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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시기… 피아노는 나의 힘" /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

영국신사77 2008. 5. 27. 11:30
"고통의 시기… 피아노는 나의 힘"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
  "남편 사별 후 경영 일선 나섰을 때
         새벽마다 피아노 치며 용기와 희망 얻어"
 
                  무주=곽아람 기자 aram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 무주리조트에서 무료 음악회를 열고 있는 양귀애 대한전 선 명예회장은“공연 문화가 발달하지 않 은 이 지역 사람들을 음악의 세계로 초대 하는‘음악 전도사’역할을 하고 싶다” 고 말했다./대한전선 제공

"나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사람입니다. 내가 음악을 통해 얻는 순화된 감정을,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생전에 마음먹고 인수한 리조트가 있는 이곳 무주 사람들에게도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토요일인 24일 오후 전북 무주군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무주리조트 티롤 호텔 5층에서 양귀애 (여·61)
대한전선 명예회장이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 뒷면에 엷은 높은음자리표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이날은 그가 직접 기획한 무료 음악회 '새터데이즈 안단테(Saturday's Andante)'의 첫 실황 공연인 첼리스트 정명화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었다.

지난달 12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열리고 있는 이 음악회는 올해 7번의 라이브 콘서트와 18번의 영상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추억의 영화음악 이야기' 등의 영상 음악회가 이미 치러졌으며, 하반기에는 스페인 여성 지휘자 등을 초청해 라이브 콘서트를 열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무주리조트 홈페이지(www.mujuresort.co.kr)를 통해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약을 하면 누구나 추첨을 통해 무료 초대권을 받을수 있는 이 음악회에는 매번 무주, 전주, 대전 등에서 300~400명의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지난해 여름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을 초청해 열었던 음악 페스티벌이 호평을 받았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음악회를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산 출신인 양 회장은 고(故) 양태진 국제그룹 창업주의 막내딸이다. 여섯 살 때 자택 아래채에서 묵고 있던 6·25 피란민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던 해인 1969년, 고(故) 설원량 전(前) 대한전선 회장과 결혼했다. 35년간 남편을 내조하며 가정주부로 지냈지만 2004년 3월 남편이 뇌출혈로 급작스레 세상을 뜨자 대한전선의 제1대 주주가 되면서 경영 전선에 나서야 했다. 그는 "피아노가 없었다면 그 힘든 시기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불면의 밤이 계속됐어요. 이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이냐, 내 이름을 걸고 남편의 영혼이 깃든 회사를 일궈 나갈 것이냐…. 매일 내 안에서 '절망의 나'와 '희망의 나'가 다투곤 했지요."

고통 속에서도 어김없이 새벽은 왔다. 그는 기어가다시피 피아노 앞으로 가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위안이 되는 곡들을 골라 쳤어요. 20~30분 치다 보면 정신이 들고, 30~40분을 치다 보면 힘이 나고, 1시간이 넘어가면 비로소 나 자신과 타협을 하게 되었죠. '정신 차리고 살 거지? 좌절하지 않을 거지?'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해 나가면서 차츰 안정을 찾게 되었어요."

이후 회사 경영을 전문경영인인
임종욱 부회장에게 맡긴 양 회장은 회사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임직원들을 자택으로 불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 들려주며 친목을 도모했다.

올해 53주년을 맞는 대한전선은 '반세기 연속 흑자 기업'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최근엔 남광토건과 온세통신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일 때문에 빈에 갔다가 짬을 내 유명 음악가들의 행적을 살펴보았어요. 베토벤이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다는 다락, 슈베르트의 집 등에서 그들은 어떻게 영감을 얻어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고 다른 세계로 이끌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지요. 내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 준 음악의 힘을 무료 음악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날 밤 티롤호텔 지하2층 콘서트장의 객석 500석이 꽉 찼다. 관객 홍한일(여·33·대전광역시)씨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공연을 보러 왔었다"면서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인근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입력 : 2008.05.26 23:17 / 수정 : 2008.05.27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