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靈論

마틴 로이드 존스 베스트 설교

영국신사77 2007. 7. 26. 19:45
 

                    마틴 로이드 존스 베스트 설교

 

 

1. 말할 수 없는 기쁨]

1.󰡒����---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또한 누구도 성령님의 사역을 떠나서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롬8:7,고전2:14,요3:5]

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은 사람이며 또 계속하여 이를

점차 더 많이 받고 있다.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요1:16].

1. 요한의 세례와 주님의 세례와의 차이를 명확히 알자.

㉠ 종교와 진정한 기독교 ㉡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기초,즉 ‘초보’[히6:1]에 안주하

는 것과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더 완벽하게 체득하는 것 [요1:26,33,눅3:1-17]

1. 우리는 자기 체험에 비추어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되며,반대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의 체험을 검토해야 한다.전통 혹은 교회의 가르침을 성경위에 올려놓는 우를 범

치말라.또한 성경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만족하며,우리의 경험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가 알고 체험하는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우도 범

치말라.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는게 가능한가?))

(성경의 검증)

구약 시대의 성도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갈3장,엡2:11-3:6]. 그러나 그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

지 않았다.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믿었다[요8:56].구약의 성도들은 장차 ‘오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믿었던 것이다.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구원 받

을 수 없다.구약 시대이든 신약 시대이든 구원의 길은 단 하나 뿐이다[요14:6].

세례 요한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특출난 종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마11:11].

예수님의 제자들[사도들]

제자들이,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기 전[요20:22],또는 오순절

사건 이전에,이미 중생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확실하고 아주 분명하다

[요15:3,17:6-9,14,16,행1:4-8]

사마리아 사람들

그들은,‘예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셰례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빌립’의 복음 전도

를 믿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었지만 그때 아직은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은 아

니었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와 그들에게 안수를 했을 � 비로소 성령

세례를 받았다 [행8:4-17].

사도 바울

바울의 경우를 보면,주님을 만나고 믿을 때와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례를 받을 때에 성

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고,만나고 믿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았고,세례 전에 성

령 세례를 받았다[행9:1-18]

에베소의 제자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단 하나의 예외가 없이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의미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믿을 때에 성령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행19:2].

그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지만 요한의 세례만 받았을 뿐이었다.그래서 P-1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이때도 그들은 진정한 신자들,하나님의

자녀들이었지만 아직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는 못했다.바울이 안수할 때에야 비로소 그

들은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다 [행19:1-7].

믿음과 동시에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은 가능한가?---가능하다[행10장].

에베소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엡1:13]

믿는 것이 첫번째 사항이며,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그와 동시에 필연적으로 발생

하지는 않는 것이다.성령 세례는 믿는 일과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그러나 양자는 별개의 서로 다른 것이므로 사도는 둘을 구분하고 있다.

이상으로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는 것이 가능함을

살펴보았다.즉 성령 세례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중생하는 일,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

하는 일과는 명백하게 다른 별개의 사건이다.성령 세례는 일차적으로 성령님 자신의 활동

이 아니라,주께서 그의 복되신 성령을 쏟아 붓고 널리 흘려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임

하게 하시는 행위이다.

[묵상]

존 스토트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령 세례에 대해 또 다르게 설명하고 있고[땅끝까지 이르러] 다른 여러가지 견해가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설명되어져 있습니다.특히 복음주의 교회[남산 교회도 복음주의 교회임]에서는 믿을 때에 성령 세례를 같이 받는다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의견과 같습니다.나는 여기서 이것을 믿으라고 소개한 것이 아닙니다.믿음은 믿을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다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한 사람의 깨우침을 듣고 같이 묵상함으로 혹 내가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보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공동체를 위해 같이 회개를 하나님께 구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길 간구하고 싶어서 입니다.

[B] [성령론]---[D.M.로이드 존스]---[새순 출판사]

 

[1]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증거 [1개라도 좋으나 많을수록 더욱 확신]

① 나의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사고 방식을 성령님이 주장하시게 한다.

②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다.

③ 언제나 자기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아는 지식을 소원하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를 아는 지식을 더 크게 바라게 된다.

④ 언제나 하나님을 위한 자기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늘 염려하고 󰡒����주님 내 사랑이

약하고 연약해서 늘 걱정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⑤ 누구든지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더욱 더 깨닫게 된다.

⑥ 죄를 짓는데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자기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괴로와하게 된다.[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

⑦ 점점 더 갈수록 죄와 악과 유혹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해진다.

⑧ 자기 속에서 의와 거룩을 사모하며 갈망하고 있다.

⑨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역시 그러한 체험을 행동으로 옮긴다.

⑩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사랑,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

[2] 구원의 확신의 4단계

① 명백하고 노골적인 성경의 진술들을 통해서 추론으로 끌어내는 확신,즉 말씀만을 믿는

것,사단이 공격해 올 때 우리의 영혼을 지켜준다.

