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성지순례/이스라엘[종합]

유다 광야와 수도원

영국신사77 2008. 6. 24. 23:43

                                    유다 광야와 수도원

 

                       유다 광야(Judea Desert)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동안을 보냈던 장소로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인데 출애굽의 당시 광야로 등장하는 수르광야, 에담광야, 신광야, 바란광야 등은 모두 오늘날 이집트에 속해 잇는 시나이 반도 부분에 있는 광야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스라엘 지역 안에 있는 광야를 이야기 할 때는 크게 두 장소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유다광야와 이스라엘의 남쪽 거주 한계선인 브엘세바 아래에 있는 네게브 광야이다. 그중 먼저 유다광야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유다 광야는 사해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유다 지파의 지역을 유다 광야라고 말하는 데, 이 지역에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피신했던 엔게디, 많은 사해사본이 발견되었던 쿰란, 유다의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등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렇듯 광야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큰 도시 주변에 있고, 실제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약의 역사에서 광야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하자 그들은 쓸 수 있는 땅보다는, 광야와 같이 버려진 땅들이 영토에 훨씬 더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국가의 사활을 걸고 버려진 땅 광야를 개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광야를 개발할 때 가장 어려운 걸림돌은 물을 이곳으로 끌어드리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크게 세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물을 끌어다 쓰려 하였다. 첫 번째 방법은 지하수를 개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방법은 갈릴리 호수에서 송수관을 통해 이 곳 광야까지 물을 끌어다 쓰는 방법이었고, 세 번째 방법은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어 물을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물이 없어 메말랐을 따름이지 토질자체는 비옥한 땅이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이루어 광야지역은 옥토로 바뀌게 되었고, 유럽으로 수출하는 과일 꽃 등의 재배로 중요한 외화획득원이 되고 있다. 황무지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있다. 찬송가 233장은 많은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라는 찬양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많은 성도들은 황무지를 개간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 찬양에서 말하는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모습은 이스라엘의 기후를 설명한 것이다. 건기 당시 마른풀 밖에 없는 황량한 유다광야는, 우기인 겨울철에 비가내려 땅이 적혀지면 4~5월에는 황무지가 빨간색 아네모네로 뒤덮혀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찬송은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황무지가 아름답게 변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봄철에 해당되는 이때는 황량한 광야가 꽃과 풀로 뒤덮이는 장관을 연출하게 되는데, 이때 성지순례를 하신 분들은 아름다운 광야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하고 있다.

 

                                                                                                            출처 THE WORD OF GOD | lwd0428
                                                                                                            원문 http://blog.naver.com/lwd0428/80031627335

 

 

 

 
                                  가풍현 목사의 성서와 지리

                                      ** 유다광야 **

                                                                                소망의 샘(2007.11월호)

                                                                        
                                                                                      http://cafe.naver.com/somangsam/16  


 

   유다광야는 유다 중앙산지와 사해바다와 요단계곡 사이 남북으로 긴 모양을 띄고 있다. 북쪽 경계는 베냐민산지의 동쪽 경사지, 남쪽 경계는 북부 네게브와 만나는 지역이다.

   유다광야 동쪽 경사지는 사해와 요단계곡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유다산지에서 사해까지 직선거리는 20~25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루살렘(해발 800m)과 사해바다(해발 -410m)의 높이차이는 1200m나 된다. 경사지도 평지가 아니라 굵은 근육질의 모양을 이룬 여러 개의 단층으로 되어 있고, 유다산지에서 사해까지 평균 높이가 300m 이상 되는 단층이 5개나 존재하고 있다.

  동쪽으로 광야 끝부분에 해당하는 엔게디 근처에서는 직선거리가 2km도 안되지만 높이 차이가 무려 600m나 되는 곳도 있다. 절벽형 급경사로 인하여 유다광야는 깊은 계곡들이 많다.

   우기철(11~3월)에 유다광야에는 강우량이 적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광야에서 모아진 물이 절벽형의 좁은 계곡을 지나가기 때문에 급류로 인하여 홍수를 이루기도 한다.

   유다광야가 사막화 된 것은, 사해지역이 지중해 수면보다 410m가 낮은 지역으로, 사해 쪽으로 형성된 급경사가 이곳에 비를 거의 내리지 않게 만들면서 기온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후 조건과, 토양이 주로 연성 석회암으로 물을 잘 흡수하고 땅이 쉽게 건조해지기 때문에 물과 식량이 늘 부족한 지역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정착하여 거주한 흔적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유다광야는 다른 광야나 사막과는 달리 그 폭이 20km정도로 제한된 지역이고, 사해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직선거리가 불과 22km 정도로, 인근의 유다산지와 예루살렘, 베들레헴, 드고아. 헤브론 등 산지의 중심 도시들과 근접해 있다.

