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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실제적 의미

영국신사77 2008. 9. 22. 00:18

선교광장

선교의 실제적 의미


박천규 선교사(루마니아 국제 선교훈련원 원장)


효율적인 선교사역의 우선 조건은 비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선교적 비전을 성취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지 실정에 알맞은 전략과 계획, 예산, 물적 재원과 인적 자원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사 삶을 시작하면서 자기가 품은 선교적 비전이 실현되는 그 날을 기대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가 주변 환경이나 시대적 상황이 변화되어 추진하던 일들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선교적 비전을 재점검하고 전략을 새롭게 하며 사역의 방향을 조절하게 된다. 어떤 선교사는 아예 주된 사역의 내용을 바꾸거나 선교적 페러다임을 재구성하여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로 옮기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선교사 개인적 역량에 국한 될 수도 있고, 소속교단이나 단체의 정책에 의해서 변형되는 경향도 있다. 여하튼 선교사 삶을 시작할 때의 비전은 선교사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한다고 해도 선교현장에서의 사정, 선교사 개인적 사정, 파송 교회나 기관의 사정 등등으로 인하여 순조롭게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의 선교 지도자, 전략가, 행정가들은 한국교회가 바라는 선교적 비전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그리 길지 않은 한국의 선교 역사를 평가하며 좀더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선교사 재배치 방안을 제시했다. 시간과 경비와 정력을 중복적으로 투자하지 말자는 의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바 있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기관도 있다. 선교사 재배치란 논점의 주된 관심사는 파송 교회나 단체의 선교적 목적을 배경으로 하는 선교 효율성 극대화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선교사 삶과 사역에 대한 평가이자 재조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해석하자면, 이러한 논의가 제기된다는 것은 선교적 비전이 개인적이든 단체적이든 성취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성공적으로 선교적 비전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선교사들이 타 문화권에서 적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한 곳에 오래 산다고 해도, 현지인들과 동질화되어서 산다고 해도, 여전히 외국인으로 취급 받는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들이 성장하게 되면 선교사역 보다는 선교사 생활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사역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미래적인 삶의 준비 등 인간적 삶의 기본적 요건에 대한 충족도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선교는 마라톤 주자와 같이 초반부터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초지일관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사항은 선교사 삶을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들과 교제하다 보면 선교사라는 신분으로는 경력이 쌓여있지만 그들의 사역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번 갈라서 해왔든지, 사역 지를 이리저리 옮겼든지, 또는 선교현장의 현지인 중심적 선교가 아닌 소속 교단이나 단체의 행정적 일이나 교육을 담당하면서 자신이 속한 기관의 선교지 개발이나 전략, 관리 등등의 변형된 일들을 감당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오랜 선교 사역을 통하여 현지인들을 위한 현지인들에 의한 선교를 지향함에 뿌리를 내리며 사역이 진행되고 확장되는 것이 아니기에 현장에서의 역사철학적 선교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물론 한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장기간 현장을 지키는 선교사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선교라는 명분을 가지고 사업을 하면서 장기 체류를 하고 있다. 이렇듯 선교사들의 다양한 선교적 양태를 보면서 선교의 실제적 의미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지국 촌에서 애쓰고 있는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이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 를 확장하는 일과 어떤 상관성을 지니고 있는가? 에 대해서 선교현장에서 10여 년을 사역해 온 현역 선교사의 자성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먼저는 선교적 소명과 사명에 대해 재인식하고, 타국에서의 외롭고 힘겨운 삶을 통한 선교 사역들이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선교현장의 현지인들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게 되는가? 선교의 실제적 의미를 "하나님 나라" 가 이 땅에 임하는 있음을 강조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선교사의 소명과 사명에 대하여
필자의 이해로는 선교사의 소명은 신분적이고, 사명은 사역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복음을 증거 하는 사역자로서 부르심을 받는 것이 소명인데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목회자로서의 선교사 신분과 평신도로서의 선교사 신분이다. 또 한 가지 전문인 선교사라는 명칭이 있는데 대부분 평신도 선교사를 전문인선교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다 보니 평신도이면서 전문성이 있는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 선교를 하는 사람들을 전문인 선교사라고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인 선교사라는 명칭은 평신도적 신분의 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본다.
 
전문인 선교사라는 용어는 복음사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이해되고, 복음전파를 위해 헌신하고 선교현장에서 복음전도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는 모두 전문인 선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문인 선교사는 일반적 기술이나 직업을 가지고 선교현장에서 복음 사역하는 자비량 선교사들만을 일컫는 것인지, 복음전파 사역에 전문성을 둔 목회자 선교사들까지 포함시키는 것이지 내용을 확실하게 분석하여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타 문화권에서 복음 전파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선교사라면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모두 복음전파의 전문가라는 개념에서 모두 전문인 선교사라고 명칭 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때문에 전문인 선교사라는 용어는 선교사적 신분보다는 선교사역의 내용을 세분화 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 된다.

