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교회(이하 백주년기념교회)의 이재철(59) 목사가 부흥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목사는 한국의 크리스천과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목회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목회 이력은 특이하다. 서울 주님의교회를 개척해 부흥시킨 뒤 약속대로 10년 만에 교회를 사임하고, 홀연히 스위스로 떠나 제네바 한인교회를 담임하다 귀국했다. 잠시 개척교회의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며 집필 활동에 전념하다가, 2년 전부터 초창기 한국에서 사역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역인 양화진에 세워진 백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양화진의 묘지기’로 한국기독교 성지를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백주년기념교회는, 2년 만에 2,000여명이 출석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 20일 백주년기념교회에서 이 목사를 만나 부흥과 참된 목회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요즘 모든 사람들이 부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흥은 사람들이 본질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그 부흥은 양적일 수도, 질적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부흥이 인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본질에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맞는 부흥의 모습을 펼쳐가십니다.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은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복음 자체에 불순물을 넣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욕을 위해 복음을 미끼로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복음은 미끼가 아니라 우리 삶의 목적 자체입니다. 이 점만 분명히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대에 맞는 부흥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올해 한국 교회에 부흥과 관련된 많은 집회들이 있었지만 부흥의 현상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정 부흥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10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개하더라도, 그 회개한 내용을 자기 삶의 처소에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자복과 회개를 구분합니다. 자복은 죄악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죄악의 고백은 자복에 불과합니다. 수십만명이 모여 죄악을 고백했지만 그 고백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물들어 회개를 안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교인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빛과 소금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부흥의 현상입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한국 교회를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분이 많은 것 같은데요.
“흔히들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를 이뤄야 균형있는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정 지 의’가 아니라 ‘지 정 의’ 입니다. 이성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에 감정이 따라갈 때, 의지가 생깁니다. 이런 순서로 받아들인 신앙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감정이 먼저 가고, 이성과 의지가 그 뒤를 따라갈 때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이성과 의지가 항상 뒤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기독교(개신교)는 너무나 감성적인 측면에 치우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목회나 선교 등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 지 의’의 신앙에서 ‘지 정 의’의 신앙으로 바뀔 때, 한국 기독교라는 열차는 올바른 궤도를 찾아 갈 수 있는 것이지요.”
-목회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다시 목회를 처음부터 시작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회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완수를 위해 교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목회는 목사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절의 목회를 내 실력으로 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 실력이나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능력으로 도저히 안되는 일이 내 앞에 일어났습니다. 또다시 목회를 시작한다 해도 그저 그분께 맡기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습니다. ‘이렇게 목회를 해야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습니다.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신학생이 목사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원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린시절이 좋아야 합니다. 어린시절에 어른들로부터 정상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이 목회를 하면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해치게 됩니다.
둘째는 좋은 자녀가 돼야 합니다. 셋째로는 좋은 남편이나 아내가 돼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먼저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어린시절의 상처에서 회복되고, 오늘부터라도 좋은 남편과 아내, 좋은 자녀가 되기를 위해 노력한다면 좋은 목회자가 될 자질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부분 교회가 목회자를 찾을 때, 이런 점을 보지 않습니다. 학위나 조건 등 배경을 봅니다. 그러다보니 상처투성이의 목회자가 넘치게 되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목회를 하고 있다고 말하시는데, 믿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는 먼저 연속성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뜻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을 본 뒤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로마에 가기까지는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할 때는 자기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할 때에는 반드시 희생이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헌신한 사람들을 존귀하게 높여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른다고 말하면서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유익을 받는다면. 한번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라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국 복음을 미끼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불순물을 타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태형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
[명설교자에게 듣는다―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설교자가 희생하면 교회위기 사라질것” |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 담임 이재철(60) 목사는 본질을 추구하는 목회자다. 성도들은 물론 특히 장래의 목회자와 설교자가 될 신학생들이 따르기를 원하는 목회자 가운데 한 명이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이 목사는 이 땅의 성도들이 진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면서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었다. 최근 합정동 양화진 홍보관에서 다시 만난 이 목사는 좋은 설교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설교가 아니라, 사람을 진짜 크리스천으로 변화시키는 설교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설교자들이 자신의 목회적 야망을 위해서 복음을 '미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설교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측면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서 그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의 언어로 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당신의 마음을 전하는 행위가 바로 설교입니다. 설교를 듣는 청중의 측면에서 설교는 청중의 눈의 비늘을 벗겨주는 것입니다. 사울의 눈의 비늘이 벗겨지면서 그는 바울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이기심과 자기 욕망, 그릇된 습관 등 수많은 비늘이 있습니다. 비늘 때문에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매일 거듭난다는 것은 그런 비늘들을 벗는 것입니다. 그래야 바르게 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설교자의 측면에서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입니다. 헌신은 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합니다. 설교가 선포되는 이 세상은 거짓과 투기, 온갖 기득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는 청중에게 말씀을 전하고 칭찬받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는 세상은 물론, 심지어는 자신이 목회하는 성도들로부터 욕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가운데 되돌아오는 욕이 있다면 그것까지 감수하는 것이 바른 설교자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에게 설교는 헌신입니다."
