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영성으로 가는 성지 순례:십자가의 길

영국신사77 2008. 8. 22. 12:05
영성으로 가는 성지 순례:십자가의 길


“슬픔과 고난“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는 비아=길, 돌로로사=고난, 슬픔, 탄식으로 이루어진 말로 주님께서 십자가 지고 가신 고난의 길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이 길은 약 700M정도 되는 길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로 구성되어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 길에 대한 전승을 만들어 순례 객들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케 하는 의식을 만들어놓았다.

순례 객들을 위하여 제1처에서 나무 십자가를 빌려주기도 한다. 무게 약 30KG과 50KG 두 종류의 십자가를 빌려서 십자가의 길을 재현하기도 한다.


제1처 선고교회와 채찍질 교회

관정 안에서 채찍질을 당하신 주님은 오전9시쯤 고난당한 몸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 밖 서북쪽에 위치한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셨다.

작열하는 태양은 올라가는 길가의 상점들과 주택들의 처마를 뚫고 채찍질로 온몸이 찌긴 예수님의 육신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육신이 상할 데로 상한 그리스도는 군병들의 채찍질과 고함소리 그리고 군중들의 소란한 소리를 뒤로 하고 처형장으로 발 거름을 옮긴다.


제2처 “에케호모”

선고교회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십자가지고 가신 길(폭 3M정도)을 따라가면 채찍질 당한 곳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아치가 하나있다. 사람들은 이 아치를 가르쳐 “에케호모“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향해 빌라도총독이 말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요 19:5) 성경대로 빌라도의 군중들을 향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장소이다.

오른쪽 벽에는 라틴어 VIA DOLOROSA라는 길 이름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속 길을 따라 낮은 내리막길을 향하여 가자.


제3처 처음으로 쓰러지신 곳

내리막길의 끝에는 치즈골짜기(중앙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는 옛 예루살렘 성의 동서를 나누는 계곡이다. 남쪽에는 통곡의 벽이 있고 북쪽으로는 세겜 문(다마스커스 게이트)가 있다. 삼거리 지점을 이루는 이곳에서 주님은 힘이 빠지셔서 결국 첫 번째 쓰러지셨다.

바로 이 지점에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아 정교회 기념교회가 있다.

그리고 쓰러지신 곳을 나타내는 자그만 조각이 교회 벽에 부조되어있다. 길바닥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붉은색 통돌이 있다. 이 돌을 박석(히브리어로 가바다)이라고 한다. 재판정에 있는 돌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요한복음 19:13)

그 옛날 예수님이 쓰러지신 바위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감격에 순례 객들은 눈시울을 적실 수밖에 없다. 지금 이곳은 아랍시장이 되어 매우 분주하고 소란스런 곳이기도 하다.


제4처 모자상봉

3처에서 약 30M쯤 지나서 왼쪽으로 보면 가계사이에 아르메니아 정교회 작은 교회의 문 이 있다. 이 문 위에 예수님과 마리아가 상봉하는 조각이 새겨진 장소를 볼 수 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습이다.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응답하는 아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제5처 구레네 시몬

다시 약15M쯤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길이 꺾어져 오르막길을 향하는 길로 나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십자가 행렬을 구경하다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까지 올라가게 된다.(눅 23:26) 억지로 진 십자가 그러나 시몬은 시골사람에서 일약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었기 때문이다.

어떤 십자가인가가 문제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어야지 내 십자가를 지어서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함께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두 강도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으나 이름도 없다.

시몬 그는 구레네(현재 리비아 지방)를 살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다.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은혜의 길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이일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 그 나라를 변화시키는 큰 업적을 남겼다 한다.

1895에 지어진 자그마한 천주교회(프란체스코)가 있어서 순례 객들이 기도하고 가도록 장소를 공개하고 있다.