② 삶과 체험에 적용시키는 성경 말씀으로 고백되어짐,

즉 성령님의 인도함을 깨닫는 것---[롬8:14]

③ 내 영 속에서 나로 하여금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는 것을 발견---[롬8:15] P-2

④ 전적인 성령님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증거,

즉 성령의 인치심---[롬8:16],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고 성령을 통해

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개인적이고 은밀한 것.

[3] 성령 세례

① 자기를 억지로 설득하지 말라,저절로 깨닫고 인식하게 된다,확실히 알 수 있다.

② 이것을 우리가 취하였다고 생각하는 우를 저지르지 말라,이것은 믿음으로 취할 수 있

는 것이 절대 아니다.주권이 주님에게 있으므로 주어지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고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시는 것이다.

믿음은 체험의 가능성을 믿고 말씀의 교훈을 지켜나가며 이것을 사모하고 간구함으로

우리를 기도하도록 인도하시어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합당한 때 그것이 나에게

주어질 것을 믿는 것이다.

③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뚜렷한 확신의 경험이고 절대적인 확신의 사건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다고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으로 구원의 확신의 정점이다.

④ 성령의 인침[고후1:12,엡1:13,4:30]과 같은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성경 구절을 통해서 올 수 있고,성경을 읽지 않을 때도 일어날 수 있고

예배 시간에도 올 수 있으며,말씀이 없어도 사역자가 없어도 올 수 있다.

이미 하나님의 아들[눅2:49]이셨던 예수님의 경우[마3:17]는 절대적인 확신과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능력을 갖게함이 목적이었다.

⑤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성령 세례와 성령 내주는 별개의 사건 일 수도 있다.[죤 스토트---같다]

중생,그리스도인이 되는 일 등은 성령님의 사역이지만 성령을 주시는 것과 성령 세례

는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것이다.

성령[그리스도의 영]이 없이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 할 수 없다.

⑥ 그것은 분명히 체험적이다.

그것은 큰 기쁨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인도하는 체험이다.[벧전1:8]

⑦ 성령의 증거는 은사나 현상을 동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⑧ 그 깊이나 정도가 다 다르므로 체험을 평준화 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성령님이 인격이시기에 이 체험은 영속적이지 않다.죄를 지을 때는 소멸되나,반복될

[여러번] 수도 있다.

⑨ 중생한 그리스도인에게만 나타난다.

⑩ 그것은 ‘감추어진 만나’,‘흰 돌’[계2:17],‘새벽 별’[계2:28]이라는 말로 표현된 주님

이 기뻐하시는 표징의 확인이다.

①①이 체험들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인지 반드시 시험하고 검증하고 따져보아야 한다.

①②이 체험들이 성화와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관계가 아닌 간접적 관계이다.

그 것은 성화를 이루는데 최대의 자극을 주지만 성화 자체는 아니다.

①③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절대적 확실성을 사모해야 하기에 이 체험은 구해야 한

다.[눅11:11-13],계속해서 끊임없이 간구

①④이러한 은사를 받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그것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시는 성령의 증거로 부터 가장 높은 확신이 우러나오기에.

①⑤이것은 안수나 다른 사람의 기도 결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①⑥특별히 함께 모여 추구하고 이것을 받기까지 몇날을 머무르면서 기다린다고 받는 것

이 아니다---이럴 때는 심리적인 입장에서 온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①⑦이 축복은 행위로나 율법으로나 흥분으로나 시끄러운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

로서만 받을 수 있다. P-3

①⑧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 적은 이유는?

이 선물은 갈급해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갈급해 함

이 없기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4] 성령 세례를 구하는 방법

① 먼저 성령 세례의 가능성을 깨닫고[주님의 약속을 믿음] 내가 이런 상태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하고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해야 함이 첫째.

② 나의 심적인 동기를 주시해서 그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체험이 의미하는 것,

내포하고 있는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즉 그리스도의 부활과 고난에 동참하고 하나

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랑하라.

③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주님께 그 증거를 보이라,내가 진정 이 축

복을 사모하는지 나의 삶을 통한 순종으로서 보이라.즉 말씀 묵상과 실천의 순종

④ 그리고나서 나에게 그 영을 주시기를 주님께 탄원하고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임.

울부짖고 소리지르며 때굴때굴 구를 필요가 없다.다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희미

하게나마 깨닫고 붙잡을 수 있다면 간절히 기도하라,받을 때까지.

내가 구해서 취해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가장 좋은 시기에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

야 한다.

[5] 성령 충만---두 가지 영역의 성령 충만이 있다.

