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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15-도탄 부부와 블레셋 고고학

영국신사77 2007. 11. 1. 19:25
             성지를 찾아서 15-도탄 부부와 블레셋 고고학 
                                                                                   김성 교수(협성대학·성서고고학)



  골리앗으로 대표되는 성서속 한 이방민족의 정체를 밝히는 블레셋 고고학은, 1948년 이래 50여년간 오로지 이 분야의 발굴과 연구로 일관했던 모세와 투르데 도탄 부부에 의해 열매를 맺었다.폴란드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어린 시절 팔레스타인에서 성장한 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군복무하던 중 만나, 함께 히브리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성서에 등장하는 블레셋 도시들인 텔 카실레,아쉬도드,데이르 엘-발락흐,에크론 등을 발굴하면서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전설 같은 삼손 사울 골리앗 다윗 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야기에 매료된 성지순례자들은, 17세기 이래로 현장에서 성서의 내용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1659년 한 프랑스 여행가가 지중해변 블레셋의 다섯개 도시중 하나인 가자를 방문해서, 블레셋의 신,다곤의 신전을 발굴했다.비록 블레셋의 유물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장님이 된 삼손이 무너뜨려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는 신전의 존재를 믿고 시도한 첫번째 발굴이었다.
 

                 

 

                                                           · 블레셋 다섯 도시

 

  블레셋에 관한 좀더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는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탐사를 통해 처음으로 발견됐다.테베의 메디낫트 하부에 위치한 람세스3세(기원전 1184~1153년)의 장례신전 벽에는, 블레셋민족의 전투장면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었다.

 

  이집트의 블레셋 포로들.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나일 강 서편에 자리잡은 메디낫트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장례 신전 벽에는 BC 1180년경 이집트로 쳐들어간 바다 민족들과의 해전

장면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바다 민족 중에는 블레셋이란 부족의 이름이 등장하여, 이들은

이집트로부터 쫓겨나서 팔레스타인의 남쪽 해안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학자들은 짧은 치마에 깃털 전투모를 쓴 그들을 인도인으로 착각했다.1850년대 초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린(J.B.Greene)이 이 신전 마당을 직접 발굴하다가 새로운 비문들을 발견했고,파리의 드루쥐(V.E.DeRouge)는 이 비문 해독을 통해, 블레셋을 비롯한 다섯 종족의 이름이 나열된 바다민족의 이집트 침공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들은 이집트로 쳐들어 왔다…그들은 온 땅을 평정했고, 그들의 동맹은 블레셋 체케르 쉐켈레쉬 데니엔 웨세쉬 등으로 구성됐다'.성서 외의 역사적 자료에서 처음으로 블레셋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나아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1870년에 구입한 `하리스 파피루스'에도 이집트의 파라오가 블레셋민족을 가나안지역에 정착시키고 식민통치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블레셋에 관한 역사적 증거자료가 이집트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곧 창세기(10장13~14절)에 등장하는 고대민족들의 계보에 블레셋이 이집트(미스라임)의 후손으로 기록된 것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러한 블레셋고고학 추세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탐사재단은, 골리앗의 도시로 알려진 가드를 찾아내기 위해, 1899년 블리스(F.Bliss)와 마칼리스터(R.A.S.Macalister)를 파견했다.그들은 쉐펠라지역의 텔 에스-사피를 가드로 확인,발굴을 시작했고, 거기서 출토된 수많은 미케네 토기조각들의 분석을 통하여, 블레셋 민족의 기원을 에게해로 밝혔다.성서에 처음으로 고대 유럽인들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계속되는 구미 각국의 벳샨,게제르,므깃도 발굴 등을 통하여, 블레셋의 세력이 내륙까지 미쳤던 사실이 확인됐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후 그들의 첫번째 공식적인 발굴은, 다름아닌 블레셋의 항구도시였던 텔 아비브의 텔 카실레였다.이스라엘 고고학의 대부였던 마자르(B.Mazar) 교수의 지휘 아래 진행된 발굴에서, 블레셋 민족의 체계적인 건축 종교 등 일상생활의 증거들이 드러났다.이 발굴에 참여했던 도탄 부부는 평생 블레셋 고고학에 헌신하기로 결심했고,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블레셋 민족의 역사적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됐다.
 

  

 에크론(Ekron) 전경. 텔 미크네로 알려진 에크론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하나였다. BC 17

세기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 BC 1200년경부터 블레셋 문화가 형성되었다.

히브리 대학의 투드레 도탄과 올브라이트 연구소의 기틴은 공동으로 1981년부터 15년에 걸쳐

대규모의 발굴을 실시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천2백년전,당시 세계를 평정했던 양대세력인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주인없는 땅이 돼 버린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유목민들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 건너편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고, 바다민족이었던 블레셋은 해안평야에서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했다.조직적인 군사력과 고도로 발달된 철 제련술을 이용한 최신식 무기,이집트산 전차로 무장한 블레셋 민족은, 가나안의 모든 평야지역을 장악했다.블레셋 민족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는 기원전 1200~1000년이며,이스라엘 왕국이 건설된 후, 그들의 세력은 약화되거나, 기존의 가나안 문명권으로 동화되고 흡수됐다.

  1996년 여름 에크론의 마지막 발굴때 석비가 신전에서 출토됐다.모두 다섯줄로 된 비문의 내용은, 성서에 등장하는 아키쉬 왕의 이름을 비롯해 에크론 통치자들의 족보와 신전을 봉헌하는 글이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하버드대학과 히브리대학의 발굴팀이 각각 아쉬켈론과 가드를 발굴하고 있어 더 많은 블레셋 유물들의 출토가 기대된다.

                                    출처:김성교수의 '성서고고학 이야기'와 http://blog.naver.com/plusgen/5000643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