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예루살렘(종합)

★ 예루살렘의 역사/ 엄원훈 장로

영국신사77 2008. 8. 24. 11:43

 

예루살렘의 역사 1

                                                                                                                    http://blog.naver.com/kaikk/70005595057

 

엄원훈
신성교회 장로

 

 

 성경에는 사람이나 숫자를 여러 번 반복하여 기록한 것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을 담아 사람을 교훈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나 숫자뿐 아니라 장소의 이름도 반복 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한 장소의 이름을 정한 것이나, 한 지역의 이름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중요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성경 속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불린 곳이‘예루살렘’이다. 이번 호부터는 성경이 예루살렘에 관하여 기록한 것을 모아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성경은 인간의 기원을 아담으로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계획하셨고(창 1:26), 만드셨으며(창1:27), 축복하셨다(창 1:28, 29). 사람을 만든 재료는흙이었으며(창 2:7), 흙덩이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는사람을 지으신 후 거처할 장소를 정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땅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어 놓으시고 맨 나중에 사람을 만드셔서 가장 좋은 곳을 정하여 살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의 이름은 에덴동산이다. 좋은 환경 가운데 살면서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되었으므로(불순종) 고통과 사망을 그 대가로 받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기보다는, 홀로 살기 위해 좋은 장소를 찾아 옮겨가며 살게 된다. 살기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전쟁)으로 사람은 악해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고 계신 하나님은 1차 심판을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친히 일러 주셨으며, 그는 순종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삶을 살게 된다.

 

 그 후 인간은 제2 번성기를 맞아 70개 부족으로 나뉘게 된다(창 10:1~32). 사람들은 땅 위에 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대적까지 하려는 악한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근심케 하였다(창 11:1~9).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선택하셨다. 언어를 혼잡하게 함으로써 인간이 서로 모여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노아 홍수 이후 10대 만에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세우시고, 모든 민족이 복받을 수 있도록 훈련하신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땅에서 아브라함을 훈련하실 때 큰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왕에게 전리품 10분의 1을 드리게 된다. 이때에 살렘왕(평화의 왕)을 예루살렘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 것이 많은 성경학자들의 견해이다.

 

                              아브라함이 옮겨 온 땅 가나안(헤브론)
 가나안 지역은 본래 노아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인 함
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함의 아들은 네 명이었으며 그 중에 막내아들의 이름이 가나안이다(창 10:6). 아마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역 이름을 가나안이라고 정한 것 같다. 가나안은 열한 개 부족을 낳게 되는데, 그 중에 세 번째가 여부스 족속이다(창 10:16).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살던 지역에 속해 있었다. 이때에 이미 이 지역을 차지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리실 때는 사람뿐 아니라 장소도 정하셔서 복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갈데아 우르 지역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기라고 명하신다. 그에게 하신 첫 명령은 장소에 관한 것으로서, 지금의 살고 있는 장소를 떠나라고 하신 것이었다. 이는 살고 있던 장소가 큰 복을 내리실 만한장소가 아니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곧 장소 역시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아브라함은 옮겨온 땅에서 많은 시련을 겪는다. 부인을 빼앗기기 직전까지 갔던 사건과 조카 롯으로 인한 목자들간의 갈등, 롯을 구출하기 위한 왕들과의 전쟁, 흉년과 가정불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려야 했던 마음 아픈 사건 등, 이 모든 것은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 속에서도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하시어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나 큰 위로와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축복을 받게 된다. 성경은 멜기세덱을 살렘왕으로 기록(창 14:18)하였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평강의 왕으로 해석하고 있다(히 7:2).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이니 멜기세덱은 평화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고 보면 되겠다. 앞에 언급했듯이 많은 성경학자들은 여기서부터 예루살렘의 기원을 찾고 있다.

 