① [주님의 영역]---특별한 일을 위해 쓰실 목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성령 충만

[눅1:15,1:41,1:67,행2:4,4:31,7:55,8:4,13:9]

이 성령 충만은 우리 속에 내재했다가 나간다.

② [나의 영역]---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생활 속의 성령 충만

[엡5:18,행6:5,11:24,13:52]

이 성령 충만은 계속적이고 영구적인 상태,멸하지 않고 이질화되지 않는 조건으로 우리

는 늘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차서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항상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예,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주님의 뜻대로 쓰시옵소서’,바로 이것이 성령

충만한 상태이다.즉 내가 순종함으로 받을 수 있는 생활 속의 성령 충만을 말함이다.

[6] 성령 충만을 구하는 방법

생활 속의 성령 충만

㉠ 성령을 근심케하거나 소멸함을 멈추고 마귀를 대적하고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죄의

습관과 잔재에 대항해 싸움---소극적 측면임

㉡ 적극적 측면---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인식해야 하고 또한 성령님을 갈망하고

그와 함께 교제하며 교통하기를 간절히 바라야 한다.

또한 성령님의 모든 지시 하심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의 체험으로 받을 수 없다.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님의 감동에, 말씀에 귀를 기울여 민감하고 복종하라.

지름 길은 없다.

성경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고 모든 행동과 행위를 말씀의 통제아래 있게

하라.우리의 삶 전체에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라.그리하면 그 결과는 성령의 열매가 우

리 안에 확증되어 나타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P-4

① [주님의 영역]---특별한 일을 위해 쓰실 목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성령 충만

②의 성령 충만이 된 상태에서 주님이 쓰시기를 기다릴 때 주님의 주권과 선택으로 구

해지는 것임,따라서 막연히 기다리지 말라.

[7]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엡6: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과 말씀은 따로 떨어져서는 안되고 항상 하나가 되어야 한다. 즉 온전히 말씀을 믿고

모든 성경을 알아야 한다.그래야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성령님이 우리를 말씀으로 깨우

쳐 주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엡6: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

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재는 척도가 사랑이듯이 우리의 성경 말씀을 깨달았다는 척도는

기도에 쏟는 우리의 정성이다.성령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의 근본 요소이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기도를 주장하시고 조성하시며 기도

드릴 수 있고 빌 수 있는 힘을 제공 하시게 우리의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다.

[살전5:19]---‘성령을 소멸치 말며’

성령을 근심케 한다는 말은 성령님의 인격과 훨씬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물론 성령을

소멸함으로써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케 합니다.

(우리는 언제 성령님을 소멸하는가?)

① 우리가 성령님의 인격에 대해 밝히 알지 못한다면

②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감을 깨닫지 못한다면,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③ 당연히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도록 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④ 따뜻한 마음,사랑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냉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는다면 [살전5:17,엡6:18]

⑥ 성령님 안에 있는 생명의 가능성을 자기 자신의 사고 안에 제한시킨다면

⑦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지 못한다면

⑧ 성령님의 교리에 대해,인치심,보증,확신,증거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⑨ 오순절 사건이 일회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또한 교회 역사상 일어났던 많은 부흥 운

동을 부정한다면

⑩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받을 가능성이 있는 성령의 체험을 몇몇 그리스도인들에

게만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성령님의 사역을 부인한다면

①①형식에 얽매어 있는다면

①②지나침과 극단을 두려워하여 성령님의 사역을 제한한다면

①③성령님께 귀 기울이지 못한다면

①④간절히 성령님을 찾지 않는다면

①⑤우리가 받은 은사를 힘껏 활용하지 않는다면,나누지 않는다면

①⑥기쁨으로 사역을 하지 못한다면,감사하지 않는다면

①⑦게으름으로 우리가 가진 적은 것에 만족한다면

①⑧성령님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모든 행위

P-5

[C] 묵상

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두 단계 입문이냐)---(카톨릭,오순절파) 또는 (한 단계 입문

이냐)---(캠벨 몰간,칼빈) 또는 (한 단계 체험으로 그 단계에서 회개하고,믿고,세례를

받으며,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둘다 받는 것이냐)---(복음주의 교회,죤 스토트),

또는 (로이드 죤스 목사의 독특한 성령론이냐), (우리 교회는---복음주의 교회)

각각 성경의 본문들을 근거로 자기들 주장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어느 것이 정확히

맞는 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터],중요한 것은 내 것만 맞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것이다.그것은 어쩌면 알파요 오메가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항상 우리는 다른 의견이나 주장들

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위험도 내포되어 있습니

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말씀을 토대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을 의지

하며 우리 안에 사랑이신 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혼자가 아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② 무엇을 믿는 지는 대단히 중요하다.그러나 나의 믿는 것들은 신앙의 성숙이나 하나님

의 깨우쳐 주심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음을 잊지 말라.오직 변하지 않는 진리

는 하나님과 말씀 뿐이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꼭 잘못된 것이나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하나님은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각 개인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③ 나의 구원의 시작은 개인적이지만 그 개인은 이미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나온 개인임을

잊지말자.나는 남산교회의 한 지체이고 남산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이

고 나의 구원의 끝은 교회라는 공동체이다.

