(WESTERN CAPE), 포트 엘리자베스, 이스트 런던 등이 위치한 이스턴 케이프(Eastern Cape), 케이프타운과 남미비아 사이의 NAMAQUA LAND(Little NAMAQUA land), 그리고 이번에 가게 된 업핑턴(Upington)을 중심으로 한 노던 케이프(Northern Cape) 등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해안을 중심으로 선교캠프가 발달 되어 있을 때, 선교사들 간에 다툼과 질시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알 수 있고, 때문에 내지선교로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 된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중국 내지선교회(CIM), 수단 오지선교회(SIM), 아프리카 내지선교회(AIM) 이 생겨, 선교의 전략과 접근방법의 한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모펫은 이들을 뒤로하고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데, 케이프타운에서부터 호텐토트(케이프거주 원주민, 혹은 khoi khoi. 그러나 백인들에게 밀려 내륙으로 이동 함)부족이 사는 NAMAQUA LAND (케이프타운에서 북쪽방향으로 이 지역은 현재 사라져가는 종족 중에 있는 BUSH족이 주로 거주/미비아와 남아공 그리고 보츠와나 국경지역에 주로 분포)에서 잠시 지낸 후 GRIQUA LAND(남아공의 종족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백인과 이들 원주민 부족간의 혼혈족은 말을 타고 다니며 강도질이나 도둑질을 일삼는데 heroes, coloureds, Hottentots, blacks, giants로 백인들은 때때로 종으로 부리기도 했으며 오렌지강을 따라 킴벌리와 ORANGE FREE STATE까지 진출, 그리콰랜드는 이들의 주요 거주지 임) 중심도시인 GRIQUA TOWN (UPINGTON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그곳에서 리빙스턴의 부인이 된 모펫의 장녀 MARRY Moffat Jr. 출생)에서 약 9개월을  지낸 후, 칼라하리 사막 지역의 Bechuana Land( 보츠와나) Kuruman (UPINGTON에서 동북방향 약 250KM)에서 SOUTH AFRICA 선교사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역을 한다.

     

      또한 그는 자녀교육 때문에 Grahamstown까지 여행을 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직접 번역한 천로역정, 찬송가와 원주민 언어 성경인쇄를 위해, 인쇄기를 배로 케이프타운에서 Algoa Bay(현 PORT ELIZABETH )까지 운반, 그곳에서 육로로(COW WAGON, 우마차) 쿠루만까지 운반하기도 했다. Bethelsdorp (현 PORT ELIZABETH 외곽) 에서 가끔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거나, 신임선교사를 만나는 장소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펫이 쿠루만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한 후, 영국을 방문해서 여러 곳을 돌며 강연과 설교를 하면서 아프리카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

        “아침에 태양이 솟아오를 때 선교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수천 개의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라고 역설을 할 그때, 중국 선교를 꿈꾸며 준비하던 리빙스턴이  중국과 영국간의 아편전쟁의 발발로 다른 선교지 모색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리빙스턴은 모펫을 만나게 되어 아프리카 선교를 결심하게 된다.

     

      Kuruman에 도착한 리빙스턴은 수 천 개의 마을은 없고 몇 채 안 되는 원주민 마을들, 그것도 띄엄띄엄 있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하는데,(필자가 확인하기는 모팻의 선교기지에서 북쪽으로 보면 멀리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쿠루만강이 흐르는데, 강줄기를 따라 마을들이 있었으며 아마 추측하기는 아침에 집집마다 음식 준비하는 모습이었을 것임) 2년 반 정도를 같이 사역을 하면서 계속 북쪽지역을 탐험하여, 쿠루만과 같은 베이스캠프 정착지를 찾으면서 사역지를 넓혀 나간다. 그 이면에는 동료선교사와의 심각한 갈등이 다른 사역지를 개척하게 하는 요인이었음을 발견한다.

     

     그는 남아프리카(South Africa), 보츠와나(Botswana), 잠비아(Zambia), 자니아(Tanzania), 말라위(Malawi), 앙골라(Angola), 잠비크(Mozambique)등을 광범위하게 탐험했으며, 특히 잠베지 강을 따라 동쪽으로는 모잠비크의 ?리마네까지, 서쪽으로는 앙골라의 루안다까지 탐험하였다.