제6처 사랑의 보답-베로니카와의 만남

십자가행렬은 다시 서쪽언덕을 향하여 방향을 잡고 힘겨운 걸음으로 오르게 된다. 5처에서 약 100M 정도 오르면 왼쪽으로 기둥하나를 볼 수 있다 그곳에 6처라고 표시가 되어있어서 이곳에 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의 유래는 베로니카(성경에 나오는 열 두해를 혈루 증으로 아프다 낫은 여인)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피 땀으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드렸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여인의 손수건에는 예수님 얼굴형상이 찍혔고 이 손수건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707년에서 1608년까지 보존되다가 교황 요한5세가 그림으로 남긴 후 치우라 하여 그 뒤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다.

은혜 받은 열 문둥이의 비유를 보자 한 문둥이만 남고 다 사라졌다. 역사에 아름답게 그 이름을 올린 사람들 그들은 무명의 사람들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베로니카 여인 인 것 같다. 아마 이 여인은 채찍질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여인으로 영원히 이야기 되어질 것 이다.


제7처 두 번째 쓰러지신 곳

언덕을 향하여 안간힘을 쏟아 올라가면 현재는 옛 성의 중앙시장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옛 성에서 가장 번잡한곳이다. 그곳에 주님이 두 번째 쓰러진 장소가 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로마 천주교회의 기도처가 있어 순례 객들이 들러 기도하고 지나간다. 나는 가끔 순례 객들과 이곳에서 눈물의 기도를 할 때가 있다. 잠시라도 고난을 느낄 수 있는 자그마한 기도처이다.


제8처 울지 마라.
7처에서 계단을 타고 20M쯤 올라가면 십자가 구멍 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 8처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이곳에서 주님은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지금 이곳은 두꺼운 벽으로 막혀있다. 그리고 그 위 길은 크리스천 지구로 나가는 길이다. 애처롭게 우는 여인들과 오히려 종말에 대비하라고 마음다짐을 시키는 예수님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제9처 세 번째 쓰러지심.

8처에서 길을 돌려서 다시 혼잡한 중앙시장으로 내려와서 남쪽을 향하여 30M쯤 가다보면 위쪽에 계단이 나타나는데 이곳으로 올라가 보자 갑자기 혼잡한 시장에서 한가로운 길로 접어든다. 이곳에는 영문교회가 있다.(히13:12-13) 영문 밖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가까이 골고다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예수님 무덤교회의 탑을 볼 수 있다.

시리아 정교회 앞에 있는 문과 기둥에서 9처의 표시를 본다. 이곳에서 주님은 마지막 세 번째 쓰러지셨다. 문안부터 무덤교회 경내가 된다. 문으로 들어가면서 렌트한 십자가를 내려놓는다. 이곳에는 헬레나 기념교회 탑과 에티오피아 정교회사람들과 기념교회당들을 볼 수 있다. 자그만 에디오피아 교회당을 통과하면 무덤교회 정면이 나온다.

에디오피아 정교회 사람들은 이곳에서 동굴 같은 집을 지어놓고 평생을 무덤을 지키면서 산다고 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빈 무덤을 평생 지키느라 애쓴다는 생각을 종종해본다.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고난의 현장인 해골(골고다)장소는 외롭지 않는 것 같다.


무덤교회 앞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웅장한 모습보다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슬픔이 있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는 이 언덕에 비너스와 쥬피터 신전을 건립하여 기독교와 유대교를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예수님 무덤은 토사로 메워지고 그 위에 신전이 건립된 것이다.

이것으로 다시는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말고, 기독교인들은 황제숭배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모진 고통을 이겨내고 드디어 기독교는 꽃을 피게 된다.

313년 기독교가 인정되고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AD 326년경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 헬레나 황후는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셨던 골고다언덕을 찾아가고 싶었다. 헬레나의 방문요청에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 Mecarius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 당신에 사용되었던 십자가 형틀의 횡대를 발견하였다. 골고다 언덕은 확증되었고 헬레나에 의하여 336년경 이곳에 무덤교회가 건립되었다.

