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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솔로몬 왕국

영국신사77 2008. 9. 7. 13:49
18. 솔로몬 왕국  

   구약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의 생애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솔로몬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더 있었지만("솔로몬의 행장"(왕상 11:41), "유다 왕 역대 지략"(왕상 14:29)), 이러한 책들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오고 있지 않다.

 

 우리는 솔로몬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열왕기와 역대기를 통해 개략적으로 알 수 있다. 본과에서는 주로 열왕기서의 기록을 중심으로 솔로몬의 행적에 대해서 알아보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여러 분야에 걸쳐서 많은 업적들을 이루어 놓았다. 솔로몬 당시 예루살렘은 그 발전상을 구경하기 위해, 각 처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크게 붐비고 있었다(왕상 10:1 -10,24,25).

 

 이미 솔로몬의 웅장한 건축계획은 예루살렘에서 요란한 착공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왕상 11:3),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왕상 9:26-28, 10:11-12,22,29).

 

 그 무렵 예루살렘에서는 은과 백향목을 돌과 뽕나무처럼 흔하게 볼 수 있었다(왕상 10:27). 또한 솔로몬은 군사용으로 사용할 말과 병거들을 애굽에서 많이 수입하기도 했다(왕상 10:2).


                                                               1. 지혜자 솔로몬
   솔로몬은 계속되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지혜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잠언의 대부분과 전도서, 아가서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서(외경)는 모두 솔로몬에 의해 기록된 책들이다.

 

 (왕상 4:29-34)은 그가 잠언 3000, 노래 1005 곡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은 그가 궁전 안의 지혜 문학의 본산지였던, 이른 바 지혜 학교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상 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31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마홀의 아들 헤만갈골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32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33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34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그 당시 애굽과 같은 나라에서는 지혜 있는 자들은 왕이 거처하는 궁전에 살고 있었다. 만일 솔로몬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만한 궁전을 지으려고 했었다면,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던 좋은 제도들을 받아들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 학교에서 기록된 책들은 왕에게 바쳐져서 그의 이름으로 온 지역에 반포되었을 것이다. (잠 25:1)은 히스기야가 지혜 문학을 편집하는 사람들을 자기 수하에 두고 있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잠 25: 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

 

 특히 (렘 50:35)은 지혜 있는 자들을 방백들과 동일한 부류에 두고 있다.

  

   렘 50: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칼이 갈대아인의 위에와 바벨론 주민의 위에와

                      그 고관들과 지혜로운 자의 위에 떨어지리라


                                                    2. 솔로몬 성전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대해서는 (왕상 6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전의 내부 시설과 가구들은 (왕상 7:15-50)에서, 그리고 봉헌식은 (왕상 8장)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가 성전을 짓는데 걸린 시간은 7년이었으며(왕상 6:38), 그의 궁전을 짓는 데에는 13년이 걸렸다(왕상 7:1). 아마도 성전은 궁전 전체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왕상 7:1-13).

 

   성전 건물의 규모는 오늘의 건축물에 비하면 대단한 건축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시 측량 단위로 사용된 "규빗"의 길이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규빗은 약 44cm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길이로 계산하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길이가 약 27m, 폭이 9m, 그리고 높이가 12m정도 된다. (솔로몬의 성전은 당시 페니키아 신전과 비슷한 설계로 지어졌다.)

 

 현관은 폭이 9m, 높이가 3m로 되어 있었고, 양편에 각각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성소는 길이가 18m, 폭이 9m로 되어 있고, 지성소는 길이 9m, 폭이 9m, 그리고 높이가 9m로 되어 있다.

 

 지성소 안은 어둡게 보존되었으며, 다른 부분과는 휘장으로 구분되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 번 있는 속죄 일에, 속죄 행사를 거행하기 위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는 두 날개를 가진 그룹들로 장식되었는데, 그 높이가 약 4.5m, 한쪽 그룹의 날개 길이는 4.5m정도의 크기였다. 그 날개들의 한쪽 끝은 언약궤가 놓여진 지성소 중앙에서 마주하였고, 그 다른 날개는 성전 벽에 닿았다(왕상 6:23-28).

 

 바깥 뜰에는 바다(sea)라고 부르는 큰 물통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통은 약 4만 5천 리터의 물을 담아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소 모양으로 된 열 두 개의 받침이 놓여져 있었다.

 

 그 밖의 각종 성전의 도구들은 주로 바깥  뜰에서 희생 제사에 필요한 예식을 드릴 때에 사용하기 위한 기구들이었다.


                                                  3. 성전 봉헌식 
   (왕상 8장)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언약궤와 그 밖의 성전 기물들이 제 위치에 놓여진 후에, 성소에는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왕상 8:1-11).

 

 이때에 솔로몬은 총회에서(왕상 8:12-21) 말씀을 마치고 난 후에 성전을 봉헌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 기도의 내용은 비교적 상세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먼저 서도로 기도를 끝내고 난 뒤에 다윗 왕조에 대해 언급하였으며(참조 삼하 7:1-1), 하나님을 향해 자신이 지은 전에 거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다(왕상 8:27-30). 그리고 나서 그는 장래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특별한 간구를 드리고 있다.