     

               선교와 무역을 위하여 무역선이 내륙으로 들어 올 수 있는 뱃길의 필요성 절감

     

     그것은 그의 사역의 포인트를 선교와 무역두었기 때문이며, 당시만 해도 노예사냥꾼들이 도처에 있었고, 종족 간에 싸움이 일어나 포로를 잡게 되면 역시 노예상들에게 팔아버리는 것을 보고, 리빙스턴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역선이 내륙으로 들어 올 수 있는 뱃길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어, 강을 따라 탐험을 한 것이다.

     

     모펫의 선교초점이 “선교와 경작(농업)”이라면, 리빙스턴은 “선교와 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아내를 비롯하여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 지 5일째 되는 날 아침6시, 우리는 UPINGTON을 뒤로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Kuruman을 향해 출발했다. 역시 주변 풍경은 다른 내륙과 별 차이 없이 비가오지 않은 대지에 듬성듬성 누렇게 말라버린 풀들, 가끔 나타나는 야트막한 언덕, 전주 위에 지은 거대한 새집들, 반듯한 도로는 약간 오르막이 있거나 내리막이 있는 그런 길을 따가운 아침햇살을 안고 시속 120km로 달린다.

     

     10시 정도에 Kuruman입구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보충하면서 Moffat church 가 어디냐고 물으니 주유원이 친절히 가르쳐 준다. 시내에서 약 5km정도 북쪽 내륙으로 더 들어가서 "Kuruman Moffat Mission"이라는 안내판을 발견한다.

     

     

                                       ball_green.gif

     

                                  Kuruman Moffat Mission  

        14 ha에  그의 집이 있고, 교회와 그리고 가까이에 리빙스턴이 거처했던 방, 건너편에 해밀턴

       선교사 숙소와 최초로 새웠던 교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reception으로 사용하는 4채의 건물

      이 있다.

       

        그의 집 내부에는 모펫의 사역에 관해서 전시되어 있고 당시 사용했던 의자들, 책장 안에는

      오래된 책과 조금 옆 작은 탁자에는 방명록이 있으며, 주방으로 사용했던 공간, 통나무를 깎아

      트러스를 만든 집은 돌멩이와 세멘을 이용해 지어서 튼튼해 보이며, 아프리카 전통의 야생풀로

      이은 지붕은 우리나라의 초가 지붕과 흡사하다. 메리가 사용했던 주방은 벽난로 비슷한 곳에

      불을 지펴서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있었다.

       

                                          메리의 정원   

        맞은편에는 조그만 수로(水路)가 가로질러 가고, 그 수로와 정원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장치가

       달려 있어서, 정원사로 일했던 그의 주특기를 살려 섬세하게 만든 흔적이 엿보인다. 지금은

      관리를 하지 않아 잡풀이 우거진 곳에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어 그들의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

       

       좀더 돌아가면, 불에 타서 죽은 듯한 밑동만 조금 남은 검은 Almond Tree에 “Livingstone

      Tree”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다.  리빙스턴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원주민들과 사자사냥을

      하러 다니곤 했는데, 그때 리빙스턴이 사자의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당했다. 그때 모펫의

      큰딸 메리(그녀의 어머니 이름과 동일)가 리빙스턴을 간호해 주었고, 그는 그 나무 밑에서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그녀가 당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리빙스턴의 청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듯하였으나,

      그러나 얼마 뒤 이들은 이곳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Hamilton house    

        모펫의 집에서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집이 나오는데, 이곳 Robert Hamilton의 집

      이다.

       

        그는 모펫보다 4년 먼저 Kuruman에 도착하여 오렌지 강을 넘어 정착한 첫 번째 백인 선교사로,

      다재다능 하여 목수일이나 여러 가지들을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벽 두께가 45cm정도로 매우

      튼튼한 집을 지었는데, Northern Cape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며, 한때 리빙스턴이 거주

      하기도 했다.

       

                                          First school room   

        해밀턴의 집 뒤로 돌아가면, 원주민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은 아담한 건물이 나온다.

      역시 오렌지 강 북쪽에서 첫 번째 학교이다. 안내 글에는 1829년에 Joseph Arends라는

      도망 나온 종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라는 내용인데, 내부에는 과거의 흔적은 별로 없고 오래된

      인쇄기와 함께 정치적인 내용에서부터 성경기록의 역사 등을 게시판 형식으로 전시해

      놓았다.