 이렇게 출발한 예루살렘은 많은 역사를 흘러오며 마지막 요한계시록 21:10에는 우리가 가야 할 곳 천국을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성경 속에 예루살렘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것이 우리를 교훈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명칭과 기원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예루살라임’(Jeru
shalayim)이다. 그 뜻은‘평화의 나라, 평화의 터, 평화의 도시’라고 한다. 예루살라임이라는 말은 터, 기초 또는 기초를 둔다는 뜻을 가진‘예루’(Jeru)와 히브리어‘샬롬’(shalom; 평화)의 합성어이다. 그러나한편으로 본래의‘살렘’(노미드)은 가나안 지방의 신의 이름이었다고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샬롬(shalom)은 평화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 되면서 평화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발전하여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성경에‘살렘’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온 곳은 창세기 14:17-20이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적에게 사로잡혀 가게된 소식을 듣고 평소에 훈련시켜 놓은 318명의 군대로 뒤를 좇아, 연합군을 물리치고 롯을 구하였다. 이 전쟁의 승리로 많은 전리품을 취하여 돌아오는데,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위로하고 축복하였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축복을 받아들이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제사장인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때 살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로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모리아(창 22:2)라는 이름으로, 여부스(수18:28)로, 시온(왕하 19:22)으로, 다윗성(삼하 5:7)으로, 아리엘(사 29:1)로, 거룩한 성(마 4:5)으로 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그러나 이 모두가 예루살렘의 별칭으로 그 뜻과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윗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말씀하시기를“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고 하셨다”(시 132:13-14). 이처럼 예루살렘은 하님의 선택과 임재, 보호, 영광의 장소이며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예루살렘의 딸들로 표현하기도 하였고, 이때 예수님을 신랑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하나님에 의해 택하여진 특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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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훈
신성교회 장로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된 사건
한 지역은 오랜 시간이 흐르며 많은 변화를 갖게 된다. 다스리던 자의 세력에 의하여 지역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민족의 풍속에 따라서도 지역의 이름이 다르게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지난 호에 밝힌 바와 같이 예루살렘 지역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여도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여리고를 함락시키고 아이성을 차지하게 된다. 당시에 이 땅에는 기브온 거민이 있었고 그들은 이스라엘과 화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아도니세덱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아도니세덱은 기브온 족속과 이스라엘이 화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이웃나라들과 힘을 모아 기브온을 칠 것을 계획하였다. 헤르몬, 야랏, 라기스, 에글론 왕들과 연합하여 기브온을 칠 것을 계획하고 있을 때, 기브온 사람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이스라엘이 크게 승리한다. 전쟁이 맹렬하여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며, 바로 이 전쟁중에 기도에 따라 태양과 달이 머무르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수 10:1-27). 이 전쟁에서 완승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었다.

베냐민 지파에 분배된 예루살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차지하는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된 곳이 사사기 1장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은 대로 전쟁에 앞서 나갈 자들의 순서를 정한다.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 것을 하나님이 지시
하심에 순종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삿 1:8). 전쟁의 승리로 얻은 땅을 베냐민 지파에 분배한다.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후 사사기에 한 레위 사람과 그의 첩이 베들레헴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질 무렵 여부스 맞은편

에 당도하여 묵는 사건이 있는데, 여부스는 예루살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삿 19:10, 11). 이때까지만 하여도 예루살렘은 여부스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여부스의 뜻은‘짓밟히다’이다).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
고 인간관계만 해결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패가망신으로 끝을 맺게 된다. 사울은 실패자로서 대표적 인물이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로 인정받음으로써 왕가를 이어가며 통일왕국을 든든히 세워가게 되었다. 다윗은 왕이 되어 시온산성(예루살렘)을 여부스 사람에게서 빼앗고 이름을‘다윗성’으로 개명한다(삼하 5:7,대상 11:4). 예루살렘을 완전히 차지한 이스라엘은‘바알레유다’로 가서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삼하 6:3, 4). [바알레유다는‘기럇바알’로서‘기럇여아림’의 옛 이름이며(수15:9, 60) 헤브론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삿 1:10).]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려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만들었다. 수레에 법궤를 싣고 옮겨오다가 웃사가 죽임을 당하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물게 된다. 이로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은 큰 복을 받게 되었다.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는데 다윗은 옷이 흘러내려 몸이 드러날 정도로 기뻐 춤을 춘다. 미갈의 비웃음과 책망에도 다윗은 계속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뛰놀 것이라고 담대히 말한다. 하나님의 법궤는 이때부터 예루살렘에 있게 된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 정치를 하게 된다. 수도로 삼게 된 이유는 우선 이스라엘이 차지한 전체 지역의 중심지이므로 각 지방의 왕래가 좋은 위치적 특징 때문이며, 또한 적들을 막아내는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크고 군사적으로 요새화된 지형적 특징 때문이라고 본다. 성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면서부터 이 지역은 종교 중심지로서의 역할까지 맡게 되어 모든 활동이 시작된다.

