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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밑 " 女王의 전설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宮 발굴

영국신사77 2007. 10. 21. 00:04

바다밑 " 女王의 전설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宮 발굴


                                                                                        [동아일보 2003-05-01 19:11]

 

 


   2003년 2월23일 새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지중해는 사나웠다. 마치 그릇을 좌우로 흔들면 담겨 있는 물이 솟구치는 것처럼, 그날 지중해는 무정형의 파도를 일으켰다. 현지 안내인 모하메드 브리샤(27)는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거친 바다 속에 왕궁이 있다. 용왕이 사는 궁전은 아니다.
   알렉산드리아 일대에는 BC 320년부터 서기1303년까지, 약 1000년 동안 연쇄적인 지진이 있었다. 서기365년 여름의 지진 강도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의 지진으로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20%가량이 물 속에 잠겼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년∼기원전 30년)의 궁전도
이때 가라앉아, 1600여년을 바다 속에 있었다


 
   이 궁전의 마지막 주인은 클레오파트라 7세.
   절세가인으로 알려진 그는,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와 실력자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왕조를 지켰지만,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이 불가피해지자, 독사에게 가슴을 물게 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2000여년 뒤, 한 프랑스人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프랑크 고디오(55)로, 프랑스와 여러 국가의 경제고문으로 15년간 일하다, 고고학자로 변신한 아마추어 학자다.
 
1996년 그는 알렉산드리아 이스턴항의 수심 9m에서
잠자고 있던 클레오파트라를 깨웠다




 


 

    바다 속으로 다이빙한 그의 팀이, 십수세기 동안 겹겹이 가라앉은 침전물을 걷어내자, 원주 기둥과 동상. 스핑크스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케이블 채널 디스커버리와 유럽의 힐티재단의 지원으로 해저탐험을 하고 있는 그는, 2001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인근 해역에서 8세기 지진으로
사라진 도시 헤라클레이온도 찾아냈다.
   그러나 그의 발굴은 이전부터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해온 다른 고고학자들의 연구가 축적돼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



 
 
 
 
 
장 이브 엠페러 박사의 알렉산드리아연구소(CEA)
 
 같은 프랑스인이자 저명한 고고학자인 장 이브 엠페러 박사는, 1990년
알렉산드리아연구소(CEA)를 세우고, 그리스인들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부른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해저 유적을 비롯해,
수많은 유적들을 발굴해왔다.
프랑스의 외무부와 교육부. 문화부가 이 연구소의 발굴을 후원하고 있다.



 

 

 
 
        이 연구소 자체가 하나의 작은 지구촌이다. 프랑스 튀니지 독일 스페인 영국 이집트 등 6개국 출신 20명이 함께 일하며,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스핑크스와 높이 13m가 넘는 육중한 동상 6개 등 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찾아냈다.
영국인 공보책임자인 콜린 클레먼트는, 우리는 죽은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파올로 갈로 박사가 이끄는 이탈리아 고고학발굴팀(MAIA)은,
알렉산드리아에서 4㎞ 떨어진 넬슨 아일랜드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넬슨 아일랜드는 나폴레옹의 해군을 격파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넬슨 제독의 이름을 딴 섬으로, 최근에는 나폴레옹군의 군함이 발견돼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미국의 바다유적연구소(INA)는 홍해의 해저 유적을 발굴하고 있으며, 그리스의
헬레니즘 해상유적보존연구소는 알렉산드리아 해안을 훑고 있다.


폴란드팀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주변을 발굴하고 있다



 

 
 
 
   건져낸 유물은 심하게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의 바다유적연구소
(INA)의 보존실험실에서 복원작업이 이뤄진다.
 
   이집트에 매료돼 3년 전부터 이곳에 와 있는 미국인 에릭 노드그런 실험실 소장은, 역사는 실험실에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유물최고위원(SCA)에 해저유적탐사국 신설

이같은 노력은 이집트에도 자극을 줘, 1996년 이집트의 유물최고위원(SCA)에
해저유적탐사국이 신설됐다. 이후 탐사국과 각국 팀들의 공조로, 속속 바다 속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알라 마흐러스  해저유적탐사국장은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수중음파탐지기. 수중촬영 카메라와 같은 첨단장비를 가져와, 본격적인 해저 탐사가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구체적인 유적 발굴 단계를 지나,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지형과 시가지에 대한 전모를 그리고 있는 중에,
마치 새로 도시를 설계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고대도시가 복원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 복원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도 10년은 더 소요될 전망.


