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엘리옷과 아우카 부족선교
Missions and Missionary Stories
짐 엘리옷과 아우카 부족선교 짐 엘리옷(Jim Elliot)은 시카고 휘튼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1956년 어느 날 친구 네 명과 에콰도르 아우카 부족 선교를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아우카 부족은 다른 종족을 전혀 받아드리지 않는 난폭한 야만종족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짐 엘리옷은 학창 시절,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기도로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에콰도르의 밀림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닥친 위험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아온 아우카 부족은 의심과 적대감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젊은 이방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엘리옷과 그 친구들이 아우카 부족에게 내미는 사랑의 손조차도 거부하고 결국 모두 창으로 처참하게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가 1956년 1월 8일입니다. 그 당시 라이프 지는 이들의 소식을 10여 페이지에 걸쳐 크게 보도했습니다. 그 제목은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What An Unnecessary Waste!"였습니다. 그 때 갓 결혼한 엘리옷의 아내 엘리자벳은 상한 갈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태 속에는 엘리옷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자벳은 남편과 친구들을 죽인 무시무시한 아우카 부족을 섬기기 위해 간호원이 되어 에콰도르로 향합니다. 그런데 엘리자벳이 아우카 부족 마을에 들어가자 원주민들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그냥 살려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자를 죽이는 것은 남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는 그들의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자벳은 남편을 죽인 아우카 부족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함 없이 정성을 다해 돌보며 섬겼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엘리자벳의 행동을 줄곧 지켜보아 왔던 추장이 그녀를 불러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나라에서도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 텐데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며 우리를 돕는가?" 그 때 엘리자벳은 처음으로 몇 년 전 죽은 남편과 네 청년에 대한 얘기를 꺼냅니다. 그들이 이루지 못했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그런다는 말을 들은 추장은 크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 신을 당신이 섬긴다면 나와 우리 부족도 모두 당신의 신을 모시겠다."고 선포한 뒤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엘리자벳은 평생을 아우카 부족 선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현재 아우카 부족에는 수백 개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목사 중 한 사람이 짐 엘리옷의 유복자 아들입니다. 그는 아빠가 죽은 바로 그 강에서 세례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 장로는 아빠를 창으로 살해한 그 당시 아우카족 청년입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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