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 미디어 2월 3호 기사
2007년 12월 7일, 태안을 비롯한 인근 서해안에는 청천벽력 같은 재앙이 덮쳐왔다. 근해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 헤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 크레인이 부딪치면서 원유 1만 5천톤이 유출돼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태안반도와 주변 서해바다는 한 순간에 재앙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매년 수십만 명이 다녀가던 해수욕장은 기름 밭으로 변했고 횟집과 펜션 등의 관광산업과 지역경제는 관광객들의 외면으로 붕괴 직전의 상황으로 추락하게 되었으며 검은 기름에 모든 것을 빼앗긴 태안반도 주민들은 당장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절망스런 처지에 몰리게 된다.
그렇게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약 2달의 시간이 흘렀다.
관, 군은 물론 전국에서 달려온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태안반도는 검은 그림자를 거두며 예전의 모습을 빠르게 되찾아가고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갯바위와 자갈 등에 눌러 붙은 기름찌꺼기를 닦아낸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서해안을 다시 희망의 터전으로 바꿔놓는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세계 외신들은 일제히 ‘기름띠에 맞선 희망의 인간띠’라 보도 했으며, 이기주의가 만연을 넘어 팽배해 있다 말하던 세상 속에 어려울 때 더욱 힘을 함께한다는 한국인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서해안 수산물의 '묻지마 퇴짜' 행태로 어업을 중단하고 있는 어선
하지만 최근 태안지역의 2차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들의 자살소식이 잇따라 이어지고 있다. 당장 관광객들을 통한 하루 수입에 의존했던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상실감보다 현실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경제적 곤란함이 그 이유일 것이다.
서서히 옛 모습을 회복해 가고 있는 태안반도.
이제 화두는 희망의 인간띠에서 희망의 관광벨트로 이어져야 할 때이다.
태안 군청 홍보부와 현장 조사에 따르면 태안 8경을 비롯한 태안반도내의 관광지의 경우 해안 오염에 직접적 피해를 입은 몇몇 곳을 제외한 모든 곳들이 정상적인 여행이 가능했으며 숙박업 및 요식업 등의 주변 관광 서비스 역시 100% 정상 영업은 아니지만 관광객의 수요에는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었다.
또 기름 유출에 따른 직접적 해안 오염 피해를 입은 태안반도 내 근흥면, 소원면 역시 해수욕업을 제외한 모든 관광 시설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태안반도 내 다수 위치한 회집의 경우 영업 점포 모두 서해안 수산물이 아닌 타 지역에서 공수하거나 실내에서 양식한 산물을 제공하고 있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태안지역 어민
이 밖에 모든 서해안 수산물은 오염 및 오염 인근지역이 아닌 최소 70마일 밖 원해에서 조업된 것으로 현장에서의 정밀검사를 거치고 있으며 식약청과 해양수산부는 합동으로 오염지역 및 인근 지역에서 유통, 판매되는 수산물과 횟집 수족관 물에 대해 3개월 동안 주 1회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고 시중 유통 중인 수산물에 대해서도 모니터링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해양수산부와 충남지역 관 시설 역시 오염수산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지도, 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앞으로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생산, 출하되는 수산물에 대한 점검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따라서 최근 유통되는 서해안 어폐류의 경우 더욱 안전이 보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서해안 수산물이지만 현지 어민들이 느끼는 대우는 냉담하기만 하다. 안흥항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김홍일씨(43세)는 “멀쩡한 생선 사주지도 않고 설령 사려고 한다 해도 제값 받기도 어렵습니다. 묻지마 퇴짜는 일쑤죠. 그나마 주민들이 대책회의라고 해서 나온 대안이 우리라도 서해안 수산물 먹어주자 정도입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태안 지역에 영업 중인 모든 횟집은 모두 정상적인 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오염지역인 안흥항 부근에서 영업 중인 횟집을 찾았을 때 판매하고 있는 모든 수산물은 관광객들이 즐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면읍과 남면읍의 경우 기름 유출의 직접적 피해가 거의 없는 곳으로 주민의 70% 이상이 관광 서비스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관광객들의 외면에 평소 수요의 약 10/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면도에서 펜션업을 운영하고 있는 정혜선씨(58세)는 “관광객 수요가 줄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하는 게 맞는 거죠. 그래도 와중에 한두 손님오시면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미안할 정도에요. 또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이곳은 깨끗하니까 오셔도 됩니다 라고 홍보하는 것인데 그게 무슨 영향력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현재 오염 지역의 경우 봉사활동과 테마여행 등이 진행되고 있어 지역 경제가 미비하게나마 유지되고 있었지만 안면도와 같이 오염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은 이러한 효과 조차 기대할 수 없었으며 관광객들의 발길마저 끊겨 어떠한 대책조차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보상대책 또한 오염지역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이 예상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300평 가량의 넓은 음식점에는 휴일임에도 스산하기만 했다.
방포항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준기씨(35세)는 “모든 게 그대로인데 사람만 없습니다. 그저 한 손님이라도 드시고 가셔서 태안 괜찮으니까 가도 된다 이렇게 입 소문이라도 내주시겠지 하는 마음에 손해 볼 것 뻔하면서도 문은 열고 있는데, 이마저도 시원찮고 수족관에 있는 고기들은 매일같이 버려지는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방포항에는 저녁 무렵에 찾았음에도 점포 내에는 손님이 전혀 없었으며 인근 도로 역시 교통량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처럼 비오염지역 내 주민들에게는 생존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조금이나마 상황을 유지하게 했던 ‘방학시즌’이라는 시기적 조건마저 개학이 다가옴에 따라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두손두발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회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 중 접한 주민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오셨다 바로 가셔도 좋으니 제발 찾아주기만 해도 좋겠습니다’였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던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 이후 을씨년스러움과 경제적 공황, 그로 인한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태안반도 여행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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