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2)-
1. 헬라제국 2. 프톨레미왕조 3. 셀루커스왕조
1.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시대
BC 333년 잇수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알렉산더 대왕은 연이어서 페르시아 제국을 점령하였다. 이 사건은 헬라문명이 근동지역에 강력한 변화를 가지고 온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나라들에 헬라어를 비롯한 헬라문화를 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인도의 불교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간다라 미술을 낳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늘날 불교의 부처상도 결국 알렉산더의 헬라 조각 예술과 불교 예술이 만나서 생겨난 결과이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BC 323년에 갑자기 죽게 되자, 거대한 헬라제국은 그의 부하 4명에게 다음과 같이 분할되어 버렸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톨레미(Ptolemy)
시리아와 바벨론 지역...셀룩커스(Selucus)
비두니아와 트리기아 지방...리시마쿠스(lysimachus)
마케도니아 지방...카산더(Cassender)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톨레미 왕조와, 연이어서 셀룩커스 왕조에게 약 250년간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BC 2세기 후반에 유대인 마카비가 혁명을 일으켜, 셀루커스 왕조로부터 독립하여 하몬스 왕조를 세워 약 100년간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헬라의 두 왕조가 분쟁중에 약해진 틈을 타서 로마가 이들을 점령하였으며, BC 63년에 이스라엘도 마침내 로마의 지배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한 지 63년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으며, 33년 동안의 생애 내내 로마의 통치시대 속에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신약 성경 곳곳에 나오는 로마 군인과 정치인들, 그리고 로마의 화폐와 도량형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톨레미 왕조 통치시대
먼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한 톨레미 1세(BC 323~285 재위, 38년간) 이래로, 이 지역 영토에 대한 분쟁이 계속 되었다.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 지역이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셀루커스 왕조의 지도자들도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모두 4차례의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4번 모두 톨레미 왕조가 승리하고 말았다. 그러나 북쪽의 셀룩커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3세(BC 222~187 재위, 35년간)가 BC 198년에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남침하여, 톨레미 5세의 군대를 물리치고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이때부터 BC 63년의 로마의 폼페이 침공까지, 셀룩커스 왕조의 온갖 박해를 받게 되었다.
톨레미의 통치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비교적 평화로운 삶을 유지해 갔다. 그들은 정치적인 평화와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대제사장들에게 맡겼다.
또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 당시에 주로 사용되었다.
3. 셀룩커스 왕조의 통치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