-소위 '잘하는 설교' '좋은 설교'는 결코 사람들이 환호하는 설교는 아니겠지요. 좋은 설교, 바른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죠.
"요즘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이게 하는 것보다는 청중을 변화시키는 설교가 좋은 설교입니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 갇혀 계실 때에도 예배당에서는 여전히 설교가 외쳐지고 사람들은 좋은 설교가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에 외쳐진 설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옥에 계셨던 주 목사님으로 인해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 역시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강단의 위기라는 소리가 많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우리의 강단이 위기입니까.
"고린도후서에 보면 사도 바울 시대에도 강단의 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혼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미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야망이나 개인적 목표를 위해서 복음을 미끼로 써서는 안 됩니다. 신자의 수가 감소하는 것이 진짜 위기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복음에 불순물이 들어 있고, 복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화되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위기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 강단에서 사랑과 함께 하나님의 정의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을 모이게 하는 설교에서는 사랑만 외쳐집니다. 그러나 정의가 없이 외쳐지는 사랑은 마약과 같습니다. 물론 사랑 없이 정의만 부르짖으면 폭력이 되지요.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정의 속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기초한 정의를 선포하시다 기득권층인 유대교인들의 욕을 먹고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설교자들이 그런 헌신된 자세로 욕먹을 각오를 갖고 사랑과 정의를 바르게 선포하면 교회의 위기는 사라질 것입니다. 한국 교인들의 헌신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바르게 깨닫지 못해서 잘못 헌신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강단이 살아서 모든 사람들 눈의 비늘을 벗기고 본질을 깨우친다면 우리 사회는 쉽게 바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십니까.
"저는 '순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성경을 순서대로 설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도행전을 본문 삼아 설교하고 있습니다. 강해설교는 주로 한 장 전체의 틀을 짜고, 그 틀 안에서 메시지를 전개합니다. 저는 주어진 구절, 혹은 한 단어를 통해서 성경 전체를 봅니다. 주일 설교가 끝나면 자연스레 다음주 설교 본문이 결정됩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그 본문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 구절을 창으로 해서 세상을 봅니다. 여러 가지 깨닫는 점을 메모해 둡니다. 토요일 오전 10시쯤부터 메모를 기초로 설교문을 작성합니다. 보통 주일설교는 35분에서 37분 정도를 하는데, 그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해서 평균 12시간 걸립니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한 뒤 주일 아침에 나올 때까지 대문 밖을 나가지 않습니다."
-설교문은 모두 외우시나요.
"주일 새벽에 일어나서 모두 외웁니다. 스타일 차이인데요, 저는 원고를 보고 읽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외우는 과정은 힘들지만 모든 설교문을 숙지해서 교인들 얼굴을 대면하고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외우기 위해 A4 용지 절반되는 종이 앞뒤에 작은 글씨로 설교문을 작성합니다. 설교 내용은 검은색으로, 성경구절은 파란색으로, 원어는 빨간색으로, 예화는 초록색으로 하는 등 저만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단에 서면 이 순서가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풀려지면서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전하게 되는 것이지요."(실제로 이 목사가 보여준 설교 메모장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먼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인생에서 설교자의 성공이란 어떤 것입니까.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전한 설교로 인해 사람들이 진실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교자의 성공은 결코 세상에서 판단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성도 한 명을 놓고도 최선을 다해 설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이태형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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