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1 17: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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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기간 선교사 전기들을 집중적으로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마음을 울린 책이 적지 않았다. 특히 ‘그 왕을 위하여’(중앙m&b)와 ‘닥터 홀가의 조선사랑’(크레도)을 읽으면서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했다. 피선교지 사람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한 선교사들의 행전 때문이었다. ‘그 왕을 위하여’의 저자 김자선 선교사는 지난해말 직접 인터뷰했던 터라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당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만한 영성을 가진 선교사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있는 자리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다고 했다. “선교사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는 사람”이라고 한 고백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김 선교사는 1986년 예장 고신 교단 첫 여성선교사로 파송됐다. 그는 필리핀 최북단 까가얀 도의 도청소재지 뚜게가라오를 선교베이스로 삼고 공산반군의 출몰로 인해 현지인들조차 접근을 꺼리는 라굼 등 오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선교사 이전에는 그 지역에서 선교사가 활동했다는 기록이 없었다. 이 때문에 “언제 죽임을 당할지, 여자로서 얼마나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면서 영웅 심리로 그런 곳에 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듯 헌신의 결과는 놀라웠다. 현재까지 정식 교회 17곳과 기도처소 17곳, 유치원과 초등학교 및 원주민사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등을 설립했다. ‘닥터 홀가의…’는 2대에 걸쳐 한국을 사랑했던 파란 눈의 의료선교사 가족 이야기다. 1대 윌리엄 제임스 홀과 그의 부인 로제타 홀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재 고려대의과대)를 세우고 한글점자도 만들었다. 2대 셔우드 홀과 부인 메리안 버텀리 홀은 최초로 결핵요양원을 세워 결핵퇴치에 앞장섰다. 이들 모두 서울 합정동 양화진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묻혔다. 이들의 한국 사랑은 끝이 없었다. 1984년 셔우드와 메리안이 대한결핵협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91세의 셔우드는 노쇠한 탓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때문에 주치의는 한국행을 말렸다. “나는 조선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은 내 고향이에요. 죽더라도 고향에 가 죽을 수 있다면 더 행복할 테니 염려말아요.” 그는 오히려 오랫동안 한국어를 쓰지 않은 것을 걱정했다. 많은 선교사들은 선교 현장을 이탈할 경우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많지 않을거라고 걱정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현장을 고수하려고 애쓴다. 의료선교사는 더 그렇다고 한다. 고국의 병원에서 자신의 자리를 내놓았다면 서로 오겠다는 사람이 있겠지만 의료선교사라는 자리를 일반 의사들이 여간해서는 탐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선교사와 닥터 홀가 사람처럼 피선교지 사람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사역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zhuanjia@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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