 

                         분열왕국 시대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통일왕국 시대는 다윗으로부터 크게 번성하여 아들 솔로몬 때까지 이르게 된다. 솔로몬은 초반기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중반기에 들면서 이방의 여자들을 사랑하여 이들을 부인으로 삼고 그들의 이방신들을 받아들인다. 후반기에는 이방신들의 우상을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사게 된다. 부친 다윗의 쌓은 덕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아들 솔로몬은 멸하지 않으셨지만, 후손 대에 와서는 나라를 빼앗기고 이스라엘의 왕가는 혼란을 겪게 된다. 이후 이스라엘 한 지파를 세워(유다)하나님의 종 다윗과 하나님이 빼신 예루살렘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왕상 11:11). 솔로몬이 죽은 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고 유다와 베냐민지파로 유다국을 세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다스리게 된다(북쪽은 10개 지파를 모아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세워 나라를 다스린다).그 후 유다국 400여 년의 역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내용을 모아서 정리하여 보고 지역의 이름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배우게 되면 성경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역사 3

 

엄원훈
신성교회 장로

 

 

                               이스라엘 민족의 본향
 이스라엘 민족은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창12:7)을 찾아가 얻게 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그들의 꿈의 고향이었다. 조상들과 약속하였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어 삶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곳은 하나님의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으로 지상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이곳까지 이르는 동안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통과하여야만 했다. 이방의 객으로 종살이하던 서러움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였지만, 광야생활 40년이라는 방랑의 삶은 참으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훈련기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

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백성,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부심과 믿음(신앙)을 가지게 되었다(선민사상).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영원한 만남의 장소는 가나안 땅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종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신다. 말씀을 돌판에 새겨 지워지지 않도록 하셨으며 영원히 지키게 하신다. 그것을 항상 보고 기억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가장 귀한 돌판은 상자(법궤)에 담아 하나님의 집(성막) 깊은 곳에 놓게 하고 그곳(시은좌)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 땅의 한 장소(예루살렘)를 정하시고 그곳에 고정된 건물(성전)을 세우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예루살렘을 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거기에 두셨고(대하 6:6),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믿음)의 본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대하 6:6; 왕상8:38; 사 62:6, 7; 시 122:6), 하나님이 계신 곳, 성지가 되었다.

 

 

                                   예루살렘의 멸망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 가운데 살아오다가 지도자들의 무능함으로 이방신(우상)을 받아들여 약속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하
심을 사게 된다. 성경은 열왕시대를 마감하는 장면을 열왕기하 25:1-25에 기록하고 있는데, 나 자신이 당한 일이라 생각해 보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자칭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며 우월한 민족임을 자부하는데(선민사상), 비참한 모습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왕이 보는 앞에서 백성은 포로로 잡혀가고, 왕자인 두 아들의 목이 달아난다. 험한 것을 다 보게 한 후에는 왕의 두 눈을 뽑아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 고통중에 이방나라(바벨론)로 끌려가게 된다. 비참하고 참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가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아이다(왕하 25: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왕이 된 후 19년 5월 7일에 시위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와서 남아 있는 자를 잡아가고 성전의 기물들을 모두 가져가고 그냥 가져갈 수 없는 것(바다와 놋기둥)은 깨뜨려서 가져갔으며, 가져갈 수 없는 것(건물)은 불태워 없애버렸다고 한다(성전, 왕궁, 고관들의 집). 성벽도 사면을 400규빗(182.4m)을 헐어서 무너뜨렸다. 예루살렘은 참혹할 만큼 비참한 모습으로 폐허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인 예루살렘이 이방민족에 짓밟힌 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모두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땅에서의 삶, 곧 외면은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하셨고 내면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고 계셨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은 내외의 통치가 모두 무너진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면의 것은 무너져 있어도 내면세계(신앙)는 새롭게 시작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심으로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신다. 비록 외적인 것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힘이 되신 여호와를 믿고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예루살렘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이
스라엘 백성이 이방의 포로가 되었을 때 지배국가와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배국가의 이름과 지도자의 이름이 거론되어야 하고 그 내용을 설명하려면 양이 너무 많아 설명으로 이해를 돕기가 어렵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것만을 중심으로 하여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기로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든지 즉흥적으로 행하시는 것은 없다. 예언을 하시고 예언대로 이루어 가신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내용 역시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곳에 예언하셨다(미 13:12; 사 39:5-7; 습 1:8; 렘 39; 합 1:1-4).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하여지면 예루살렘의 고난을 예고하였으며(사 29:1-10), 바벨론에 의하여 함락될 것도 말씀하셨다(사 44:26-28). 200여 년 후에 일어날 왕의 이름(고레스)까지도 정확하게 예언된 것(사 44:28; 45:1-3)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설명하게 위해서는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잡아가고 예루살렘을 불살랐던 왕은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이었고, 50여 년 후 바벨론은 바사(페르시아)에 정복되어 바사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사는 초대 왕 고레스가 세웠으며, 바벨론과 메데를 정복한 후 각 민족의 전통종교를 인정하였다. 즉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것이다(대하 36:22-23; 스 1:1-3). 이것은 다른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여 안정적인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본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세우고 다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으로 잡혀갔지만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하여 해방이 된 것이다.

