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벨론과 바사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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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제국
신바벨론은 시리아의 사막으로부터 문명지대인 하부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해 온 셈족의 한 부류를 이루는 아람인이 먼저 이곳에 정주하고 있던 같은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에 흡수되어 혼합과 혼혈된 주민이 세운 나라이다. 그 아람인의 한 부족인 칼투족에서 처음 왕조가 나왔기 때문에 갈대아 왕국이라 하며 고대 바벨론의 함무라비왕 이후 역사의 중심지인 바벨론의 옛도시를 부흥시켜 이곳에 수도를 정했기 때문에 신바벨론이라고도 부른다.
때는 앗수르의 쇠퇴기로 앗슈루바니팔이 죽던 해(BC627년) 칼투족의 출신으로 앗수르의 남부지역에 있는 군대를 지휘하던 나보폴라살 장군이 그의 임지(任地)인 바벨론에서 정권을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였다. 처음의 지배력은 바벨론시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남부의 바벨론 지역을 장악하였고 BC614년경에는 동방에 있는 메대 왕 시악사레스와 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다(BC612년). 그리고 2년 뒤에는 최후의 보루인 하란을 점령하고 이집트의 도움으로 탈환을 시도한 앗수르의 마지막 왕 앗슈루발릿 2세의 공격을 격파하였다.
1.바벨론의 왕성(8C605~ 562년)
초대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어 왕이된 그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은 다니엘이 예언한 금머리처럼(단2:36~38) 그의 43년간의 통치기간은 황금시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세력을 시리아와 팔레스틴에서 일소해 버리고 오리엔트 상업의 이권을 차지하였다. 이때의 유다도 이집트의 영향하에 있다가 바벨론으로 넘어가 마침내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유배되었다. 이에 이집트는 두로, 시돈 등 유다 주위의 여러 나라를 원조하여 동맹을 맺게하고 바벨론에 대항케 했으나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국경선까지 세력을 확정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대항한 여러 약소국들은 점령되어 엄벌을 받았으며 지형적으로 견딜 수 있었던 두로만이 포위 13년 만에 종주권을 인정 받았을 뿐 이집트 조차도 나일강까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바벨론을 1세기도 채 안되어 당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느부갓네살은 군소국가의 정복과 상업독점으로부터 들어오는 막강한 재정으로 제국을 일대 번영으로 이끌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수도인 바벨론에 수많은 신전과 제단을 세웠는데 특히 신들의 여왕인 이시타르를 위한 제단을 180곳에 세웠으며 고대의 7대 불가사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세우기도 했다.
2.바벨론의 몰락(BC562~539년)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BC562년) 바벨론은 후계자 3명에 의해 7년동안 유지되었다. 그후 왕권은 그의 아들 에월므로닥(Evil-Merodach, 왕하25:27, 헬라어는 Amel-Marduk, BC562~560년)에게 계승되었으나 2년 후인 BC560년에 반역으로 살해되고 처남인 네르갈사레셀(Nergal-Sharezer, 렘39:3, 헬라어는 네리그리살 BC620~556년)이 4년간 통치했다. 그후 그 아들 라바시 말둑(Labash-Marduk, 혹은 라보소알동 BC556년?)이 왕위에 올랐으나 9개월 만에 음모단에 의해 살해되고 음모단의 나보니두스(Nabonictus, 혹은 Nabonaid BC556~539년)라는 귀족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파사만과 애굽의 중간지점인 데마(Tema)를 제2수도로 정하고 11년간 정주하였다. 그리고 그 아들 벨사살이 부왕으로서 바벨론궁에서 나누어 나라를 다스렸다(단5:1~2의 느부갓네살이 부친이라 한것은 외할아버지를 그렇게 부른 것).
그후 나보니두스는 아라비아 별장에서 죽고 벨사살왕은 메대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바벨론은 다리오의 통치하에 있다가 BC539년에 일어난 파사(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완전히 멸망당했다. 이때 파사는 메대를 이겼으나 부친의 궁중정략결혼을 생각해서 속국으로 하지 않고 연합국의 성격을 띠었으며 그후 서아시아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고 관대한 정책으로 포로들에게 귀환을 허락했다(스1:1~4:24).
바사(페르시아) 제국(BC 538~332년경)
바사는 인더스·티그리스강 사이의 이란 고원에 본거지를 두었는데, BC 1500년경 이곳에서는 아리안족이라 하는 인도·유럽족이 살고 있었다. 이 아리안족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하나는 동쪽인 인도쪽으로, 다른 하나는 서쪽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 이르렀는데, 이곳에서 메대와 바사의 두 왕국이 일어 났다.
그후 메대는 BC 700년경에 대국을 이루고, BC 612년에 시악사레스왕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멸망시켰다.
한편 바사족은 남하하여 엘람과 동쪽지대를 점령하였으나, BC 650년에는 앗수르의 앗슈르바니팔에 의해 파멸되었다. 그러나 메대의 예속 속에서 캄비세스 1세의 대를 이은 고레스 2세(BC 559~530년)가 왕위에 올라 반란중에 있는 메대를 제압하고 메대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고(에 1:19), BC 549년에는 메대를 점령했다. 그러나 부친과 궁중정략 결혼을 생각하여 속국이 아닌 연합국의 성격을 갖게 하여, 3년후인 BC 546년는 소아시아까지 제압하고, 다시 7년후인 BC 539년에는 바벨론을 멸망시켜 대제국을 건설했다. 또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다 민족과 다른 민족들에게 해방령을 내렸다(BC 538, 스 1:1~5).
바사(페르시아)는 고레스 2세때 그 번영이 절정에 달했으며 고레스 2세(키루스, Cyrus)의 사후 왕위에 오른 그 아들 캄비세스 2세(Cambyses Ⅱ)는 애굽까지 정복하였다(BC 525년).
그러나 그가 귀국길에 죽고 반란에 의해 가우마타(Gaumata)가 수산(수사)에서 왕위에 올랐을 때부터 바사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반란으로 왕위에 오른 가우마타는 2개월만에 귀족들에게 암살당하고 다리오(Darius)가 귀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
왕위에 오른 다리오 1세는 유럽의 다뉴브강까지 이르러 헬라와 충돌했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였다(BC 491년). 다리오 1세의 사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방이 점점 쇠약해졌는데, 다리오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서스(Xerxes, BC 486~465, 스 1:1,4:6에는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왕후로 삼았고, 에스더 사건이 있은지 4년 후 곧 즉위 7년째 되던 해(BC480/479년)에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게 패하였다.
그후는 아닥사스다 1세(롱기마누스, BC 465~423)였고, 그의 즉위 27년 곧 BC 438년에 느헤미야가 성곽 수축의 일을 감독하기 위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내려왔다(느 2:1~12).
그후 다리오 2세(BC 423~404년), 아닥사스다 2세, 무네몬 3세(BC 404~359년), 오커스(BC 359~338), 알세스(BC 338~335년), 다리오 3세(BC 335~331년)로 이어졌으나, BC 331년에 헬라(Greece)의 알렉산더대왕에게 알벨라에서 대패한 후, 그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해 200여년의 바사의 번영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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