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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루쿠스(Selucus) 왕조시대<톰슨성경>

영국신사77 2007. 5. 30. 22:56

                             셀루쿠스(Selucus) 왕조시대<톰슨성경>

 

 

   

  셀루쿠스 1세에 의해서 세워진 시리아의 통치자들은 오론테스강의 안디옥을 그 수도권으로 삼았다. 

 

  안티오쿠스 3세[대왕]는 이집트와 수 차례의 전쟁을 거쳐, BC 199년 요단강의 발원지인 파니온 근처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집트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유대 역사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톨레미 왕조가 유대 관습과 전승에 호의적이었던 반면, 셀루쿠스 왕조는 유대인에게 헬라문화를 강압적으로 전파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치하에서는 친헬라파  대제사장을 앞세워서, 무자비하게 유대교를 탄압하고 헬라문화를 대대적으로 장려하였다. 경기장이 예루살렘에 세워지고 헬라식 이름은 흔한 일이 되어 버려, 유대적 정통주의는 반 계몽적이 되거나 또는 시대에 뒤진 것으로 매도되었다.

 

    그후 안티오쿠스 4세는 더욱 정통적 유대를 탄압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시리아 대군을 예루살렘에 투입하여 유대 정통 세력들을 학살하고, 도시의 성벽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요새인 아크라를 성채에 건조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 성전에 제우신을 대신 세우고, 돼지 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할례를 금하는등 정통적 유대신앙의 자취를 없애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헬라정책은 내부의 극심한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고, 정통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게 되어, 마카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