       

        밖에는 당시 사용하던 책상인 듯한 것들이 방치되어 있었고, 조금 옆에는 모펫의 동상

      태어난 해와 죽은 년도가 새겨져 있는데, 그 아래 안내판에는 “1795년에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820년 25살 되는 해에 Kuruman으로 와서 1870년에 은퇴한 후, 1887년 런던에서

      죽었다”라고 간단하게 적혀있다.

       

        50년을 이곳 Kuruman에서 선교사역을 한 후,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 이곳 저곳을

      돌며 선교에 동참을 호소하며 다녔다고 한다.

       

                                           Moffat church    

        800석 규모의 T자 형태로 지어진 이교회는, 1829년에 시작을 해서 1838년에 완공이

      되었다. 선교사역을 시작한지 9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고, 약 10년에 걸려 완공한

      셈이다.

       

       바닥은 소똥을 붉은 진흙에 이겨서 정성스럽게 발라, 아직까지도 원형이 보존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건축자재나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건물구조이다. 돌 벽돌로 구성

      된 벽과 소똥 바닥, 그리고 통나무를 깎아 만든 트러스들, 야생풀로 덮은 지붕, 지금은 돌과 돌

      사이에 세멘을 발라 튼튼하게 복구를 해 놓았지만, 처음에는 돌과 돌 사이를 흙으로 쌓았고,

      벽을 세운 후 7년여를 기다리며 트러스로 사용할 큰 나무들이 준비되길 기다렸다.

       

       서까래로 사용할 나무를 마타벨레 추장으로부터 선물 받아, 약 400km 정도를 우마차를 이용

      해 싣고 오기도 했다. T자의 중앙 삼각점 부분에 강대상이 돌로 만들어져 있고, 한쪽 벽에는

      검은 돌에 런던선교회(LMS/ London Missionary Society)에서 Kuruman으로 파송한 역대 선교사 명단과 함께, 사역기간이 새겨져 있는데, 약150년에 걸쳐 30명의 선교사를 Kuruman 지역에 파송을 했고, 1981년

      까지 선교사가 사역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름, 리빙스턴과 모펫의

      아들 존(John Smith Moffat) 그곳에 있다.

       

        이 기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선교 100주년을 넘긴 우리나라는, 이런 역사적인

      안목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며 노력해야함을 시사한다.

       

       교회가 지어지는 동안에, 주변에 다른 건물들도 건축을 한듯하다. 1960년대에는 아파테이트

      정책으로 교회가 문을 닫기도 했으며, 지금은 공식 주일예배는 드려지지 않으며, 가끔 결혼식

      이나 단체 모임이 있을 때 유료로 빌려 준다.

       

                                         Livingstone Room   

        교회를 돌아 내려가면 모펫의 집 뒤쪽에 작은 별채가 하나 있고, 방의 크기는 대략 3평이

      채 안 되는 듯한 리빙스턴의 방이 나온다. 신임 선교사 리빙스턴이 이 방에서 기거를 했으며,

      중부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도 가끔 이곳을 들러 이방에 머물곤 했다.

       

       벽에는 리빙스턴의 가족사진, 신문기사와 그가 생전에 탐험했던 지역의 지도들, 빅토리아

      폭포의 스케치, 그리고 그가 죽은 후 그를 사랑하는 흑인들이 그의 심장을 꺼내 묻었다는

      치탐보 나무의 진,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짝 말려서 접어 �리마네(어떤 기록은 잔지바로 되어 있음)

      영국군 기지까지 9개월 동안 운반한 수지(suzi)와 추미(chumi) 얼굴도 있다. 국장으로 거행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리빙스턴의 관과 안내 팸플릿 사진도 있다.

       

       한쪽 벽에는 자전거를 옆에 두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은 두 젊은 남녀있는데, 이들은

      약 5개월간 영국에서부터 리빙스턴의 탐험로를 자전거로 일주하면서 이곳에 들러 사진을

      찍었단다.

       

       리빙스턴의 죽음과 함께 아프리카에서의 노예무역은 사실상 끝나게 된다.

       

        모펫이 은퇴하고 영국으로 돌아간 3년 후에, 리빙스턴의 시체가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침에 태양이 솟아 오를 때, 선교사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수천 개의 마을”의 비전을 따라

       왔던 리빙스턴, 은퇴한 노 선교사가 자신의 선교전선에 뛰어들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위이자 후배 선교사 리빙스턴의 관을 보며,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며, 우리

      일행은 최근에 지은 듯 한 컨퍼런스 장소로 발길을 옮긴다.

