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헬레니즘

그리스(헬라) 문명(BC3000~ BC338)

영국신사77 2007. 5. 16. 23:26
 

      그리스(헬라) 문명(BC3000~ BC338)

 

 

유럽문명의 기원이 되는 문화이다.
세계사를 유럽인들이 정립하면서 편견에 의하여
동양문화가 평가절하 되었다.
동양문명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문명이 이룩되었고,
그리스 문명은 유럽문명이 되었다.

<오데옹극장과 파르테논신전>
 

 

 

오리엔트(Orient: 해뜨는 곳) 문명 [그리스 지도]
오리엔트는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중동,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 등 인더스강 서쪽까지를 말하나
유럽서는 지중해 동쪽 전부를 말한다.
지금은 사막이며, 거의 불모지이지만 옛날에는 찬란한 문명을 만든 곳이다.
옥시던트(Occident- 해지는 곳)문명은 'Occidence'의 헬라어에서 유래된다.
옥시던트 문명은 지중해 문화를 전부를 말한다.
오리엔트 문명은 크레타 문명→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유럽 문명으로 전하여 졌다.

그리고 아시리아(앗수르)어로 해뜨는 동쪽을 아수(Asu)라고 하며, 이것이 아시아(Asia)의 어원이 되었고,
또 해지는 서쪽을 에렙(Ereb)이라고 하는데서 유럽(Europe)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헬라(Hellas)

  어원은 그리스 전설적 영웅 헬렌(Hellen)에서 왔으며, 그는 테살리아를 세웠다고 한다.
다른 도시도 건설하였는데, 헬렌이 건설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헬레네스(Hellenes)라고 하였으며,
헬라는 '그리스인이 사는 곳'라는 뜻이 어원이다.
소아시아, 에페수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와 북 그리스 전체를 말한다.
그리스가 패망 후에 알렉산더가 지배한 영토도 헬라라고 하였다.

 헬라는 헤브라이즘과 대비되는 사상과 문화를 말하는데, 그리스 사상과 문화와 알렉산더가 정복한
이집트와 동방문화 전부를 합한 것을 말하며, 이 왕국을' 헬레니즘 왕국'이라 한다. 

 

                  헬레니즘 문명

  알렉산더가 정복한 땅에 헬라 인을 이주시켜 만든 문화로 알렉산드리아가 중심이며, 동양문화에
서양문화의 융합이다.

 

 이 문화는 동양에 와서 간다라 문화가 되었고, 간다라는 아잔타 동굴 문화에 영향을 끼쳤으며, 이 문화는 당나라에 전하여 졌다.

 

 신라는 당에서 유입하여 석굴암과 같은 문화를 낳게 된다.
1988년 1회 '경주엑스포'의 주제가 이것을 말하려고 하였다. 


 

 

                          에게해 문명

 BC3000- BC1500까지 '크레타문명'을 남방구 문화를 말하며, BC1500- BC1300까지를 '미케네 문명'을
북방구 문화라 하는데, 이 두 문명을 '에게해 문명'이라 말하고, 이 문명이 그리스 본토에 옮겨와 그리스  문명이 되었다.

 

  그리스인은 BC2000- BC1000경, 여러 차례에 걸쳐 발칸반도(현: 유고지방)와 남부 지방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이주하여 *폴리스를 건설하였으나, 민족성이 자유를 강력히 바랐기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족의식은 강하여 신전중심으로 동맹을 맺었고, 제우스 제사 때 *올림포스 산에 모여 단결을 위하여 경기를 한 것이 고대 올림픽으로 현대 올림픽 기원이 되었다.