 

 이 기도에는 전쟁에서 패했을 때(왕상 8:33-34), 가뭄이 들었을 때(왕상 8:35-36), 기근이나 온역, 포위, 질병이 있을 때(왕상 8:37-40), 이방인의 기도들(왕상 8:41-43), 전투에서의 승리(왕상 8:44-45), 포로생활(왕상 8:46-53) 때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다.

 

 그 후에 그는 엄청난 수의 동물들, 즉 22,000마리의 소와 120,000 마리의 양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왕상 8:63).

 


                                       4. 솔로몬에 의한  강제 착취
   솔로몬이 통치하던 때의 상황을 소개한 몇 구절들을 보면, 당시 백성들은 매우 행복하고 태평성대를 누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왕상 4:20-22). 그러나 다른 구절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실제로 솔로몬은 건축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자들과 인력을 백성들로부터 착취했었던 것 같다(왕상 4:6, 5:13, 9:15, 11:28).

 

   또한 그는 그 당시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었던 옛 지파 동맹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전 지역을 행정 구역 단위로 재편성하였다. 그는 북쪽 지역(이스라엘)에는 12명의 관장을(왕상 4:7), 그리고 유다 지역을 위해서는 1명의 관장을 두어(왕상 4:19), 그들로 하여금 맡은 구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무엇보다도 왕의 식사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솔로몬이 소비한 하루 음식에 사용된 재료들은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왕상 4:22-23).

 

   솔로몬이 계획했던 건축공사가 모두 완공되었을 때에, 그는 두로 왕 히람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갈릴리에 있는 20개의 성읍을 내어 주었다(왕상 9:10-14). 이 사건을 다룬 기사를 보면 솔로몬은 그 성읍들을 내어주는 문제를 가지고(그들이 페니키아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될 일에 대해서) 그 지역 주민들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히람은 이 성읍들에 대해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왕상 9:13).

 

 왕상 4:22,25, 9:22에 기록된 설명들은 왕상 12;4,15에 기록된 내용들과 서로 잘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솔로몬이 그의 백성들을 다스렸던 방침과 태도는 그리 훌륭한 것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그의 개인 생활은 도가 지나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실상 그가 거느렸던 후궁들만 해도 1,000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에 달하였다. 또한 그의 종교적인 확신은 정통적인 것에 근거하지 않고 있었다(왕상 11:1-13). 그의 군대는 실로 막강하였다(왕상 10:26).

 

 어쨌든 그는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잃고 있었으며, 따라서 전 지역을 완전히 통치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결국 북쪽 지역의 아람인들(왕상 11:23-25)과, 남쪽 지역의 에돔인들(왕상 11:14-22)이 그의 지배권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우리는 그의 많은 후궁들 가운데서 특별히 한 사람의 처, 즉 애굽 왕 바로의 딸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왕상 3:1, 7:8, 9:24). 이 결혼은 애굽과 무역을 하는 일에 있어서 큰 유익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왕상 10:28-29). 그녀에 대한 솔로몬의 지나칠 정도의 배려와는 달리, 그는 연약한 백성들에게는 막대한 희생을 요구했을 것이다.

 

 성경은 솔로몬의 통치에 대해 몇 가지 평가를 내리고 있다(신 17:14-20, 삼상 8:10-18, 왕하 23:13). 이런 구절들을 자세히 보면 왕상 12:4,14,15이 사실에 더욱 가까운 진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백성들에 대한 솔로몬의 강제 착취는, 이사야가 민족의 역사 중에 가장 큰 재난이었다고 말한(7:17) "왕국의 분열"을 초래하는 결과를 맞고 말았다.


                                                                    5. 요약
 1. 솔로몬의 통치는 몇 가지 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의 건축 공사에 대한 업적이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그의 통치 하에 있었던 어두운 면이 폭로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업적은 일반 백성들의 돈과 강제 노역, 그리고 착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강력하게 시사되고 있다.

 

 

2. 솔로몬이 그의 통치 기간 중에 이루어 놓았던 가장 놀라운 업적은 성전을 건축한 일이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비록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성전을 짓는 일에 7년을 사용한 반면, 그의 궁전을 짓는 일에는 13년이란 세월을 사용하였다.

 

 

3. 열왕기상에 나오는 내용들은 한결 같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의 탁월한 지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후대 지혜서는 대부분 그에 의해 기록이 되었다.

 

 

4.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물질적인 면에서 크게 발전되기는 했지만,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점차 쇠퇴 일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1)솔로몬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1000여명의 많은 이방인 처첩을 거느리게 되자, 그녀들이

   제각기 자기 나라의 우상을 가지고 오게 되어, 궁중을 우상의 소굴로 만들게 되어,  결국 솔로몬

   자신도 우상숭배를 하게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됐다.

  

 2)하나님의 계속된 놀라운 은혜로, 이스라엘이 최고의 번영과 안정을 누리게 되자, 솔로몬은 점차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게 되어, 자신의 사치를 위하여 백성들에게 중세를 부과하게

    되어, 마침내 왕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인해 그를 치지는 않으셨다. 그 대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가서 둘로 나누어 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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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인터넷매일성경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