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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왕국(王國) (2)[안티오쿠스 4세 以後]

영국신사77 2007. 5. 19. 23:00
셀레우코스 왕국(王國) (2)[안티오쿠스 4세 以後]
 
 
 
 

               셀레우코스 왕국(王國) (2) 

 

 

  <셀루우코스 역대왕>

                                     -연도는 재위-

 

셀루우코스 1세 (BC 312~280년, 32년간)

 

안티오쿠스 1세 (BC 280~262년,  22년간)

 

안티오쿠스 2세 (BC 261~246년, 25년간)

 

셀루우쿠스 2세 (BC 246~226년, 20년간)

 

셀루우코스 3세 (BC 226~223년, 3년간)

 

안티오쿠스 3세 (BC 223~187년, 36년간)

셀루우코스 4세(BC 187~175년, 12년간)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3년, 12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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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 5세(BC 163~162년, 1년간)

 

디미트리우스 1세(BC 162~150년, 12년간)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BC 150~145, 5년간)

 

디미트리오스 2세 (BC 145~139, 129~125, 각 6년, 4년간)

 

안티오쿠스 7세 (BC 139/138~129, 10년간)

 

 

* 디미트리오스 2세 (BC 129~125, 4년간)

 

 

                               개        론

 

  기원전 163년, 안티오코스 4세가 파르티아와 전쟁 중 사망한다. 그는 죽으면서, 친구 필립포스를 섭정자로 임명한다. 그러자 왕위를 계승한 어린 안티오코스 5세의 스승인 리시오스와, 섭정자 필립포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기원전 162년 마카베오당을 토벌하던 리시오스는, 유리한 입장에 있던 예루살렘 정벌을 포기하고, 마카베오당과 평화 협정을 맺은 후 본국으로 돌아간다. 필립포스를 견제하기 위해서 였다.
 
  이때 로마는 국력이 점점 강화되어, 시리아까지 넘겨다 보기 시작 했다. 그들은 잡혀와서 인질 생활을 하고 있던 셀레우코스 4세의 아들 테메트리오스를 탈출할 수 있도록 방관한다. 돌아온 테메트리오스는 안티오코스 5세와 리시아스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디미트리우스 1세이다.

 

  기원전 160년 디미트리우스 1세는, 마카베오당의 정치적인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바쿠스를 총독으로 파견한다. 바쿠스의 병력이 너무 우세한 탓으로, 이를 맞아 싸우던 마카베오당의 두목 유다가 알라사 전투에서 전사한다.

 

  한편 유대에서는 유다 마카베오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 요나단이 저항군의 총수가 되어 유대 저항군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하시드들은 종교적인 자유만으로 만족하고 저항 세력을 떠나간 관계로, 마카베오당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다시 사막으로 피신하여, 게릴라 전법으로 저항운동의 명맥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유대 저항군이 사막으로 피신해 있는동안, 시리아에서는 데메트리오스 1세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간의 왕권을 둘러싼 내전이 일어난다. 이 두 세력에서 최대의 관건은 마카베오당의 포섭이었다.

  요나단은 왕위 경쟁자 중의 하나인 데메트리어스 1세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합법적인 통치자로 행세할 수 있게 되었고. 발라스에게서는 요나단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요구대로 메네라우스가 처형된 후 공석으로 남아있던 대제사장직을 넘겨주게된다.... 

  
  시리아에서 일어났던 내란은, 기원전 150년 알렉산드로스 발라스가 데메트리오스 1세를 물리치고 황제가 된다. 요나단은 그에게서 분봉왕이란 칭호를 얻어냈다. 하지만 완벽한 토벌을 이루지 못한 발라스는, 기원전 145년에 패배한 데메트리어스 1세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2세가 발라스를 타도하자는 반란으로 이어졌고, 이어 디미트리오스 2세가 시리아의 황제가 된다.... 



