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진짜 건달 아냐?”
키보다 마음이 큰 ‘알고보면 성실男’
[조선일보] “저 사람 진짜 철가방 아냐?”(주유소 습격사건)
“진짜 레슬러라는데!”(반칙왕)
“전직이 건달이었다잖아!”(달마야 놀자)
“어쩜 생긴 것도 만화니?”(화산고)….
최근 ‘바람의 전설’을 비디오로 본 해외동포는 정말 카바레의 제비였다가 영화에 우연히 출연한 줄 알았다는 메일도 보내왔다. 영화배우가 아니라 언제나 영화 속의 그 사람 같은 남자, 김수로다.
‘투캅스’ 단역 한 컷부터 시작해 꼬박 10년 동안 영화를 해오던 김수로. ‘달마야 놀자’와 ‘화산고’가 연달아 개봉하던 2001년 가을에 김수로는 너무 심한 자신감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 있었단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팬카페 회원 수는 하루하루 늘어가고 시나리오는 쌓이고. “이제 김수로 인생 폈다, 이제 톱을 향해서 가는 길만 남았다”며 자다가도 웃었단다. 몸값, 이름값 그래프가 함께 올라가는 ‘주연배우 김수로’가 코앞에 와 있다는 흥분, 여전히 연기파 감초 김수로만을 원하면 정중하게 거절하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 그를 놓고 준비하던 영화 몇 편이 크랭크 인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고 마음의 상처도 컸다.
한국영화의 앞길을 개척할 새로운 주연배우가 되고 싶었던 김수로 혼자만의 의지가 대중에게 전달될 리가 없었다. ‘주유소 습격사건’ 작가 박정우의 감독 데뷔작, ‘바람의 전설’에서 역시 김수로다운 제비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낸 그는 홍보를 위해 오락프로에도 출연했다. 그 유명한 입담이 화제가 되어 쇼 오락프로 MC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10년 동안 알리지 못한 것이 한두 시간 TV 출연으로 전국적으로 퍼진 것. 그 여파에 본인도 놀랐다. 하지만 모든 유혹을 거절했다.
인사성 밝고 매우 성실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
영화배우 하면서 집안 빚도 다 정리하고 여동생 둘도 시집 보낸 김수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자신이 나온 안성 ‘안법고등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께 인사드리는 성실한 남자다. 책과 그림을 좋아하고, 춤과 무술을 계속하며, 드럼을 배우고, ‘수시로’라는 축구단을 만들어 조인성·원빈·장혁 등과 1주일에 한 번 운동도 하고 있다. 쉬면서도 쉰 적이 없는 영화계 준비맨으로 유명하다.
40대에 톱 연기자가 되고, 50대에 깊이 있는 연기자가 되며, 60대에는 배우로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꿈꾼다는 김수로. ‘S다이어리’에서 김선아의 남자로, 8월 말부터는 6·25전쟁 때 무인도로 떨어진 세 명의 병사 이야기인 ‘무기여 안녕’을 제주도 올 로케이션으로 찍는다. 관객이 웃는 순간을 미리 읽는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가진 그는, 본성을 버리고 광적으로 연기하는 주드 로(Jude Law)의 매력에도 도전하고픈 욕심이 있다.
인간관계, 선후배, 잘해준 사람을 우선 생각하는 게 ‘의리’라고 여기던 그. 몇 년 전 영화가 성공한 뒤 업(up)되어 “저 이 회사 영화는 무조건 출연할래요!” 한 적이 있다. 그때 들은 말. “좋은 관계와 일은 다르다. 서로 자유롭자!” 당시엔 서운했지만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다. ‘무조건’이 아니라 상대가 찾는 ‘조건’에 맞는 배우가 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은 이 남자, 185㎝의 큰 키보다 마음이 더 큰 배우가 되어 있다.
(글·사진=정승혜 씨네월드이사·영화칼럼니스트 )
▲ 김수로는
본명 김상중. 73년 안성 출생.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1993년 ‘투캅스’에서 경찰서 앞을 지키는 위경으로 데뷔. ‘쉬리’ ‘화산고’ ‘달마야 놀자’ ‘바람의 전설’ 등 출연. 연극무대 경력은 극단 목화의 ‘백마강 달밤에’ ‘로미오와 줄리엣’, 극단 유의 ‘햄릿’ ‘택시 드리벌’ 등. 예명은 “빼어난 길을 가라”는 뜻으로 목사님이 지어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