 

 이때 스룹바벨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 지도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불탔던 성전을 재건하여 이름을‘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백성을 이끌고 귀향하여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세 번째로 왕궁에서 술 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백성을 이끌고 돌아와 성벽을 복원하는데, 짧은 기간에 완성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 이로써예루살렘의 복원이 완성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

며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 메데[히(아람) 헬(메로이)]에 관한 성경

 

 바벨론과 연합하여 앗수르를 정복하고 수도인 니느웨를 파괴하고 점령하였다(왕하 18:11).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 와스디를 폐위하고 메데 법에 기록하자던 일이 기록되었다(에 1:19). 바벨론은 메데 사람에 의하여 멸망할 것도 기록되어 있다(사 13:17).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방언으로 대화할 때 메데 사람이 알아들었다(행 2:9).

 

                             외면적 예루살렘과 내면적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회복을 역사적으로 정리하여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의 하나님은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세워 그의 마음을 감동하심으로 예루살렘을 회복하게 하신다. 고레스는 BC 559-530년 재임하면서 칙령을 내려 예루살렘 회복을 명한다. 예루살렘 회복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듯하다. 바사(페르시아) 왕 6대(고레스, 캄비세스, 스멜디스, 다리오 1세,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1세), BC 559-423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다. 130여 년 간 예루살렘의 성전이 세워지고 성벽이 세워지는 것이 예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1차 귀향은 바사 왕 고레스 때로 스룹바벨과 그 일행이 돌아왔고(스 1:1), 2차 귀향은 아닥사스다 왕 7년으로 에스라와 그 일행이 돌아왔으며(스 7), 3차 귀향은 아닥사스다 20년에 느헤미야와 그 일행이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게 되었다(느

1:1). 성전을 세울 때 사마리아 사람 르훔과 심세가 질투하는 마음으로 크게 방해하여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모든 과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회복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내면적 회복(신앙회복)을 먼저 하면, 외면적(정치적)인 회복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세워 용기를 주신 후 성전재건을 완성하게 하신다. 완성이 된 후 이 성전 이후의 영광이 지금까지 받은 영광보다 더 클 것이며, 그곳에서 영육혼의 평안을 주시겠다 말씀하신다(학 2:9).

 

 외면적 예루살렘은 세워졌으나 그들 내면적 예루살렘(신앙)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자, 말라기(내사자) 선지를 통하여 바른 제사와 제물을 드리라고 지적하신다(말 1:10, 14). 이것은 외면적인 성전이나 성벽보다 그곳에서 드려지는 제사(예배)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400여 년 간 침묵하신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에게 너무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음을 역사를 통하여 배울 수 있다.

 

 

 

 

 

  성전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예루살렘의 역사 4

 

엄원훈
신성교회 장로

 