 이 산은 현재지명 살로니키 만 연안 가까이 있다.
BC776- AD394까지 계속 경기를 하였고, 평시에는 대립이 심하여도, 이방민족과 전쟁 할때는 단합이
잘되었으며, 그리스어(헤라네스-헬라)모르는 이방민족을 '바르바르'라고 부르고 야만인으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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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도시국가)
큰 곳은 우리나라 도의 크기 만하였으며, 하나 하나가 독립된 국가인데 언어, 종교, 신화, 풍습이 같았다.
도시형성은 높은 데는 '아크로폴리스'라고 하여 성을 쌓고 신들을 모신 곳으로 전쟁시에는 이곳으로
피하였고, 낮은 데는 아고라(아레고)라고하여 인간이 사는 곳으로 시장, 회의장, 사교장 등이 있었다.
여행시 폴리스구조에 대하여 들을 수 없음으로 알아 두는 것이 편리하다.
남자들만이 모여 직접민주 정치를 하였으며, 이것이 민주주의 시조이다.
이때 남자인지 가리기 위하여 아래를 검사하였는데, 이것을 '*테스터'라고 하였다.
모든 결정은 이곳에서 직접 하였고, 시민권, 참정권, 노예를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전쟁에 참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으나 살라미스 해전 후에는 전부가 갖게 되었다.
통치기간은 1년이고, 재임은 안되며, 재판은 선출된 심판의 다수결로 결정되었다.
독재를 막기 위해 질그릇 조각에 이름 적어 투표하여 6000표이상을 얻으면 10년간 추방 되었다.
많은 노예(스파르타는 20배)와 전 시민이 정치를 하여야 하므로 전 시민은 철저한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테스터
테스트(Test)는 시험을 테스터(Tester)는 시험 기구를 말하는데 이것은 고환(Testicle)이 어원이다. 
*살로니카(테살로니키), [
위치지도(비잔틴제국)]
알렉산더 이복누이 살로니키는 군대 대장인 가샌더(카산드로스)의 부인이 되었고, 가샌더는 후에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다. 살로니카는 왕비 때 만든도시로 이복누이 살로니키 이름에서 왔다.
비잔틴 다음 가는 큰 도시로 만이 있는 큰 항구였으며, 자유도시로서 큰 시장이 있었다.
1917년 1차 대전 때에 연합국은 살로니카 전선에 약 50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였음에도 동맹국에게 타격을
주지 못하다가 9월부터는 살로니카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계속되었다.
9월 29일에 불가리아는 살로니카 휴전협정에 조인하여 연합군이 내건 조건을 전부 받아들였다.
성경의 데(테)살로니가

2차 전도(행 17:15,16) 그리고 3차 전도(행 20:3,4) 때에 바울이 전도하였고, 헬라 귀부인이 다수 믿었으며,
실라와 디모데가 교회 세웠다. 고린도에서 이 교회에 두 권의 서신을 보내니 데살로니가 전, 후 서로 죽은
사람의 재림 참여 문제에 대하여 대답하였고, 바울이 이곳서 3주간 설교하였으며, '아리스다고'의 고향이다.

성경의 아리스다고
아리스다고는 바울 옆에서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며, 바울과 같이 함께 고생하며, 목숨걸고 그를 섬겼다.
가이사라 감옥에서 바울 같이 있었고, 바울이 죄수로 로마에 갈 때에 같이 동행하여 로마형무소에서도
같이 있었다. (행19:29, 27:2, 골 4:10, 몬: 24)
그는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 봉사한 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올림포스 (Olimpos)산 [
위치지도(그리스)]
텟살리아의 앨리스 지방에 있는 올림피아 산에 7대불가사의 하나인 제우스 상이 있는 신전이 있다.
이곳에서 4년마다 제전이 있었고, 이때에 민족의 단합을 위하여 체전이 열려는데 이것이 올림픽 기원 이다.
올림포스산은 그리스 최고봉의 산으로높이 2917m 이며, 2700m 가 넘는 산이 7개나 된다.
산 주위가 직경 20Km나 되어 험준하고, 9월부터 다음 4월까지 눈이 덮고 있어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산이기 때문에 제우스와 신들들이 사는 곳으로 여기었고, 신탁이 있다고 믿었다.
해발 2910m 스테파니미봉을 '제우스자리'라고 부른다.
'올림포스'는 '산'이라는 뜻으로 소아시아와 키프로스 등에 주민들은 높은 산들을 올림포스라고 부르기
때문에 많은 산이 올림포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