④ 나의 믿음의 분량의 최저선은 바로 내가 행한 것 까지이고,최고선은 바로 내가 느낀

것 까지이다.이 믿음의 분량은 항상 변하는 것이다.하나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나의 해

야만 하는 믿음의 분량은 더욱 많아져 가는데 비해 행한 믿음의 분량은 그렇게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으니 깊이 회개해야 할 것이다.또한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믿음의 분

량은 내가 행한 것 까지의 믿음으로 변명하고 내가 행한 믿음의 분량은 내가 느낀 것

까지의 믿음으로 내세우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다.

⑤ 목사님의 말씀으로는 은사란 결국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개인에게 내려 준 것으로 각

개인은 그 은사를 공동체를 위해 힘껏 사용해야 한다.물론 개인의 유익이 공동체의 유

익이 될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은사는 교회에서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고 오

직 혼자서 있을때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말씀 묵상으로 깨달은 여러가지 깨달음도

(남산)교회의 중심되는 사상에 맞지 않을 땐 신중히 생각해서, 교회의 유익이 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는 나누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자기 마음에 접어두어야 할 것

이다.바울 사도를 통한 주님의 가르침이 이와 같지 않았는가.

또한 성령세례를 믿을 때 받든, 다른 때 받든, 방언과 예언과 같은 은사가 항상 같이

오는 것은 아니다.주님의 주권으로,필요에 의해 올 수도 있고 안올 수도 있는 것이다.

초창기 고린도 교회처럼 주님께 야단 맞을만한 교회 찾기도 너무 힘든 현실은 안타까

운 일이다.모두 깊이 회개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⑥ 교사된 우리는 항상 수업에 임할 때 주님이 주시는 성령 충만을 구해야만 할 것이다.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예배나 공부에 소홀하다면 그 첫번째 책임은 바로 교사에게P-6

있기 때문이다.아무리 학생들이 준비가 안된 마음이라도 교사된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은혜를 받을 수 밖에 없다.물론 이 충만은 오직

주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만 몇가지 조건들이 충족될 때 받을 수 있음을 경험했다.

그 첫째는 설교자[교사]가 본으로서 보이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올 가능성이

많은 것 같았고,둘째는 설교자[교사]가 설교[강의]전에 드리는 기도의 시간과 질에 따

라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고 세째는 설교자[교사]가 설교[강의]에 임하는 내용을 주님

이 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확신하고 임할 때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았습니다.

위의 세가지 모두는 결국 ‘갈2:20’말씀처럼 주님을 대표하는 성령님이 내안에서 나를

대신해서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사건이다.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하며 우리가 갖

출 수 있는 성령 충만을 준비하고 설교[강의]에 임해야만 합니다.

⑦ 이번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던 결정적 동기는 물론 고인이 되신 로이드 죤스 목사님의

설교를 책으로 보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고 하나님의 나무라심과 깨우쳐 주심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회개의 마음이 우러나와 우리 교회의 여러 지체들

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이 같이 회개해야 할 부분은 첫째 우리의 깨달음이나 아는 지식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하게 제한했던 일 (즉 내가 만든 하나님)이고 둘째는 성령님을

사모하고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아버지나 예수님에 비해 너무도 부족했음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식어버린 처음의 열정을 회복키 위해,습관화 되가는 신앙 생활을 뜨겁게 불타

오르게 하기 위해 우리 먼저 회개를 하나님께 구하고 모든 우리의 필요를 아뢰기 보다

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 하며 그 어떤 은사를 구하기 보다는 오직 주 예수 그리

스도만을 바라며 오직 성령님을 사모하며 갈구하면서 하나님께 우리를 드리고 하나님

의 자비로운 인도하심을 기다립시다.

⑧ 제가 요약해서 옮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공감이 가시는 분들은 꼭

두권의 책을 구입해서 정독해 보세요.

[D] 내가 지금 고백하고 회개해야 할 것은? 구해야 하는 것은?

성령님을 소멸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탄식케 한 나의 떠오르는 죄를.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많은 시간 대신에 너무도 짧은 기도로도 죄를 느끼지 못한 굳은

마음을.

사랑과 기쁨으로 하지 못했던 모든 사역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제한해 버리고 그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지나온 세월.

오직 잠잠히,간절히,하나님만 바라라.

오직 각자가 받은 은혜대로,분량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

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

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P-7

 

출처 : 주님과 함께  |  글쓴이 : 생명생수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