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강해[종합]/중간사

★ 알렉산더 대왕시대 <톰슨성경>

영국신사77 2007. 5. 29. 00:24

  알렉산더는 단순히 권력에만 광분한 독재자는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그는 헬라문화야말로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한 원동력임을 철저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알렉산더와 유대인 사이에는 퍽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알렉산더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율법을 지키도록 허락하였을 뿐 아니라 안식년에는  조공을 면제하였다.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될 때에는 유대인들의 이주를 장려하고, 다른 정복민들과는 구별되는 특권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더가 중동에 끼친 유산은 그 통치 방식보다는 헬라문화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제국의 지방마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들은 헬라의 문화를 좇아 생활 질서를 전체적으로 갱신시키는 모델이 되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볼 때, 도시 건설이는 것은 곧 생활방식을 헬라적으로 변화시킬 웅장한 공공의 건물과 체육관, 야외 극장 같은 건물을 건축하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사람은 헬라식 이름을 갖게 되었고, 헬라어와 의복을 갖게 되었다. 즉, 헬라화 되어 같던 것이다. 

 

  헬레니즘의 물질적 측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매혹적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교역과 상업이 새로운 계층에게 부를 안겨 주었고, 학자들은 도서관과 학교의 설립을 환영했다. 높은 수준의 주거 방식과 식생활이 사람들에게 생활 수준의 향상을 가져다 주었다.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들도 헬라문화의 이 겉모습에 만족하였고, 그 문화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바벨론 유수 이전 시기에 있어서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에게 장애물이 되었었다면, 헬레니즘이야말로 바벨론 유수 이후에 이스라엘이 당한 가장 큰 유혹이었다.

 

  페르시아와 헬라제국과 같은 이방 민족과의 접촉은, 전통적인  유대종교 의식에도 여러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헬라식 이름을 가졌고, 헬라철학을 받아들였으며, 자기 조상의 신앙과 헬라식 지혜를 혼합하려고 하였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헬레니즘에 저항하여, 율법을 더욱 폭넓고 깊게 연구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더는 33세에 요절하였지만, 그의 장군들이 제국을 계승하여, 헬레니즘의 물결은 더욱 고조되었다. 특히 이집트의 톨레미 왕조와 시리아의 셀루쿠스 왕조는 영토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 싸웠지만, 그들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사명에 대해서만은 완전히 일치하였다.

 

  역사가 타른(W>W> Tar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렉산더가 세상을 너무 변화 시켰으므로, 그의 후대에 가서는 아무 것도 그 이전처럼 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