    클레먼트씨는 알렉산드리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땅 속을 파 들어가면, 마치 승강기를 타고 지하층으로 내려가듯이, 연대기순으로
이슬람문명, 기독교문명, 로마문명, 그리스문명, 파라오문명이
차례로 나타난다는 것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 자체가 코스모폴리스(국제도시)의 운명을 타고났다.
이 도시를 세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만인동포관(觀)을 전파했다. 그의 사상은 고대 알렉산드리아를 복원하려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재탄생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출처:http://blog.naver.com/coloy20/80001266067: 은구슬

 

 

                                                                   ▼바다유적硏 홀데인 소장

 

                                                                            "발굴 희열에 중독돼"

 

  ▼미국 바다유적연구소(INA)의 더글러스 홀데인 이집트 담당 소장은 알렉산드리아에서 10년 동안 수많은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 왔으며, 현지인들을 교육하고, 유적복원 실험실도 만들어, 이집트 해저탐사의 기초를 제공했다. 대학에서는 그리스 로마 역사를, 석박사 과정에서는 이슬람 역사를 전공했다. 2월24일 그를 만나 해저탐사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육지 작업과 얼마나 다른가.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있거나, 너무 빨리 지상으로 올라오려고 할 때, 갑자기 정신을 잃을 수 있다. 탈수증에 걸릴 위험도 크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사람이 오전 30분, 오후 30분씩 모두 1시간밖에 작업할 수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인내심이 중요한 덕목이다.”

 

―중동에서는 테러의 위험이 상존하는데….

“우리는 보통 육지에서 20㎞ 떨어진 험한 바다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테러의 위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고의 위험은 항상 뒤따라 다닌다. 1999년 홍해에서 발굴할 때, 인근 해역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군사작전을 벌였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찔했다.”

 

  ―상어가 공격할 수 있는가.

“상어는 알려진 것처럼 공격적이지 않다. 먼저 자극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 한번은 상어가 발굴요원의 1m 전방까지 다가왔지만 물지는 않았다.”

 

―언제 귀국할 예정인가.

“어떻게 10년이 흘러왔는지 모르겠다. 발굴은 하나의 중독이다. 발견의 중독이다. 3000년 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파라오 왕비의 유물에 손을 댈 때의 벅찬 감격이란…. 중요한 유물만이 아니다. 1183년에 가라앉은 배에서 선장의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를 찾아냈을 때, 시공을 초월해 그 선장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돌아갈지는 모른다. 이 중독은 정말 끊기 어려운 유혹이다.”

 

 

 

  ▼알렉산드리아는…▼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의 신부(bride)’ 또는 ‘지중해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30㎞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 기원전 331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페르시아의 압정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더대왕의 입성을 열렬히 환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렉산더대왕의 사후 그의 장군 중 1명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처음엔 속주(屬州)의 장관으로서 이집트를 다스리다, 기원전 305년 독립을 선포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프톨레마이오스15세(케사리온)의 사망으로 왕조가 막을 내릴 때까지, 300년간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명이 결합된 헬레니즘시대의 문화와 경제 중심지로서 번성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0년대인 오늘날의 세계 중심도시가 뉴욕이듯, 서기 1년 세계의 중심도시는 알렉산드리아였다.

 

  알렉산드리아는 신성로마제국까지 포함해, 그 이후 700년간 로마의 속주가 됐다. 이 기간에 콥틱(coptic)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문명을 꽃피웠으며, 640년 아랍, 1517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에 각각 들어간 뒤로는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1801년에는 프랑스 나폴레옹 1세가 점령했고, 1882년부터 1954년까지는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아, 그야말로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도시에 녹아있다.

 

  지금은 카이로에 이은 이집트 제2의 도시로서 550만명이 산다.

