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빙스턴
선교사 열전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가난한 장사꾼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방직공장에서 고생하며 틈틈이 공부하여 미개한 나라 선교를 위해 의사가 되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렸을 때의 가난과 고생이 아프리카 선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죽어 만일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역시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하며 자라고 싶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선교사로 일하다가 생을 마친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요, 대영 제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아프리카의 개척자 데이빗 리빙스턴이 한 말이다.
리빙스턴이 16년간 밀림에서 선교하다가 잠시 영국에 귀국했다. 그는 27번째 말라리아에 걸려서 사선을 헤매다가, 아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연약한 몸을 이끌고 켐브리지대학에서 설교를 하게되었다.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사자에게 물린 한쪽 어깨, 팔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마치 썩은 나무토막 모양으로, 앙상하고 나약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리빙스턴은 이렇게 설교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놓고 즐거워하지 아니한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서 많은 희생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도무지 갚을 수 없는 하나님께 진 큰 빚의 작은 부분을 갚았을 뿐인데, 이것을 어찌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장차 영광스러운 소망과 복된 상급을 약속 받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희생이 되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한다라는 말과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것은 절대로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입니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결코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됐다.
한 사람은 황금 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오므로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요,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 정책과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인간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전자는 세실 로드(Cecil Rhodes)요,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고, 리빙스턴은 하나님(God)을 믿었다.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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