       

                                     Conference hall    

       현대식 건물에 도서관까지 갖추고, 소그룹 룸과 야외 부라이 시설까지 부족한 것이 없이

      잘 갖추어져 있다. 관리인이 거주하면서 시설관리를 하고 있으며, 게시판에는 시설 사용료

       대한 안내지가 붙어 있다.

       

       입구로 돌아 나오는데 몇몇 방문객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념촬영을

      하고 시내로 나와 information 센터에 들러, 다음 여행지인 Griquatown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서둘러 출발을 했다.

       

                            Marry Moffat Museum, Griquatown    

        쿠루만에서 postmasburg까지 약 150km로 비교적 도로 상태는 좋은 편이며, 지나는 자동차

      역시 아주 가끔 만나는 정도이다. postmasburg에 도착했으나 Griquatown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시내를 한 바퀴 돌았으나, 도로 표지판도 없고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지나는 백인에게

      지도를 들고 길을 물으니 아프리칸스어로 뭐라고 하는데 친절히 칸보이를 해준다.

       

       동네를 빠져 나와 비포장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그들은 되돌아가고, 덜텅거리는 자동차와

      여러가지 소음은 칼라하리의 비포장을 생각하게 하며 조바심이 났다. Griquatown까지

      65km이상을 가야하는데, 넉넉잡아도 1시간 이상을 가야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당겨보려고

      속도를 냈다. 우리는 차가 몇 대나 마주치나 맞히기를 하며 가는데, 순식간에 차가 자갈길에

      미끄러지면서 지그재그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고 만다. 왼쪽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

      가시나무를 치면서 다시 철조망을 돌아 나오면서 겨우 멈춘다. 시동을 걸어보니 다행히

      시동이 걸린다. 바퀴에 걸린 철조망을 끊고서 차는 도로로 다시 나왔으나, 유리창은

      가시나무에 부딪히면서 금이 가고 앞뒤 범퍼와 왼쪽 뒤 패널이 찌그러졌다. 그러나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하며, 다시 한 번 조심운전을 다짐하면서

       Griquatown에 도착하였다.

       

        너무 기대를 했던 때문인지, 아니면 사고의 후유증인지 알 수 없으나, 메리 모펫의 박물관의

      첫인상은 실망이다. 허름하고 조그만 옛 건물에, 마치 골동품상과 비슷하며 관리하는 백인

      할머니 역시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모펫이 쿠루만으로 가기 전에 이곳에서 약 9개월간 머물 때, 첫 딸이자 리빙스턴의 아내가 된

      메리 모팻 주니어를 이곳에서 낳게 된다. 그 후 모펫은 쿠루만으로 옮기고, 다른 선교사

      (런던 선교회 DIRECTOR Rev. John Campbell/ Griquatown은 런던 선교회에서 일찍이 자리를 잡은 듯하며

      모팻이 이곳을 들른 것은 당연한 코스였을 것으로 추측)에 의해 Griquatown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지금의 박물관 자리는 당시 교회였으며, 그 후 은행(FNB)이 매입을 했으나 역사적인

      장소임을 이유로 박물관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선교 영웅들의 사역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면서 각오를 새롭게 하였다.

      40대 중반에 뛰어든 선교사역, 인생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데 과연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는지 자문을 해본다.

       

       한편 Kuruman과 같은 선교기지가 있었기에 런던 선교회에서 장기사역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으며, 좋은 선교기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이것은 당시 식민제국들이 그들의

      거점 도시건설과 비슷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은, 당시의 열정적인 선교사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훌륭한 교회들이,

      지금은 역사적인 관광지나 박물관 등지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어떤 요인이

      교회의 존속을 가로 막았나? 연구의 가치가 없지 않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위임명령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선교사가 세운 교회 역시, 선교 지향적이어야 한다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어디

      엔가는 제2, 제3, 제4…….의 Moffat CHURCH들이, 또 그들의 소명대로 또 다른 교회들을

      세워 갈 것이다.

       

                                            못 다한 이야기들    

       5박6일간 약 3,500km의 긴 여행이었다. Upington을 비롯하여, Kuruman 등지를 Green

      Kalahari 라고 불린다.

       

       필자는 출발 전 준비과정에서 Orange강을 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Cradock을

      지나 Middelburg에서 N9을 따라 우측으로 오렌지강 최대의 댐인 Gariep Dam으로 갔다.

