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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부흥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부흥하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이슬람이다. 이슬람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전파된 종교이다. 초대 교회 바울의 선교를 제외한다면 이슬람만큼 단 기간에 성장한 종교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다음 도표를 보면 이슬람의 성장률을 알 수 있다.
지난 10년간 성장률 지난 100년간 성장율
기독교 14.5% 358.4%
이슬람교 23.5% 594.0%
*참고: 지난 100년간 인구 성장률 376.0%
100년 동안의 성장률을 봐도 그렇고 10년 동안을 봐도 그렇고 이슬람은 기독교의 두 배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기독교의 더블링 타임(두 배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54년인데 비해 이슬람의 더블링 타임은 27년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30년이 지나면 역사상 처음으로 이슬람이 지구촌 최대 종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카톨릭과 개신교를 합한 기독교가 최대 종교였음)
이제는 복음을 전하려면 이슬람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지역에, 이슬람도 똑같이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나 한국도 더 이상 “이슬람-free-존” 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한국은 이슬람의 주 선교 대상 국가이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미국과 한국이 이슬람화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 이슬람에 대한 이해
이슬람의 교리를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만 집고 넘어가고 싶다.
첫 째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라는 허구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무슬림들이 자신들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테러를 일삼는 일부 근본주의 무슬림들이 문제지, 코란 자체는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코란은 알라를 섬기지 않는 자들을 죽이라고 이야기하며, 지하드(성전)를 격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코란과 지하드를 격려하는 코란 - 이 모순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모하메드의 초기 가르침과 후기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하메드는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기독교의 한 지류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가졌다. 이 때 기록된 코란의 내용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기독교에 대해 형제애를 보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모하메드 인생 후반부에 가면 기독교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 기독교를 적으로 돌리며 완전히 독자적인 종교로 발전한다. 그래서 후반부 코란의 내용들은 보다 전투적이고 극단적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코란에는 평화와 테러 - 두 가지 이야기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어찌 되었던 이슬람은 마지막까지 지하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둘 째 이슬람은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에 들어온 이슬람은 반드시 정치세력화를 시도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포교활동이지만, 이들이 세력을 키우게 되면 정권을 잡고 이슬람국가를 만들려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피와 폭력이 개입된다. 이슬람 국가들의 종교분포도를 보라. 99% 이상이 무슬림이다. 이 수치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99%라는 수치는 가능하지 않다. 폭력과 피가 없이는 99%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슬람에 대해 너무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온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이슬람 선교의 방향
그렇다면 이런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슬람 선교를 위한 몇 가지 방향을 정리해 본다.
1. 무슬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다. 성령의 역사 외에는.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해 본 적이 있는가? 경험이 있다면, 아마 벽에다 대고 외치는 것이 나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슬람은 원래 기독교 배경 속에서 탄생한 종교이기에 기독교에 대한 일종의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에 대해 대처할 논리를 이슬람 탄생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반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해서는 별 효과가 없다. 지금까지 보고된 바에 따르면 MBB(모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의 99%가 꿈과 환상을 통해서 개종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들의 꿈과 환상을 해석해주고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긴 했지만, 이들 개종의 시작은 꿈과 환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아랍의 국가들이 선교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높은 벽을 둘러치고 막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인간이 만든 벽을 가볍게 뛰어 넘어 그들의 꿈속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선교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전략이다. 무슬림들의 꿈속으로, 환상속으로 예수님께서 찾아가실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마지막 때 진짜 선교의 주역은 무릎 선교사들이다! 정상적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소위 “창의적 접근지역”에 진짜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 기도로 예수님이 들어가시게 하는 것이다!
또한 선교사들이 무슬림들을 만날 때, 성령님의 강권적인 임재로 기적과 이사가 일어날 것을 기도해야 한다. 이 시대 이슬람 선교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선교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초대교회의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선교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주님의 임재와 영광을 더 사모하는 것만이 이슬람의 장벽을 무너뜨릴 우리의 유일한 자산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지라도 선교사들이 그 땅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사역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그 땅을 향한 기도와 예배의 양이 찼을 때, 주의 임재가 그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며, 그 땅의 무슬림들을 구원하시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풀어질 것이다.
물론 이와 더불어 이들을 follow up 해 줄 선교사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꿈과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난 무슬림에게는 반드시 그 꿈의 의미를 설명해 주며, 바른 복음을 전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주님께서 명하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명, 교회 개척의 역사는 믿는 자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성령께서 문을 여시면, 우리는 그 곳에 뛰어 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2. 미디어를 통한 복음 전파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몇 해 전 이슬람권 선교사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어렵게 참석한 대회였는데, 뜻 밖에 이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한 복음전도 뿐이었다. 의아했다.
이 사람들은 왜 어렵게 모여서 이 아까운 시간에 미디어 (TV나 위성 또는 인터넷을 통해 아랍권 국가들에게 복음 방송을 내보내는 것)만 이야기하고 있을까? 나중에야 나의 무식함(?)을 알고 부끄러웠다. 이것이 사실은 이슬람들이 정확한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며, 또 지금까지 시도해왔던 모든 방법 중 가장 효과를 많이 본 방법인 것이다.
이슬람 사회는 동양과 마찬가지로 “눈치사회”다. 아무리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불만이 있고, 의심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집 안에 혼자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더구나 이슬람 여성들은 외출과 사회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TV와 함께 보내고 있다. 특히 위성방송의 발달로 이제는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서도 “접시들(주: 위성 안테나)”이 모든 집의 지붕위에 걸려 있다. 전 세계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또 하나의 기회이다. 미디어를 보고 연락해 오는 무슬림들을 선교사들이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양육한다면, 미디어는 복음을 “편만하게 뿌리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3. 수세기에 걸친 이슬람을 향한 서구 세계의 착취를 교회가 돌려주어야 한다.
서구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부터 이어져온 이슬람 세계에 대한 착취와 탄압을 사과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품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물질이 흘러 들어가야 한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4. 이슬람은 두려움의 종교다. 사랑과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내적인 동기에 있다.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이끌어가는 종교이다. 알라의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가 이들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한다.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이 자상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절대주이며 심판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이들의 내면은 두려움과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자유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성령의 자유 안에 드리는 예배와 이들을 향한 사랑만이 이슬람을 두려움의 영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중동 가운데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임재를 기대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by http://www.missio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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