  오래지 않아 발라스의 아들이 안티오코스 6세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서, 데메트리오스 2세와 대결을 벌였다. 그러자 요나단은 데메트리오스 2세가 자신의 요구를 더 이상 들어주지 않는데에 불만을 품고, 안티오코스 6세에게 접근한다.

  한편 로마는 시리아의 정책에 실력행사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요나단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로마와 동맹을 맺게 되는데, 이점은 시리아에 상당한 불리함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와의 교섭과 외교정책은, 시리아의 두 경쟁자들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버리면서, 하스몬의  요나단을 위험인물로 지목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 시발점은 데메트리오스 2세가 유다에 대한 외교정책을 비난하면서, 외교단절을 단행한 싯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동맹자였던 안티오쿠스 6세는, 협약이라는 미명아래 요나단을 끌어들여, 결국 기원 143년에 요나단을 암살하였다.

  요나단이 사망하자, 그의 형 시몬이 동생의 직책과 직위를 이어 받는다. 그는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 붙어서 그의 허락을 받아,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위대한 대제사장, 전략가, 유대인의 맹주' 라고 자칭하고, 독립된 통치자로 다른 왕들처럼 자신이 통치하기 시작한 해부터 연대를 계산하도록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시리아인들을 모두 추방하고, 명실공히 유대를 독립국으로 선포한다. 이 때가 주전 141년이다... 

  시몬의 집권 초기에 트리폰이 원정길에 나섰으나 실패하게되는 시기에,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포로생활을 하던 데메트리오스 2세의 동생 시데테스가, 탈주하여 안티오코스 7세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트리폰을 꺽은 후 시몬을 공격했으나, 모데인에서 시몬의 두 아들, 유다와 요한 히르카노스에게 격퇴 당한다. 이로 인해 유대의 독립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후 히르카노스는  영토확장에 대한 열의를 보여, 바벨론 포로 이전의 영토를 되찾으려고 군대를 일으켜 진군하였다. 하지만 시리아의 안티오코스7세의 압력을 받으면서, 그 계획은 좌절되어 버린다.  결국 히르카노스는 부친인 시몬이 정복한 모든 영토를 시리아에 반환하고, 조공까지 바치기로 협정을 맺었다.

   기원전 127년, 시리아의 안티오코스7세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그 후 시리아는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기원전 96년에는 바리새인들이 선동한 것으로 여겨지는 내란이 일어나, 6년간 계속되었다. 요나단은 반란군과 그들을 지원하러 온 시리아 왕 데메트리오스 3세를 물리치고, 반란군 지휘자 800명을 나무기둥에 박아 공개 처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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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미트리오스 1세 [Dimitrios I Soter,

                                      재위 BC 162~150, 12년간]

 
(영)Demetrius Ⅰ Soter.

BC 187경~150.

시리아의 왕(BC 162~150 재위).

 

  BC 312년에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가 세운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BC 187~175 재위)의 아들로, 아버지가 왕위에 있는 동안 인질로 로마에 가 있었다. 그가 로마에 있을 때, 숙부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BC 164년에 죽음)와 사촌 안티오코스 5세가 시리아를 다스렸다.

 

  그리스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폴리비오스의 도움으로, BC 162년에 로마를 탈출한 그는, 시리아로 돌아가 왕위를 요구했다. 티마르코스 장군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대가로, 로마 원로원은 그를 시리아 왕으로 승인했다.

 

  BC 160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했으나, 로마·이집트·페르가몬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노리던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와 싸우다가 죽었다.

 

 

 

 

 

              알렉산드로스 발라스[Alexandros Balas,

                                          재위 BC 150~145, 5년간]

 

 
  (영)Alexander Balas. Aleksandros Epiphanes라고도 함.

  ?~BC 145.

  시리아와 페르가몬(소아시아에 있던 그리스 영토)의 왕.

