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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099년 6월 6일 유럽의 십자군들은 온갖 고생 끝에 꿈에 그리던 성지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엠마오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최종목표는 450년 동안이나 이교도들의 손에 들어가 더렵혀진 기독교 최고의 성지인 예루살렘 성을 탈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베들레헴으로부터 한 무리의 기독교인들이 엠마오에 도착했다. 사라센 아랍인들이 성탄교회를 곧 파괴시킬 것 같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성탄교회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탄크리드(Tancred)의 지휘아래 100명의 십자군 기사들은 밤새 말을 달려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 도시를 장악할 수 있었고 성탄교회 사제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 예수 탄생동굴에서 무릎을 꿇었다. 약 한세기 동안 지속된 성지 탈환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 교회당은 다른 성지들처럼 서기 638년 이후 이곳을 점령 통치했던 페르시아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될뻔 했다. 당시 그들이 교회에 불을 지르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는 순간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경의를 표했다. 이는 아기 예수에 대한 숭배의 표시가 아니라 바로 그들 머리위 벽화로 그려진 화려한 페르시아 복장의 동방박사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모습이 그려진 교회당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게 됐다. 이후로 이곳은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종교적 공존의 장이 됐고 현재까지 그 전통은 이어진다. 오늘날에도 순례자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때 맨처음 눈에 띄는 광경은 이슬람교 사원의 첨탐 끝에달린 초생달과 교회당 종탑의 십자가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빵의 집'으로 불리는 기름진 곳이었고, 모압 여인 룻과 보아스의 밀밭에서의 사랑이 엮어졌으며,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이 태어났던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쪽으로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한적한 동네였다. 하지만 신약시대 다윗의 자손으로서 메시아가 태어나면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기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수 탄생동굴에 아도니스, 즉 탐무즈 신을 섬기는 제단을 건설함으로써 더이상 메시아 전승이 전파되는 것을 막았다. 서기 313년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되면서 헬레나 황후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사건인 탄생, 부활, 승천을 기념하는 대규모의 기념교회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베들레헴에는 성탄동굴을 중심으로 로마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당이 서기 339년에 준공됐다. 서기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지진과 화재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기존의 건물을 헐고 새로운 교회당으로 재건했다. 서기 15세기 이래로 성탄교회의 운명은 유럽의 카톨릭과 그리스-러시아 정교회의 주도권 투쟁으로 점철됐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프랑스와 러시아 등 유럽의 열강들은 오스만 터키의 후광 아래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거룩한 성탄교회 내에서 폭력사태를 벌이기도 했다. 성탄동굴의 예수탄생 자리에는 1717년에 정교회 측에서 설치한 14꼭지의 별 모양의 은판이 있고, `동정녀 마리아가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라는 라틴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바로이 베들레헴의 은별은 1853년에 발생했던 러시아와 유럽 연합군 사이에 치러진 크리미아 전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베들레헴에서의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1934년부터 시작되었을 때 교회 발굴사상 매우 드물게 성탄교회 내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제단을 장식했던 대리석을 들어내자 한가운데 원형과 세겹의 팔각형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구조의 초기 제단 모습이 드러났다. 비잔틴 건축의 전통에서 팔각형은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서 가버나움의 베드로 장모 기념교회, 그리심 산 정상의 마리아 기념교회 등에서도 발견됐다. 또한 이 교회당의 바닥을 파 내려가자 약 70센티미터 아래에 온통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된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이 드러났다. 교회 지하에는 여러 갈래의 동굴들이 있었는데 이중의 한 동굴은 헤롯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어린 영혼들(마태복음 2:16)을 위한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신구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했던 서기 4세기의 성서학자 제롬을 기념하고 있다. 한편 이교도들이 점령한 그리스도의 무덤을 구하자는 슬로건으로 뭉친 유럽의 십자군운동은 1099년부터 약 한세기 동안 이 지역에 `예루살렘 라틴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그 꿈을 실현했다. 서기 1100년의 베들레헴의 성탄절은 매우 뜻깊은 하루였다. 새로운 왕국의 초대왕 볼드윈 1세의 대관식이 바로 이날밤 자정에 성탄교회에서 거행됐기 때문이다. 김성교수(협성대학·성서고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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