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람 저드슨 (Adoniram Judson) - 버마선교사
침례교의 버마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Adoniram Judson)
- 미국 침례교 선교사
- 버마어 성경 번역자이자 사전 편찬자
- 1788년 미국 매사츄세츠 출생
- 미국 침례교 선교사 연합회(American Baptist Missionary Union) 설립에 공헌
- 1834년 성경 신·구약 전체를 버마어로 번역
- 영국(Anglo)-버마간 전쟁 중, 투옥되어 감옥에서 21개월을 보냄
- 1845~1847년, 버마에서 34년을 보낸 뒤, 단 한 차례 고향으로 휴가를 다녀온 후 남은 여생을 영어-버마어 사전을 만드는 작업에 바쳤음
- 1850년 바다에 수장되어 주님의 품에 안김
아도니람 저드슨은 놀랍도록 쓰임 받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지적인 측면 : 그는 천재였다. 세 살 때 글을 읽었고, 열 살 때 항해 수업을 받았으며,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신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시절, 1년을 병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7살에 프로비던스 대학(Providence College,현재 Brown university)에 입학했다.
또한 그는 버마어를 완전히 정복했으며(버마어는 중국어를 제외하고는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언어라고 알려져 있음) 성경을 버마어로 번역했다. 그의 전기를 썼던 사람들은 아도니람 저드슨이 버마어로 성경을 번역함으로써, 버마인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분명하고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입을 모은다.
영적으로 : 그는 최고였다. 아버지가 회충교회의 목사였고, 어머니의 눈물어린 간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드슨은 20살이될 때가지 구원받지 못했었다. 오히려 성장할수록 그는 확고한 범신론자가 되어갔다. 그 주된 이유는 그가 대학에서 만난 아주 똑똑한 불신자 친구 때문이었는데, 그 친구는 저드슨이 범신론적 신앙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 논리 정연하게 설득했고 결국 그 일에 성공했다.그러나 놀라운 것은 저드슨이 극적으로 주님께로 회심하고 구원받은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 범신론자 친구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졸업 후 저드슨은 집을 떠나 방랑자처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한 시골 여인숙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는데, 저드슨은 옆 방에서 어떤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밤새도록 들려오던 그 남자의 끝임 없는 신음소리로 인해서 저드슨은 한 잠도 잘 수 없었다. 저 축어가는 남자는 축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는 어디에서 죽음 후의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을까?, 하늘 나라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평안하고 차분한 마음을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그는 어둡고 낮은 지옥으로 떨어지려는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떨고 있는 죄인은 아닐까? 저드슨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지금가지 가져왔던 그의 철학과는 정반대로, 죽음 이후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생각을 몰아내려고 밤새도록 싸웠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이련 유치한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의 천재 대학 친구가 그를 얼마나 나무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저드슨이 여관 주인에게 그 죽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가 들은 대답은 저드슨의 생애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는 프로비던스 대학출신의 매우 똑똑한 젊은이였습니다. 이름은 E 였지요." E는 저드슨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켰던 바로 그 불신자였다. 이제 그는 죽었다. 그리고 그의 혼은 지옥에 버려진 것이다. 버려졌다! 버려졌다! 버려졌다‥‥! 이 단어가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고, 귀에서 떠나가질 않았으며 그의 마음 속에서 큰 소리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버려졌다! 버려졌다‥‥ !
그 날 이후로 저드슨은 자신도 역시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앤도버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원한 불타는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주님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가 회심하고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그동안 자기가 꿈꾸어 왔던 모든 것들,즉 명예를 얻고 세상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을 버렸다. 이제 그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다.
회중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1807년, 아도니람 저드슨은 선교사가 되려는 부담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그는 월리암 대학에 다니는 몇 몇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저드슨과 같은 부담을 갖고 있던 친구들로서 그 대학의 운동장에 있는 건초더미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야만인들과 미개인들이 구원받게 해달라고 전심으로 기도했고, 그들이 선교사로서 갈 수 있도록 복음의 문을 열어 추시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 장소가 바로 미국 선교의 발원지가 되었던 것이다.
3년 후, 1812년 2월 17일 젊은 아도니람 저드슨은 결혼한지 7일 된 신부인 앤 해설틴 저드슨(Ann Haseltine Judson)과 함께 인도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은 당시 처음 설립된 해외선교를 위한 미국 위원회 (American Board for Foreign Missions)의 지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항해 도중, 저드슨은 어떤 책을 번역하다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침례의 형태는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갈등 끝에 자신의 신앙 양심에 비추어 보고, 주님 앞에서 결단을 내리게 된 저드슨은 회중교회의 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나중에 침례교 연합회(a Baptist board)가 그를 지원하게 될 때까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기꺼이 감수했던 것이다!
저드슨 부부는 처음에는 인도의 힌두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인도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동인도회사에 의해 입국을 거부당했고 수 차례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좌절, 두려움, 그리고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난항을 거듭한 끝에 그들은 마침내 주님께서 그들에게 버마 랭구운을 향해서 복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버마 땅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도둑과 강도들이 들끌고 우상숭배가 만연하며 죄악으로 가득찬 그 땅에서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젊은 부부의 외로움을 달래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귀여운 아기를 주셨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8개월 뒤 그들은 사랑하는 아기, 로저 월리암 저드슨(Roger William hudson)을 커다란 망고 나무 아래에 묻었다. 콜레라로 죽은 수천 명을 위하여 우울하게 둥~둥~ 울리는 죽음의 북소리와, 마귀를 물리치며 몽둥이로 집을 두들기는 관습 역시 이 선교사 부부의 민감한 영을 괴롭게 했다.
또한 회심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 기간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그들의 영이 눌리는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6년이라는 기나 긴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그들은 버마에서 첫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되었다.
1819년 6월 27일, 저드슨은 구원받은 첫 번째 버마 사람인 멍나우(Moung Nau)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저드슨은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 오, 오늘을 기점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버마 사람들이 끊임없이 회심하고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2명, 3명, 6명, 18명으로 천천히 늘어갔다. 그러나 마귀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저드슨은 영국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21개월 동안이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또 저드슨의 아내가 공무원들에게 끝임없이 간청한 결과, 저드슨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영국의 중재로 그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다.
사역이 진행됨에 따라 복음은 진전되었고,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죄인들의 감겼던 눈을 뜨게 하고, 우상에 속박된 마음을 깨뜨리기 시작했으며, 갓 거듭난 회심자들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1850년 4월 12일, 62세 되던 해, 아도니람 저드슨은 주님 품에 안겼다. 몇 달(그가 미국에서 배를 타고 버마로 온 뒤 34년만에 잠시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을 제외하고, 저드슨은 버마에서 38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첫 번 째 회심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까지 6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가 죽은 직후 정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버마에 210,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이는 버마인 58명 중 한 명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놀라운 숫자였다!
이것은 성령의 위대한 업적이었으며, 버마 수도인 아바(Ava)에서 부처의 사원을 응시하면서 "머지않아 나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한 음성이 너의 왕국의 모든 흔적을 쓸어 없애 버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곧 이 우상숭배의 신전을 대신할 것이며, 열렬한 불교도의 노래 소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찬양 앞에 사라지게 릴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도전한 저드슨의 헌신적인 사역의 결과였다.
그렇다. 아도니람 저드슨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고, 목적을 요지 일은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영혼들을 위한 강력한 인내의 사람이었다.(Copied with permission from Profiles in Evangelism by Fred Barlow, Sword of the Lord Publishers, c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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