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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왕국

영국신사77 2007. 5. 19. 23:03

 

                  시리아 왕국 [Syrian Kingdom]

 

 

   BC 3세기 초에 마케도니아계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하여 성립된 왕국.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부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가  창건하였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죽은 뒤, 셀레우코스 1세는

대왕의 옛 영지였던 소아시아에서 인도의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계승하여, BC 300년 오론테스강가에 수도 안티오키아를 세웠다.

 

    BC 201년에는 엘레우테로스강 남쪽의 코엘레시리아와

페니키아 해안의 여러 도시를 손에 넣었으며,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뻗치는 등, 안티오코스 1세 때부터 안티오코스 4세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BC 2세기 중반에 들어오자,
파르티아, 폰토스 등의 토착왕조가 성립되고, 티로스 등의 도시가 독립을 선언하는 등, 여러 어려움과 내분이 겹쳐 왕국은 점차 약화되었다.

 

  마침내 BC 64년, 로마는 팔레스타인과 함께 시리아왕국을 하나의 주로 병합하였다.

 

   셀레우코스왕조는 점령지역의 토착세력에게 자치권을 주었으며, 도시화 정책을 펼쳐 많은 도시를 신설(안티오키아, 피에리아, 셀레우키아 등)하거나, 재건(베로에아, 에피파니아)하였다.

 

  아라비아, 실크로드와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토지가 비옥하여 곡식과 과일, 야채가 많이 생산되었으며, 유리제조, 옷감, 염색 등의 산업도 발달하였다.

 

 

 

 

 

 

                      셀레우키아 [Seleukeia]

 

 

 

셀레우코스왕조 시리아왕국의 그리스풍 도시.

시리아왕국의 건국자인 셀레우코스 1세가 영내의 각지에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셀레우키아라고 하였다. 이들 그리스풍의 폴리스는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다. 많은 셀레우키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BC 312년 무렵에 시리아왕국의 수도로서 축조된 티그리스강변의 것이다.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이 가장 접근한 지점(두 강은 운하로 연결됨)에 건설되어 상업도시로서 번영하여 1세기경에는 인구가 6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파르티아왕국의 영토가 된 뒤로도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으나 로마트라야누스(재위 98∼117) 때에 파괴된(117) 뒤 164년에는 완전히 괴멸했다.

이 밖에도 BC 300년 무렵에 건설된 안티오키아 외항()의 셀레우키아, 킬리키아의 셀레우키아가 유명하다.

 

 

 

 

 

 

 

 

                  시리아 전쟁 [Syrian War]

 

  BC 3세기~BC 2세기 이집트와 시리아왕국과의 싸움.

  남부 시리아 및 페니키아의 영유를 둘러싸고 전후 6회에 걸쳐 일어난 싸움으로, 특히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로부터의 대상()무역로를 지중해로 연결하는 경제상의 요충지였다.

 

  이집트는 BC 217년 제4회 라피아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 대체적으로 시리아측이 우세하여 이 영토를 차지하였다

 

 

 

 

 

 

 

                      소아시아 [Asia Minor]

 

석관 / 고대 소아시아의 한 지방이었던 리시아 풍속인 석관이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 ·지중해 등에

둘러싸인 반도.

 

  면적 약 78만 5760 km2. 동서길이 약 1,000 km, 남북길이 400∼600 km. 아나톨리아(Anatolia)라고도 한다. 터키어로는 아나돌루라고 하는데, 어원은 그리스어 ‘아나톨레(anatole)’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곳’ 또는 ‘동방의 땅’을 의미한다.

 

  터키 영토의 97 %를 차지하며, 동쪽 및 남쪽으로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과 접한다.

 

  북쪽 흑해 연안에는 폰투스산맥, 남쪽 지중해 연안에는 토루스 산맥이 동서로 뻗으며, 그 사이에 평균 해발고도 800 m인 아나톨리아 고원이 내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부에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등 두 강의 수원과 아라라트산(5,185 m)이 있다. 중앙부의 고원지대는 스텝 또는 사막성 기후이며, 여름이 짧고 겨울은 몹시 춥다. 흑해 연안지방은 기온 변화가 적으며, 연간 비가 잦다.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은 지중해성 기후이며, 생활하기에 가장 알맞다.

 

  이 지방은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민족이동의 통로이자 식민활동의 무대였으며, 예로부터 갖가지 문명이 꽃피었다.

 

  BC 1680년대에는 이 반도의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히타이트 왕국이 일어났으나, BC 1200년대에 쇠퇴하자 그 대신 프리지아 왕국이 일어났으며, BC 700년대에는 리디아 ·카리아 등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BC 546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이 침입한 후로는,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반도 전체가 그 지배에 들어갔다.

 

  그후 BC 334년 알렉산더가 침입하자 헬레니즘 세계에 편입되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는 후계자인 셀레우코스 왕국에 소속되었다가, 폰투스 ·페르가몬 등의 작은 독립국이 각지에 자립하였다.

 

  BC 133년 로마의 동방주()가 되었고, 이어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영토가 되어, 고전() 그리스도교 지역을 구성하였다.

 

  한때 사산 왕조 이란이 침입하였으며, 이슬람 세력이 커짐에 따라 큰 압력을 받았다.

 

  그러다가 1071년 셀주크투르크 제국이 침공하자, 이것이 그리스 로마 세계로부터 터키 이슬람 세계로 바뀌는 전기가 되었다.

 

  1300년대 말 오스만투르크가 성립하자 이 제국의 세력에 들어갔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터키를 구성하는 주요지역이 되었다.

 

  주요산물은 밀 ·보리 ·포도 ·과일 ·잎담배 등이며, 석탄 ·크롬 ·철광석 ·구리 ·망간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주요도시는 앙카라 ·이즈미르 ·아다나 ·부르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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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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