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슬레서 (Mary Slessor 1848-1915): 최초의 여성 개척선교사
Missions and Missionary Stories
메리 슬레서 (Mary Slessor 1848-1915): 최초의 여성 개척선교사 윌리엄 케리가 선교의 문을 연 이후 그 뒤를 이어 수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나갔지만, 여성이 독신으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비록 독신 여성들이 선교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내부에 머물면서 사역을 돕는 역할을 하긴 했어도 여성 선교사들이 위험한 오지에 나가 개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개척 선교의 장을 처음 열었던 선교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메리 슬레서이다. 그녀는 독신여성이 선교사가 되는데 수많은 편견과 오해, 구조적 장애물이 산재한 시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아프리카의 오지에 뛰어 들어가 개척 선교의 길을 열었다. 메리는 과거에 몇몇 선교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나이지리아의 오코용이라는 오지로 들어갔다. 그런 위험한 곳에 여자 혼자 들어간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곳에서 50년 동안 두 번의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오코용 부족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치료했으며, 부족 간의 분쟁을 해결해 주는 공로를 인정받아 한때는 대영제국으로부터 오코용 지역의 첫 번째 부영사로 임명받기도 한다.
그녀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그 아빠와 쌍둥이들을 죽이고 엄마를 추방하는 풍습과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 쌍둥이들과 추방된 여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한다. 그녀는 말라리아에 여러차례 걸려 사경을 헤메는는 고통을 겪었고, 주술과 마술의 성행, 사악한 풍습이 복음사역을 가로막는 악조건 속에서도 선한 싸움을 위하여 영적투쟁을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변함 없이 실천한다 비록 그녀가 마술이나 미신의 퇴치에는 큰 영향을 끼쳤지만 오코용 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사명이 개척자적 사역임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 사역의 발판을 놓은 역할에 충실하였으며 본국의 선교회에 보고서를 보낼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개종해 교회가 차고 넘친다는 식의 과장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학교를 설립하고 기술을 가르치며 교역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여 후배 선교사들의 사역을 위한 길을 여는데 전력을 쏟았다. 그녀가 나이지리아에서 사역하는 기간 동안 선교사역은 극적으로 확장되었고, 수많은 아프리카 선교단체들이 세워져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를 선두주자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고, 여성선교사의 부흥기가 도래하였다. 그녀는 맨발에다가 옷은 대충 입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여자였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식의 진흙 움막에서 아프리카 식으로 살았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프리카 사랑은 한 평생 변하지 않았다. 비록 많은 동료 선교사들에게 비난의 소리를 들을 만큼의 결점과 기이한 행동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메리 슬레서를 통하여 아프리카 오지에 복음의 꽃을 피우는데 도구로 쓰셨고, 그녀가 섬겼던 현지의 모든 부족들로부터는 "백인 어머니"로 불리우는 은혜를 베푸셨다.
한국컴퓨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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