                           이스라엘 민족의 내적 회복 요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려고 훈련을 하셨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종살이 70여 년을 하게 한 후 제2의 출애굽이라고 하는 해방을 맞이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해방을 맞으면서 그리던 본국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세우고(재건) 성벽을 수축하여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하여 표면적 노력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민족의 주권이 회복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삶의 현실은 독립의 기쁨과 물질적 가난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방 나라에서 오랜 동안 살면서 풍습이 변해, 고향의 삶을 다시 시작할 방향을 잡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오랜 종살이에 얻어온 것은 성전을 세우는 비용 약간뿐이었으며, 고국에 와서는 땅에서 얻어지는 소득으로 살아야 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생활의 궁핍함과 어려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삶 가운데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귀찮은 일로 전락되어 형식적인 제사로 돌아가게 된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제사를 기뻐 받지 않으셨다. 이때에 선지자 말라기를 세워 바른 예배를 드릴 것을 말씀하신다. 곧 온전치 않은 제물은 받지 않으신 다고 말씀하시며 이러한 제물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던 것이다. 바른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지키게 되었을 때 복을 주시는지 시험하여 보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 같다. 이로부터 400여 년 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는 침묵의 기간이 된 것이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은 점점 더 어려움이 가중되었고 예루살렘은 수차례 파괴되었으며, 이방 나라의 지배하에 빠지는 어두운 삶의 연속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400여 년 간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며 그 교훈을 얻고자 한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계시 증명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아시리아)에 의하여 이미 멸망하였고 남유다만 남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경고하셨다. 그러나 남유다 백성은 돌이키지 않았다(렘 11:4, 12:3-4). 그로부터 140여 년 후 바벨론에 의하여 시드기아 왕을 끝으로 남유다도 패망하고 암흑기로 들어가게 된다(BC 587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세워 예루살렘의 중건을 말씀하셨다(렘 44:28). 200여 년 후의 일을 예언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셨다. 이루시는 과정은 에스라, 느헤미야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성전재건 과정의 어려움 속에서는 선지자 학개, 스가랴를 세워 용기를 주셨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강대국을 세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어 본을 삼고자 함을 알 수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는 없어지고 강대국의 속국으로 400여 년을 지나게 되는데, 이 기간은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되었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계시가 없는 동안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이것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BC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패망하고 모든 백성은 나라를 잃고 종살이를 하게 된다. 50여 년 후 바벨론은 바사(페르시아)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게 된다. 20여 년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 정치 목적의 일환으로 종교 자유화가 있었으며(BC 538-425년), 이 일을 계기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예언 사40:18-23, 41:10-14; 예언 성취 스 1:2). 페르시아는 BC 331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제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여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도 자연적으로 그리스의 속국이 되어 예루살렘 대부분이 그리스(헬라)화 되었다. 특히 BC 300년경에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지도자로 있을 때, 하나님의 성전을 약탈하고 그곳에 제우스(BC 175-164년)를 위한 단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운동장을 건설하고 시합을 장려하였으며, 헬레니즘(인본주의)을 육성하였다. 그 사이에 이러한 악습을 반대하는 마카비(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의 지도자)의 반란이 일어나 우상숭배가 제거되기도 하였다.

 

BC 164년에 예루살렘은 회복되고 성전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100여 년 후(BC 63년) 예루살렘은 또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정복되어 성전 벽이 헐리게 되었다. 다시 또 예루살렘은 BC 40년에 마케도니아 안티오누스가 장악을 하게 되었으나, 3년 후 BC 37년에 블레셋(팔레스틴)의 안티파테르의 아들인 헤로데스(헤롯; 에돔사람) 대왕이 25세에 유다의 분봉왕으로 즉위하며 다시 로마가 다스리게 된다. BC 20년경에 예루살렘 성전재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에 완성되어 헤롯 성전이라 불렀다.

 

헤롯은 BC 47-4년에 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해안도시를 정비하고 도시 이름을 가이사랴라고 개명하여 친구인 로마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하였다. 그는 또 갈릴리 바다 이름을 개명하기도 하였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다. 가이사랴 빌립보를 건설한 것과 가이사랴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정치적으로 간교함이 뛰어난 사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헤롯은 또 잔인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하스몬 왕가를 근절하려고 하스몬 사람인 자기 부인 미리암을 비롯하여 처남, 장모, 미리암을 통해 낳은 두 아들까지 죽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유아살해 명령도 서슴지않고 내렸기 때문이다(마 2:16-18).

 

 헤롯이 죽은 후 헤롯 빌립 2세가 왕권을 이어 받아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된다(BC 4년-AD 34년). 그는 헤롯 대왕과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자기의 이복형제인 빌립의 아내이자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게 되어 이것을 책망한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인 왕이다(막 6:20-29). 예수님을 희롱하고 죽이도록 빌라도에게 넘겨준 헤롯도 바로 이 헤롯 빌립 2세이다(눅 23:7-11).

※ 헤롯이란 이름을 가진 왕들은 모두 9명이 있는데 야고보를 죽인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 사도 바울을 재판한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이다.

 

 

                           이스라엘만이 아닌 온 인류의 구세주
 필자는 이러한 역사를 정리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의 온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 모든 역사 속에 담겨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 선민으로 하나님을 자기들만의 하나님으로 알고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이스라엘 민족이 이땅의 법적인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있다. 이 복음을 사도바울은 로마서에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으며,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은 이스라엘만의 구세주가 아니고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이방인의 첫 열매 고넬료). 온 인류를 향한 구원사역과 복음전파를 위하여 예수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신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전달되어 온 것이다(행 22:21).

 

 

                                                ※ 연대는 학자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참고용으로 이해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