 

 

 

 

               이집트 해저에 잠든 전설의 도시 발견

 

http://blog.naver.com/vndqordn/40016734954

 


                         이집트 수중 고고학의 최신 성과

  지중해 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 이집트 도시의 실체가 밝혀지다.

이집트 북부, 아부키르만에서 시간이 멈춘 전설의 도시가 발견되었다



  이집트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광대한 사막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역사는 육상에 있는 유적만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나일강 하구에서 해저에 잠들어 있는 유적이 속속 발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설의 도시, 마침내 발견되다


 2000년 6월, 이집트 북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동부에 있는 아부키르만에서 해저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보고가 있었다. 유적은 해변에서 약 2~3km 떨어진 아부키르만 앞바다에 있었다. 발견된 것은 헤라클레이온과 메노티스라는 고대의 두 도시이다.

  두 도시에 관한 기록은 그리스 비극이나 여행기 등의 고문서에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전설상의 도시’인 것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헤라클레이온과 메노티스가 아부키르만 해저에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 존재를 결정지을 물적 증거가 없었다.

   발견한 것은 프랑스의 고고학자 고디오가 이끄는 국제 탐사팀이다. 고디오는 발견한 기쁨을 다음처럼 말하였다.

 

  “우리는 시간이 완전히 멈춘 도시를 발견하였다.”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의 대다수는 지중해 속의 모래가 많은 수렁에 파묻혀 있었다. 보존 상태는 양호하였다.

 

  발견된 것은 대리석으로 만든 파라오의 머리 부분, 수염을 기른 사라피스신,
스핑크스상, 전체 길이가 90m나 되는 고대 로마풍의 기둥, 헬레니즘 시대의 거상 조각, 비잔틴 제국 시대의 동전, 그 밖에 가옥이나 사원 등의 유구이다.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이시스 여신의 상도 발견되었다. 여신상은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 부분이 잘려져 나가고 없었다. 이시스 여신을 모신 신전 흔적도 발견되었다.

 

   헤라클레이온과 메노티스는 분명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건설되었다고 생각된다. 헤라클레이온은 나일강 하구의 주요 상업항으로 발전한 유명한 도시였다.

 

   그러나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약 20km 서쪽에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되면서 그 영향으로 서서히 쇠퇴하였다. 헤라클레이온은 ‘죄의 도시’라고도 했다. 파라오 시대의 1000년간에 걸쳐, 여신 이시스를 숭배하는 땅으로서 존속하여, 많은 신자가 순례지로서 이 도시를 찾았다. 메노티스는 알렉산드리아와 운하로 연결되어 있던 도시였다.

 

 

 

                         누구도 본 일이 없는 세계로


   아부키르뿐만 아니라, 나일강 하구에 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은 16세기부터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1933년에는 토솜 왕세자가 나일강 삼각주 지대의 해저 탐색을 시도했다. 유적의 일부를 확인하기는 했으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어려웠다.

 

   고디오 팀은 1990년대에 들어서 알렉산드리아 주변의 얕은 바다를 탐색
하기 시작했다. 1996년 11월에는 알렉산드리아 해저에서 약 2000년 전의 왕궁 유적을 발견하였다.

 

  발굴한 지역 안에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이 있다고 보도되어,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궁전 흔적은 그후 상세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클레오파트라와 연관이 있다고 할 만한 증거가 없어, 앞으로의 조사가 기대되고 있다.

 

 

                   해저 탐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고디오는 우선 고문서 등을 단서로, 유적이 있는 장소를 결정하였다. 유적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 인공 위성을 전파원으로 하는 GPS를 이용하였다. 잠수 조사에 앞서 최첨단 기술이 구사되었다. 초고감도의 기기를 사용하여, 해저 자기장의 모습을 영상화했다. 즉 해저 속의 자기장의 흐트러짐을 측정하여, 그곳에 유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공 구조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치도 대강 파악하고 나서 잠수 조사에 들어간다. 이러한 사전 조사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해저에 들어가고 나서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고디오는 설명한다.

