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헬레니즘

마케도니아 왕국(Kingdom of Macedonia)

영국신사77 2007. 5. 17. 09:41

               마케도니아 왕국(Kingdom of Macedonia)

   그리스 북쪽에 있던 고대 왕국.

   BC 12세기에 북쪽으로부터 침입하여 들어온 도리스인이 이 후 마케도니아인의 중심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BC 640년경 아르고스의 명문 자손인 페르디카스가 일리리아 지방으로부터 들어와 마케도니아 왕국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아이가이를 수도로 하여 왕가가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BC 514∼BC 479년의 페르시아 전쟁 시기에는 페르시아 쪽에 가담하였고, 페르시아 세력이 후퇴한 후로는 그리스와의 관계가 심각해져서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 아르켈라오스 왕의 치하(BC 413∼BC 399) 때부터는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군비를 강화하였다.

   필리포스 2세는 내란을 진압해 국력을 강화하였다. 트라키아를 병합하는 등 국토를 수배로 확장하였으며, BC 338년에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를 항복시키고 헬레네스 연맹을 결성하여 전(全)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그리스 폴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페르시아에 대한 국민적 보복전(報復戰)에 나섰다.

   그러나 필리포스가 중도에서 암살되자,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라, 그리스에서 일어난 반(反)마케도니아 동란을 진압하고, BC 334년 죽은 부왕(父王)과 똑같은 자격으로 페르시아 정벌에 나섰다.

 

  그는 BC 330년에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하고, 이어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동정(東征)을 계속하여, 유럽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때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융성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동정 중 마케도니아 본국과 그리스 및 트라키아의 군사 ·정치를 그의 측근이며 총독인 안티파트로스에게 위임하였다.

 

   BC 323년 대왕이 급사하자, 왕위계승자로 대왕의 이복동생인 아리다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왕비 로크사네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재위 BC 323∼BC 310)의 공동 통치가 군대 및 장군들에 의해 확인되고,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가 종전과 마찬가지로 섭정이 되어 관리하도록 결정하였다.

   이후 왕족 ·근신(近臣), 여러 장군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어, 필리포스 3세인 아리다이오스는 BC 317년에 태후 올림피아스에게 살해되고, 올림피아스와 로크사네 및 알렉산드로스 4세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산드로스에게 살해되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통은 단절되었다.

   카산드로스는 필리포스 2세의 딸 테살로니케와 결혼하여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마케도니아 왕국은 1대에 끝나고, 안티고노스 1세가 마케도니아 왕을 자칭하였고, 왕위는 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 등으로 전전하여 내려오다가, 데메트리오스 1세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에 이르러 확정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안티고노스 왕가를 확립하였다(BC 272).

   그의 사후 필리포스 5세(재위 BC 222∼BC 179)는 지중해 세계로의 진출을 도모하였으나, 로마의 동방 진출 정책과 충돌하게 되었다.

 

  그는 제1차(BC 215∼BC 205)와 제2차(BC 200∼BC 197)의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패한 후 국력회복을 꾀하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 왕도 부왕의 뜻을 이어 반(反) 로마정책을 취하여 로마와 다시 충돌하였으나(제3차 마케도니아전쟁, BC 171∼BC 168), 로마군에게 패하여 포로로 잡혀감으로써, 마케도니아는 멸망하고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하여 세계제국으로 세력이 신장되었고, 짧은 시기에 대제국은 멸망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그리스 문화가 유럽과 아시아 및 이집트에까지 유포되었다.

 

   통일국가를 형성한 대왕에 대한 군주예배는, 후세의 시리아 ·이집트,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지배자에 대한 신적(神的) 권위의 계기를 만들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마케도니아왕국(Kingdom of Macedonia)

   그리스 북부의 고대왕국.

   주민은 도리아계(系)그리스인에 가깝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배출한 고(古)마케도니아의 왕통(아르게아다이, 별칭 테메노스家;BC 7세기 초?~BC 310/BC 309) 및 헬레니즘시대의 안티고노스조(BC 306~BC 168)를 말한다.

   이 왕국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페르시아전쟁을 통해 페르시아에 복종하고 있었던 때부터이지만, 그 뒤 페르시아와의 관계를 끊고 그리스에 대한 접근을 긴밀히 하였다. 동시에 그리스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도 시작되었다. 획기적으로 국력을 강화하고 국토를 확대한 왕은, 필리포스 2세(재위 BC 359~BC 336)였다.

   그는 BC 338년 카이로네이아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그가 암살되자, 페르시아령(領) 소아시아에 대한 진출은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대왕(재위 BC 336~BC 323)이 이어받았다. 그는 아케메네스조(朝)의 페르시아판도 전부를 정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북서(北西)인도까지 병합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기간 동안, 마케도니아는 실질적으로 신하인 안티파트로스가 관장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갑자기 죽자, 그를 따르던 여러 장군사이에 격렬한 권력투쟁이 전개 되었으며, 꼭두각시왕으로 옹립된 대왕의 외사촌동생인 필리포스 3세(재위 BC 323~BC 317)가 BC 317년에 태후(太后)인 올림피아스에게 살해되었다.

   다시 다음 해인 BC 316년에는 그녀가, 또한 BC 310~BC 309년에는 대왕의 비(妃) 록사네와 어린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가, 다 함께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산드로스에게 살해되어 알렉산드로스의 왕통이 끊어졌다. 또한 카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왕위도 2대로 끝났다.

   그 사이 여러 장수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나, 자기가 마케도니아의 왕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왕이 결정되지 못하다가 안티고노스 2세(재위 BC 276~BC 239)에 이르러 비로소 안정되어, 헬레니즘시대의 마케도니아왕국으로서 안티고노스조(朝)가 확정되었다.

