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구약성경 강해(舊約)[종합]

요한 히르카누스 2세 [─ 二世, John Hyrcanus II]

영국신사77 2008. 9. 4. 00:47

요한 히르카누스 2세 [─ 二世, John Hyrcanus II] 블로그담기 | 인쇄

 요한 히르카누스 2세 [─ 二世, John Hyrcanus II]

?~BC 30 예루살렘.

유대 민족의 대제사장(BC 76~40).

그의 형제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함께 통치한 마카베오( 하스모니아)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다. 히르카누스의 우유부단한 통치하에서 유다(전통적으로 3개 지역으로 나뉘어온 고대 팔레스타인의 남부지방이며, 지금의 이스라엘에 해당함)는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히르카누스는 BC 76년에 아버지가 죽자 대제사장에 임명되었으며, BC 67년 어머니가 죽었을 때 통치권을 물려받았다. 3개월간 혼란스런 시기가 지난 끝에 그의 형제 아리스토불루스는 그를 쫓아내고 권좌를 차지했다.

히르카누스는 이두매(히르카누스의 할아버지 요한 히르카누스 1세가 정복했던 인접 지역)의 총독 안티파트로스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히르카누스의 유약한 의지를 간파한 안티파트로스는 그를 이용하여 유대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내다보고 그에게 아리스토불루스와 전쟁을 벌이도록 설득했다. 이 두 형제는 잔인한 전투를 벌인 후에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중재자가 되어달라고 호소했다. 폼페이우스 역시 히르카누스를 통해서 유대를 손에 넣을 의도로 그를 대제사장직에 복위시키고 세속적 권한도 주었다. 히르카누스는 나머지 생애 동안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손에 좌우되었다. 그는 군사령관(총독) 아울루스 가비니우스에게 직위를 박탈당했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물리칠 때 그를 도운 대가로 복권되었다. 그후 BC 42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안티파트로스의 두 아들 헤로데와 파사엘을 유대의 분봉왕(군주)으로 임명함으로써 그는 무력하게 되었다. BC 40년에 유대를 침략한 파르티아 사람들(지금의 이란 코라산 지방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민족)은 히르카누스의 야심만만한 조카 안티고누스의 충동으로 히르카누스의 귀를 잘라 대제사장의 자격을 잃게 했다. 바빌로니아에 유배당한 히르카누스는 BC 36년에 헤로데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6년 뒤 헤로데는 민중들이 히르카누스를 지지함으로써 일어날지 모르는 위협을 없애버리려고 그를 처형했다.

백과사전 카테고리

브리태니커 백과 > 인물 > 왕·귀족 > 왕, 황제
브리태니커 백과 > 역사 > 서남아시아 역사 > 이스라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