   다이버들은 광범위한 해저를 돌아보고 유물을 하나씩 측량한다. 유물의 위치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다시 원래의 위치로 유물을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두꺼운 퇴적층으로 덮인 유물도 많아, 다이버들은 정성스럽게 더러움을 제거하고 발견되었을 때의 상황 등을 그 장소에서 물에 강한 종이에 스케치하는 일도 있었다. 물 속에서 유물을 본뜨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해저 탐사의 진행 과정과 발견된 유물은 데이터로 기록된다. 유물이 어떠한 상태에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도, 유적 전체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디오의 최종목적은 아부키르만을 포함하여 나일강 하구 일대의 고대의 지형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유적의 발견은 물론이고, 나일 하구에서 고대의 하상과 연해의 윤곽을 관찰하고, 바닷물의 수위 상승과 침니층의 두께와 모래가 많은 수렁의 침하 과정 모습에 대해 검증해 나간다.

 

 

                       왜 전설의 도시는 소멸되었는가?
   도시는 8세기경에 파괴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시를 사라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명확한 증거는 없다. 지진이나 지반 침하 등의 자연 재해가 나일의 흐름을 바꾸고, 이 도시를 수몰시켰을지도 모른다. 파괴된 기둥과 벽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견된 유물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메노티스와 헤라클레이온의 유적과
유물은 공해에 있었기 때문에, 해저에 남겨 두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동시킬 수 있는 유물은 바다에서 인양되었다. 육지로 인양된 유물은, 먼저 염분을 제거하는 작업이 실시된다. 그후 고고학자나 과학자에 의해 연구와 조사가 오랜 기간에 걸쳐 행해진다. 해저에서 이동시키지 않는 기둥이나 벽은 다시 침전물로 덮인다.

   한편 유적이 매우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던 알렉산드리아 동쪽에서는, 연구자들이 해저 박물관 건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해저 박물관이 실현되면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다.

 

 

                       앞으로의 해저 탐사에 대하여
   이번 발견의 학술적 의미는, 현 단계에서는 대답하는 것이 너무 이를지도 모른다. “앞으로 실시되는 상세한 조사 연구가 끝나고 나서, 겨우 발견의 학술적 의미를 판달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신중히 말한다.


 

   앞으로의 해저 탐사에 대해서는 “우리는 지중해의 바닷물이 투명해지는 2000년 가을부터 알렉산드리아만에서 탐사를 재개할 예정입니다. 2001년 봄에는 아부키르만에서 헤라클레이온과 메노티스의 보다 상세한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라고 고디오는 포부를 말했다. 다음에는 어떠한 발견을 할 것인가?



 

                                                                                              출처 : 『Newton』2000년 9월호

 

 

                                                알렉산드리아 해저 도시 유물

 


 * 알렉산그리스 고전 문헌을 통해서만 알려졌던 고대 도시 메노우티프와 헤라클레이온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시(시)에서 약 6㎞ 떨어진 해저에서 2003년에 발견한 것입니다. 이 발견은 역사적 가치와 보전 상태 등에서 이집트 투탄카멘 왕릉에 비견되는 고고학적 대발견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하네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시 근처 해저에서 발견된 유물 몇점을 올려놓았습니다.

 

                                                                                 관련 기사보기

 

한 다이버가 보전된 석비를 물 밖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돕고 있는 모습이다


 
프랑스 해병성 소속 고고학자인 프랑크 고디오가 7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해군지기에서 수중 고대도시 헤라클레이온에서 발굴한 거대한 석비의 비문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농사와 수태의 여신 이시스의 조각상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소재한 해군기지 내 바지선에 놓여 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조각상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소재한 해군기지의 바지선에 놓여 있다.

프랑스 해병성 소속 고고학자인 프랑크 고디오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연안의 수중 고대도시 헤라클레이온에서 침몰한 배들과 조각상들, 금화 및 보석들을 발견했다. 사진은 다이버 3명이 바다 밑에 있는 거대한 하피신상(神像)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한 이집트 해군이 7일 알렉산드리아의 해군기지에서 고대 스핑크스 조각상을 보호하고 있다.


 

 

      

       

                                                                                                                         출처:Yong의 피라미드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