이 단원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선교사로서의 소명과 사명의식인데 선교사로서의 신분적인 측면의 소명의식은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모두 복음전파자라는 동일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사역의 내용과 관련된 사명의식에는 목회자 선교사와 평신도 선교사 간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명 의식은 사역의 종류나 범위, 방법론적인 면보다는 선교사 사명의 본질이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과 깊이 연관되어야 함을 상기해야 한다.

선교사 사명에 대해서 좀 더 언급하자면, 목회자적 선교사들은 다양한 선교 방법론을 동원해서 사역을 하더라도 그 주체는 교회임을 강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회자 신분의 선교사들은 사역의 비전을 교회개척에 둔다. 그러나 평신도 선교사들은 의료, 음악, 교사, 컴퓨터,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의 전공을 살려서 기독교적 시각에서의 복음화 사역을 감당하면서 교회협력 사역을 하게 된다.

선교사 사명과 관련된 사역의 종류와 전개 방식은 각양각색인데 여기에 뒤따르는 문제는 교회 개척 사역이든, 일반적인 사역이든 각자의 활동 양상이 다르게 드러날지라도 선교사 사명의식이 과연 선교의 목표라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으로 일관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과 신분과 사역의 내용은 다르더라도 전하는 자나 듣는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 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구제 사역을 하는 선교사가 선교 대상자들에게 인간적 필요에 대한 공급을 해주면서 "인간화" 또는 "사회화" 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선교가 아니라 인도주의적 사회봉사 또는 사회복지 활동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단원에서 자유주의적이고 세계교회협의회적인 선교개념과 복음주의적 선교개념을 비교 분석하여 설명할 의도는 없다. 단지 선교사로서의 소명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역사철학적인 선교의식을 지니고 있는가?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선교사로 헌신하는 자들에게 소명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신은 어느 특정 종족이나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대답한다. 동시에 타 문화, 타 종족을 위한 복음 전파 자로서의 신분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명 의식에 대해서도 대답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어떠한 비전을 품고 있으며, 어떻게 사역할 것인가? 에 대한 미래적 계획도 설명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가 소명의식이고 어떤 것이 사명 의식인지 분명치 않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소명과 사명에 대해서 별 다른 구분 없이 통합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선교적 비전과 전략, 계획 그리고 선교 사역에 대한 자신의 다짐이나 각오를 표현함으로써 소명과 사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선교현장에서 실제적인 생활과 사역을 하다 보면,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고 선교사로 헌신 할 때 품었던 선교적 비전은 그리 쉽게 성취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나타나는 산골의 지형과 같이 선교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넘어야 할  고개들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선교사적 소명과 사역은 선교 비전과 밀착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그 비전의 성취를 위해서 오늘도 선교사들은 지구촌의 한 모퉁이에서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넘어, 종교적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대처하며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그들과 함께 삶의 애환을 나누며, 가장 효율적인 선교적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다양한 각도로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자신이 지닌 선교비전 그리고 교단 선교부나 선교 단체가 추구하는 선교적 비전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세계정세에도 관심을 두기도 하고,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한다. 그러면서 후원자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흐르고 선교 지의 사회적 상황과 주변 환경의 변화, 경제적 문제, 시행착오 등등의 문제가 발생됨으로 말미암아서 선교적 비전은 개편 또는 조절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현상에 접하게 된다. 결국 선교사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좌지우지하며 이 일 저 일을 도모하며 사역의 명분이나 처신을 위해 일을 만들어가게 된다.

선교 사명의식이 흐려지고 후원자들로부터 어필 받을만한 창조적인 사역을 시도함으로써 선교적 전시효과를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이 하는 사역이 피선교지에서 얼마나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가? 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과장도 하게 되고, 자기와 연관된 현지인 성도나 사역자들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어 선교 사역이 현지인과 밀착되어 있음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선교사 소명이나 사명과 관련된 선교사역의 실제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인위적인 발상이라는 점을 선교사 양심을 가지고 깊게 인식하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역의 방향조절, 선교개발, 선교사 재배치에 대한 개념들이 필요충분조건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선교사 신분으로 체류할 수 없는 국가에 위장 취업 또는 가상의 사업체를 등록하는 문제, 실제로 자생적 선교를 위한 정식 사업체 건립, 그리고 새로운 선교 페러다임으로 대두되는 비즈니스 선교개념은 선교사 소명과 사명에 연관해서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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