 

   지중해와 세계진출의 웅도(雄圖)를 품고 있던 필리포스 5세(재위 BC 221~BC 179) 때 로마와 충돌하여, 패배하자 왕국은 멸망하였다.



                                              출처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마케도니아의 고대역사

 

   선사시대 문화는 주로 그리스 및 아나톨리아와 관계가 있다. 스스로를 마케도니아인이라고 부르던 미지의 민족이, BC 700년경에 왕인 페르디카스 1세와 그 부하들의 지휘 아래 원래 살고 있던 알리아크몬 강 유역을 떠나 동쪽으로 이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BC 5세기경 마케도니아인은 그리스어를 받아들이고 통일 왕국을 세웠다. 아테네가 이곳 해안지역을 통치하게 되자, 마케도니아 왕들은 어쩔 수 없이 고지대와 평야지대를 개간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이것은 아민타스 3세(BC 393~370/369 재위)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아민타스 3세의  두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2세와 페르디카스 3세의 통치기간은 비교적 짧았으며, 아민타스의 셋째 아들 필리포스 2세가 페르디카스의 어린 상속자를 대신하여 통치권을 장악했다. 그는 칙령을 고쳐 스스로 왕(BC 359~336 재위)이 되었고,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내에서 강력한 위치로 끌어올렸다.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BC 336~323 재위)는, 아케메네스(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나일 강과 인더스 강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죽자, 그를 따르던 장군들이 제국 각 지방을 분할하여 지배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제국 전체를 차지하려는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BC 321~301년에 계속되었다.

 

   마케도니아 자체는 제국의 중심부로 계속 남아 있었으며, 그리스 통치권과 함께 이곳을 얻고자 하는 날카로운 대립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유럽 지역 섭정인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아들 카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가까스로 통치해나갔으나, BC 297년 카산드로스가 죽자 마케도니아는 내란을 겪게 되었다.

 

   디미트리오스 1세 폴리오케테스가 6년 동안(BC 294~288) 통치하고 난 후, 마케도니아는 다시 내란 상태에 빠졌으며, 북쪽의 약탈자인 갈라티아인에게 심하게 공격받았다.

 

   BC 277년 디미트리오스의 유능한 아들인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갈라티아인을 물리치고 마케도니아 군대로부터 왕으로 추대받았다. 그후 BC 277~168년 안티고노스 왕조가 지배하는 동안 나라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필리포스 5세(BC 221~176 재위)와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BC 179~168 재위) 때에,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충돌해 패배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동안 처음에는 공통된 유대관계가 전혀 없는 4개의 자치 공화국을 형성하다가(BC 168~146), 이들 지역을 한 행정단위로 하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보루로 계속 남아 있었으며, 북쪽 변경에서는 이웃 부족을 정벌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출처:엠파스

 

           

            

 

                    마케토니아왕 계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삼촌 때부터 시작


페르디카스 (3세)

필리포스 (2세, 페르디카스의 형(동생?), 섭정즉위후 왕위 찬탈)
올림피아스 (필리포스의 아내, 에피로스왕 네오프톨레모스의 딸)

알렉산드로스 (대왕, 필리포스와 올림피아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권력공백기에 빠지자 군 총사령관 페르디카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이복동생 필리포스 아르히다이우스와
알렉산더와 페르시아 공주 록산느 사이에 태어난 유복자
알렉산드로스 아이구스를 공동왕으로 추대

페르디카스에 반대하는 장군들에 의해 내전발발
대표적인 반대세력으로 바빌론의 셀레우코스 니카토르(와 그 아들 안티오코스),
소아시아의 안티고노스 모노프탈모스(와 그 아들 데메트리오스 폴리오르케테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라구스, 트라키아의 뤼시마코스,
아테네 및 그리이스 본토의 안티파테르(및 그 아들 카산드로스)등등

필리포스 아르히다이우스는 올림피아스에 의해 독살되어 일찍
제거되었고 페르디카스는 얼마 못가 제거되고
안티파테르가 마케도니아와 그리이스 본토를 장악하고
섭정이 됨(bc 321). bc 319년 안티파테르가 죽고(늙어서)
폴리스페르콘이 정권을 장악했으나 곧이어 올림피아스 및
카산드로스가 정권쟁탈전 시작. bc 317년 카산드로스 최종 승리.
bc 305년 카산드로스 록산느와 알렉산드로스 아이구스를
제거하고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등극

이때가 되면 알렉산더의 제국은 완전히 분리되어 바빌론의
셀레우코스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왕국은 안정기에 들어갑니다.
시리아의 안티고노스는 비록 전사하지만 그 아들 데메트리오스
폴리오르케테스는 그리이스 본토에 상당한 세력을 뻗치지요.
카산드로스 사후 그 아들들간의 왕위쟁탈전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올림피아스와 친족간이며 데메트리오스의 처남이 되는
에피로스 왕 퓌로스(그 유명한 전술가, 한니발이 극찬했던)가 마케도니아
왕권을 노리고 내전에 뛰어 듭니다. 이 시기 마케도니아는
극심한 혼란기여서 왕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지요.
결국 최종적으로 마케도니아의 왕위는 데메트리오스 폴리오르케테스
의 아들 안티고노스에게 돌아가고(bc 270년경(?))...

 

   이 안티고노스 왕조는 상당히 안정적으로유지되어, 그리이스 본토에 수시로 간섭하게 됩니다.

그러나 필리포스5세와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 왕 때에 와서, 신흥 강대국 로마와 자주 충돌하게 되어, 결국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끝으로, 로마의 속국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