       

       굉장한 규모와 깨끗하게 다듬어진 주변 환경들, 휴양시설등이 인상적이었으며, 세찬 바람과

      짙은 흙탕물, 가뭄 탓인지 수위가 많이 내려가 있었다. 가는 중간 중간에 오렌지 강을 지나

      노라면 진한 초록빛의 포도농장들이 즐비했다. 강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은 누런 갈색의

      벌판이지만, 강 유역은 관개시설을 통해 강물을 이용하여 포도를 재배하는데, 남아공 최대

      규모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Wine Cellars가 이 지역이라고 한다.

       

       몇 시간을 달려도 나무도 잘 자라지 않는 허허벌판은, 물문제만 해결한다면, 그래서 저

       땅들을 이용한다면 굉장한 나라가 되겠구나를 생각하며, 과거 우리나라에서 시행했던 4대강

      유역개발을 머리에 떠올렸다. 현재 남아공은 ORP(Orange River Project)계획이 수립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Kgalagadi Transfrontier Park"은 남아공 쪽 칼라하리 국립공원이름이고 보츠와나(19세기의

      Bechuana Land는 현 업핑턴과 쿠루만등이 모두 포함 됨)에서는 "Gemsbok Park" 이라 불리며 Nossob

      river를 중심으로 남아공과 보츠와나가 나뉜다. 그런데 이 강이 공원으로 가는 비포장도로

      이고 강폭이 50m는 더 되어 보이는데, 사막 특유의 가시나무인 camel thorn tree(사막 유일의

      나무이며 부시족이나 야생동물들 특히 새들에게 매우 중요한 나무)가 여기저기 있어서 강이라고 생각이

      안 들 정도이고, 또 공원입구까지는 얕은 철조망으로 국경이 표시되어 있으나, 공원 내에서는

      남아공과 보츠와간에 국경표시 경계석(남아공 쪽에는 “RSA" 보츠와나 쪽은 ”RB") 가끔 있다.

       

       이 사막은 붉은 모래로 매우 특이하며, 석회와 작은 돌들이 굳어진 하얀 돌이 건축 재료나

      외장 마감 재료로 쓰인다. 붉은 모래는 기념품점에서 엄지 손가락만한 작은 병에 20 랜드이

      (약3800원)나, 길가에서 어린 부시은 작은 콜라병에 담아 판다. 2006년에는 두 나라 간에

      공동 사무실(border) 을 지을 거라고 한다.

       

       국경을 흐르는 이 강은 100년에 두 번 정도 물이 흐른다고 한다. 엎핑턴에서 칼라하리 공원

      까지 약 250km여서 자동차 연료보충을 걱정했는데, 약170km지점 Askham에 주유소가 있고,

      또 공원 내에도 주유소가 있어서 오고가는데 문제가 없고, 단지 사막 먼 곳까지 여행하려면

      보조 연료탱크를 충분히 준비해야한다. 어떤 여행팀은 4륜구동 랜드로버에 20 L들이 보조연료

      8통을 싣고 가는 것을 보았다.

       

       Upinton 박물관 앞에 주차를 한 후에, 내부구경을 하고 다음 건물로 이동하는 중에, 흑인 두

      명이 내차의 문을 열기위해  철사로 열심히 쑤시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한

      팀인 듯 둘은 망을 보고 다른 두 명은 문을 열려고 했으나, 슬금슬금 도망을 친다.

       

       이 박물관은 오렌지 강 언덕의 아름다운 곳으로 옛날엔 교회였는데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긴 의자와 강대상등이 그대로 있고, 사택과 교육관 홀도 박물관으로 사용

      되고 있다.

       

       내륙으로 갈수록 영어보다는 아프리칸스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듯하며, Backpacker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Clarence”라는 백인(미국인)은 혼자 여행을 하는데, 차림새는 매우 지저분해

      보이며 눈 부위는 선글라스 자국이 선명하게 날 정도로 볕에 그을렸고, 배낭은 비에 탈색이

      된 듯 한 누르스름하여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이도록 하고 다녔다. 그런데 여행계획은 나미비아,

      빅토리아 폭포, 모잠비크 등을 돌아 볼 거라고 했다.

       

       이 Backpacker 주인은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휴가를 떠나 버리고, 열쇠는 앞집에

      맡겼다고 한다. 열쇠를 맡은 아가씨가 시내에 나가고 없어, 우리 일행은 다른 일정을 진행하며

      저녁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이 백인 노인 역시 주인이 차량 서비스를 해 주어야 하는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이들은 여유를 가지고 자신들의 휴가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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