  셀레우코스 왕국을 다스리기도 했다(BC 150~145).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아들로 자칭한 알렉산드로스는, 용병대의 도움을 얻어 셀레우코스 왕위를 차지했으며, 셀레우코스 왕국의 직계 계승자인 디미트리오스 1세 소테르를 몰아내고 살해했다. 로마 원로원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원으로, 셀레우코스 왕국의 남은 영토를 다스렸으나, 디미트리오스 1세 소테르의 아들인 디미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치세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요나단 마카베오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여 팔레스타인을 평정했으나, 한편 정치와 스토아 철학에 관심있는 척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여 인기를 잃었다.

 

 

 

        디미트리오스 2세 [Dimitrios II Nicator,

                    재위 BC 145~139,129~125, 각 6년, 4년간]

 
  (영)Demetrius Ⅱ Nicator.

  BC 161~125[36세].

  시리아의 왕(BC 145~139, BC 129~125 재위).

 

  디미트리오스 1세 소테르의 아들로, 아버지가 BC 150년에 왕위 찬탈자인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와 싸우다가 죽은 뒤, 시리아에서 추방당했다.

 

  BC 147년에 크레타 용병들을 이끌고 시리아로 돌아와, BC 145년에 발라스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BC 140년에는 파르티아의 침략을 물리쳤지만, 이듬해에 파르티아인들에게 패해 포로가 되었다.

 

  BC 129년에 풀려나 시리아로 돌아왔지만, 2번째로 왕이 되었을 때는 왕국의 일부밖에 다스리지 못했고, 약 4년 뒤에 암살당했다.

 

 

 

 

 

                  안티오쿠스 7세 [Antiochus VII Sidetes,

                                  재위 BC 139/138~129, 10년간]

 

  BC 159경~129.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BC 139/138~129 재위).

 

  나라를 통일한 뒤 왕이 되었고, 파르티아인에게 살해당하기 전

선조대 영토의 상당부분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디미트리오스 1세의 아들이며, 디미트리오스 2세(둘 다 셀레우코

스 왕조의 왕)와 형제지간인 안티오코스는, 그리스 섬들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BC 141년 파르티아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디미트리오스 2세가

사로잡히자, 디미트리오스 2세의 왕비인 클레오파트라 테아가 섭

정을 맡았다.

 

  그러나 왕위 찬탈을 노리고 트리폰이 난을 일으켜 전권을 장악하

려고 위협하자, 혈기왕성한 왕자 안티오코스 7세가 시리아에 도착

하여(BC 139),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하고, 트리폰을 쫓아냈

다.

 

  성서(Ⅰ 마카 14:1~14)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유대 왕국과

같은 잠재적인 적대세력들에게 자신의 중립을 보장했다. BC 138

년 마침내 안티오코스는 트리폰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유대인들

에게 자신을 대군주로 인정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유대인들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병력을 파견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BC 135(또는 134)년에, 자신이 직접 포위공격을 지

휘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유대 왕국 지도자들 내부의 불화도,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한 요인이었다.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완전히 파괴하고, 얼마 전에 왕

위에 오른 요한 히르카누스를 자신의 봉신으로 삼았다. 그는 유대

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주장을 물리치고, 히르카누스를 고위 성직

자로 임명하여, 종교적 자율성을 허용했다.

 

  이렇게 해서 팔레스티나 지역이 안정되자, 안티오코스는 선조들

이 통치했던 동부지역들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그리스화한 도

시들이 보내는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파르티아인들을 메소

포타미아에서 몰아내고, 메디아를 침략했다.

 

  파르티아인들은 BC 141년, 감옥에 갇혀 있던 디미트리오스 2세

를 석방했다. 전선의 후방에서 내전을 일으키려는 의도였을 것이

다.

 

  그후 12년이 경과한 BC 129년초, 파르티아인들은 셀레우코스 왕

조의 겨울진영을 급습하여, 안티오코스를 살해했다.

 

  그는 5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가 죽고 나자, 시리아는 내전으로

빠져들었으며, 제국 통일의 꿈도 완전히 사라졌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인물에 대해서 찾아볼 수 있는 기초 영문 자료로는, 에드윈 로버트 베번의 〈셀레우코스 왕가 The House of Seleucus〉(2권, 1902, 재판 196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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