 신전
7대 불가사의 이다. BC457에 도리아식으로 만들고, 피디아스(페이디아스)가 만든 걸작품 두개중 하나인
제우스상(다른 하나는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 여신상 이다)이 있다.
높이는 12m 되고 상아와 대리석으로 만든 콜로소스(거상)이다.
피디아스 → 미켈란젤로 → 로댕으로 이어지는 조각의 스승이고, 대선배이다. 
고대 올림픽 (BC776- AD393 까지 열렸다.)
열린 곳
태양의 신 아폴론 신전이 있는 델포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코린트(고린도 ),
하늘 주신이 제우스 신전이 있는 올림피아 산에서 열렸다.
BC80년 로마시대는 로마에서 열었다. 
참가자격

순수 혈통의 그리스인으로 시민권이 있을 것. 형벌을 받은 일이 없을 것. 신에 대한 불경이 없을 것.
자격자들은 제전 1개월 전에 에리스에 모여 합숙 강화훈련 성적에 따라 출전자격을 취득하였다.
다른 이 민족으로는 필립포스(빌립보) 2세가 최초로 경마에서 우승하였다.
 참가종목

처음에는 5종으로 단거리,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레슬링, 멀리뛰기이다.
BC600년 경에는 5종 외에 전차나 경마 포함하였고, 이것들은 2두, 4두, 준마, 노새의 종별로 나눗었다.
그외에 나팔수, 전령, 무장경기 등 19종목쯤 되었으나, 이중 10개 종목 정도만 열었다. 
규칙
발가 벗을 것, 사타구니 차지 말 것, 눈을 찌르지 말 것,
격투기 때 상대방이 죽으면 판정패와 함께 벌금형을 받았다.
우승자 만 있고 순위는 없었다. 
이야기1
초기 때 오르시포스라는 선수가 달리기 경기 중에 허리에 둘렀던 가리개가 땅에 떨어 졌으나,
그냥 달려 승리를 하였다.
그 후로 다 벗고 하는 것이 동등한 조건이 되므로 그 후로는 벗고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야기2
남자들이 벗고하는 경기라 여자는 참관 할 수가 없었다.
한 선수의 어머니가 아들의 경기를 보고 싶어 남장을 하고 몰래 숨어 들어갔다.
아들이 승리하자 기쁨에 아들을 안아주기 위하여 관객이 경기장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다가 아래가 노출 되어 여자인 것이 탄로가 나게 되었다.
그 후로는 관람객도 전부 옷을 벗고 구경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야기3
밀로는 그리스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장사로 BC 540-14년 26년간 레슬링 챔피언이었고,
최다 전 종목 우승자이다.
그는 거구로 1톤이 넘는 황소를 걸머지고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편 손가락을 장정이 구부릴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는 힘만 아니라 지성도 갖추어 '피시카(Physica)'라는 자연 과학사의 저서를 남겼고,
수학자 피타고라스를 좋아하였다고 하며, 음악과 무술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장난기 때문으로 숲 속을 거닐다가 반쯤 찢어진 나무를 발견하였고,
그것을 마저 찢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그의 손이 나무사이에 끼어 꼼짝 할 수 없게 되었다.
밤은 깊어지고 사람은 만날 길 없는 그는 늑대의 밥이 되었다고 한다.