 

  유다광야는 네겝이나 시나이 사막지역과는 달리, 고립된 지역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거주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을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이 아니기 때문에, 도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25-)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이 등장하는데 매우 가파르고 위험한 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다광야는 불모의 광야임에도 불구하고 유목민들이 살고,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에게 대항하는 정치적 반란 세력들, 사회를 떠난 은둔자들, 그리고 수도원 형태의 공동체를 이룬 종교적 집단들(예->쿰란공동체)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피신하였던 '엔게디 요새'(삼상 23:29)와 세례요한이 금식하며 기도했던 곳도 유다광야였으며(눅 1:80), 예수께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시험을 받은 곳(마 4:1-11)도 유다 광야였다.

 

                                       

                                        예수님 공생애 초기사역.사해 서쪽에 유대광야가 보임.

 

  특히 유다광야는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위기를 만나게 될 때마다 항쟁자들의 마지막 저항지가(마카비 전쟁이나 마사다의 항쟁, 그리고 바르코흐바의 항쟁 등) 되기도 했고, 비잔틴 시대를 거쳐 중세에도 유다광야에는 수많은 수도원들이 세워졌는데, 이는 이 지역이 지니고 있는 독특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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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다 광 야 
 

                          

                                

                                               유다 광야-1(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개간되지 않은 황량한 벌판을 말하며,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사해 동편과 시내반도를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주로 위대한 주의 종들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신앙의 연단을 받는 장소로 언급된다.(출 3:1-4, 왕상19:4. 마3:1, 4:1) 초장,사막,황야,황무지 등으로도 번역된다.

 

  마태복음 3:1에 1회 예수의 시험을 받으신 장소로서 인용되어 있다. 구약에서는 다만 광야로서 유다에 속한 광야를 가리키고, 또한 다윗이 유랑한 유다들에 대하여 인용되어 있다.

 

  사해 서쪽에 전개하는 높은 지역의 광야로서, 전혀 나무 하나 풀 하나 없는 황량한 석회암의 기복있는 지역이다. 서쪽 바다에서 옮겨 오는 비가 중앙 산악지에 막혀, 비의 그늘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건조하여 불모의 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경질의 석회암층에 스며든 빗물은 곳곳에 샘을 솟게 하고,비옥한 오아시스를 만들고 있다. 엔게디의 가까이에는 폭포도 보여진다.

 

                              

                                                     유다 광야  골짜기-1(출처-http://blog.daum.net/hyegeon)

                   

             

                               

                                                                                   유다 광야-2  

 

                               

                                                                                         유다 광야-3

  

                               

                                                                                        유다 광야-4 

 

                               

                                                                                 유다 광야  골짜기-2

 

                          

                                                유다 광야 네비무사수도원(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유다 광야 마르 사바수도원-1 

 

  유대광야 기드론 계곡가에 세워진 수도원이다. 사바 수도사의 은둔처였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마르 사바 수도원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11명의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있는 금녀의 수도원이다.

 

                        

                               유다 광야 마르 사바수도원-2 (출처- http://blog.daum.net/imajoy) 

 

 

 

                                 성 사바 수도원장


   성 사바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교외 무탈라스카(Mutalaska)에서 어느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친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전근감에 따라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그는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다른 삼촌에게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삼촌들이 집안 재산에 대한 소송 문제로 괴롭히자, 이번에는 고향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18살 때인 456년 그는 예루살렘의 파사리온 수도원으로 옮겨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 1월 20일)의 제자가 된 성 사바는, 그에 의해 와디 무켈릭(Wadi Mukelik)에 있는 성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7년을 보냈다.

 

  478년부터 예루살렘 남동쪽의 와디 엔나르의 동굴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이신 성 에우티미우스가 운명하시자, 그는 예리코(Jericho, 여리고)와 가까운 사막에서 혼자 4년 동안 지냈는데, 이때부터 제자들이 모여 들기 시작함으로서, 483년에는 일종의 수도 공동체인 '마르 사바 라우라'를 형성하였다.

 

  1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이집트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제자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팔레스티나 지방의 모든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고 회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권한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을 따름이다. 또한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정통교리 수호를 위하여 헌신했는데, 오리게네스파와 그리스도 단성론을 특히 배격하였다.

 

  531년 고령인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봉기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후계자를 선임한 뒤, 532년 12월 5일 94세의 고령으로 마르 사바(Mar Saba)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초대 수도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며, 동방 수도회의 설립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글- http://cafe.daum.net/awg) 

 

 

 

                        

                                                                        유다 광야 성 죠지수도원

                                                 

                                                            

                                                                                    2007-09-13  성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