370년은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가 되므로 비잔틴 시대라는 기독교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고 무덤교회는 각광을 받는 성소가 된 것이다.그러나 이 교회는 614년 페르시아에 의하여 방화로 파괴된 후 “모데스토스“라는 사제에 의하여 재건된다. 1009년 회교 칼리프 ”하킴“에 의해 재차 파괴된 교회는 기둥만 남게 되고 이에 격분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십자군을 조직하여 1096년 성지탈환을 이룬다. 그리고 1149년 오늘날의 교회모습으로 무덤교회는 다시 세워졌다.

이제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자 들어가면서 우측의 작은 돌계단을 올라가보자. 돌계단은 전 세계 순례 객들에 의하여 반들반들하게 닳아진 모습이다


10처 십자가가 내려진 지점.

10지점의 벽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마치 예수님이 부친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런 말도 없이 어린양이 되어 끌려오신 모습을 연상케 한다.요한 19:23-24)


11처는 바로 앞에 있는 로마천주교 제단이다.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이 박히셨다. 벽화가 못 박히시는 모습을 밝히 알려주고 있다.(누가 23:33)


12처는 십자가가 세워진 정중앙 지점이다.

제단 밑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경배하는 모습을 본다. 이곳으로 나아가기 전에 스페인 천주교회에서 기증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엄마의 모습을 보라 가슴에 칼이 박힌 체 슬픈 눈으로 순례 객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정 중앙의 지점에서 우리는 십자가상의 일곱 단어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조용히 사도신경을 묵상한다. 때로는 소리 내여 고백하기도 한다.(마 27:45-51)


“다 이루었다“

성전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고 , 무덤 문이 열려 자던 자들이 일어나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 이제 세상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부활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12처는 그리이스 정교회 소유로 매우 어지러운 치장을 해놓아서 개신교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장소가 되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과 우리의 다시 삶이다. 이것을 기억하며 계단 아래로 다시 내려가 보자 직사각형의 돌이 놓여있고 사람들이 이곳에 무릎을 끊고 키스하는 모습을 본다.


제13처 입관 석 혹은 성별의 돌 또는 신묘의 원석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 바위가 보인다. 운명하신 예수님을 아리마대요셉이 내려서 무덤에 들어갈 준비를 한곳이다.

천주교회와 정교회 사람들은 이 장소도 신령한 곳으로 하여 이곳에 물건을 대어 놓거나 비비고 하면 복이 임한다 생각하여 여러 물건들을 그곳에 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현세적인 복을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제14처 예수님 무덤

신묘의 원석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사람들이 무덤에 들어가려고 길게 무리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리마대 요셉은 이곳에 자기 무덤을 준비하였으나 예수님께 드렸다.(누가 23:53, 요 19:40-41)

장사는 끝났다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시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골고다 언덕은 적막하여졌고 간간히 아직도 아쉬움에 돌아가지 못한 여인들의 흐느낌이 간간히 흘러나오고 있다. 안식 후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다가 천사를 만났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인류가 들어야 될 최대의 굳 뉴스가 선포되었다.


그렇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덤이라고 부르는 작은 두 개 방을 방문하려고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 무덤은 오랜 역사 속에 세워짐과 부서짐을 반복하다 1820년 소련의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이 무덤의 첫째 방은 천사의 방으로 천사들이 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서 마리아를 만난 그 바위의 일부라 한다.

두 번째 방이 예수님무덤으로 대리석으로 되었다. 길이가 세로 50센티 가로 2미터 정도 된다.


무덤은 단지 부활을 위한 도구로 사용 되어졌을 뿐이다. 무덤교회의 핵심은 부활이다. 주님은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부활 할 것이다. 인류는 모두가 죄 값으로 무덤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신 죽음으로 인하여 무덤을 이기고 사는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하므로 무덤교회에서는 무엇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오면 된다.

오늘날 무덤은 변형되어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옛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무덤 장소 뒤편에 있는 시리아 정교회 무덤으로 가보라 예수님 당시의 전형적인 돌무덤이 있다.

전승에는 아리마대 요셉과 야고보가 이 무덤에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 이 교회는 6개 교단(그리이스 정교회, 로마천주교, 시리아정교회, 콥틱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에디오피아 정 교회등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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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서병길 목사      2006.12.17 2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