 기간
처음에는 1일이었으나, BC490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성대하여져 5일로 늘어났다.
5일 중에 한날은 보름날이어야 하고, 이 날 중에 제사와 선수선서, 시합, 우승자의 연회가 포함되었다. 
포상
올리브나무로 만든 월계관과 신전연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이것이 지금의 아마추어 정신이다.
그러나 각 나라에 돌아가면 지위와 포상이 주어지는 풍습 때문에 좀 더 나은 대우를 찾아다니는
모리배 때문에 오염되기 시작하였다.
올리브 나무의 월계관이 된 이유는
그리스와 로마신화 편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타락
정치성을 가진 군인, 정치가들에 의해 매수 당하거나 부정을 저질러 오염되고 부패 하였다.
로마시대에는 성인은 로마서 경기하였고, 소년은 올림피아에서 하였다.
AD67년에는 네로를 참석시키기 위하여 2년이나 미루었으며,
자기가 승리하기 위하여 자기멋대로 하는 극도의 타락이 있었다.
황제 코모투스는 1031번 싸워 승리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아도취 하여 자기를 헤라클레스로 숭배하라고 명령 하였으나,
그도 얼마가지 않아 나르시소시라는 선수에게 져 목졸려 죽었다고 전 한다. [
군인황제 시대 참조]
 종말
로마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육체는 영혼의 껍데기라고 멸시되었고, 다른 종교는 이단으로 탄압할 때에
제우스 상과 모든 신전은 파괴되었으며, 제사는 금지되었다.
AD394년부터 올림픽이 1500년 간 쉬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올림피아드하면, 4년을 의미한다.
 근대 올림픽
프랑스의 남작 P. 쿠베르탱의 주장에 AD1894년에 I.O.C가 결성되었고, 1896년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1회를 열게된다. [
근대올림픽참조]
 이야기
아테네 *스타디움에 가면 하얀 조각상이 하나가 정문 반대편에 서있다.
여기에 양쪽에 젊은이와 노인의 조각이 있고, 젊은이 밑에는 고추가 아래로 처져있으며,
노인의 것은 하늘로 향해있다.
이 조각의 의미는 운동을 하면은 노인과 같이 되며, 운동을 안 하면 젊은이와 같이 되므로
운동을 많이 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그런데 노인의 것은 많이 만져서 때가 많이 묻어 있다.

 

 *스타디움 (Stadium)
관람석, 트랙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관람석이 있는 경기장을 말하며, 어원은 스타디온에서 온 말로 본래는
길이의 단위로 1 스타디온은 192.27(혹은 185.05m)로 약200m이며, 이것은 경기장의 트랙 길이었다.
성경의 계시록(21:16) 천국의 한 변의 길이가 12,000 스다디온(2,400Km)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해전 
마라톤 전쟁
BC490년 이 전쟁의 시작은 페르시아가 반란군을 그리스가 지원하였다는 이유로 BC490년에 그리스를
공격하였는데 이것이 마라톤 전쟁 이다.
이 싸움(110,000: 11,000)은 희망이 전혀 없는 싸움이었으나 기적적으로 이기고 이 전쟁의 승리를 알리려
필리피레스가 42.195 Km를 달려온 것이 지금의 마라톤 거리 이다. 
살라미스 해전 [
위치지도(그리스)]
이 해전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쟁으로 이 전쟁이 전 국민이 진정한 민주주의 틀이 되기 때문이며,
다음은 이 전쟁의 패전으로 동양의 패권이 서양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BC331년 알베라 전투로 동양제국의 패권은 끝이 되었다.
BC480년 구셀구세스(아하수에르의 다른 이름으로 성경의 에스더 남편)가 다시 침공하였고,
그리스의 모든 육군은 패하였다.
그리스 동맹군은 페르시아를 아테네 앞 바다 살라미스로 유인하여 그리스 장군 테미스토글레스는 승리를
이끌어내었다. 이 전쟁의 승리는 아테네의 공이 크므로 해상권을 쥐었으며, 델로스 동맹의 맹주 가 되어
다른 도시국가를 속국처럼 다루었다.
이 전쟁의 특징 중 하나는 가난한 사람도 전쟁에 참전하여 시민권을 얻어 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부유한 사람만 전쟁에 참전 할 수 있었는데 원인은 무기 때문이다.
무기는 각자가 준비하여야 하는데, 값이 비싸서 가난한사람은 감히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해전은 배 젓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들은 무기가 없어도 되므로 가난한 사람도 이 전쟁 후에는
시민권을 가지고 참정권도 얻었다. 이 전쟁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한 전쟁으로 기억할 만 하다.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은 함선끼리 가까이 다가가 선원들이 배에 올라 싸움 하던 기존 해전에서 함선의
앞부분을 강하고 뾰족하게 만들어 상대의 함선에 충격을 가하여 전복시키거나 파손 시키는 전술을
펼쳤기 때문에 서양사 3대해전의 첫 번째 전쟁에 들어 간다.